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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달고나 Jul 07. 2024

소상공인 랩소디

그들은 늘 거기에 있었다. 내가 보려 하지 않았을 뿐.

우리 가게에 물건을 납품해 주시는 업체 중 한 곳의 사장님은 물건을 가져다주실 때 물건에 대한 이야기를 하지 않고, 늘 다른 이야기를 하신다.


"제가 얼마 전에 봉선화 씨를 얻어서 창고 앞에 씨를 심었는데, 그게 어제 싹을 틔웠어요!!"


"아.....예....."


나의 건조한 대답에 아랑곳하지 않고, 사장님은 만면에 웃음을 지으며 계속 말을 한다.


"씨앗을 가져와서 싹을 틔울 때까지 키우는 게 얼마나 어려운 일인지 아십니까? 싹이 나 있는 걸 가져와서 심은 게 아니라, 씨앗을 가져와서 심었다니까요?! 이.... 이 녀석이 어제 싹이 올라왔지 뭡니까? 하하하."


누가 보면 마치 손자나 손녀를 얻은 할아버지의 모습과 다를 바 없는 모습.


'그게 뭐가 그렇게 신기하지?'


뿐만 아니었다.


"창고 근처에 늘 돌아다니던 검은 점박이 고양이가 있는데, 그게 새끼를 놨지 뭡니까? 세 마리를 낳았는데, 새끼 근처에도 못 오게 하악질을 하더라구요. 크하하하."


창고 근처에 심어 놓은 식물들, 동물들 이야기로 늘 즐거운 사장님.


'아니, 그게 뭐 어떻다고? 왜 즐거운 거지?'


이해할 수가 없었다. 사업을 하는 사람이 사업이 잘 되면 즐거운 것이고, 돈을 잘 벌어야 즐거운 것인데, 도대체 아무런 상관없는 그런 것들이 왜 즐거운 것이어야 하는지.


우리 가게 앞에도 화분이나 땅에 꽃과 여러 종류의 식물들을 어머니께서 심으셨다.


나는 솔직히 별로 관심이 없었다. 


"어머나~ 이 꽃 이름이 뭐예요?"


"어...... 잘 모르겠네요......"


내 가게에 심어진 꽃 이름조차 제대로 알지 못하는 나를, 사람들은 이상한 눈으로 쳐다봤다.


그럴 때면 괜히 심술이 나서 차라리 꽃을 다 뽑아버릴까? 하는 마음도 먹었다.


가게 근처에는 길고양이(?), 산고양이(?) 여기가 산이니까 산고양이라고 해야 하나? 어쨌든 고양이들이 많이 돌아다닌다.


어머니와 누나는 고양이 사료를 사서 가게 근처에 놓아둔다.


그것 때문에 나는 종종 화를 냈다.


음식점 근처에 고양이 사료를 가져다 놓으면 어떡하냐고.


"그래서 멀리 떨어진 곳에 놔뒀잖아!"


운영하는 매장은 1층이었고, 고양이 사료는 2층 테라스에 놔뒀다.


난 그것조차 싫었다.


꽃을 심고, 고추를 심고, 토마토를 심고, 가지를 심고, 오이를 심을 시간에 메뉴 개발을 해야 하고, 인스타그램에 매장 홍보를 한번 더 해야 했다. 고양이 사료를 사서 그릇에 담아 2층에 올려놓을 시간에, 고객에게 마케팅 메시지 한 건을 더 보내야 했다.


나에게는 돈을 벌어다 줄 행위 이외의 것들에 신경을 쓸 마음의 여유가 없었다. 


그렇게 시간이 흘렀다.


그동안 할아버지가 돌아가시고 아버지가 돌아가셨다. 


결혼을 하고, 아이를 낳고, 그 아이들이 중학생이 되었다. 


어머니는 70대 노인이 되셨고, 장인어른은 2년째 투병 중이시다.


돈을 열심히 벌어야지! 하면서 세월이 흘렀지만, 나는 늘 그 자리에 서있었다.


그러던 어느 날 문득 가게 앞에 피어 있는 보랏빛 고운 꽃이 눈에 들어왔다.



'이게 뭐지?'


언제나 그 자리에 있었는데, 난 새삼스럽게 처음 보는 꽃인 양 쳐다본다.


토마토가 곱게 잘 익은 모습도 눈에 들어왔다.



태어난 지 얼마 지나지 않은 새끼고양이 두 마리도 어미의 젖을 물고 뒹구는 모습이 눈에 들어왔다.




