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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허건우 Apr 25. 2021

다행스러운 동현 씨

페이크 다큐 - 사회복지사 김소리 시리즈

 동현 씨는 2019년 4월에 10년간 다녔던 회사를 퇴사했다. 회사에서는 경기가 좋지 않아 매출이 점점 줄어들어 어쩔 수 없는 일이라고 했다. 그래도 동현 씨는 다행스러웠다. 회사의 부장님이 크게 선심을 써서 권고사직으로 처리해주겠다고 했기 때문이다. 그럼 실업급여를 받을 수가 있다고 부장님이 친절하게 동현 씨에게 알려주었다.      


 10년 동안 제대로 된 휴식을 취해보지 못한 동현 씨는 이번 기회에 휴식을 취하면서 가족들과 함께 즐거운 시간을 보내야겠다고 마음먹었다.     


 동현 씨가 집으로 가서 아내에게 회사를 그만두게 되었다고 말하자 아내의 표정이 어두워졌다. 그렇지만 화를 내지는 않았다. 병원에서 간호조무사로 일하는 아내는 동현 씨에게 그동안 고생 많았다며 한동안 푹 쉬라고 했다.      


 동현 씨는 쉬면서 가족들과 많은 시간을 보내고 싶었지만, 학교 다니는 아이들은 아이들대로, 그리고 병원에서 일하는 아내는 아내대로 다들 바빴다.     


 그렇게 몇 개월이 흘렀다. 직장을 다닐 때나, 다니지 않을 때나 가족들과 함께 여유 있는 시간을 갖지 못한 동현 씨는 새로 일을 할 곳을 알아봤지만, 40대 중반의 나이에 특별한 기술이 있는 것도 아닌 동현 씨가 일자리를 구하는 것은 쉽지 않았다.     


 동현 씨는 고민에 고민을 거듭하다가 지금까지 모아둔 돈과 퇴직금을 합쳐 처음으로 장사를 해보기로 마음먹었다. 장사를 잘만 하면 월급을 받는 직장인 생활보다는 훨씬 여유로울 것이라는 생각이 들었다.    

 

 여러 곳을 물색하며 장사를 할 곳을 알아보다가 적당한 장소를 찾았고, 2019년 10월 중순 동현 씨는 식당을 개업했다.      


 동현 씨가 개업한 식당은 5층 건물이었는데, 2층에는 합기도 도장이 있었고, 3층에는 헬스장이 있었다. 그리고 동현 씨가 장사를 하는 1층에는 동현 씨의 식당 옆에 술집이 하나 있었다.     


동현 씨는 장사를 처음 시작할 때 주위에서 이런 말을 많이 들었다.   

  

‘장사가 처음부터 잘될 거라는 생각은 마라. 최소 1년은 버텨야 손님이 모이고, 돈이 모이기 시작한다.’     


 그래서 동현 씨는 처음부터 큰 기대는 하지 않았다. 열심히 장사를 하면서 1년만 잘 버티면 그때부터 돈이 모일 거라 믿었다.    

 

 사람들의 말처럼 처음엔 손님이 거의 없었다. 10월 중순부터 말까지 보름 정도 장사를 해서 매출 400 만원을 찍었다. 하루 평균 30만 원이 채 되지 않는 매출이었다.     


 11월 한 달 동안에는 매출이 800만 원이었다. 역시 하루 평균 30만 원이 채 되지 않았다. 그래도 동현 씨는 실망하지 않았다. 아직 1년이 되려면 10개월이나 더 남아있었고, 열심히 하면 장사는 분명히 잘 될 거라는 확신이 있었다.     


 다행스럽게도 12월 매출이 1,000만 원을 넘었다. 하루 평균 30만 원의 매출을 드디어 넘어선 것이다.      

하지만, 월세와 전기세, 홀서빙 인건비와 재료비 등을 감안하면 하루 매출이 평균 50만 원 이상은 되어야 본전이었기에, 여전히 적자였다.


 그래도 동현 씨는 3개월 만에 월 매출이 1,000만 원을 넘어섰다는 사실에 기뻤다. 어쩌면 1년이 지나지 않아도 돈을 벌 수 있을지도 모른다는 희망이 생겼다.   

  

 1월에는 매출이 1,300만 원을 넘겼다. 아직 하루 평균 50만 원에는 미치지 못했지만 그래도 매출이 점점 늘어난다는 것이 동현 씨를 즐겁게 했다.     


 동현 씨의 식당에는 TV가 걸려있었다. 혼자 식사를 하러 오는 사람들이 심심하지 않게, TV라도 보면서 식사를 하라는 마음으로 걸어놨는데, 혼자서 밥을 먹는 사람들 중에는 TV를 보는 사람도 있었고, 스마트폰만 보면서 밥을 먹고 가는 사람도 있었다.     


 어느 날, 식당에 있는 TV에 뉴스를 틀어놓았는데, 이상한 이야기가 나오고 있었다. 중국에서 코로나바이러스가 작년 12월 발생을 했는데, 확산세가 심상치 않다는 것이었다. 우리나라에도 1월에 첫 확진을 받은 환자가 발생했다고 했다. 코로나의 위기경보 수준도 ‘주의’에서 ‘경계’로 격상되었다.    

 

 전문가들이 TV에 나와서 중국에서 들어오는 사람들의 입국을 지금이라도 막아야 한다고 했다. 누군가는 그 말이 옳다고 했고, 누군가는 그 말이 잘못되었다고 했다.   

  

동현 씨는 주방과 홀을 오가며 몸과 마음이 분주했기에, 자세히 듣지는 못했다.    

 

“김 사장!”   

  

 누군가 식당 문을 열고 들어오며 동현 씨를 큰 목소리로 불렀다. 동현 씨가 주방에서 고개를 빼꼼히 내밀고 보니 3층 헬스장 관장님이었다.     


“안녕하세요?”     


동현 씨가 물이 묻은 손을 앞치마에 닦으며 주방에서 나왔다.      


“그래! 나 콩나물국밥 두 그릇 같은 한 그릇!”     


헬스장 관장님은 나이가 환갑이 다 되어가는 사람이었는데, 목소리가 쩌렁쩌렁 울릴 정도로 정정하고 성격도 쾌활했다.     


“네~ 세 그릇 같은 한 그릇 드리겠습니다!”     


“하하핫!”     


관장님은 큰 소리로 웃었다. 5층 상가건물에 밥집이라고는 동현 씨 가게 밖에 없었기에 같은 건물에 있는 사람들이 가끔 들러서 밥을 먹고 갔는데, 그중에 헬스장 관장님이 가장 자주 오는 손님이었다.     


관장님은 뜨거운 콩나물국밥을 순식간에 뚝딱 해치우고는 계산을 하며 동현 씨에게 말했다.   

  

“김 사장. 운동 좀 하지 그래?”     


관장님의 말에 동현 씨가 어색하게 웃으며 대답했다.     


