brunch

You can make anything
by writing

C.S.Lewis

by 허건우 Sep 07. 2024

함께. 서로. 같이.

같이 걷자.

 어두웠던 공방이 환해지며 순간 지연 씨의 눈이 부셨다.     


“다 잤냐?!”     


 친구 선희의 목소리.     


지연 씨는 부신 눈을 서서히 빛에 적응하며 떴다. 


훅 풍겨오는 나무냄새. 


그렇지. 여긴 공방이었지. 


대구탕집 2층 공방. 


거기서 도마 만들기를 하다가.... 잠이 들었나? 

    

“넌 무슨 애가 낮잠을 자면서 막 흐느끼고.... 아침 드라마 보는 줄?”     


“어... 그랬어?”     


“그래... 그나저나 너 아침드라마 참 좋아했는데... 수능 끝나고 대학 들어가기 전에 너 아르바이트하러 다니던 공장에도 맨날 아침드라마 보고 가다가 늦어서 혼나고... 아, 그때가 좋았는데... 그치?”     


“응?... 내가?...”     


“뭐야?... 너 설마!.... 기억이 안 난다고는 하지 마 이년아! 혹시라도 하려거든 치매보험이라도 들어놓고 말해!”     


 맞다. 


선희 씨는 수능이 끝나고, 반친구들 중에서도 제일 먼저 공장에 파트타임을 구했다. 


그런데, 그게 이렇게 까마득한 먼 일인 것 같고, 전혀 다른 사람의 일처럼 느껴지다니...  

   

“맞아.... 그랬지....”     


갑자기 지연 씨의 눈에서 굵은 눈물이 또르르 굴러 내렸다.     


“머.... 뭐야? 지연아. 너 왜 그래?”     


선희 씨가 갑작스러운 친구의 눈물에 깜짝 놀라며 물었다. 지연 씨는 눈물을 손으로 훔쳤다.    

 

“아니야. 아무것도. 하아..... 그냥. 그 시절이 너무 그리워서.... 정말... 나 왜 이렇게 못나게 변했을까?.. 그렇지?”     


 지연 씨가 웃으며 친구 선희 씨를 향해 물었다. 


지연 씨의 웃는 얼굴에는 눈물이 흐르고 있었다. 


안타까웠다. 친구의 슬픈 미소가.


 이럴 땐 평범한 위로는 아무런 도움이 되지 않는다는 걸 선희 씨는 잘 알았다.     


“아니라고 하진 않을게. 너 못난 거.”     


“...”     


“아, 정정. 그냥 너가 아니라. 지금의 너. 지금의 너가 못난 거지, 그 시절의 너는 정말 찬란했어. 저기 쏟아지는 햇살처럼.”     


‘그 시절의 너’ 라는 말이 시리도록 아프게 지연 씨의 가슴에 꽂혔다.    

  

“..... 정말?....”     


“그럼. 누구보다 당당하고, 멋졌었지.”     


 당당하다는 말. 그 말이 마치 이제는 모두 개발되어 사라져 버린 어린 시절의 고향처럼 아련하게 느껴졌다.

      

그 시절... 좋았다. 


가진 것이 없어도. 


스스로에게 부끄럽지 않게 열심히 살며, 이렇게 살아가는 모습이 나다!!라고 세상에 떳떳할 수 있어 좋았다.


 누구도 부럽지 않았고, 누구에게 기죽지도 않았다.     


 그런 지연 씨의 당당한 모습보다 더 당당한 사람이 있어 지연 씨를 놀라게 만든 사람이 바로 남편이었다. 


가진 것도 없고, 별로 잘난 것도 없는 사람이 뭐가 저렇게 당당하지? 지연 씨는 남편의 모습에 때론 당황스러웠다.      


“지연 씨. 지연 씨는 가진 게 많은 사람이 뽐내고 잘난 척을 해야 한다고 생각하세요?”     


“아니요. 그런 사람은 재수 없죠.”     


