그건 내 돈이라고!
철웅 씨와 정섭 씨는 마주 앉아 술잔을 기울였다.
발인을 하루 앞둔 장례식장의 마지막 밤.
정섭 씨가 어릴 때만 해도 장례식장에선 화투도 치고, 왁자지껄 술도 마시고 밤새도록 떠들다가 아침 발인을 나가곤 했었다.
그런데 이젠 사람들은 대부분 집으로 돌아가 아침 발인시간에 맞춰서 장례식장으로 왔다.
그래서 지금 장례식장에는 장인어른의 아주 가까운 친척 몇 분만 저쪽에 앉아 이야기를 나누고 있었고, 술과 음식을 먹는 사람은 정섭 씨와 철웅 씨밖에 없었다.
이틀 동안 손님을 맞이하며 술을 거의 마시지 않으며 늠름한 모습을 보여줬던 정섭 씨는 3일 상이 거의 끝나가는 장례식장에서 군대 동기와 편안한 마음으로 앉았다.
“어떻게 알고 왔어?”
“너 태진이랑 연락하잖아. 태진이한테 소식 들었지.”
태진이는 같은 부대의 후임이었었다.
그런데 정작 태진이는 오지 않고, 철웅이가 왔다.
“너 태진이랑은 연락하고 있었어?”
“가끔...”
“와~~~ 태진이 이 새끼! 니 이야기 꺼낼 때 나한테는 전혀 모르는 척하더니!!”
“가끔 연락만 했지 만난 적은 없으니까.”
“근데, 도대체 나한테는 왜 연락 안 했어?”
“아, 뭘 그리 꼬치꼬치 캐물어 봐? 많이 바빴다니까!!”
“야. 아무리 바빠도 그렇지, 너랑 나랑. 우리 인연이 어디 보통인연이냐?? 어??”
“그래. 그래. 미안하다. 미안해. 마셔. 마셔.”
철웅 씨가 얼른 소주잔을 들어 정섭 씨 잔에 부딪치려는데, 정섭 씨가 잔을 싹 피했다.
“장례식장에선 잔 부딪치는 거 아니야. 이 무식한 새끼야.”
정섭 씨가 말하고 나서 키킥 거리며 웃었다.
덩달아 철웅 씨도 웃었다.
둘은 함께 웃으며 술을 입안으로 털어 넣고 꿀꺽 삼켰다.
군대를 전역했던 날 함께 국밥을 먹은 이후로 처음 만난 두 사람은 나누고 싶은 이야기나 너무나 많았다.
한참 정신없이 이야기를 나누는데, 장례식장의 한쪽 불이 꺼졌다.
불이 꺼진 곳 바닥에는 잠을 자기 위해 몇 명의 사람들이 자리에 누워있었다.
정섭 씨가 아쉬운 표정으로 철웅 씨에게 말했다.
“좀 일찍 오지 인마!”
철웅 씨도 불이 꺼진 곳과 빈소를 번갈아 쳐다봤다.
사람들이 한쪽에서 잠을 자려는데, 둘이서만 술을 마시고 떠들기가 머쓱해졌다.
“진짜 우리 어릴 때랑 장례식장 분위기가 너무 달라졌다. 그치?”
“그러게.”
정섭 씨는 아주 오랜만에 만난 동기와 그만 마시자니 무척 아쉬웠고, 여기서 계속 마시자니 사람들의 눈치가 보였다.
새벽 1시.
정섭 씨는 고민하다가 빈소에 앉아 있는 아내에게 다가갔다.
“장모님은?”
“주무셔.”
“처제도?”
“응. 왜?”
“음... 저기....”
정섭 씨가 망설였다.
“왜? 말을 해.”
“아니, 당신도 알다시피 철웅이 내가 진짜 얘기 많이 했잖아.”
“그랬지.”
“저놈 내가 군대 전역하고 처음 만나는 거거든. 근데.... 여기 다들 주무시고 하니까 철웅이도 불편해하는 것 같고 해서...”
“그래서?”
“이제 올 사람도 없잖아? 잠시만 요 앞에 나갔다 오면 안 될까?”