“하하....... 장사를 하다 보니 시간이 부족해서........”    

 

관장님이 눈을 부릅뜨며 말했다.     


“어허. 시간이 없다는 거 그거 다 핑계야. 잠 좀 줄이고 아침에 조금만 더 일찍 일어나면 되는데. 나이가 들수록 근력운동에 더 신경 많이 써야 하는 거 알지?”     


“네.......”     


“그러니까, 한 번 3층에 올라와. 내가 김 사장은 특별히 싸게 해 줄게.”     


“네. 감사합니다. 관장님. 한번 올라가겠습니다.”     


“아이. 우리 사이에 관장님은 무슨. 그냥 형이라고 불러 형! 간다. 수고해.”     


 관장님은 동현 씨를 볼 때마다 운동을 하라고 했다. 물론 본인 헬스장의 영업을 하는 것일 테지만, 동현 씨도 운동이 필요하다는 생각은 하고 있었다. 그런데, 장사를 시작하고 나니 정말 시간을 내기가 힘들었다. 관장님은 동현 씨에게 그걸 핑계라고 했지만 동현 씨의 입장에서는 오전에 일찍 일어나서 운동을 한다는 것이 말처럼 쉽지가 않았다.      


 장사를 시작하기 전에는, 식당을 운영하면 점심시간과 저녁시간 이렇게 바쁜 시간을 제외하고는 어느 정도 여유 있는 시간을 가질 수 있을 거라 생각했다. 하지만, 막상 장사를 시작하고 보니 하루 종일 해야 할 일이 끝이 없었다.      


 가게 영업시간 전에 장을 봐서 8가지 이상의 밑반찬을 다 준비해야 했고, 국밥에 사용할 육수를 미리 끓여 놓아야 했으며, 홀을 청소해둬야 했고, 숟가락과 젓가락을 깨끗이 닦아둬야 했고, 물병에 물을 채워 놓아야 했고, 밥을 해놔야 했고, 커피자판기에 커피를 채워 넣어야 했다. 점심시간과 저녁시간엔 준비한 국밥을 비롯한 음식들을 파느라 정신없이 바빴고, 손님들이 가고 나면 설거지를 하고, 음식물쓰레기를 비우고, 홀을 청소하고, 부족한 재료를 확인해서 다음 날 사야 할 물건들에 대한 기록을 해야 했다.   

   

 인건비를 아끼기 위해 홀 서빙하는 사람을 한 명만 고용했기 때문에, 동현 씨의 하루는 너무나 바빴고, 일을 마치고 집으로 돌아오면 동현 씨는 녹초가 되었다. 직장생활을 할 때는 주말에 쉴 수 있었지만, 동현 씨의 식당은 토요일과 일요일에 더 손님이 많았기에 주말에 쉴 수도 없었다.      


 직장 생활을 할 때는 어쨌든 한 달이 지나면 월급이 나왔지만, 장사를 하는 지금은 어쨌든 한 달이 지나면 월세가 나갔다. 그래서 동현 씨는 지금까지 1월 1일과 설날 당일 이렇게 이틀만 쉬고 계속 일을 했다. 

    

 바쁜 점심시간이 지났다. 설거지를 하고, 주방 정리를 했다. 그리고, 홀서빙을 하는 아주머니와 함께 늦은 점심을 먹고 나서 동현 씨는 또 저녁시간을 준비하기 시작했다. 마늘을 갈아 놓아야 했는데, 마늘이 다 떨어진 걸 확인하고 동현 씨는 근처 마트에서 마늘을 사기 위해 가게를 나왔다.      


 동현 씨가 가게 문을 열고 나오자 차량에서 아이들이 내리는 것을 보고 있던 2층의 합기도 관장이 동현 씨를 보고 허리를 90도로 숙이며 인사를 했다.     


“안녕하십니까!”     


동현 씨도 엉거주춤 서서 목을 깊숙이 숙이며 인사를 받았다.   

  

“아, 네. 안녕하세요.”     


합기도 관장은 동현 씨보다 어린 30대 초반의 총각이었는데, 늘 씩씩하고 활기가 넘쳤다.     


 동현 씨는 짧은 인사를 마친 후, 마트에서 마늘을 샀다. 이른 아침 새벽시장에서 장을 봤으면 훨씬 더 저렴한 가격에 살 수 있었는데, 깜박하고 빠트린걸 못내 아쉬워했다.   

  

 다시 가게로 돌아가 한참 동안 저녁 장사 준비를 하고 나서 자판기 커피를 뽑아 한 잔 마시는데, 가게 창문 밖으로 옆 가게 술집 사장님이 출근하는 모습이 보였다.     


 술집 사장님은 출근하기 전에 늘 목욕탕에 들렀다 출근했는데, 그래서 목욕탕 특유의 로션 냄새가 났고, 머리는 젖어 있을 때가 많았다. 술집 사장님은 가끔 출근 전에 동현 씨 가게에서 콩나물국밥을 먹을 때가 있었는데, 그때마다 동현 씨에게 말했다.     


“김 사장님 가게가 24시간 영업하면 새벽에 정말 자주 올 텐데......”     


 술집 사장님은 술을 팔면서 본인이 가게에 있는 술을 마시기도 엄청 마셨는데, 그렇게 마시고 나면 동현 씨의 콩나물국밥이 정말 많이 생각난다고 했다.     

 

 동현 씨는 그 말에 정말 새벽에도 장사를 해볼까 하고 아주 잠시 고민하기도 했지만, 그건 도저히 불가능할 것 같아 금세 생각을 접었다. 지금 일하는 것만으로도 몸이 벅찼고, 다행스럽게도 매출은 매월 꾸준히 오르고 있었기 때문이었다.     


 그렇게 장사를 계속하던 어느 날, 코로나바이러스가 한 종교집단에 의해 확진자 수가 급격히 늘어났다고 했다. 누군가는 사이비 종교집단이라며 그 집단을 욕했고, 누군가는 신도들이 중국에 다녀왔다며, 중국에서 입국하는 것을 차단하지 못한 정부의 탓으로 돌렸다.     


 동현 씨는 자신이 해당 종교의 신도가 아닌 사실을 다행이라 생각했고, 최근에 중국에 다녀오지 않은 것을 다행으로 생각했다. 어차피 가게 때문에 정신없이 바쁜 지금은 가고 싶어도 갈 수 없는 형편이긴 하지만.    

 

 확진자가 급격히 늘어나자 감염병 위기경보는 ‘경계’에서 최고 수준인 ‘심각’으로 격상되었다. 코로나가 확산되자 조금씩 늘어나던 동현 씨 가게의 매출도 줄어들기 시작했다. 사람들은 외출을 꺼리고, 배달이나 포장음식을 주로 이용했다. 치킨이나 피자와 같은 배달전문점의 매출은 오히려 올랐다고 하지만, 콩나물국밥을 주메뉴로 하는 동현 씨의 가게는 배달을 하기에도 애매했다.     