왠지 모르게 이런 것들이 요즘엔 계속 눈에 들어오고, 관심이 간다.


할아버지가 돌아가셨을 때 많이 아쉬웠다. 내가 무언가 제대로 해드리지 못했다는 것이. 아마 그 기준은 돈이었을 것이다.


아버지는 꼭!이라고 마음먹었지만, 아버지도 할아버지와 크게 다르지 않은 죽음을 맞이했다. 나의 형편이 할아버지가 돌아가셨을 때와 아버지가 돌아가셨을 때가 크게 다르지 않았으니.


그리고, 그 뒤로 어머니께는 꼭!! 장인장모께는 꼭!! 매번 꼭!! 꼭!!! 


닭도 아니고.......


그렇게 행동하지 못한 다짐만 하며 살다가, 어머니와 장모는 노인이 되었고, 장인은 병으로 거동이 불편해졌다.


내가 많은 나이는 아니지만, 주위에 친구들도 하나, 둘 생을 마감하는 친구들도 생겼다.


그러자 어느 날 문득 그런 생각이 들었다.


언젠가라는 말은 너무나 무의미하다는 생각. 지금 행하지 않는 무언가는 아무런 의미가 없다는 생각.


지금 즐거울 수 있고, 지금 행복할 수 있는데, 왜 그동안은 늘 언젠가 언젠가 하면서 계속 미룰 궁리만 했을까?


그 기준을 오직 돈이라는 것에 맞춰서 그런 것은 아닐까? 꼭 돈으로 무언가를 해야만 의미가 있는 것일까?


행복할 만큼의 돈이라는 건 어느 정도를 가져야 하는 것일까? 나는 얼마만큼의 돈을 원하는 거지? 


지금 아마 각자가 생각하는 기준이 있을 것이다. 


누군가에겐 당장 급한 몇 만 원의 돈이 될 수도 있을 것이고, 누군가에겐 천문학적인 금액일 수도 있을 것이다.


그런데, 정말 우리가 생각하는 그만큼의 돈을 벌게 되면, 아~ 이만큼 벌었으니 너무 행복해~ 하면서 늘 행복할까?


가만히 생각해 보자.


지금 내가 누리고 있는 것들 중에, 한 때 내가 원했던 목표를 이루어서 누리고 있는 사람들이 분명 있을 것이다.


지금 그것에 만족하며 살고 있는가?


언젠가 제법 사업을 잘하고 있는 친구집에 놀러 갔다. 사업이 잘 되고 있어서 아파트도 좋은 곳이었다.


사업도 잘 되고, 좋은 아파트에 사는 그 친구를 주위에선 부러워했다.


그런데, 그 친구가 고개를 절레절레 흔들면서 말했다.


"우리 애 생일파티 하려고 하는데, 여기 사람들 눈높이에는 도저히 못 맞추겠다. 무슨 유치원 애 생일을 리조트를 잡아서 명품 선물까지 준비를 하냐?"


친구의 말에 따르면, 그곳에 사는 사람들은 보통 아이들 생일에 호텔이나 리조트를 예약하고 생일 답례품으로 고급 선물을 준비한다고 한다. 그 비용만 수천만 원이라고. 


헛웃음이 나왔다.


그 말을 듣고 얼마 전 TV에서 봤던 억만장자들의 샴페인 많이 주문하기 대결이 떠올랐다.


어느 술집에서 재벌들 간 샴페인을 누가 많이 주문하는지 내기를 했는데, 무려 30억 원이 넘는 샴페인을 주문한 재벌이 승리했다고.


승리(?)라는 단어를 이런 곳에 사용해도 되는 것인가?


어쨌든 그것을 보고서 인간 허영의 끝은 도대체 어디일까 궁금했다.


사람들은 원하는 것을 이루고, 성취하면, 더 많은 것을 갖고 싶어 한다.


그렇게 죽을 때까지 원하고 또 원하다 생을 마감한다.


사업은 작은 성공과 작은 실패가 반복되는 것이라고 했다. 그래서 작은 성공이 작은 실패보다 잦으면 사업이 성공하게 되는 것이고, 작은 실패가 작은 성공보다 잦으면 사업은 실패를 하게 되는 거라고.


인생도 기쁨과 슬픔의 반복이다. 늘 기쁠 수도 없고, 늘 슬플 수도 없다. 그러니 기쁨이 더 잦아서, 슬프거나 짜증을 내는 날보다 즐겁고 기쁜 날이 더 많았다면, 그것이 바로 성공한 인생이 아닐까? 