“뭐? 미쳤어? 당신 지금 상주야!”
“잠시만 있다가 올게. 어차피 지금 아무도 올 사람도 없는데. 그리고 뭐, 이제 그럴 일도 없을 것 같지만, 누가 오면 나한테 전화하면 바로 올게. 진짜 바로 앞에 있을 거야.”
“하아....”
아내는 한숨을 길게 내쉬었다.
이 모습을 공방 2층의 창에서 바라보는 정섭 씨는 가슴을 팡팡 쳤다.
내가 미친놈이지!! 내가!! 그냥 술은 그만 처마시고 잠이나 잤어야지!!
아내는 더 이상 말을 하지 않았다.
당시의 정섭 씨는 본인이 장례식장에서 이틀 동안 상주로서 든든한 모습을 보여줬기에 아내가 그렇게 침묵으로 허락해 주는 거라고 생각했다.
“빨리 올게.”
아내는 정섭 씨를 원망스런 눈빛으로 쳐다봤다.
하지만 이미 정섭 씨는 상주 완장을 떼며 돌아서고 있었다.
정섭 씨는 철웅 씨에게 밖으로 나가자고 했다.
철웅 씨는 깜짝 놀라며 정섭 씨를 만류했으나, 제법 취기가 오른 정섭 씨는 철웅 씨를 끌고 가다시피 데리고 나갔다.
공방 2층 창에서 그 모습을 보는 정섭 씨는 기분이 이상했다.
오래전 기억이었지만, 분명 자신이 철웅이에게 끌려갔던 것 같았는데, 철웅이가 밖에서 술을 마시자고 하도 졸라서 하는 수 없이 장례식장에서 나갔던 것으로 알고 있었는데, 지금은 자기가 철웅이를 끌고 나가고 있었다.
그래. 이건 사실이 아니야.
지금 내가 꿈을 꾸는 거겠지? 꿈이니까 이런 걸 거야. 분명 철웅이가 날 끌고 밖으로 나갔어!
장례식장 밖으로 나온 두 사람은 근처에서 마실 만한 술집이 없어 한참 동안 걸어가서 마침내 한 소주방을 발견했다.
“야! 너 진짜 괜찮냐?! 상주가 이래도 되는 거냐?!”
“지금 올 사람이 어디 있다고? 괜찮아. 괜찮아. 들어가자!”
정섭 씨가 먼저 소주방으로 들어섰고 철웅 씨는 걱정스런 표정으로 따라 들어갔다.
둘은 자리를 잡고 술과 안주를 주문해 놓고, 장례식장에서 못다 한 이야기를 계속 이어갔다.
“고맙다. 그래도 동기가 좋긴 좋네. 군대 다른 선, 후임들은 처가 쪽 상이라고 오지도 않는데, 넌 밤늦게라도 와줘서 고맙다.”
“당연히 와야지 인마.... 경사는 못 챙겼지만... 조사는 챙겨야지.. 정말 미안하다 너 결혼식에 꼭 가려고 했었는데....”
철웅 씨도 술이 제법 올랐다.
“괜찮다니까 그러네. 나도 너 결혼식 때 안 가면 돼!”
“뭐?”
둘은 킥킥 거리며 웃었다.
“자, 짠! 여긴 장례식장 아니니까 괜찮지?”
철웅 씨가 정섭 씨의 잔에 술잔을 부딪쳤다. 둘은 씩 웃으며 또 한 잔씩 마셨다.
“사실... 네 결혼식 때 내가 갈 수가 없었다.”
술을 입에 털어 넣고 철웅 씨가 한숨을 토해내듯 뱉은 말.
“왜? 무슨 일이라도 있었냐?”
“...... 형편이 너무 좋지 않았다.”
“야이씨.... 그냥 몸이라도 오면 되는 거지... 내가 뭐, 부조금 했는지, 안 했는지, 했으면 얼마나 했는지 확인하고... 막 섭섭해하고 그럴 줄 알았냐?”
“야.. 말은 쉽지... 너였으면... 내 결혼식에 빈 손으로 올 수 있었겠냐?”
“...”