  

가게 문을 닫고 집으로 가자, 아내가 누워서 스마트폰을 보고 있었다.     


“왔어?”     


아내는 스마트폰에서 눈을 떼지 않고 말했다.    

  

“응.”  

   

“밥은?”    

 

“먹고 왔어.”     


아내가 자리에 앉으며 동현 씨에게 물었다.


“오늘 장사는? 어땠어?”   

  

“뭐, 그저 그렇지. 병원은 좀 어때?”   

  

“다들 비상이지 뭐. 암튼, 나 내일부터 나이트라서 애들 좀 잘 챙겨줘.”    

 

 동현 씨의 아내는 간호조무사로 병원에서 3교대 근무를 했는데, 밤에 근무를 하면 아이들을 동현 씨가 챙겨야 했다. 아이들 아침을 먹여 놓고, 장을 봐서 가게에 출근하면 점심식사 시간까지 밑반찬을 준비하기에 시간이 빠듯했지만 어쩔 수 없었다.     


“알았어. 일단 씻고 올게.”     


동현 씨가 욕실로 가려는데, 아내가 동현 씨를 불렀다.   

  

“여보.”  

   

“왜?”   

  

“우리.........”     


동현 씨의 아내가 뜸을 들였다.    

 

“뭔데?”     


“아파트를 그냥 하나 살까? 대출을 좀 끼더라도 이제 우리 집 하나 장만하는 게 낫지 않아?”     


동현 씨와 가족들이 사는 곳은 전셋집이었는데, 동현 씨의 아내는 집을 사고 싶어 했다. 전세자금은 동현 씨와 아내가 결혼하기 전 각자 모은 돈과 집에서 도움을 받은 돈이었기에 대출은 전혀 없었다.   

   

“대출을 좀 내면 우리도 집을 가질 수 있는데, 계속 전세로 살 필요는 없잖아.”     


동현 씨는 잠시 고민에 빠졌다. 물론, 아내의 말처럼 빚을 내고, 전세금에 보태면 아파트를 살 수 있었다. 남들은 싱크대만 빼고 전부 은행 거라고 할 정도로 빚을 많이 내서 집을 사지만, 동현 씨 가족은 조금만 빚을 내도 충분히 집을 살 수 있었다. 하지만 동현 씨는 빚을 내는 것이 조금 걱정이 되었다. 그것은 매월 나가는 지출이 더 늘어난다는 것을 의미했기 때문이었다. 게다가 지금은 코로나 때문에 조금 잠잠해졌지만, 나라에서는 항상 집값을 안정시키겠다고 했다. 만약 지금 빚을 내서 샀는데, 집값이 떨어지기라도 하면 낭패가 아닐 수 없었다.      

“우선 씻고 올게.”     


동현 씨는 머리가 복잡해 우선 씻고 생각해보기로 했다.    

 

 다음 날 동현 씨는 조금 피곤한 몸으로 출근을 했다. 지난밤 아내와 집을 사느냐 마느냐 하는 것으로 밤늦게까지 이야기를 나눴기 때문이었다. 결국 결론은 2, 3년 정도만 더 있다가 집을 구입하기로 했다. 정말로 집값이 떨어지면 대출을 내지 않고도 집을 살 수 있었고, 만약 집값이 떨어지지 않더라도, 부동산값을 반드시 잡겠다고 호언장담을 하는데, 더 이상 오를 것 같지는 않았기 때문에 기다려보고 사도 될 것 같았다.    

 

 TV를 틀어놓고 점심 장사 준비를 하는데, 이스라엘과 대만 이야기가 나왔다. 누군가 대만의 사례를 이야기하며, 우리나라가 초기 방역에 실패했다며 목소리를 높이자, 다른 누군가 이스라엘의 사례를 이야기하며 우리나라는 초기 방역에 완전히 실패한 이스라엘과 같은 나라와 비교를 하면 정말 방역을 잘하고 있는 편이라고 이야기를 했다. 세계적으로도 알아주는 K방역이라며 목소리를 높였다.  

   

 동현 씨는 누구의 말이 맞는 것인지 몰랐지만, 그리 신경 쓰고 싶지도 않았다. 다만, 자신이 운영하는 가게에 확진자가 발생하지 않기를 바랐고, 무사히 코로나 사태가 끝나고, 가게에 손님이 많아지면 좋겠다고 생각했다.     


 동현 씨 가게뿐만이 아니라, 3층의 헬스장으로 올라가는 사람도 줄었고, 2층의 합기도 차량에서 내리는 원생도 줄었다. 동현 씨 가게 옆에 있는 술집에도 사람들의 발길이 뜸했다. 호탕한 성격의 헬스장 관장님도, 늘 밝은 표정의 합기도 관장도, 술집 사장도 모두 요즘엔 표정이 썩 좋지 않았다.   

  

 코로나가 점차 장기화되자, 나라에서는 전 국민에게 1차 재난지원금을 풀었다. 동현 씨의 가족도 4인 가족 기준으로 100만 원을 받았다.     


 시간이 흐르고 확진자가 점차 줄어들자, 처음엔 구하기 어려웠던 마스크 구입도 점차 쉬워졌다. 동현 씨 가게의 손님도 다시 조금씩 늘어나기 시작했고, 헬스장을 향하는 사람도, 합기도 차량에서 내리는 원생들도, 술집으로 향하는 발걸음도 모두 조금씩 늘어났다.     


 8월. 교회의 목사와 신도들이 광화문에서 집회를 열었는데, 이들을 중심으로 또 확진자가 급속히 퍼져나갔다. 확진자가 빠른 속도로 늘어나자 서울, 경기지역과 부산지역을 거리두기 2단계로 격상했다.    

  

누군가는 목사와 신도들을 향해 미친놈들이라고 욕을 했고, 누군가는 이들의 신앙심을 찬양했다.     

집회에 참가한 목사는 자신은 하나님의 은총으로 코로나에 걸릴 일은 절대 없을 것이고, 여기에 모인 모든 사람들도 괜찮을 거라고 말했다. 하지만 목사는 코로나에 걸렸다. 많은 신도들도 함께.     


 9월이 시작되자 급기야 거리두기 2.5 단계가 시행되었다. 여러 가지 제재가 있었고, 동현 씨의 가게에는 코로나 재확산 조짐에 다시 손님들의 발길이 뜸해졌다. 동현 씨는 가게로, 동현 씨의 아내는 병원으로 출근을 해야 해서, 원격수업을 하는 아이들은 집에서 둘이서 있어야만 했다.   

  

 아직 밥을 차려 먹을 줄 모르는 아이들에게 동현 씨는 컵라면에 물을 받는 방법을 가르쳐 줬다. 아이들은 라면을 먹는다고 좋아했지만, 평소 라면을 가능한 먹지 못하게 하려고 했던 동현 씨와 동현 씨의 아내는 여간 마음이 불편한 게 아니었다. 먹는 음식도. 아이들만 집에 있어야 하는 시간도.     