“맞아요. 그것과 마찬가지입니다. 가진 사람이 잘난 척하는 것도 재수 없지만, 없는 사람이 움츠리고 있으면 그것도 꼴 보기 싫은 거죠. 당당해야 합니다. 없는 사람도. 그런 사람이 가졌을 때도 오만하지 않을 수 있는 거예요. 돈은 있을 때도 있고, 없을 때도 있다는 걸 아는 사람이기 때문이죠.”     


무슨 논리인지는 몰라도 그 당시엔 그럴듯하게 들렸다. 


그래서 끌렸다. 


배경의 위세를 자랑하는 사람이 아니라, 스스로의 당당함을 자랑하는 사람에게. 그런 남편에게.    

 

 그렇게 당당한 둘이 만났는데. 


둘이서 가슴을 쫙 펴고 세상을 당당하게 마주하면 무서울 것이 없을 거라 믿었는데. 


지금은 자신도, 남편도.... 한없이 쪼그라들어 있었다.     


“.... 어쩌다 이렇게 된 걸까?.... 도대체 뭐가 잘못된 걸까....”


“지연아. 그건 이제 중요한 게 아니야. 내가 첫 직장 다닐 때, 누가 뒤에서 나 욕하고 다녀서 엄청 힘들어했을 때, 내가 그 인간 누군지 잡아서 죽여버리겠다고 했을 때 니가 나한테 그랬잖아. 돌에 맞았으면, 돌 던진 새끼가 누군지 잡으려고 피 철철 흘리면서 휘젓고 돌아다니지 말고, 얼른 상처부터 치료를 하라고.”   

  

기억이 났다. 그래.... 그때의 나는 그런 말도 할 줄 알았구나...     


“....내 상처는.... 그럼 뭘로 치료할 수 있을까?”     


“아주 쉬워.”     


지연 씨는 쉼 없이 흐르는 눈물을 닦으며 친구의 얼굴을 쳐다봤다.   

   

“다시 돌아가면 돼. 왔던 길을 거슬러서. 지금의 너도 지연이고, 그때의 너도 지연이니까.”     


“... 내가 정말.... 그때의 나로 돌아갈 수 있을까?”     


“그럼. 여기까지 걸어온 길은 처음 걸어본 길이라 가끔 엉뚱한 곳으로 빠지기도 했지만, 그게 반복되다 보니까 점점 길을 걷기가 두려워졌겠지만, 돌아가는 길은 쉬울 거야. 한 번 걸어본 길이니까.”     


 선희 씨가 지연 씨의 어깨를 두드리며 위로했다. 


지연 씨는 하염없이 쏟아지는 눈물을 계속 쏟았다.


 선희 씨는 친구가 원 없이 눈물을 흘릴 수 있도록, 모든 후회를 흘려내도록 묵묵히 기다렸다. 


지연 씨의 울음 속에서 시간이 멈춰버린 듯한, 시간을 달리는 공방.      


“선희야... 고마워...”     


“고맙긴... 오히려 내가 고마워...”     


“... 뭐.. 가?..”     


“뭐랄까.... 나도 조금은 두려웠거든. 그 시절의 내 친구를... 앞으로 다신 만날 수 없는 거 아닌가? 하는 생각에.. 그동안 너에게 수없이 말을 해봤는데, 마치 꽉 막힌 벽을 마주하고 이야기를 했던 느낌이랄까? 그런데... 그런 나에게도 오늘 희망이 생겼네? 헤헤.”     


수줍게 웃는 선희 씨의 눈에도 눈물이 고였다.      


 너무 고마웠다. 그리고 또 미안했다. 


지연 씨는 자신이 또 고마워해야 하고 미안해해야 할 사람이 생각났다. 


그리고 그 사람을 위해 당장 무엇을 해야 할 지도. 


지연 씨는 빨리 집으로 가고 싶어졌다.         

 

 밤 11시. 


오늘도 늦게까지 야근을 하고 집으로 돌아온 지연 씨의 남편 지훈 씨는 집으로 향하는 발걸음이 천근만근이었다. 