정섭 씨는 대답할 수 없었다. 만약 자기가 봉투하나 챙겨갈 수 없는 입장이었다면.... 아마 자신도 비슷한 결정을 하지 않았을까....
“.... 어쨌든 다 지난 일이잖아! 그냥 잊어 인마! 그리고 오늘 이렇게 장인어른 장례식장에도 와줬잖아. 자! 마셔!”
둘은 또 술잔을 시원~하게 비웠다.
철웅 씨가 술잔을 탁자에 탁 내려놓음과 동시에 말했다.
“.. 그래서 온 거야. 나도. 다른 사람들처럼 떳떳했다면... 너네 아버지도 아니고, 장인 장례식인데 꼭 가야 하나라고 잠시 고민이라도 했을 텐데.. 너한테 진 빚이 있어서 소식 듣자마자 꼭 와야겠다고 생각했다... 그런다고 없어지는 건 아니지만, 조금이라도 너한테 진 마음빚을 덜려고. 결혼식에도 못 가고... 미안해서 연락도 피하고....”
“아이 새끼. 술맛 떨어지게! 난 생각도 안 한다니까! 빚은 원래부터 없었던 거고! 있었더라도 이제 다 없어진 거야! 알았어? 그러니까 이제 다 잊어라. 그리고 너 앞으로 연락 끊어지면 죽는다. 그게 더 미안한 거야 인마! 난 너한테 하도 연락이 안 되길래 내가 뭘 잘못했나? 도대체 나한테 마음 상할 일이 뭐가 있었지? 하면서 온갖 생각을 다 했는데... 뭐? 미안해서 연락을 못했어? 지랄 말고, 이제 연락은 꼭 하고 살자! 알겠냐?”
철웅 씨가 고개를 끄덕이며 미소 지었다.
“그래.”
“뭐, 그래서 이제 형편은 좀 괜찮아졌어?”
“크게 나아진 건 없지만, 그때처럼 부조금이 없어서 걱정할 정도는 아니다.”
부조금.
부조금의 정의는 얼마라고 해야 하는지 어디에도 나와 있지 않았기에 참 애매했다.
5만 원권이 발행되고 나서부터는 더욱더.
한 장을 넣자니 부족한 것 같고, 두 장을 넣자니 부담스럽고, 이렇게까지 할 사이인가를 다시 생각하게 되는 경우까지.
“그나저나 너는... 괜찮냐?”
“뭐가?”
“.... 일부러 알려고 한 건 아니고, 태진이한테 네 소식 들었다고 했잖아.....”
철웅 씨가 말하길 망설였다.
“그래. 소식 들었는데 뭐? 말을 해!”
“.... 그게.... 너 공사장에서 일한다며. 여관방에서 생활하고....”
“뭐? 아.... 그거? 크크큭.... 크하하핫....”
정섭 씨는 웃음이 나왔다.
분명 얼마 전, 아니, 불과 오늘 장모의 말을 듣기 전까지만 하더라도 만약 정섭 씨에게 철웅 씨처럼 이렇게 물었다면 표정이 어두워졌을 것이다.
그런데 이젠 아니다.
정섭 씨의 머릿속에는 아까 그 말을 듣는 순간부터 10억이 돌아다니며 그를 황홀하게 만들고 있었다.
“뭐야? 왜 웃어? 힘들어서 그냥 막 실성하기로 한 거냐?”
“지랄... 이 새끼... 철웅아. 진짜 인생은.... 모르는 거다. 그치?”
“뭐야?.... 웬 뜬금없이 인생철학이냐?...”
“흐흣..... 이야.... 이걸 말해야 하나.. 말아야 하나?”
정섭 씨의 입이 근질근질했다.
“... 야, 그렇게 말하는 사람치고 말 안 하는 사람 한 명도 보질 못했다. 그냥 말해..”
“... 그런가?.. 헤헤..”
정섭 씨는 철웅 씨에게 장인의 보험금 이야기를 했다. 철웅 씨는 깜짝 놀랐다.
“진짜?”
“그래. 그러니까 나도 이제 여관방 생활은 끝이다. 이참에... 그냥저냥 괜찮은 직장도 좀 알아볼까 싶기도 하고.”