 국가에서는 2차 재난지원금을 선별해서 지급한다고 했다. 1차 때는 건강보험료를 기준으로 전 국민에게 지급을 했다면, 2차 때는 근로소득이나 사업소득이 감소한 사람들에 한해서 선별적으로 지급한다고 했다.   

  

동현 씨는 당연히 매출이 많이 감소했기에 신청을 하려고 했는데, 사이트에 접속을 해서 신청을 하려니, 대상자가 아니라는 창이 떴다. 일단 대상자가 아니라고 하면 다른 어떤 식으로 사이트에 접속을 할 수가 없게 되어 있어서, 궁금한 사항을 남길 수도 없었다.     


 그래서 2차 재난지원금 대표 전화번호로 전화를 걸었는데, 수십 번을 걸어도 연결이 되지 않았다. 그래도 동현 씨는 끈질기게 전화를 걸었다. 지금 한 푼이 아쉬운 때에 어떻게든 지원금을 받아야만 한다고 생각했다. 그렇게 힘들게 기다린 끝에 겨우 상담원과 연락이 닿을 수 있었다.     


“여보세요?”     


“네. 안녕하세요? 2차 재난지원금 대상자가 아니라고 해서요. 그런데, 제가 매출이 정말 많이 줄었거든요.”     


“2019년 동기 대비 매출이 줄었어요?”     


“제가 2019년 10월 중순에 가게를 오픈했거든요. 그런데, 지금은 9월이라서 대비할 수 있는 동기 매출이 없어요. 들어보니까, 올해 6,7월 매출보다 8월 매출이 줄었다면 신청이 가능하다고 하던데요?”     


동현 씨의 말에 잠시 뭔가를 살피듯, 책장을 넘기는 소리가 들렸고, 이내 상담원이 말했다.     


“그런데, 선생님께서는 2019년에 개업을 하셨잖아요?”     


“네. 그런데, 10월 중순에 개업했어요.”     


“그럼, 10, 11, 12월 평균 매출보다, 2020년 상반기 평균 매출이 줄었다면 신청이 가능하십니다.”     


상담원의 말에 동현 씨는 잠시 멍하니 생각하다가 상담원에게 말했다.  

   

“아니, 10월 중순에 가게를 개업했는데, 그것도 한 달로 칩니까?”     


“네. 한 달로 계산합니다.”     


상담원은 담담하게 말했다.  

   

“그럼 2019년 10월 중순부터 10월 말까지 총매출이 400만 원 정도 되는데, 이걸 한 달로 계산하면 하루에 10만 원 조금 넘게 번 거잖아요? 이것보다 2020년도의 매출이 적어야 신청이 가능하다고요?”     


“선생님. 11월, 12월도 있잖아요? 그걸 평균으로 해서 계산하시면 됩니다.”      


“저기요. 상담원 아가씨! 가게 문을 연다고 누가 기다리기라도 한 것처럼 막 몰려오진 않잖아요. 시간이 좀 지나야 단골도 생기고, 사람들이 몰리고 하는데, 10월에는 매출이 거의 없었고, 11월 한 달 동안도 800만 원 정도 매출이라 하루 평균 30만 원이 채 되지 않았고, 12월에 겨우 1,000만 원을 넘겨 하루 평균 30만 원 정도 매출을 올렸는데, 이걸 평균을 내라니요? 그냥 올해 6,7월 대비해서 8월에 코로나 확진자가 많이 늘었으니, 8월 매출이 줄어들었으면 지급해주시면 되잖아요? 저도 정말 많이 줄어들었습니다.”   

  

“선생님. 죄송하지만 그건 올해 창업하신 분들에게 해당이 되는 거고요, 선생님처럼 작년에 창업하신 분들에게는 해당사항이 없습니다. 말씀을 들으면 정말 안타깝지만, 지침이 그렇기 때문에 도와드릴 수가 없네요. 죄송합니다.”     


 전화를 끊고 나서, 동현 씨는 조금 화가 났지만, 그래도 이제는 2.5단계에서 2단계로 그나마 거리 두기 단계가 하향 조정된 것에 다행이라 생각하자고 마음먹었다.   


얼마 후, 추석이 되었다. 동현 씨는 방역지침에 따라 고향에 내려가지 않고, 부모님께 전화만 드렸다.    

 

“그래. 장사는 좀 어때?”     


동현 씨의 아버지는 대충 짐작을 하면서도 동현 씨에게 물었다.     


“뭐. 그럭저럭이요.”     


“시기가 시기니만큼 어쩔 수 없는 것 아니겠냐. 좀 쉬엄쉬엄 하도록 해. 추석 연휴에는 쉬는 거냐?”     


“추석 당일 하루만 쉬고 장사하려고요.”


“그냥 좀 쉬지 그러냐.”     


“쉬어서 뭐하겠어요. 한 푼이라도 벌어야지.......”    

 

동현 씨 아버지는 그런 동현 씨가 안쓰러운지 더 이상 말을 하지 않았다.     


“그나저나 농사는 좀 어때요? 처음이라 쉽지 않으실 텐데.”     


동현 씨의 아버지와 어머니는 직장생활을 하다가 은퇴를 하고 노후를 보내고 있었는데, 아버지가 너무 무료해서 작은 텃밭이라도 가꿔보려는 마음에 밭을 빌렸다. 그리고 올해 처음으로 이것저것 작물들을 심었다.  

   

“고추를 조금 늦게 심긴 했는데, 그래도 잘 자라서 여기저기 나눠 먹는 재미가 쏠쏠하더라.”     


 동현 씨도 아버지가 보내주신 청양초를 받아 식당에서 사용하기도 했었다. 동현 씨는 어머니와도 이야기를 나누고 전화를 끊었다.   

    

 추석 당일. 동현 씨는 가게를 하루 쉬었지만, 코로나가 걱정이 되어 가족들과 집에서만 머물렀다. 괜히 확진자가 나온 시설이라도 방문했다간 2주간 집에 머물러 있어야 할지도 몰랐다. 그러면 가게도 운영 못하고, 냉장고에 있는 재료들도 모두 상해서 버려야 할지도 몰랐다.     


 아이들과 집에서 치킨을 시켜 먹고, 피자를 시켜 먹었다. 그리고 넷플릭스로 영화도 한 편 봤다. 동현 씨는 하루 쉬는 동안 국밥이 쉽게 배달시켜먹는 음식이 아니라는 걸 새삼 깨달았고, 수많은 재미난 볼거리들이 TV에 넘쳐나는데, 굳이 사람들이 밖으로 돌아다닐 필요가 없다는 것을 깨달았다. 이런데도 자신의 식당을 찾아주는 사람들이 있다는 사실이 동현 씨는 다행스럽게 느껴졌다.           