아내는 잠이 들었을까? 


그냥 조금 더 일을 하고 올 걸 그랬나? 


아니, 아니지. 그러다 새벽에 들어갔는데 잠들었던 아내가 깨면 그게 더 피곤하지. 


아내가 적당히 피곤한 시점에 집으로 들어가는 게 포인트였다.    

  

 그렇다고 꼭 아내를 피하기 위해서만 야근을 하는 것은 아니었다. 


무엇보다 돈이 필요했다. 


물론, 야근수당 얼마를 더 보태도 생활비를 충당하기엔 턱도 없었지만, 그거라도 벌어야만 했다. 


벌고... 또 벌고... 새벽에 배달 아르바이트라도 해볼까 생각도 했지만, 도저히 잠을 안자며 일을 할 자신은 없었다. 


주말 배달이라도 해볼까? 주말에는 아이들과 함께 어디라도 다녀오자고 마음먹고, 그렇게 마음먹은 대로 늘 어디든 나들이를 다녀왔지만, 이젠 더 이상 그럴 여력이 없었다. 


아이들에겐 좀 미안하지만 어쩔 수 없었다. 


더 미안한 일이 생기기 전에 뭐라도 벌 수 있는 벌이는 다 해봐야 했다.    

 

“휴우.....”     


 집 현관문 앞에 선 지훈 씨는 습관처럼 한숨을 내쉬었다. 


결혼 전 자신이 꿈꾸던 집. 


일을 마치고 집으로 돌아오면 아이들과 아내가 반갑게 맞이해 주는 곳. 


야근으로 늦은 퇴근을 하면 아이들은 잠들어 있고, 아내는 맛난 음식과 술을 한 병 준비해 함께 오붓한 시간을 즐기는 곳.


 하루가 저물고, 날이 어두워지면 환하게 불이 켜진 집에서 맛있는 음식 냄새와 하하 호호 어른들과 아이들의 웃음소리가 번지는 곳. 


밖에서 무엇을 하던 빨리 돌아가고 싶은 곳. 


그런 곳이 바로 집이었다. 


그런데 현실은.... 거실의 불이 늘 꺼져있는 곳. 


아이들이나 어른들이나 그 누구의 웃음소리도 없는 곳. 


야근을 하고 늦게 온 날은 대충 씻고 바로 잠들어야 하는 곳. 


늦은 시간 조심조심 들어가다가도 아내가 깨면 혼나는 곳. 


불안함과 어두움이 가득한 곳. 


늘 현관문 앞에서 한숨을 쉬고 들어가는 곳. 


그런 곳이 집이 되어버렸다.      


‘언제까지 버틸 수 있을까....’   

  

 지훈 씨는 점점 버거워져 가는 날들에 자신이 언제까지 견딜 수 있을지 두려웠다. 


지금처럼, 여태껏 흘러왔던 것처럼 상황이 흘러간다면, 


결과는 불 보듯 뻔했기 때문에,


머지않아 모든 것들이 무너져 내릴 것이 명확했기에, 


그날이 온다면 자신은 그 시간들을 견딜 수 있을지, 


아내는 참아낼 수 있을지, 


아이들은 얼마나 혹독한 시련을 맞이하게 될지, 


그 모든 것들이 두렵기만 했다. 


거센 폭풍이 다가오고 있다는 것을 뻔히 알면서도, 피할 수도 없고, 함께 용기 내어 버텨줄 사람도 없이 홀로 맞이해야 한다는 것이 너무나 외롭고, 무서웠다. 


제발.... 아이들이 클 때까지만이라도 무사할 수 있기를....     


띠리릭


지훈 씨는 무거운 마음으로 현관문을 열고 집으로 들어섰다. 


그런데.... 어? 평소와는 뭔가 다른 느낌! 


지훈 씨는 코를 킁킁거렸다.     


현관에 들어섰는데 늘 퀴퀴한 냄새가 나던 신발장에서는 향긋한 냄새가 나고, 코끝을 스치는 음식 냄새! 