정섭 씨 본인은 지금의 일이 전혀 부끄럽지 않았지만, 평소 아내는 명현이가 자라면 아빠의 직장이 부끄러울 수도 있다고 했다.
그 말을 듣고 처음엔 아내에게 자신의 직업이 무시당하는 것 같아 불같이 화를 냈지만, 명현이가 점점 크는 걸 보면서 정섭 씨의 마음도 조금씩 바뀌고 있었다.
“그래? 장인어른 장례식이라.. 이런 말하기가 참 그렇지만..... 정말 다행이다. 진짜 다행이야.”
철웅 씨는 진심으로 다행스러워했다.
철웅 씨가 사는 곳은 구도심 지역이었다.
그래서 그곳에는 오래된 여관이나 모텔이 많았다.
가끔 지나가다 어린이집이나 유치원 차량이 여관이나 모텔에 아이들 등, 하교시키는 모습을 보면서 어떻게 저런 곳에서 아이를 키울 수 있을까 하는 생각을 했었는데, 자신의 군대 동기도 그렇게 살고 있다는 말을 듣고는 너무 안타까운 마음이 들었었다.
부조금이 없어 동기의 결혼식에 참석하지 못한 스스로의 처지도 불쌍했지만, 본인 하나만 건사하면 되는 자신과 다르게 딸린 식구들과 함께 여관을 전전하며 지낸다는 동기의 소식을 들었을 때 너무 마음이 짠했었다.
마침 술집에서 팝송 피아노맨이 흘러나왔다.
“어? 야... 대박. 너한테 딱 어울리는 노래다. 너 진짜.... 바(bar)를 떠나는 존(John)이 되었구나.... 기억나?”
“뭐?.... 아... 이 새끼 너 요즘에도 하루 종일 팝송 틀어놓냐?”
“야. 당연하지... 뮤직 이즈 마이 라이프 인마... 크큭..”
철웅 씨는 팝송을 무척 좋아했다.
그래서 군생활을 할 때도 늘 팝송을 시끄럽게 틀어놓고 살았었다.
그중에서도 피아노맨 노래를 아주 좋아했는데,
가사 중에 존이 이곳, 그러니까 바(bar)를 떠날 수만 있다면 무비스타가 될 거라는 부분을 좋아해서 자주 불렀다.
그러면서 우리 모두는 존처럼 현실을 벗어나고 싶어도 벗어날 수 없는 존재라며, 그냥 음악이나 들으면 될 것을 쓸데없이 인생철학을 펼칠 땐 진짜 재수 없었다.
그럴 때마다 정섭 씨가 소리를 질렀다.
“야! 너 피아노부터 배워 인마! 피아노도 칠 줄 모르는 놈이 맨날 피아노맨이야?!”
아.... 그때. 정섭 씨는 가끔 그 시절이 그리웠다.
사람들은 군대 생활이 싫다고 하지만, 두들겨 맞든, 깨지든 어떻게 되든 해야 하는 일 외에 다른 현실적인 걱정은 하지 않아도 되는 곳.
하루일과를 무사히 잘 넘겼다는 것만으로 다른 걱정 없이 편히 잠을 이룰 수 있는 곳.
현실이 버겁게 느껴지고, 오늘만이 아니라 내일 일어날 지옥 같은 하루를 걱정해야 할 때마다 그곳이 생각나곤 했었다.
둘은 시간이 가는 줄도 모르고 술을 마셨다.
추억에 젖어 음악에 젖어. 그렇게 둘은 만취해버리고 말았다.
그 모습을 창을 통해서 보는 공방 2층의 정섭 씨는 가슴을 팡팡 쳤다.
장인어른의 장례식이었다.
저렇게 미친 듯이 마실 일이 아니었다.
아니, 저렇게 마셨더라도 잠은 장례식장으로 돌아가서 잤어야만 했다.
정섭 씨는 철웅 씨에게 기어코 모텔방을 잡아준다고, 편하게 자고 가라며 함께 모텔로 갔다.