추석 연휴가 지나고, 끝나지 않을 것 같은 코로나 상황 아래서 동현 씨는 계속 영업을 했다. 


 그러던 어느 날, 국가에서는 방역을 위해 업종별로 영업금지 조치와 영업 제한 조치. 그리고 5인 이상 집합 금지 명령을 내렸다.   

   

 동현 씨의 식당은 9시까지 영업을 할 수 있었는데, 평소 10시에 문을 닫는 동현 씨는 그나마 다행이라고 생각했다. 1시간 정도 영업시간이 줄어들지만, 장사를 할 수 없는 최악의 상황은 아니었기 때문이었다.     


 점심 장사를 준비하기 위해 장을 봐서 가게로 가는 동현 씨의 손은 가벼웠다. 손님이 많이 줄어, 예전에 준비하던 음식의 절반을 채 준비하지 않아도 재료가 남곤 했다. 동현 씨가 가게로 들어가 재료를 손질하고 있는데, 헬스장 관장님이 문을 열고 들어왔다.     


“김 사장.”     


코로나가 확산되는 만큼, 관장님의 활기는 그에 반비례하듯 점점 줄어들었다. 동현 씨는 애써 관장님을 밝게 맞았다.  

   

“안녕하세요?”    

 

“국밥 하고...... 소주 한 병.”     


 동현 씨는 관장님이 낮부터 술을 마시는 경우는 지금껏 단 한 번도 보지 못했지만, 대충 상황을 짐작하고 있었기에, 아무것도 물어보지 않고 콩나물국밥과 소주 한 병을 내어줬다. 아침을 아직 안 먹은 것 같아, 손님에게 반찬으로는 나가지 않는 계란 프라이도 같이 내줬다.     


 관장님은 국밥과 계란은 먹는 둥 마는 둥 했다. 소주 몇 잔을 들이켜더니 주방에서 재료 손질을 하는 동현 씨를 불렀다.

    

“김 사장.”     


“네.”     


“내가 여기서 삼십 년을 넘게 헬스장을 했거든.”   

  

“예......... 정말 오래 하셨네요.”     


“그래....... 그런데 이런 날이 올 줄 정말 몰랐거든.”     


 동현 씨는 관장님의 말에 뭐라 대꾸를 해야 할지 몰라 아무 말도 하지 않았다. 국가의 이번 조치로 3층 헬스장과 2층 합기도장이 모두 문을 닫아야만 했다. 이번에 영업금지를 당하기 전부터 코로나로 인해 회원들이 점점 빠져나가던 헬스장이었다. 사람 좋은 관장님은 회원들의 환불 요구에 아무런 말 없이 환불조치를 해줬다. 짧게는 몇 달, 길게는 일 년 치까지 납부한 회원들의 환불 금액은 감당하기 어려울 정도였지만 관장님은 환불을 원하는 회원 모두에게 환불을 해줬다.      


“자식들 다 키워놓고, 이제 우리 마누라하고 나, 이렇게 둘만 건사하면 되겠다 생각했는데........ 젊을 때 헬스장에서 먹고, 자고, 밤낮으로 일하면서, 그나마 노후는 편안히 보낼 수 있겠다 생각했는데.......”   

  

관장님은 빈 소주잔에 쪼르르 소주를 따르고는 벌컥 잔을 비우고 씁쓸히 헛웃음을 지으며 말했다.   

  

“허허........ 이제 이 나이에 빚더미에 올라앉게 생겼네.......”    

 

잠시 멍하니 술병을 바라보던 관장님이 동현 씨에게 물었다.    

 

“그래도, 난 자식들이라도 다 키워놓았는데, 자네는 앞으로 어떻게 할 건가?”     


동현 씨가 머쓱한 표정을 지으며 대답했다.     


“뭐, 어떻게든 버텨봐야죠. 뾰족한 수가 있는 것도 아니라서.........”     


관장님이 이해한다는 듯 고개를 천천히 끄덕이며 말했다.     


“그래. 지금 이런 상황에서 뭘 어떻게 하겠냐마는....... 어쨌든 아니다 싶으면 빨리 접는 것도 용기야. 괜히 질질 끌다가는 상황이 더 힘들어지니까. 2층에 합기도 관장도 이제 그만둔다던데?”     


“아, 그래요?”     


 동현 씨는 인사성도 밝고 씩씩한 젊은 사람이 합기도 도장을 그만둔다는 것이 조금 아쉬웠다. 합기도의 상황도 헬스장과 별반 다를 것이 없었다. 코로나가 발생하고 나서 자녀들을 도장에 보내는 것이 불안해진 학부모들이 아이들을 보내지 않다 보니 원생이 많이 줄었고, 이번 영업 금지조치로 인해 원생이 전혀 오지 않으니 그만둘 수밖에 없는 상황이 된 것이다.     


그런데 조금 궁금한 점이 있어서 동현 씨가 헬스장 관장님에게 물었다.     


“저기, 그런데 태권도 도장은 문을 열던데, 합기도 도장은 왜 닫은 건가요?”    

 

헬스장 관장님은 고개를 절레절레 저으며 소주가 찰랑거리는 소주잔을 손에 들고 말했다.     


“글쎄....... 그런 걸 만든 놈들의 기준이 뭔지 나도 모르겠구먼. 이봐 김 사장. 동네 체육관에 사람이 많이 몰릴 것 같나? 아니면 스키장에 사람들이 많이 몰릴 것 같나?”     


“당연히........ 스키장 아닐까요?”     


“그래. 뭐, 야외활동이라 괜찮다 어쩐다 하지만, 스키장에는 실내 이용시설이 없나? 후우........”   

  

관장님은 길게 한숨을 내쉬었다. 그때 동현 씨의 가게 문을 열고 손님이 들어왔다.     


“어서 오세요.”     


 동현 씨가 물 묻은 손을 닦으며 손님을 맞기 위해 주방에서 홀로 나왔다. 이제는 손님이 얼마 없어 일하는 사람 없이 홀서빙도 동현 씨가 직접 했다.


“몇 분이세요?”     


“다섯 명이요.”    

 

동현 씨는 잠시 망설였다. 왜 그런지 눈치를 챈 손님이 말했다.

  

“떨어져 앉을게요. 여기 두 명, 저기 세 명.”     


 한 푼이 아쉬운 때였다. 다섯 명이 밥을 먹으면 적은 돈도 아니었다. 그러나 동현 씨는 잠시 생각하다가 말했다.      


“저기, 죄송한데 다섯 분은 안됩니다.”   

  

“네? 에이, 알아서 떨어져 앉을게요!”     


“저기, 저도 그렇게 해드리고 싶지만 지침이 그래서........”     


“왜 안된데?”     


