식당 아저씨
저녁 8시.
매장 마감을 하는데, 누군가 문을 열고 들어온다.
주방에서 문 열리는 소리를 듣고서 밖으로 나오며, 장사가 끝났다고 말을 하는데,
"장사 이제 끝........어? 어쩐 일이야?"
오래전 나의 가게에서 아르바이트를 했던 친한 동생이다.
"형님, 형수님. 커피 드시라고 사 왔습니다."
아이스라테와 아이스아메리카노 두 잔을 카운터에 내려놓는다. 아내와 내가 좋아하는 커피의 종류까지 다 알고 있는 고마운 녀석. 더운 날씨에 마감 청소를 하느라 땀을 뻘뻘 흘렸는데, 무척이나 반가운 커피다.
"이야~ 고맙다. 그런데 이 시간에 어쩐 일이야?"
"아, 그냥 드라이브하러 나와서 근처 지나가다가 생각나서 잠깐 들렀습니다. 이제 갈게요~"
그냥 짧은 인사만 나누고 돌아서는 모습에 아쉬움이 남지만, 나는 청소를 마저 해야 하고, 동생은 차에서 가족들이 기다리고 있으니 그냥 보낸다.
마감을 다 하고, 집으로 돌아가며 동생이 준 커피를 마시며 지난 추억을 떠올린다.
동생이 이제 막 고등학교를 졸업하고 가게에 아르바이트를 하러 왔을 때. 풋풋하고 귀여운 모습의 동생은 붙임성이 좋고, 성실한 모습이 참 보기 좋았다.
"형. 저 나중에 군대 다녀와도 일 시켜주실 거죠?"
"야! 그때까지 내가 계속 식당만 하고 있으면 되겠냐? 나도 더 큰 사업을 해야지!"
그로부터 20년 가까운 세월이 흘렀고, 난 아직도 식당을 운영하고 있다.
고등학교를 갓 졸업한 그때의 동생이, 지금은 아내와 아들을 데리고 우리 식당에 밥을 먹으러 온다.
그런데..... 그때 나는 왜 식당을 벗어날 거라 큰 소리를 쳤을까?
나이가 들어서도 식당을 계속하는 건 부끄러운 일이라고 생각을 했던 걸까??
솔직히 그런 감정도 없지 않았다.
가게를 떠나 제대로 된 준비도 없이, 무언가에 어설프게 도전하고, 부딪쳐서 깨졌다가, 다시 가게로 돌아오길 몇 번씩이나 반복했다.
그렇게 가게로 돌아온 어느 날, 친구가 밥을 먹으러 왔다.
"이야.... 이제 밥집 아저씨 다 됐네!"
밥집 아저씨라.......
기분이 묘했다.
내가 밥집 아저씨라니.
그런데, 그 말이 틀린 말은 아니지 않은가.
친구들이 대학을 다닐 때, 난 장사를 시작했다.
23살.
내가 장사를 처음 시작한 나이.
그리고 난 지금 43살이 되었다. 그리고, 여전히 처음 장사를 시작한 그 장소에 머물러 장사를 계속하고 있다.
2층에서 1층으로 바뀌었고, 양식에서 한식으로 바뀌었을 뿐.
20대 아니, 30대 초반까지만 해도 내가 장사를 한다는 것이 그렇게 불편하게 느껴지지는 않았었다.
친구들은 아직 학생이거나, 사회초년생이라, 날마다 돈을 만지는 내가 친구들보다는 조금은 더 여유가 있다고 스스로 느껴졌다.
그런데, 차츰 시간이 흐르자 뭔가 상황이 묘하게 흘러가는 것을 깨달았다.
늦은 나이까지 학생이었던 친구들은 변호사나 의사 등의 전문직에 종사하고, 공무원이나 회사의 사회 초년생이었던 친구들은 이젠 제법 직급이 높아지며 점점 여유가 생기는 모습이 확실하게 눈에 들어왔다.
어느 날 친구들이 밥을 먹으러 왔을 때, 평소 잘 만나지 않던 한 친구가 나를 보고 깜짝 놀라며 물었다.
"어? 뭐야? 너 식당 하냐?"
친구는 별생각 없이 물어봤겠지만, 친구들이 밥을 다 먹고 식당을 떠난 후에도 내 머릿속엔 그 친구의 말이 계속 맴돌았다.
"네가 식당아줌마가 될 줄이야!!"
아내가 친구에게 들었던 말이라며 내게 했던 그 말이 어디선가 튀어나와 함께 뒤섞여 머리를 혼란스럽게 떠돌았다.