그리고는 그렇게 술에 취해서 또 편의점에서 맥주를 사 모텔방에서 더 마시다가 채 반 병도 못 마시고 둘 다 쭉 뻗어버리고 말았었다.
정섭 씨는 그날의 아침을 떠올렸다.
두 번 다시는 떠올리고 싶지 않은 그날의 아침.
눈이 부셨다.
머리는 깨질 듯 아팠고, 들숨과 날숨에 술 냄새가 진동을 했다.
마른땅이 갈라지듯 목이 쩍쩍 갈라지는 느낌에 힘겹게 자리에서 몸을 일으켜 물을 마셨다.
물을 마시고 나서 다시 몸을 침대에 턱 눕힌 정섭 씨는 순간 화들짝 놀라 휴대폰을 집어 들었다.
부재중 전화 32건
문자 9건
톡 12건
시간은 10시 30분을 지나고 있었다.
새벽 6시에 발인.
장례식장에서 발인식을 끝내고, 화장장에서 화장까지 모두 이미 끝냈을 시간이었다.
정섭 씨는 그날의 아침을 생각하는 것만으로도 정신이 아득해지며 머리가 어지러웠다.
그때 공방의 창에서는 정섭 씨가 철웅 씨와 떠나고 난 이후의 장례식장을 비춰줬다.
초조한 아내의 모습.
다들 잠들어 있는 어두운 장례식장에서 아내 혼자만 빨갛게 충혈된 눈으로 홀로 빈소에 앉아 있었다.
-째깍째각
창 위의 시계를 보니 새벽 4시.
아내는 불안한 표정으로 어딘가 전화를 걸었다.
아마 자신에게 거는 전화였을 것이다.
공방의 창으로 보는 아내는 조금 떨어져 있었지만, 신호가 울리는 소리는 크게 들렸다.
오랜 신호음에도 받지 않는 전화.
고객이 전화를 받지 않아 소리샘으로.....
아내는 한숨을 길게 내쉬며 전화를 끊었다.
그리곤 문자를 보냈다.
정섭 씨는 아내가 어떤 내용을 보냈는지 궁금했다.
그러자 카메라 줌을 당기듯 창에서 보이는 화면이 아내에게 가까이 다가갔고, 스마트폰의 문자 내용이 보였다.
- 언제 와? 6시에 발인이야. 곧 어른들도 일어나실 거고.
정섭 씨가 그날 일어나 봤던 수많은 문자들의 내용 중 하나.
정섭 씨가 한 맺힌 주먹으로 창을 쾅쾅 쳤다.
주먹으로 친 창에는 물결의 파동처럼 잔잔한 파동만이 잠시 일어날 뿐이었다.
아내는 또 전화를 하고, 문자를 보내고, 전화를 하고.... 또 전화를 했다.
창틀 위의 시계가 빠르게 돌아갔다.
창 속의 어두운 장례식장에서 하나, 둘 불이 켜지고, 집안의 어른들이 일어나고, 손님들도 일어났다.
집으로 돌아갔던 사람들도 발인을 위해 장례식에 모여들었다.
아내는 빈소에서 무릎에 머리를 파묻고 눈물을 흘렸다.
장모가 얼굴이 붉게 상기되어 아내에게 뭐라고 하는데, 정섭 씨는 도저히 그 말을 들을 용기가 없어 귀를 틀어막고, 고개를 숙이며 공방 바닥에 쭈그리고 앉았다.
정섭 씨는 무서웠다.
그 시절을 다시 돌아보는 것이. 자기 자신이 충분히 예견할 수 있었고, 조금만 돌이켜보면 분명히 상황을 짐작할 수 있었지만, 애써 모른 척 외면해 왔던 그 순간을 들여다본다는 것이 너무나 두려웠다.
정섭 씨는 한참 동안 헉헉거리며 눈을 떼굴떼굴 굴리다가 귀를 막고 있는 손을 내린 후 조금씩 허리를 펴고 다리를 세워서 창문으로 훔쳐보듯 상황을 살폈다.
“엄마! 왜 이래?!”
빈소 옆의 작은 방.
아내가 장모에게 소리를 지르고 있었다.