 뒤따라 들어오던 사람이 일행에게 물었다. 그들은 불쾌한 표정을 지으며 동현 씨의 가게를 떠났다. 아마, 그렇게 마음 상한 사람들이 다시 동현 씨의 가게를 찾을 일을 없을 것이었다. 그 모습을 지켜보던 헬스장 관장님이 딱하다는 표정으로 동현 씨를 쳐다봤다.     


“이봐. 김 사장.”     


“네?”     


“그냥 받지 그랬어. 손님 한 명이 아쉬운 때에........”     


“그래도, 네 명까지만 받으라고 해서........”     


“답답한 사람이라고. 김 사장 그럼 저기 두 명이 앉았고, 여기 모르는 사람 세 명이 앉으면 그건 돼?”     


“네. 그건 됩니다.”   

  

그러자 헬스장 관장님이 탁자를 손으로 쾅 치며 말했다.     


“아니, 그게 무슨 애들 장난 같은 짓거리냐고!”     


 동현 씨에게 화를 내는 게 아니라는 것을 알면서도 동현 씨는 순간 자신이 죄를 지은 것처럼 움찔했다가 이내 어색하게 웃으며 관장님을 달랬다.   

  

“진정하세요. 관장님. 괜히 단속에 걸리면 벌금 300만 원인데, 그냥 오늘 300만 원 벌었다고 생각하죠 뭐.”     

 관장님은 잠시 흥분했다가 동현 씨의 행동에 맥이 탁 풀리는 듯  크게 숨을 들이쉬고는 빈 소주병을 들다가 동현 씨에게 말했다.     


“한 병 더 줘.”     


 동현 씨가 소주를 갖다 주자, 관장님은 말없이 소주를 땄다. 점심시간 몇 명의 손님들이 밥을 먹으러 왔고, 동현 씨는 혼자서 홀과 주방일을 모두 하느라 분주했다. 


 틀어놓은 TV에서는 골프장 캐디는 경기 진행요원으로, 인원에 포함을 시키지 않기 때문에 캐디 포함해서 5명 라운딩은 제재하지 않는다고 했다. 


 다음 소식으로는 고위 공직자가 퇴직을 하면서, 그들이 술자리를 가졌는데, 고위 공직자의 퇴직 술자리를 그들은 만찬이라 불렀고, 5인 이상이 모였다. 중대본에서는 고위공직자가 퇴직할 때 가진 5인 이상 술자리는 공적 업무에 해당한다고 발표했다.


TV를 보던 관장님은 거칠게 소주를 입안에 털어 넣었다.    

 

 시간이 흐르고, 2021년이 되었다. 2층 합기도 도장과 3층 헬스장의 외벽에는 임대라고 크게 현수막이 써 붙여졌다. 동현 씨의 옆 가게 술집 사장님은 영업시간 제한 조치가 있은 이후 며칠 동안 출근을 했다가 이젠 문을 열지 않고 있었다.      


 얼마 전, 동현 씨는 술집 사장님과 가게 앞에서 잠시 마주쳤는데, 술집 사장님은 저녁에 가게 문을 열어 밤 9시까지 하루 2, 3시간 장사를 하는데 일주일 동안 채 다섯 팀도 받지 못했다고 했다. 그러면서 동현 씨에게 물었다.     


“아니, 김 사장님 같으면 좀 있다가 문 닫을 술집에 술 마시러 들어가겠어요?”   

  

  동현 씨는 술집 사장님의 사정이 안타까웠으나, 자신이 술집이 아닌 밥집을 운영한다는 사실을 다행스럽게 생각해야 했다.      


 동현 씨는 매년 새해가 밝으면 아내와 함께 서로의 소망을 이야기하며, 나름 행복한 시간을 보냈다. 그 소망이 비록 이루어지지 않을지도 몰랐지만, 그렇게 미래에 대한 희망을 갖는 시간이 동현 씨는 참 즐거웠다. 

    

 하지만, 올해는 처음으로 아내와 그런 시간을 갖지 못했다. 오히려 새해 첫날부터 둘이서 다퉈버렸다.   

   

“내가 뭐랬어? 그때 우리도 집 하나 사놓자고 말했잖아!”    

 

동현 씨의 아내가 동현 씨를 향해 소리를 질렀다.   

  

“앞으로 아파트 가격이 내릴지도 모르잖아.”     


풀이 죽은 동현 씨는 나직이 말했다. 

    

“내리긴 뭘 내려? 앞으론 더 가격이 오른다는데! 그때, 조금만 대출 냈으면 얼마든지 살 수 있었는데, 지금은 대출을 내서 사고 싶어도 살 수가 없어! 이제 우린 평생 집도 없이 살아야 된다고!”      


 동현 씨는 뭐라 할 말이 없었다. 같은 병원을 다니는 아내의 직장 동료들은 있는 대로 대출을 끌어모아 집을 장만했다고 했다. 그렇게 장만한 아파트 값이 일 년도 채 지나지 않은 지금은 7억에서 8억 정도가 더 올랐다고 했다. 동현 씨와 아내가 매월 알뜰히 200만 원씩 모은다고 해도 30년 이상의 시간이 걸릴 돈이었다. 그런데, 동현 씨는 지금 장사를 하느라 오히려 모아둔 돈을 야금야금 갉아먹고 있었다.  

   

 아내는 눈물을 흘리며 방으로 들어가 문을 쾅 닫았다. 그것이 동현 씨의 가족이 맞이하는 2021년 1월 1일. 새해 아침의 모습이었다. 동현 씨는 새해 첫날부터 마음이 찜찜했지만, 그래도 가족들이 모두 건강한 것만으로도 다행이라고 생각했다.      


 2021년에도 동현 씨는 1월 1일과 설날 당일만 쉬고 부지런히 출근을 했지만, 상황은 좀처럼 나아질 기미를 보이지 않았다.     


 그나마 다행인 것은 나라에서 백신 접종을 시작하기로 했고, 아내와 같은 간호조무사는 우선접종대상자라는 사실이었다. 우리나라도 백신 접종을 해서 집단면역이 형성된다면 마스크를 벗고 생활하게 되는 날이 올 것이라고 했다.     


  동현 씨는 점심 영업시간이 지나고, 홀로 늦은 점심을 먹으며 TV를 봤다. 뉴스에서 곧 이스라엘에서는 마스크가 없는 일상이 시작될 것이라고 했다. 초기 방역에 실패한 이스라엘이 백신을 구하는데 사활을 걸었고, 정보기관인 모사드까지 동원해 화이자 백신을 대량으로 확보하는 데 성공해서 국민 대다수의 접종이 이루어졌다고 했다.     


누군가는 우리나라가 방역 모범국이며, 세계적으로 K방역은 성공사례로 알아준다고 했고, 누군가는 초기에 대만처럼 외부 유입을 차단하지도 못했고, 이후엔 확진자가 늘어나는데도 이스라엘처럼 백신을 확보하는 데에도 실패했다고 했다.      


