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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달고나 Sep 17. 2022

부부의 라이브 커머스

그립 - 아침엔 대구탕 / 네이버쇼핑라이브 - 낙지한마리대구탕

아침 7시 30분에서 40분 사이.


그립에서 아침엔 대구탕 방송이 시작된다.


나의 방송을 보는 분들은 1시간 방송을 하는 동안 대략 70~80명 남짓.


방송이 끝나고 나서 보시는 분들까지 합하면 120~150명 정도 된다.


네이버 쇼핑라이브의 경우에는 닉네임이 보이지 않기 때문에 누가 지금 방송에 들어오는지 알 수가 없지만, 그립에서는 '---가 입장하셨습니다'라는 글이 뜨기 때문에 누가 왔는지 알 수 있고, 닉네임을 부르며 반갑게 인사를 한다.


한글 닉네임의 경우에는 읽을 수 있으니 반갑게 닉네임을 읽지만, 영어나, 한자, 또는 일본어나 베트남어 등의 닉네임으로 들어오시는 분들의 닉은 내가 읽을 수가 없기 때문에 영어떼기님 또는 한자떼기님 어서오이소~ 로 대신한다.


이날 아침도 마찬가지였다. 

늘 거의 일등으로 들어오시는 매니저님을 비롯해 방송을 찾아주시는 분들과 반갑게 인사를 하고 있는데, 갑자기 이런 닉네임이 입장을 했다.

                                                                                                                                 

花樣年華


나의 한자실력이 짧아 난 평소처럼 한자떼기님 어서오이소~하고 인사를 드리고는, 궁금해서 물었다. 


"그런데, 이 한자 닉네임이 뭔가요??"


이 분의 챗이 빠르지 않은 편이라, 다른 분들의 대화 챗이 쭉 올라가고 나서 글이 올라왔다.


"화양연화요."


"아~ 화양연화! 인생에 있어서 가장 아름다운 때!!"


한자도 읽을 줄 모르는 나는 언젠가 들었던 귀동냥으로 아는 척을 했다. 하지만, 내가 아는 것은 단지 여기까지뿐이었다.


화양연화라는 닉네임의 방문자는 더 이상 글을 남기지 않았다. 아침시간이라 다들 바쁘다 보니, 짧게 인사만 하고 가시는 분, 아니면 들어만 왔다가 인사도 남기지 않고 가시는 분 등. 방송 중간에 사라지는 분들이 많아 크게 신경을 쓰지는 않았다.


그런데, 이상하게 방송을 하면서, 입은 계속해서 떠들고 있으면서도 나 자신에게 계속해서 물어보게 되었다.


'정말..... 내 인생이 가장 빛나고 아름다웠던 때는 언제였을까........'


방송 중에는 방송에만 충실해야 했지만, 이상하게도 그날따라 방송을 하면서 계속 지나간 일들이 생각나서 방송에 집중을 할 수가 없었다.


여차저차 방송을 끝내고 나서도 한동안 멍하니 앉아서 그렇게 지난 일들을 떠올리고, 추억하다 아침시간이 훌쩍 지나가 버리고 말았다.


덕분에 난 점심장사 준비를 늦게 하는 바람에 정작 점심식사 시간에는 엄청 고생을 하고야 말았다.


그날 곰곰이 생각을 해보니, 지나간 모든 일들은 대부분 그리움으로 남는 시간들이라는 것을 깨달았다. 지난날 그토록 힘들었던 순간까지도 지금은 웃으면서 뒤돌아 볼 수 있고, 어떤 순간은 죽을 만큼 힘든 시간이었음에도 내가 피식 웃으며 그 시간을 돌아본다는 사실에 나 스스로도 놀랐다.


'뭐야?! 지독히도 끔찍했던 그 시간들을 내가 그리워하고 좋았던 추억으로 생각한다고!!?'


화양연화라는 닉네임의 그분은 한동안 보이지 않다가, 얼마 전 또 나의 방송에 입장을 했다. 이번엔 이미 닉네임을 알고 있었기에 반갑게 인사를 건넸다.


"화양연화님~ 어서오이소~ 인생의 가장 아름다운 순간!! 지난날도 아니고, 미래도 아니고, 바로 지금 아니겠습니까?!!"


난 어설픈 인사로 그를 맞이했는데, 그의 대답이 돌아왔다.


"그러려고 노력하고 있어요."


다시 한번 나에게 생각할 거리를 주시고 또 더 이상의 글을 남기지 않고 가버렸다. 그리고 지금까지 다시는 보이지 않고 있는 닉네임 화양연화.


그, 혹은 그녀의 상황이 어떤지 나는 알 길이 없다. 랜선으로 만난 사이이기 때문에, 난 그 사람을 알지 못한다. 아침마다 나의 방송을 찾는 분들께 용기와 힘이 되려고 하지만, 그들에게 어떻게 와닿는지 나는 알지 못한다.


다만, 누군가 지금 힘든 시간을 보내고 있다면, 어설프고 틀에 박힌 위로라 생각할지 몰라도 이렇게 말해주고 싶다.


"실패는 내가 포기할 때라야 비로소 실패가 되는 것이고, 힘든 시간도 지나면 모두 좋은 추억으로 남아 있을 것입니다. 다시는 돌아갈 수 없는 아련하고, 아름다운 추억으로."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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