“시끄러워 이것아!! 넌 가만히 있어!!”
장모가 아내를 밀쳐내며 정섭 씨의 어린 아들에게 말했다.
“명현아! 이젠 네가 상주다! 어차피 할아버지도 너를 제일 아꼈으니, 네가 할아버지 가시는 길 보내드려라!”
“네?”
“엄마!”
장모는 정섭 씨가 놔두고 간 상주 완장을 정섭 씨의 어린 아들 명현이의 팔에 채웠다.
“할머니.... 왜 이러세요? 아빠는요?”
“너네 아빠는... 이제 없다고 생각해!”
“엄마!! 애한테 그게 무슨 말이야?!”
“사람은 고쳐 쓰는 게 아니라더니... 그러면 그렇지! 다른 날도 아니고!! 네 아버지 장례식장에서 이게 도대체 무슨 꼴이니?!!”
장모는 분노에 가득 찬 얼굴로 정섭 씨 아들을 데리고 방에서 빈소로 나갔다.
곧 사람들의 웅성거림 속에서 정섭 씨의 어린 아들을 상주로 한 발인식이 시작되었다.
아내와 장모는 아이고, 아이고 곡소리를 서럽게 하며 울었다.
정섭 씨는 아내의 울음에서 장인어른에 대한 그리움과 자신에게 한이 맺히고, 사무치게 애끓는 마음을 느낄 수 있었다.
정섭 씨의 눈에서 뜨거운 눈물이 쏟아졌다.
아이고.... 아이고... 정섭 씨의 입에서 절로 곡소리가 흘러나왔다.
장인어른의 장례식장.
거기서 아내는 곡을 했고, 그 모습을 보며 정섭 씨는 2층 공방에서 당시에는 하지 못한 곡을 했다.
발인식이 끝나고 버스를 타고 화장장으로 향하는 동안에도 아내는 계속 정섭 씨에게 전화를 걸고, 문자를 보냈다.
장모의 눈치를 보고, 처제의 눈치를 보면서.
아내는 눈물을 흘리며 계속 전화기를 만지작거렸다.
이때만이라도 연락이 되었었더라면...
화장이 끝나기 전에 만이라도 연락이 되었더라면...
하지만, 결국 정섭 씨는 화장이 모두 끝나고, 납골당에 유골함을 안치할 때까지도 연락이 닿지 않았다.
장례식이 모두 끝나고, 어수선한 분위기 속에 친지들이 돌아가고 난 후 장모가 아내에게 말했다.
“짐 싸서 우리 집으로 들어와.”
“뭐?”
“그 인간 하고는 이제 정리해!”
장모의 말에 아내가 아들의 귀를 막았다.
“엄마 진짜!! 명현이 듣는데!! 정리하긴 뭘 정리해?!”
“넌 지금 이 상황에서도 니 남편 편을 드는 거니?! 그게 인간이야?!!”
“내가 언제 편을 들었어?.... 물론 오늘 일은 조서방이 잘못하긴 한 거지만.... 오랜만에 군대 동기가 와서 기분 좀 내다가 그런 걸 거야..”
“뭐? 기분? 기분?!!! 뭔 놈의 기분을 장인어른 장례식장에서 내니? 어?! 세상에 내 살다 살다 상주가 사라져 버린 장례식은 처음 본다!! 남의 장례식도 아니고, 네 아버지 장례식에서 이런 꼬락서니를 보다니!! 아이고~ 내 팔자야~~ 아이고~~!! 너도 이제라도 정신 차려 이것아!! 정신 차리라고!!”
장모는 울며불며 아내의 어깨를 찰싹찰싹 때렸다.
아내는 장모에게 연신 맞으면서 눈물을 흘렸다.
“엄마. 그래도... 명현이가 있는데... 아빠 없이 키울 순 없어....”
“평범한 아빠라면 그렇지! 그런데 지금 조서방 같은 아빠는 명현이한테 차라리 없는 게 나아!”
“엄마 쫌!!”
- 띠리리리
그때 전화벨이 울렸다.
아내는 스마트폰의 액정화면을 보고는 화들짝 놀랐다.