사업과 인생의 다른 점은 사업은 내가 마음먹은 대로 되지 않을 수 있지만, 나의 기분은 내가 마음먹은 대로 될 수 있다는 것이다.


내가 즐겁고, 기쁠 수 있는 그것. 그것은 주위를 돌아볼 수 있는 여유에서 나오는 것 아닐까?


마음을 다스리기 위한 힐링 영상이나 치유 도서들을 많이들 볼 것이다. 현대인들은 다 마음의 병을 안고 살아가니까. 


나 역시도 많이 봤다.


- 마음에 여유를 가져라

- 흘러가는 대로 놔둬라

- 인간의 뜻대로 되는 것은 없다


등등.


그런데, 솔직히 어렸을 때는 이런 틀에 박힌 이야기들이 전혀 마음에 와닿지 않았다.


당장 내일 카드값을 낼 돈이 부족한데, 무슨 마음의 여유가 있는가?

은행 이자를 낼 돈이 부족해 독촉전화가 계속 오는데, 그걸 어떻게 흘러가는 대로 놔둘 수 있나?

밀린 물건 값은? 직원들 인건비는? 


아무리 좋은 말과 명언이라도 돈이라는 자본주의의 절대 선(?) 앞에선 손에 쥔 모래처럼 스르륵 사라져 버렸다. 


여유가 있으니까 하는 소리지. 저 글을 쓴 사람이나, 저 말을 한 사람이 나처럼 힘든 상황을 겪어 봤을까?

그리고, 이런 힘든 상황에 저런 말이 나올까?


나는 그들의 말에 완전한 공감이 결여되어 있다고 생각할 수밖에 없었다.


그들은 나처럼 장사를 하는 사람이 아니라, 교수라던가, 철학자라던가, 종교인이라던가, 성공한 기업가라던가 소위 말하는 사회적 지위를 가지고 있는 사람들이었으니까.


언젠가 마음 치유로 유명했던 젊은 스님이 하는 강연과 책을 제법 인상 깊게 보고, 읽었던 적이 있었다.


그런데, 그 많은 좋은 말들 중에서 이상하게 마음 깊이 와닿는 말은 별로 없었다.


처음엔 그 젊은 스님이 하버드 대학원을 졸업한 사람이라 내가 색안경을 끼고 들어서 그런 것은 아닐까 하고 나 스스로에게 의문을 품었다.


그런데,  얼마 지나지 않아 그분이 고급 주택을 소유하고, 스타트업 회사까지 차리고, 값비싼 스포츠카를 몰고 다니는 것이 뉴스에 나오는 것을 보고서 그의 강연과 책에 좋은 말들은 가득 하지만 왜 내 마음깊이 와닿지 않았는지를 알게 되었다.


나와 꼭 같은 일을 해야 공감할 수 있다는 의미는 아니지만, 마음에 울림을 전하는 말은 그만큼의 경험이 뒷받침되어야 하지 않을까?


어쨌든 지금은 평범한 진리. 마음에 여유를 갖기 위해 노력 중이다. 순간순간 욱하는 감정이 태도가 되어 여유를 잃을 때도 있지만, 그래도 노력 중이다.


이미 돌아가신 할아버지나, 아버지에게도 만나자마자 짧은 시간 인사를 나누고, 필요한 것을 건네드리고는 곧장 바쁘다며 돌아서는 뒷모습을 보여드리기보단, 조금이라도 더 여유를 갖고, 이야기를 나누고, 한 번 더 웃었더라면 어땠을까?


남의 시선에 휘둘리지 않고, 주위에서 인정받으려 애쓰지 않고, 평범하지만 경이로운 것들에 더 많은 관심을 가지고 살았더라면.


그동안 살아오며 후회되는 것은 없지만, 조금 아쉬움이 남는 것은 더 많이 즐거워하지 않았고, 행복해하지 않았다는 것이다. 그것은 내 마음만 먹었다면 얼마든지 할 수 있는 일들이었는데. 화를 내고, 짜증을 내고, 신경질을 부린다고 해서 나아지거나 변한 것은 아무것도 없었는데. 


아, 그렇게 해서 변할 수는 있겠다. 더 안 좋은 방향으로.


지난날의 그 시간들을 웃음으로 채울 수 있었다면.......


이젠 나의 마음이 조금은 여유롭고 싶다.




나에게 주어진 행운을 생각하면 나는 충분히 행복해하지 않았다.
너무 많은 소음에 귀 기울였다.
경이로움에 무관심했다.
칭찬을 갈망했다. 
- 웬델 베리-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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