이 시간에?! 


최근 몇 년 동안 이 늦은 시간 집에서 음식 냄새를 맡아본 적이 없었는데? 


뭐야? 


그리고 캄캄해야 할 집이 밝았다. 


거실의 불은 여전히 평소처럼 켜있지 않았지만, 주방의 불이 환하게 밝았다.     


이상했다. 


기분이 묘하게 좋았다. 


집에서 몇 년 만에 처음으로 온기가 느껴졌다. 


지훈 씨는 습관이 되어 조심조심 집으로 들어갔다.   

  

“왔어?”     


아내의 목소리. 


지훈 씨는 화들짝 놀랐다. 


이것 역시 습관처럼.     


“어? 어. 그런데.... 뭐야?”     


“뭐가?”     


“아니..... 지금.. 뭐 하는 거냐고?”     


“지금? 자기 야근하고 와서 먹을 거 좀 차려뒀는데. 왜? 배불러?”   

  

배가 부를 리가 없었다. 요즘 스트레스로 밥맛이 없어 오늘 저녁도 거른 지훈 씨였다.   

   

“여기 소주도 한 병 사뒀는데.”   

 

지연 씨가 김치냉장고에서 소주를 꺼내며 씩 웃었다. 


왔더!! 도대체 이게 무슨 일이지? 


지훈 씨는 뭔가 큰일이 벌어진 것 같은 불안이 엄습했다.   

  

“씻고 와.”     


“어? 어.”     


 지훈 씨는 일단 씻으러 들어갔다.


 세면대에서 물을 틀고, 손을 씻는데 온갖 생각이 다 들었다. 


평소와 다른 분위기의 아내가 이번에 또 무슨 말을 꺼낼지 몰랐다. 


또 뭐가 필요한 걸까? 


그건 또 얼마나 할까? 


더 이상 돈을 마련할 곳도 없는데... 안된다고 하면 아내는 또 얼마나 화를 낼까?   

   

짧은 시간 씻으면서 지훈 씨는 여러 가지 생각에 근심이 가득했다.   

  

“앉아.”     


 씻고 나온 지훈 씨에게 지연 씨가 미소를 지으며 말했다. 


지연 씨의 표정과는 사뭇 대조적으로 지훈 씨의 표정은 딱딱하게 굳어 있었다.  

   

- 쪼르르     


지훈 씨가 주방의 식탁 의자에 앉자 지연 씨는 미리 준비해 놓은 소주잔에 소주를 부어주었다. 


식탁 위에는 지훈 씨가 좋아하는 소시지야채볶음과 메추리 알 장조림이 준비되어 있었다. 


그런데, 지연 씨 앞에는 아무것도 없었다.     


“자기는? 맥주 안 마셔?”     


“응. 난 당분간 술은 안 마시려고.”     


“왜?”     


“그냥.... 이제 술은 그만 마시고, 그 시간에 운동하려고.”     


아뿔싸! 


이거구나! 운동! 


아내 성격에 그냥 헬스장을 다니겠다는 말은 아닐 테고, PT를 끊어야 한다고 말하겠지? 


회당 5만 원에서 10만 원 정도 한다고 들었는데... 


아내는 10만 원 정도 하는 PT를 한다고 하겠지? 


아니면 그것보다 더 비싼 걸 하겠다고 하려나? 


10회만 해도 100만 원. 


10회를 끊으면 1회 정도는 서비스로 더 해준다고 나에게 자랑을 하겠지?  

   

머리가 지끈지끈 아팠다. 


갑자기 입맛이 싹 사라졌다.  

    

“한잔 해. 난 안 마셔도 되니까.”     


“어?... 어.”     


 지훈 씨는 일단 소주 한 잔을 입에 털어 넣었다. 


얼마 만인가? 집에서 술을 마신 적이. 


그것도 아내가 차려준 상에서. 