'그럼 내가 뭐가 됐어야 했을까....'
그 후로 한동안은 내 친구들이 올 때도, 아내의 친구들이 올 때도 뭔가 불편한 마음이 속에서 일어났다.
'저들이 우리 가게에 밥을 먹으러 오면서 나와 아내를 불쌍하게 살고 있다고 생각하는 건가? 장사를 하니까? 식당 아저씨고, 식당 아줌마니까?'
남들의 시선이 곱게 보이지 않았다. 친구들이 와도 편하지가 않았고, 내가 그들보다 뒤처져 살아가고 있는 것 같고, 좁은 가게에서 하루종일 남들 뒤치다꺼리나 하는 보잘것없는 존재처럼 여겨졌다.
주방에서 좁은 틈으로 하늘을 보며, 내가 보는 하늘은 반쪽짜리도 아닌 10분의 1 정도 되는 하늘 밖에 안 되는구나..... 저것이 내 인생일까?..... 하며 온갖 자질구레한 생각만이 머릿속을 휘저었다.
그렇게 홀로 나 자신을 깎아내리며 친구들도 별로 보고 싶지 않은 어느 날, 친구로부터 전화가 왔다.
"다음 주에 동창회 하는데, 나올 거지?"
단톡방에서 공지는 읽었었다. 하지만, 별로 가고 싶은 마음이 없었다.
"글쎄...... 시간이 되면 나갈게."
어차피 가지도 않을 거면서 마음에도 없는 소릴 한다.
"야. 가게 한다고 바쁜 건 알겠는데, 친구들이 기다리니까 늦더라도 마치고 와."
'기다리긴 무슨...... 코가 삐뚤어지도록 술이 취해 있을 거면서.....'
한번 삐뚤어진 마음은 계속 삐딱하게 생각한다.
모임 당일 날. 단톡방에는 이른 저녁부터 톡이 계속 올라온다.
- 나 도착!
- 벌써 도착했냐? 아직 30분이나 남았는데?
- 이거 완전 한량이네!! 좋겠다! 누군 뺑이치고 한 시간 정도 늦을 거 같은데.
얼마 지나지 않아 술병과 함께 음식 사진이 올라온다. 이미 사진 속에서 왁자지껄 떠들어 대는 친구들의 목소리가 들려오는 듯하다.
카톡에는 계속 소식이 올라오지만, 저녁 손님을 받고, 음식을 하느라 카톡을 볼 시간도 없이 시간은 훌쩍 지나가버린다.
장사를 끝내고, 집으로 향한다. 늘 그렇지만, 가게를 마칠 때쯤이면 몸이 무겁다. 빨리 가서 씻고, 쉬고 싶다.
집에 다 와 가는데, 친구에게서 전화가 온다.
전화를 받기 전 고민한다.
'전화를 받을까 말까? 지금이라도 오라고 하겠지? 이미 3시간이나 지났는데? 대부분이 술에 취해 있을 텐데. 내가 왔는지 안 왔는지 기억도 못할 텐데.'
전화벨이 울리는 그 짧은 시간 온갖 고민을 하다가 결국 전화를 받는다.
"야! 안 오냐?!"
친구가 다그친다. 친구의 목소리에 섞여 왁자지껄한 현장의 소리들이 고스란히 전해진다.
술자리에서 전화할 때의 국룰인 돌아가며 전화하기를 시전 한다.
"안 오냐?"
"언제 오냐?"
"장사 끝났으면 바로 튀어 와야지!"
한참 간다, 못 간다 실랑이를 하다가 결국 집에서 씻고, 친구들이 있는 곳으로 향한다.
술집에 들어서자, 마치 개선장군을 환대하듯 요란하게 환대를 하고는......
역시, 예상대로 얼마 지나지 않아 다들 술에 취해 각자의 이야기를 하느라 바쁘다.
멀쩡한 정신으로 바라보는 술 취한 사람들의 세계.
신기하게 술에 취한 녀석들은 전혀 다른 이야기를 하고 있으면서도, 대화가 통한다!!!
상태로 봐선 대부분의 친구들은 내가 왔는지 안 왔는지도 모를 것 같다.
지난번 모임 때도, 친구 한 명이 일어나 건배사를 외칠 때, 내가 장사를 하느라 평소 참석을 잘 못했는데, 오늘 와줘서 너무 고맙고, 나를 봐서 제일 기쁘다고 소리쳤다.
