brunch

You can make anything
by writing

C.S.Lewis

by 사늬의 삶 Sanii Life May 01. 2024

강아지 그림 그려주고 카페 직원들이랑 친구 먹기

베트남 보름살기 05 : #행복쌀국수 #정글커피 #반쎄오차오85


오늘은 '몸이 많이 나아졌다. 하루만 더 있으면 상쾌해지겠고, 서핑하고 나면 또 기분 좋은 근육통이 오겠군.'이라고 생각하며 침대에서 일어났다. 모닝 루틴을 그대로 따라서 아침을 먹으러 엘리베이터를 타고 내려왔다. 조식 먹으면서 배가 더 안 고프길래 의아해하면서 식사를 그만두었다.


태국 가서도 땡모반, 즉 수박주스의 매력을 모르던 나는 마무리 입가심으로 파인애플쥬스를 골랐다. 과일쥬스는 달달보다 상큼 쪽이 좋다. 대신 라운지를 나가서 방으로 돌아가자마자 배가 고팠다. 어제는 조식 때 푸짐히 먹고 하루 종일 별로 안 고프더니 오늘은 내내 금세 허기가 진다.


푹신한 침대


포근하고 푹신한 침대에 누워 이불을 두르고 누워있자니 누에고치가 된 것만 같았다. 한참을 휴식하다가 시간을 이대로 흘려보내기 싫어 주섬주섬 지갑을 챙겼다. 머물고 있는 나트랑 메이플호텔은 비치 썬베드를 대여해준다. 리셉션 가서 바우처를 달라고 하면 몇 장이 필요한지, 타올도 필요한지 묻는다. 나는 타올 없이 썬베드만 빌렸다.



호텔 바로 앞 비치에 메이플호텔이라는 문구가 써진 파라솔이 많다. 직원한테 바우처를 주면 따라오라고 한 뒤 아직 사람이 앉지 않은 빈 공간에 안내해준다. 내 양쪽 옆, 앞뒤는 99% 러시안들이었다. 생각해보니까 러시아는 무척 추운 나라고 베트남은 따뜻한 나라니까 휴가 합이 맞는다.


베트남 사람들이 구운 오징어나 선글라스 판매 영업을 꽤 했다. 가끔은 러시안이 러시안한테 썬베드 근처나 길쪽에서 뭔지 모를 전단지를 나눠주기도 했다. 식당 홍보물인가? 나는 아이패드로 일기를 끄적거리고, 그림을 그리고, 여름노래를 듣고, 이어폰 배터리가 나가서 꺼져도 파도 소리를 들으며 천국이라고 느꼈다. 3시간 가까이 있었다.



냐짱의 하늘을 보라. 솜털 같은 구름이 둥둥 떠다닌다. 그 와중에 한국에 있는 사람들에게 소식을 들었다. 오늘 한국은 눈이 내렸다는데 왜 이제야? 아무래도 함박눈이 펑펑 내리기에는 연말연초가 쉬운 때라서 2월의 늦은 눈에 의아하기는 하다.



배고파져서 밥 먹으러 가는 길이다. CCCP coffee 건너편 약국에 들렀다. 디스토시드라는 구충제를 사달라는 부탁을 받았는데 여기도, 이후에 들른 약국 두 군데에서도 안 판다고 했다. 마지막 들른 약국이 셋 중 규모가 가장 컸는데도 big pharmacy로 가보라고 하는 걸 보니 유명한 아이템은 아닌가보다.



한국에서 겨울이라 건조해서인지 슬슬 거슬거슬해지길래 긴급조치로 스크럽 하고 왔는데, 베트남 온 지 며칠 안 돼서 양쪽 특히 오른쪽 손등이 많이 갈라졌다. 어우, 내 손이지만 가뭄난 땅처럼 쩍쩍 벌어져있는 게 징그러웠다. 코로나를 방지하려고 틈만 나면 손을 씻는데 수분크림 류를 안 바르는 데다가 나트랑 물이 더러워서 그러는 것 같다.


혹시나 면역력 부족일까봐 발포비타민인 베로카를 샀다. 75,000동, 그러니까 한화 3,750원이었다. 오늘부터 꼬박꼬박 손등에 수분크림이랑 호텔에 비치된 바디로션을 바르고, 입술도 여름나라 왔다고 뜯으면서도 방치했었는데 바세린 바르고 자야겠다.


행복쌀국수
테이블에 비치된 소스들


한국인들에게는 행복쌀국수로 알려진 포한푹Pho hanh phuc에 밥 먹으러 왔다. 영어는 잘 안 통하지만 직원분들이 무척 친절해서 기분이 좋았다. 뚝배기쌀국수를 한 입 뜨자마자 깊은 맛을 느꼈다. '한국인이 좋아할 만하네.' 생각하면서 숙주, 면, 고기를 쓸어넣었다. 크으, 맛있다. 한식 땡길 때 여기 와도 될 듯했다.


고수를 잘 먹는 편이다. 세상의 모든 맛을 최대한 즐기고픈 마음 덕에 몸에 안 받던 맥주도, 낯설던 향신료도 익숙해지려 해왔기 때문이다. 과거의 나 덕분에 향신료가 느껴지는 채소들을 신나게 넣어 먹다가, 얼큰하게도 즐기고 싶어서 테이블 옆에 비치된 소스를 풀어넣었다. 작은 숟가락이 담긴 가운데 빨간 소스가 얼큰한 맛의 비법이다. 뒤에 있는 시판 핫칠리 소스는 깊은 맛을 인공적으로 변질시키는 느낌이라 안 어울렸다.