예전엔 일상이었던 일이, 더 이상 일상일 수 없게 되어버린 현실이란... 


지훈 씨는 자신이 겪는 현실과 예전의 일상이 머릿속에서 오버랩되어 콧등이 시큰해졌다.   

  

지훈 씨는 소주잔을 테이블 위에 탁 놓았다. 


털어놓은 소주가 목구멍에 쓴맛을 확 뿌렸다. 


지훈 씨가 입을 꾹 닫고 콧구멍으로 숨을 흥 내쉬었다. 


시큰해졌던 코에 뜨거운 기운이 훅 불었다. 


지훈 씨는 젓가락을 집으려다가 말았다. 


좋아하는 안줏거리들이 식탁에 놓여 있었지만, 아내가 어떤 말을 꺼낼지 짐작이 되어 손이 가지 않았다.  

   

“당신이 하려는 운동 그거.... 안 하면 안 돼?”     


조용히 말을 꺼냈지만, 지훈 씨에겐 엄청난 용기가 필요한 말이었다.     


“뭐? 왜? 그게 어떤 운동인지 어떻게 알고?”     


 부끄러웠다. 


다른 것도 아니고, 운동을 하겠다는데, 하지 않으면 안 되겠냐고 물어봐야만 하는 현실이. 


그렇지만 이제 더 이상 뭔가를 해줄 수 있는 여력도 없는데, 무턱대고 운동을 하라고 할 수도 없었다.


“미안해....”     


지연 씨는 남편이 왜 이러는지 이미 짐작했다.     


“걱정하지 마. 돈 들어가는 운동 아니니까.”    

 

“어?..... 어... 뭐?”     


살짝 당황했다. 


아니, 많이 당황했다. 


아내가 돈이 들어가지 않는 무언가를 하려고 한다는 사실에 당황했고, 속마음을 들킨 것 같아 당황했다.   

  

“그리고, 연희 치아 교정하는 거 안 하기로 했어.”     


“뭐? 아니 왜?”     


 사춘기라 교정기가 보이지 않는 인비절로 해야 한다며 6백만 원에 가까운 비용이 들어간다던 치아교정을 하지 않는다는 말이 솔직히 반갑기는 했지만, 아내가 왜 이러는지 이유를 알 수 없었다.    

  

“그냥. 애들 커가면서 상태도 점점 달라질 텐데, 크면 자연스럽게 변할 수도 있는 거고, 보기 싫으면 다 커서 해도 되는 거니까.”     


지훈 씨의 눈이 동그래졌다. 


그런데 지훈 씨가 놀랄 일은 이것뿐만이 아니라는 듯 지연 씨가 생긋 웃으며 말했다.    

 

“선희 알지?”     


“응?.. 당연하지. 당신 절친.”     


“선희가 나 알바 구해줬어.”     


“뭐? 아니, 당신이 왜?!”     


이 정도 되니 지훈 씨의 놀라움은 더 큰 두려움으로 바뀌어 버렸다.    


도대체 무슨 일이 벌어지려고.....


“뭘 그렇게까지 놀라? 나도 집에만 있기 갑갑해서 그런 건데.”     


“아니... 그게....”     


이상했다. 여태껏 집에서만 지내던 아내가 갑자기 일을 하러 가겠다니!     


지연 씨가 지훈 씨의 손을 살며시 잡았다.     


“여보. 나도 이제 도울게.”     


“뭐... 뭘 도와?”     


“자기 그동안 혼자서 많이 힘들었잖아. 뭐, 내가 얼마나 도움이 될지도 모르겠고, 잘할 수 있을지도 모르겠지만, 노력해 볼게.”     


 순간 지훈 씨의 심장이 비포장도로를 달리는 자동차처럼 요란하게 덜컹거렸다. 


그리고 눈물이 또르르 흘러내렸다. 


정말 오랜만에 느껴보는 감정이었다.


 함께. 같이. 서로.라는 감정.   

   

 아내가 일하러 나가서 얼마를 벌어오는지, 그것이 중요한 것이 아니었다. 