 동현 씨는 TV를 보고서 우리나라에 백신이 아직 충분하지 않지만, 아내가 우선접종대상자로 백신을 맞을 수 있다는 사실이 무척 다행스럽게 느껴졌다.     


 추운 겨울이 가고, 서서히 훈풍이 불어왔다. 가로수 잎마다 싹이 트고, 도시는 점차 푸르게 변했다. 

    

 동현 씨의 아버지가 농사지은 시금치를 보내왔다. 동현 씨는 아버지에게 전화를 걸었다.    

 

“시금치 잘 받았어요. 아버지.”   

  

“그래. 노지에서 자란 거라 달고 맛있을 거다. 그걸로 손님들 반찬 만들어 내면 손님들이 좋아할 거야.” 

     

동현 씨는 아버지와 통화를 하다가, 얼마 전 라디오에서 들었던 농사 직불금 꼭 신청하라는 라디오 광고가 떠올라 아버지께 물었다.     


“아버지. 이번에 농사 직불금 신청하셨어요?”     


“하려고 했는데, 안된다던데?”     


“왜요?”     


“그게, 나도 잘 모르겠는데, 작년인가, 재작년인가 그때까지 농사 직불금을 받았던 땅만 농사 직불금을 받을 수 있고, 안 받았던 땅은 못 받는다고 하더라고.”      

 

“에이. 그런 게 어딨어요? 농사를 지으면 받는 거고, 농사를 짓지 않으면 못 받는 거지. 농사를 짓는데도 안 준다고요?”      


“그렇다는데......... 어디, 네가 한번 알아봐 줄래?”     


“알겠어요. 아버지. 제가 한 번 알아볼게요.”    

 

동현 씨는 아버지가 계시는 지역의 담당부서로 전화를 걸면서, 아버지가 분명 잘못 이해하고 계신 거라고 생각했다. 그런데, 담당자와 통화를 해보니 정말 아버지의 말씀이 맞았다. 2018년부터 지금까지 농사 직불금을 받지 않았던 땅은 앞으로도 계속 받을 수가 없다고 했다.     


“저희 아버지가 작년부터 농사를 지으셨는데요? 지금도 농사를 짓고 계시구요.”    

 

“임차로 되어 있네요?”     


“네.”     


“그럼 경영체 등록은 하셨어요?”     


“네. 하셨습니다.”     


“원부는 없으시죠?”     


“아뇨. 농지원부도 가지고 계십니다.”     


“네? 땅주인이 농지원부를 해도 된다고 하던가요?”


 동현 씨는 담당자의 말이 이상하게 느껴졌다. 원래 농사를 짓는 사람에게 농지원부가 나오고, 농업경영체 등록을 하는 것이 당연한 일인데 말이다.   

  

“아버지가 농사를 지으시니 당연한 것 아닌가요?”    

 

“혹시, 땅주인이 가족분이신가요?”     


“아니요. 전혀 모르는 분인데요.”     


담당자는 잠시 말이 없었다.     


“왜요?”     


동현 씨가 물어보자 담당자가 말했다.    

 

“아. 땅 주인분이 좋으신 분인가 봐요. 농지원부도 내주시고. 보통은 잘 안 주시거든요.”     


동현 씨는 이렇게 말을 하는 담당자가 오히려 이상하게 느껴졌다. 잠시 뭔가를 살펴보는 듯 키보드를 두드리고, 마우스를 클릭하는 소리가 들렸다. 잠시 후 담당자가 말했다.     


“그렇지만, 지금까지 직불금을 수령하지 않은 땅이기 때문에 농사를 짓고 계신다고 하시더라도 직불금을 받으실 수가 없습니다.” 


“실제로 농사를 짓는 사람한테 주는 게 농사 직불금 아닌가요? 그걸 사람한테 주는 거지 땅한테 주는 건 아니잖아요.”      


“죄송하지만 선생님. 규정이 그렇습니다.”     


이곳에서도 동현 씨는 규정상 어쩔 수 없다는 말을 들었다. 직불금을 그동안 받지 않은 땅은 앞으로도 농사 직불금은 수령할 수 없다고 했다. 그 땅에 실제로 농사를 짓더라도 말이다. 그 대신 기존에 농사 직불금을 받았던 땅에 대해서는 더욱 많은 혜택을 준다고 했다.     


 왜 기존에 받고 있던 땅에 대해서 더욱 많은 혜택을 주는 것인지, 앞으로는 새로운 땅에 실제로 농사를 경작해도 농사 직불금을 받지 못하게 되는 것인지 동현 씨로서는 이해할 수 없었지만, 농사 직불금의 명칭이 좀 어울리지 않는다는 생각이 들었다.   

  

 동현 씨의 가게에 틀어놓은 TV에서는 나라의 아주 고위급 관료들도 부지런히 농사를 짓는 농업인이라는 이야기가 나왔다. 동현 씨는 농사만 지으시는데도, 늘 시간이 부족하다고 말씀하시는 아버지를 떠올리며, 나랏일로 바쁜 그들이 얼마나 부지런한 사람들인지 새삼 대단하게 느껴졌다.     


‘그래. 그렇게 대단한 사람들이니 나랏일도 하는 걸 거야.’     


 동현 씨는 아버지께 다시 전화를 걸어, 아쉽지만 농사 직불금을 수령할 수 없으실 것 같다고 말을 했다. 아버지는 아무렇지도 않다며 전화를 끊으셨다.     


 국가에서는 서둘러 4차 재난지원금을 준다고 했다. 서울과 부산 등 우리나라 1, 2위 대도시의 보궐선거를 치르기 전에 지급한다고 했다. 기준은 2차 재난지원금을 줄 때와 같았다. 동현 씨는 혹시나 하는 마음에 전화를 걸었지만 예전과 똑같은 말만 돌아올 뿐이었다.     


“제가 2019년 10월 중순에 장사를 시작해서, 첫 달 10월과 두 번째 달 11월은 거의 장사도 제대로 못했는데, 이걸 평균으로 잡아서 2020년 매출과 비교를 하면 안 되는 것 아닙니까?”     


“죄송합니다. 선생님의 사정은 정말 안타깝지만,  규정이 그래서 어쩔 수가 없습니다.”    

 

 결국 이번에도 동현씨는 재난지원금을 받을 수 없었다. 동현 씨는 2차 지원금을 줄 때 불합리했던 규정을 여태껏 바꾸지 않고, 그대로 적용한다는 것에 화가 났지만, 3차 재난지원금을 받았다는 것만으로도 다행이라 생각했다.      


 동현 씨가 가게일을 마치고 집으로 돌아갔더니 아내의 몸이 좀 이상했다.  

    

“이상해. 몸이 잘 안 움직여.”     