정글커피Jungle Coffee라는 곳에 왔다. 나트랑 길가 곳곳에는 파란 셔츠에 바지 입은 아저씨들이 많다. 경찰은 아닌 것 같은데 뭐 하는 사람들일까 생각했는데 드디어 알아냈다. 손님들이 오토바이나 차 타고 오면 주차 안내하는 요원인 것 같다.


얌전이
더운 날씨에도 옷 입은 강아지들
까망이


정글커피에는 치와와가 두 마리 있었다. 노란 애는 얌전했고, 까만 애는 자세를 낮췄을 뿐인데 바로 쪼르르 달려와서 쓰다듬어달라고 보챘다. 쪼꼬만 게 잘 뛰어다녔다. 더운 나라라서 그런가 낮이면 뜨거운 공기가 온몸을 감싸고 저녁도 춥지 않은데 옷을 입혀두었다. 나와 몸집이 같은 베트남인도 나의 시원함을 추위라고 느낄 테니, 이 작은 아이들은 더욱 그러겠다. 새삼스레 신기하다.



한국의 흡연실 같이 생긴 베트남 에어컨실로 들어왔다. 에어컨을 20도로 틀고 선풍기도 틀어주셨는데 한동안 이곳에 나뿐이라 너무 환경 에너지 낭비인 것 같았다. 너무 춥기도 해서 나중에 직접 에어컨을 껐다. 손님은 나와 러시안 한 명을 제외하고는 죄다 현지인이었다.



앉으면 물을 갖다주신다. 왼쪽부터 차례로 얼음물, 드림정글 담아먹을 얼음컵, 드림정글이라는 이름의 음료, 물로 추정되는 무향의 작은 컵, 애플피치샴페인이다. 음료 두 잔을 시켰는데 한화 5,200원 실화인가? 천국의 가성비, 극도로 행복한 가격이다.



아이패드로 강아지들을 그려서 한 직원분께 에어드랍으로 보내드렸다. 직원들은 모두 친해보였는데, 사장님이 다른 직원한테도 와보라고 베트남어로 부르고 여럿이서 내 그림을 보더니 어디서 왔냐고 물어봤다. 한국이라니까 한국 좋아한대서 나도 베트남이 좋다고 돌려주었다. 기분이 좋았다.


사실 한국 노래가 가끔 들려서 내 국적을 알아보고 서비스해준 줄 알았는데 아니었다니 한류를 이렇게 또 느낀다. 하하. 그 다음에는 무려 직원 세 분과 함께! 사장님 자매로 추정되는 분이 찍사로 나서서 다 같이 카페 앞에서 사진 찍었다. 즐거웠다.


베트남의 낭만


반쎄오85Banh Xeo Chao 85에서는 저녁거리를 테이크아웃 했다. 스페셜 팬케이크1(50,000동)이랑 라이스페이퍼(5,000동)를 주문했다. 스프링롤은 안 된다고 단호하게 No라고 하셔서 슬퍼하니까 안타까워하시는 느낌으로 웃으셨다.


돈 쥐고 대기 5분 정도 하니까 음식이 나왔다. 주문 받으신 분 말고 다른 분이 4만 동만 가져가려 하셨다. 내가 "why?"라고 하면서 당황해하니까 서로 다시 확인하고 주문이 잘못 들어갔다면서 잠시 기다리라고 했다. 진심 2분도 안 돼서 빠르게 새로 만들어주셨다.


후다닥 테이크아웃


나온 지 15분 된 반쎄오다. 바로 먹지 않으면 눅눅해진다는데 제대로 된 반쎄오는 처음 먹어봐서 얼마나 눅눅해졌는지는 모르겠다. 단지 메이플호텔 반쎄오가 밍밍하고 기름향이 났다는 건 알겠다. 소스가 달짝지근한데 치토스맛 같기도 하고 맛났다. 양도 무척 푸짐했다.


반쎄오만 먹으면 심심할 것 같은데 야채를 곁들여 먹으면 최고다. 처음에 라이스페이퍼를 떼기 귀찮아서 4장을 한 번에 먹었다가 먹기 힘들어서 한 장씩 올바르게 먹었는데, 식감을 바삭바삭하게 해서 감칠맛 돋워주는 역할이었다. 소스가 질릴 때쯤 네 조각으로 잘려진 반쎄오도 끝나서 양도 적당하다. 즐겨 찾아먹을 것 같지는 않지만 가끔 생각날 것 같은 그런 맛이다.



나트랑 메이플호텔에 샤워기필터를 사가서 사용 후 비교한 사진이다. 좌는 3일 동안 하루 한두 번씩 쓴 것 vs 우는 새 것으로 색 차이가 꽤 난다. 수질이 아주 더럽지는 않아도 깨끗하지 않은 건 확실하니 베트남 여행 시에 샤워기 필터는 챙기는 게 좋겠다.

매거진의 이전글 고마운 나트랑(냐짱) 현지 주민들
브런치는 최신 브라우저에 최적화 되어있습니다. IE chrome safari