하루살이

안개의 산

나는 나에게 뭔가를 보여주고 싶다는 작은 도깨비 루틴의 말에 호기심이 생겼다.


빨리 산 정상으로 올라가는 것도 좋지만, 새로운 세계를 구경하고 싶기도 했다.


"좋아. 루틴. 그런데 나에게 보여주고 싶다는 게 뭐야?"


"금방 보여줄게. 우선 이 자루를 나와 함께 옮기자."


도깨비 루틴과 나는 낑낑거리며 자루를 옮겼다.


둘이서 옮기는데도 아주 무거웠는데 작은 루틴이 만약 내가 없었다면 어떻게 혼자 이토록 무거운 자루를 옮기려 했을지 궁금했다.


"이렇게 무거운 걸 혼자서 어떻게 옮기려고 했던 거야?"


"평소에도 나 혼자서 옮겼는데? 조금씩 옮기면 돼. 아무리 무거운 거라도 조금씩 옮기다 보면 결국엔 내가 원하는 곳으로 옮겨지거든."


루틴과 내가 힘들게 자루를 들고 간 곳은 작은 웅덩이 같은 곳이었다. 그런데 거기엔 파란 액체 같은 것이 들어있었다. 신기하게도 파란 액체에서는 옅은 빛이 났다. 파란색 형광펜으로 물을 만들면 그렇게 보일 것 같다는 생각이 들었다. 루틴은 자루를 열었다. 거기엔 탁구공만 한 투명하고 둥근 공처럼 생긴 것이 있었는데 그 속엔 작은 곤충이 들어있었다.


"이게 뭐야?"


"그건 알이야. 에페메레라고 하는 녀석들인데 여기 웅덩이에 넣으면 알이 조금씩 녹으면서 에페메레들이 깨어나지. 그런데, 에페메레들은 하루밖에 살지를 못해."


"뭐? 그렇게 짧게 산다고?"


"그래. 그런데 재밌는 건 그렇게 짧은 시간 밖에 살지도 못하면서 반나절 정도가 지나면 대부분의 에페메레들은 반나절 동안 살았던 이야기를 하면서 나머지 반나절을 보내."


나는 하루밖에 살지 못하는 에페메레들이 무척 불쌍하게 느껴졌다.


"하루밖에 살지 못하는 것도 억울한데 반나절만이라도 자신들이 살았던 것에 대해서 생각해봐야 하지 않을까?"


"아니지. 우리가 볼 때 하루를 사는 에페메레들이 살았던 반나절을 생각하며 보내는 나머지 반나절은 얼마 되지 않는 시간이지만, 하루를 사는 에페메레들에게는 인생의 반이나 되는 시간이야. 그렇게 긴 시간을 과거에 집착하고 살았던 날들을 그리워하며 아까운 시간을 보내는 거야. 뭔가 의미 있는 일들을 더 할 수 있는데도 말이야."


"그런데, 하루를 살면서 얼마나 의미 있는 일을 할 수 있을까?"


나의 말에 도깨비 루틴이 고개를 저었다.


"이봐. 마루. 내가 말했잖아. 에페메레들에게는 하루가 일생이라고. 그건 너무 어리석은 말이야."


나는 루틴의 말에 뭐라고 해야 좋을지 몰랐다. 하지만, 하루를 살면서 도대체 어떤 의미 있는 일을 할 수 있을지, 그런 것들이 과연 의미를 가질 수 있을지 의문이 들었다.


그런 한편 루틴의 말처럼 에페메레들에게 하루라는 시간은 일생인데, 반나절동안 과거를 생각한다는 것은 일생의 절반을 낭비하는 것일 수도 있겠다는 생각도 들었다.


'만약 나의 삶이 누군가에게는 하루밖에 되지 않는 짧은 시간이라면? 나의 일생이 누군가에게 하루밖에 되지 않는 시간이라면, 내가 에페메레들이 하루 동안 어떤 의미 있는 일을 할 수 있을까 생각하는 것처럼 누군가도 내가 평생을 살아봤자 얼마나 의미 있는 일을 할까 하고 생각할까?'


이런 생각을 하자 나는 묘한 기분에 사로잡혔다.


"이리 와봐 마루. 재미난 걸 보여줄게."


루틴은 자루에 있는 에페메레의 알들을 파란 액체 웅덩이에 부었다. 신기하게도 에페메레의 알들은 금방 녹았다.


"에페메레들은 웅덩이 밖으로 절대 나오는 법이 없어. 그럼 죽게 되거든. 웅덩이 속에서 우리 모습을 볼 수도 들을 수도 없어. 그런데 이렇게 밖에서는 에페메레들의 모습을 잘 들여다볼 수도 있고, 소리도 들을 수가 있어."


정말 신기하다는 생각이 들었다.


에페메레들은 알에서 나오더니 이리저리 파란 액체를 휘젓고 다녔다.


루틴이 말했다.


"잘 봐 재미난 걸 보여줄 테니."


루틴은 파란 액체를 작은 바가지로 한 번 펐다. 그러자 파란 액체가 작은 바가지에 조금 담겼다. 루틴은 거기에 작은 이끼와 커다란 이끼를 넣었다. 그리고는 에페메레의 알 두 개를 바가지에 집어넣었다. 그러자 알이 녹고 에페메레 두 마리가 금방 부화했다. 둘은 부화하자마자 커다란 이끼에 매달렸다. 그리고는 서로 커다란 이끼를 붙들고 놓지 않았다. 루틴이 말했다.


"에페메레들은 이끼를 먹고살아. 신기하지? 에페메레들에게 이끼는 꼭 필요해. 하지만, 하루 밖에 살지 못하는 녀석들이 먹고 살기엔 저기 있는 작은 이끼만으로도 충분하지. 그런데, 보시다시피 커다란 이끼에 매달려 서로 먹지도 못하고 저렇게 다투고 있어. 저렇게 커다란 이끼를 차지하더라도 결국엔 작은 이끼의 양만큼 밖에 먹지도 못할 거면서 말이야. 저렇게 다투는 에페메레들은 하루를 완전히 살지도 못해. 오히려 다른 에페메레들보다 훨씬 빨리 수명을 다하지."


이끼에 매달려서 하루밖에 살지 못하는 수명도 다 못 누린다는 루틴의 말에 다투고 있는 두 마리의 에페메레들이 안 됐다는 생각이 들었다.


"에페메레들 중엔 아주 드물게 이끼에 집착하지 않고 천천히 웅덩이 속에 있는 신기한 것들, 예를 들어 핑크빛이 나는 돌이라던가, 빙글빙글 도는 꽃, 차갑고 뜨거운 방울 같은 것들을 구경하며 여유 있는 하루를 보내는 녀석들도 있어. 그런데 대부분의 에페메레들은 저렇게 이끼에만 집착하다가 그런 신기한 것들이 웅덩이에 있다는 것조차 알지 못하고 하루를 보내고 말지. 녀석들에겐 평생인 소중한 하루를 말이야."


- 안개의 산 中에서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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