설령 나가서 얼마 버티지 못하고 그만두게 되더라도 그것 또한 중요한 것이 아니었다. 


지금 지훈 씨에게 중요한 것은 나 혼자가 아니라는 사실. 


외롭고, 어둡고, 끝 모를 어두운 터널을 혼자 걸어가는 게 아니라, 곁에 누군가 함께 걷고 있다는 그 기분. 


그것이 너무나 간절했었다.     

 

 모든 사람이 방관자 같았다. 


그냥 방관자가 아니라, 적극적인 방관자들. 


자신이 얼마나 버틸 수 있는지를 멀리서 구경하며, 언제 무너져 내릴지를 예측하며 베팅하는 방관자들. 


그리고 그런 방관자들 속에 아내도 함께 있었다. 


방관자들의 군중 속에 어울려 그들과 함께 자신을 지켜보고 있었다. 


다른 누구보다 아내가 그곳에 서 있다는 사실이 지훈 씨를 너무나 외롭고 지치고 힘들게 만들었다. 


그런데, 그랬던 아내가 군중 속에서 자신을 향해 한 걸음 다가오고 있었다. 


함께하기 위해! 


같이 하기 위해! 


저쪽에서 이쪽을 쳐다보는 것이 아니라, 이쪽에서 저쪽으로 함께 같은 곳을 쳐다보기 위해!! 


그리웠다. 이 기분이.  

    

 지연 씨의 눈에서도 눈물이 흘렀다. 


미안함과 죄책감이 눈물에 녹아 흘러내렸다. 


둘은 한동안 서로 말없이 눈물을 흘렸다. 


묻고 싶은 것도 많았고, 하고 싶은 말도 많았으나 서로 약속이나 한 듯 침묵 속에서 울었다. 


서로 묻지 않고, 말하지 않았지만, 


그들은 그렇게 흐르는 눈물 속에서 천 마디의 말보다 더 많은 대화를 나눴다.  

    

 그렇게 앉아 있다가 지연 씨는 문득 궁금한 생각이 들었다. 


남편의 힘든 상황은 지연 씨가 짐작할 수도 있는 부분이었다. 


월급보다 생활비가 더 많이 나가니까, 그리고 그동안 생활비를 지원해 주시던 시어머니도 지금은 병원에 계셔서 오히려 병원비까지 더 들어가고 있으니까. 


그런데 정말 남편이 은우 씨에게 돈을 빌렸을까? 


가만히 생각해 보면 단지 공방에서 꿈을 꾼 것뿐이었다. 


그 꿈이 사실이라고 할 수는 없었다. 아직까지는.


지연 씨는 이것을 확인해 볼 필요가 있었다.     


“근데....”     


지연 씨가 조심스레 입을 열었다.     


“당신 요즘 왜 은우 씨하고는 연락 안 해?”  

   

“어.... 그냥.... 은우도 바쁘고.... 어? 자기 혹시 오늘 이러는 거 은우가 무슨 말한 거야?”     


남편의 반응을 보니, 꿈에서 본 내용이 확실했다.    

 

“아니. 은우 씨가 나한테 연락을 왜 해? 그냥 당신 요즘 너무 사람들 안 만나는 거 같고, 은우 씨랑은 절친인데, 연락도 잘 안 하는 거 같아서.”     


“절친은 무슨....”     


 남편은 은우 씨 이야기에 갑자기 뿔난 표정이 되어 소주잔에 소주를 채워 마셨다.


 남편의 행동에 확신한 지연 씨는 너무 궁금해졌다. 


과연 그 공방에서 꾼 꿈은 뭘까? 


그리고 거기 공방은 뭘 하는 곳이고, 어떤 공간일까? 


공방에 대해 의아한 점이 한두 가지가 아니었다. 


지연 씨는 곧 그곳을 다시 찾아가 봐야겠다고 결심했다.


이전 23화 시간
브런치는 최신 브라우저에 최적화 되어있습니다. IE chrome safari