그러고 나서 그다음 첫 모임에서 나에게 물어본 말.
"야! 너 지난번 모임 때 왜 안 왔냐?"
그 일을 떠올리며, 나는 이왕 온 거 술이나 마시자 싶어 친구들이 혀꼬인 소리로 뭐라 알아들을 수 없는 외계어를 쓰는 동안 홀짝, 홀짝 술을 들이켜는데, 저쪽에 술을 마시지 않는 친구 한 명이 보였다.
오랜만에 보는 친구였다.
"어? 야. 오랜만이다."
"어. 잘 지냈어?"
유일하게 술이 취하지 않은 친구. 술을 마시지 않고 3시간이 넘는 시간을 어울리기는 쉽지 않은데, 그 친구는 술을 마시지 않고도 잘 버티고 있었다.
자연스럽게, 술에 취한 친구들은 자기들끼리 이야기하도록 놔두고, 그 친구와 나 둘이서 대화를 했다.
몇 마디의 가벼운 인사가 오고 가고,
"요즘 뭐 해?"
"어? 어. 난 장사 하고 있지.... 아, 그래. 넌? 넌 뭐 해?"
장사한다는 말을 머쓱하게 하고 대충 얼버무린다. 무슨 장사를 하는지, 어디서 하는지, 누구와 함께 하고 있는지 물어보길 원치 않았기에, 얼른 나는 친구에게 질문을 하며 대답을 넘긴다.
"어, 난 지금 뭐 하는 건 없고, 개인회생 중이야."
"아, 그래. 그래. 개인회생....... 뭐, 뭐어?"
친구가 너무 해맑게 이야기를 해서 오히려 내가 놀란다. 아무렇지도 않은 친구이기에, 오히려 내가 더 무안하다.
친구는 몇 번의 사업실패를 겪었고, 지금은 개인회생 중이라고 했다.
"어..... 그래. 힘들진 않고?"
"힘들긴. 오히려 홀가분해. 개인회생 끝나면 새롭게 또 시작할 수 있으니까."
정신이 멍해진다.
그 뒤로 무슨 이야기를 더 나눴는데, 친구가 나중에 야채유통 관련 사업을 계획 중이라는 이야기를 했던 것 말고는 정확히 기억이 나지는 않는다.
"야이씨~~ 나 내일 짼다!!!"
저쪽에서 술에 취한 친구 하나가 자리에서 일어서며 소리를 지른다. 그 말에 친구들은 또 환호성을 지른다.
"내일 뭘 짼다는 거야?"
"현장 일. 저놈 저거 막일하잖아. 어? 설마 몰랐냐?"
"뭐?......"
더 말이 나오지 않는다. 이번엔 조금 전보다 더 심하게 어지럽다.
자리가 파하고, 집으로 돌아오는 길.
홀로 차 뒤에 앉아 멍하니 생각에 잠긴다.
'나라면 과연 개인 회생을 하면서 친구들 모임에 나올 수 있었을까? 현장일을 하면서는?'
이런저런 생각에 혼란스러운 머리를 비집고 선배의 목소리가 들려왔다. 우리보다 10살이 많은, 동창회의 아버지 기수. 13회 선배.
13회 선배들은 총동창회에서도 가장 단합이 잘 되고, 돈독하기로 유명했다.
"야! 우리 기수가 왜 단합이 잘 되는 줄 아냐? 잘난 놈도 없고, 못난 놈도 없어서 그래!"
선배의 말처럼 13회 선배들의 모임에 가보면, 누구 하나 잘났다고 나서는 사람도 없었고, 누구 하나 못났다고 기죽어 있는 사람도 없었다.
'그럼 우리는?'
우리 친구들도 마찬가지였다.
아무런 격의 없이, 지금 사회에서 누가 무엇을 하고 있든, 그냥 고등학교 그 시절 그때의 친구로. 그렇게 마냥 즐거울 뿐이었다.
나 역시 친구들 중, 누구를 우습게 생각하거나, 가볍게 생각한 적은 없다. 단지 그 당시의 친구로 기억을 할 뿐.
문득, 나를 스스로 부끄럽다고 생각했던 내가 부끄러워졌다.
부끄러워해야 할 대상은, 장사를 하며 열심히 살아가고 있는 나를 온전히 나로 바라보는 내가 아니라, 그렇게 살고 있는 나를 계속 세상의 잣대로 평가하려는 나였다.
흉터가 되어라. 어떤 것을 살아낸 것을 부끄러워하지 마라. - 네이와라 와히드-