 아내의 말에 동현 씨는 깜짝 놀라 아내를 데리고 병원으로 가서 입원을 했다. 불과 하루 전까지만 하더라도 멀쩡하던 사람이 갑자기 몸을 움직이질 못했다. 병원에서 여러 가지 검사를 받고, 결과가 나올 때까지 며칠이 지나는 동안 동현 씨는 아내의 곁을 지켜야 해서 가게 문을 닫아놓아야만 했다. 잠시 아이들만 있는 집에 다녀올 때만 아내의 곁을 비웠다.     


의사가 검사 결과에 대해 말했는데, 동현 씨는 그동안 들어보지도 못했던 병이었다.     


“급성 파종성 뇌척수염입니다. 1년에서 2년 동안 재활치료를 열심히 하셔야 합니다.”     


 동현 씨는 이게 무슨 일인가 싶었다. 건강하던 아내가 갑자기 뇌척수염에 걸리다니, 도저히 이해가 가지 않았다. 그것도 불과 두 달 전에 건강검진까지 받았고, 그때도 아무런 이상이 없던 아내였기에 더욱 이해가 가지 않았다.     


 곰곰이 생각하던 동현 씨는 아내가 얼마 전, 우선접종대상자여서 AZ백신을 맞았던 사실을 떠올렸다. 아무리 생각해봐도 그것밖에는 이유가 없었다. 동현 씨는 질병청에 전화를 걸어 이런 사정을 이야기했다. 그러자 질병청에서 말했다.     


“시청 민원실에 전화를 하세요.”     


 동현 씨는 시청 민원실에서 이런 경우와 무슨 관련이 있나 싶었지만, 질병청에서 전화를 하라니, 그렇게 했다. 그러자 시청 민원실에서 말했다.     


“보건소에 전화를 하세요.”     


동현 씨는 민원실 직원의 말대로 보건소에 전화를 했다. 그랬더니 보건소에서 말했다.     


“질병청에 전화를 하세요.”    

 

동현 씨는 처음 전화를 걸었던 곳이 질병청이었다고 했지만, 보건소에서는 자신들이 해줄 수 있는 건 없다고 했다.     


 그렇게 동현 씨는 질병청, 민원실, 보건소를 번갈아가며 전화를 했지만, 어느 한 곳 책임소재가 분명한 곳은 없었다. 서로 다른 기관으로 배구공을 토스하듯 밀어낼 뿐이었다.     


 그렇게 일주일이 흘러갔다. 아내는 여전히 사지가 마비된 채 꿈쩍도 하지 못했다. 아내의 곁을 지킬 수밖에 없는 동현 씨의 아이들은 방치되다시피 했고, 가게는 일주일 동안 문을 열지 못해 냉장고에 있는 식재료들이 모두 상해버렸다. 하지만 동현 씨는 상한 재료들을 정리하기 위해 가게에 들를 시간조차도 없었다. 

    

 동현 씨는 잠시 원무과에 들러 일주일 동안의 치료비 내역을 받았다. 각종 검사와 약물과 치료비 등의 비용이 모두 400여 만원. 동현 씨의 머리가 아득해졌다.      


 동현 씨는 다시 질병청에 전화를 했다. 이번에도 다른 곳으로 문제를 넘기려는 담당자를 붙들고 하소연을 했다. 그러자 담당자가 말했다.     


“그럼 우선 치료를 다 받으시고, 나중에 일괄 청구를 하세요.”   

  

“예? 아니, 치료에 1년에서 2년이 걸리는데, 일주일에 400 만원씩 나가는 치료비를 그때까지 어떻게 감당을 합니까?”     


“그래도 지금 당장 저희들이 해드릴 수 있는 건 없습니다.” 

    

동현 씨는 너무 갑갑했다. 하지만, 다른 방법이 없었다. 여태껏 빚이 한 푼도 없었지만, 이번엔 빚을 내더라도 사람은 치료하고 봐야 했다.      


“좋아요. 우선 치료를 하고 나중에 일괄 청구를 한다고 칩시다. 그럼 나중에 청구를 하면 모두 돌려받을 수는 있습니까?”     


“AZ백신과의 연관성이 입증된다면 받으실 수 있을 거예요.”     


“도대체, 저 같은 평범한 사람이 AZ 백신과 뇌척수염과의 연관성을 어떻게 입증하라는 말입니까? 불과 두 달 전에 건강검진을 할 때 아무런 이상이 없었단 말입니다!”     


“무슨 말씀이신지는 알겠지만, 그렇다고 AZ백신 때문에 뇌척수염이 왔다고 단정 짓기는 어려운 점도 있다는 사실을 양해 부탁드립니다.”     


전화를 끊고 동현 씨가 언짢은 표정으로 병실에 들어서자 동현 씨의 아내가 동현 씨에게 물었다.  

    

“왜? 무슨 일 있어?”     


“아니야. 아무것도.”   

  

“근데, 표정이 왜 그래?”     


동현 씨는 움직이지 못하고 누워있는 병든 아내에게 걱정을 끼치고 싶지 않았다.     


“그냥 좀 피곤해서 그래. 나 눈 좀 붙일게.”     


 동현 씨는 간병인용 침대에 몸을 눕혔다. 이렇게 1년, 2년을 지내야 하는데, 학교에 가지도 못하고 집에 있는 아이들을 어떻게 해야 할 것이며, 가게는 어떻게 해야 하고, 치료비는 어떻게 감당해야 할지 막막하기만 했다.      

 병실에 틀어 놓은 TV에서 드라마가 끝나고, 뉴스가 흘러나왔다. 동현 씨는 돌아누워 있었지만, 뉴스에서 나오는 소리는 들려왔다. 코로나 때문에 경기가 정말 좋지 않다고 했다. 동현 씨는 코로나가 발생하기 전, 이미 국내 경기가 좋지 않아 회사에서 권고사직을 당했기에, 단지 코로나 때문에 경기가 좋지 않다는 것은 조금은 이상한 말이라는 생각이 들었다. 


 여러 사건 사고들 소식이 들리다가, 어떤 사건이 국민청원 동의하기 20만을 넘겼다는 내용이 흘러나왔는데, 동현 씨는 그것을 듣고 글을 올려볼까 잠시 생각하다가, 이내 그런 마음을 지웠다. 어차피 자신의 이야기는 사람들로부터 별다른 관심을 갖지 못할 것 같았고, 그렇게 20만 명이 넘는 동의를 받기는 쉽지 않을 거라는 생각이 들었기 때문이었다. 그래도 동현 씨는 다행이라고 생각했다. 평생 사지마비로 살아야 하는 것이 아니라, 1년에서 2년만 열심히 재활을 하면 아내가 나을 수 있다고 했기 때문이다.


‘다행이다......... 정말 다행이야.........’     


동현 씨는 마음속으로 다행이라고 계속 되뇌었다. 그런데, 그렇게 다행이라고 생각하며 돌아누워있는 동현 씨의 눈에서는 눈물이 흘러내렸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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