남편이었다.
아내가 안절부절못하다가 한쪽으로 걸어가서 전화를 받으려는데, 장모가 외쳤다.
“여기서 받아!! 내 그 인간이 뭐라고 하는지 한번 들어나 보자!!”
아.... 안 돼!! 정섭 씨는 술이 덜 깬 그날의 아침이 너무나 잔인하게도 또렷하게 기억이 났다.
아내에게 전화를 하고, 장모에게 소리를 질렀던..... 아... 정말... 시간을 돌릴 수만 있다면....
아내의 전화를 탁 뺏더니 장모는 스피커폰을 눌러 아내에게 다시 건넸다.
“... 여... 여보세요?”
아내가 떨리는 목소리로 전화를 받았다.
“.. 어.. 여보... 미안. 정말 미안해.. 내가 너무 늦었지? 어제 철웅이하고.... 아... 진짜 할 말이 없다 여보. 너무 미안해..”
“... 흑.... 흐흑...... 으흐흑...”
정섭 씨의 말에 아내는 울기만 했다.
“... 진짜 여보... 철웅이랑.... 한 잔만 더 하자고....”
아내는 계속 울었고, 정섭 씨는 계속 핑계를 읊었다.
저런 상황이었구나.... 저 때가.... 자신이 창을 통해서 듣고 있음에도, 술이 덜 깨서 혀가 꼬인 발음으로 너무나 구차하고 치졸하게 변명을 하는 자기 자신을 때려죽이고 싶을 정도로 미웠다.
아내의 곁에서 가만히 듣고 있던 장모는 화가 나서 치를 떨며 온몸을 부들부들 떨었다.
그러다 순간 참을 수 없었는지 아내의 전화기를 홱 낚아채며 말했다.
“조서방! 아니, 조정섭 씨! 이제 우리 딸 볼 생각 하지 마! 알았어? 명현이도 마찬가지고!”
“어? 아.. 장모님. 정말.. 죄송합니다.. 제가..”
“죄송이고 뭐고, 이제 우린 남남이니까. 알아서 잘 사시고, 내 딸하고 명현이는 볼 생각도, 연락도 하지 마!”
“엄마! 쫌!”
아내가 장모손에 있는 스마트폰을 뺐으려고 손을 뻗었지만, 장모는 몸을 돌리며 끝까지 폰을 놓지 않았다.
“... 정말... 미안합니다... 근데.. 저도.. 사정이...”
“사정 같은 소리 하고 자빠졌네!! 장례식이 무슨 애들 장난도 아니고! 내가 자네랑 결혼한다는 거 그렇게 말렸는데.... 이제 좀 사람구실 하나보다... 했는데... 역시 사람은 변하는 게 아니었어.. 자네 같은 인간은 평생 공사장에서 굴러먹고 그렇게 살아! 내 딸하고, 손자 고생시키지 말고. 알았어?!”
안 돼!! 안 돼!!! 제발....!!!
정섭 씨는 그다음에 자신이 무슨 말을 했는지 잘 알았다.
누군가 자신의 평생직장인 공사현장을 무시하면 자기도 모르게 불쑥 발끈하는 그 성질이 술에 취한 그의 몸에서 아무런 제지도 받지 못한 채 불쑥 튀어나와버렸다.
“하... 참나... 뭐라고?!”
“뭐...... 뭐?! 지금 자네 뭐라 그랬나?!”
“그러는 당신은! 뭐? 내가 공사장에서 굴러먹어?! 그게 뭐?! 내가 그렇게 굴러먹어서 집도 짓고, 아파트도 짓고 그랬다! 왜?!! 공사장에서 일하는 사람들 없으면 뭐, 어떻게 당신 같은 인간들이 집에서 살 건데?! 동굴에서나 살아야지!!”
“뭐? 다, 당신?... 하.... 어머.. 어머....”
장모는 정섭 씨의 막말에 충격을 받았는지 뒷목을 잡으며 눈을 질끈 감았다.
“그래. 좋다! 씨바! 누군 아쉽냐? 데려가! 딸 데려가고, 손자새끼까지 데려가! 그것들이 거기서 살고 싶다고 하는 모양이지?! 데려가더라도 돈은 떼먹을 생각하지 마! 돈은 꼭 받을 테니까!! 알았어?!”
“뭐, 뭐? 이.. 이 인간이 도대체 무슨 소릴 하는 거니?”
“장인 보험금!! 10억 이라며! 당신 딸이나, 당신 손자는 데려가건 말건 난 모르겠고, 10억은 절대 포기 못하니까 무조건 내놔!!”
장모는 더 이상 버티지 못하고, 바닥에 풀썩 주저앉으며 쓰러졌다.
“엄마!! 엄마!!!”
아내의 울부짖는 소리.
아내는 그 뒤로 집을 떠나 다시는 돌아오지 않았다. 물론, 정섭 씨는 장인의 사망 보험금은 한 푼도 받지 못했다.
공방 2층의 정섭 씨는 머리를 쥐어뜯으며 통곡했다.
한참을 통곡하며 이제 더 이상 흐를 눈물이 없을 정도로 많은 눈물을 쏟아낸 후, 정섭 씨가 딸꾹질하듯 가슴을 들썩거릴 때 다른 쪽 창에서 아기의 울음소리가 들려왔다.
- 응애!! 응애!!
정섭 씨는 아기 울음소리에 이끌리듯 바닥에서 일어나 소리가 나는 창으로 갔다.
그곳에는 태어난 지 얼마 지나지 않은 아들과, 아내가 보였다.
더 오래된 과거를 보여주는 창에서 아내는 세상 행복해 보였다.
“오늘 장목수가 약속 깬 게 그렇게 좋냐?”
“응. 거기다 오늘 자기가 술도 안 마시고, 명현이하고 이렇게 둘이 나란히 누워있으니까 세상 다 가진 것처럼 너무 좋아.”
“체... 이런 여관방에서... 뭐가 좋아?”
“오히려 더 좋지 뭐. 좁은 공간이니까... 우리 셋이 더 가까이 있을 수 있는 거잖아?”
“참... 어떻게 너는 생각을 정말 이상하게 한다? 암튼 좀만 기다려봐. 내가 그냥 뽝!! 큰 거 한 건 터트려서 좋은 집으로 이사 갈 테니까.”
“큰 거 이런 거 바라지도 마. 난 진짜 괜찮다니까? 지금도 충분히 행복한데 뭐.”
“야! 이게 뭐가 행복하냐? 여관방 전전하면서 사는 게!”
“여관방이라서 행복한 게 아니고, 당신하고 명현이가 같이 있어서 행복한 거라고.”
“돈이 많으면 더 행복하겠지.”
아내는 곰곰이 생각하다가 물었다.
“돈이 많으면 뭘 할 건데?”
“여행 가야지. 좋은 집도 사고, 좋은 차도 사고.”
“그리고?”
“뭐.... 맛난 음식도 먹고.... 오붓한 시간도 보내고.....”
“그럼 우리 지금 돈 많은 부자 되면 할 수 있는 거 하나는 하고 있는 거네?”
“뭐?”
“오붓한 시간. 우리 지금 보내고 있는 거잖아.”
“뭐? 참 나.... 넌 참.... 아이고, 됐다. 됐어. 사람이 욕심이 있어야 발전이 있는 거지... 넌 발전이 전~~ 혀 없겠다.”
정섭 씨의 구박에 아랑곳하지 않고, 아내는 생글생글 웃었다.
“발전이 전~~ 혀 없어도 괜찮아요! 명현이하고 당신만 이렇게 곁에 있으면. 히히.”
아내는 정말 행복해 보였다.
비좁고, 너저분한 여관방에서도.
그때 아내에게는 그곳이 행복이 가득한 곳이었고, 아들에게는 그곳이 세상의 전부였다.
당시 그곳에 만족하지 못하는 사람은 정섭 씨 밖에 없었고, 이제 와 그곳을 그리워하는 사람도 정섭 씨 밖에 없었다.
정섭 씨의 볼을 타고 흘러내리는 눈물은 멈추지 않았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