아침 먹방 3년 만에 들어온 강의
"어서오이소~"
2021년 7월 31일 이후로 난 아침마다 방송을 한다.
딱히 뭐, 그렇다 할 전문가적 스킬을 갖춘 방송인이 아니라 방송도 별거 없다.
그냥 아침밥을 먹고, 이야기를 나눈다.
요즘 아침을 거르거나 가볍게 먹는 사람들이 많다고 하지만, 이 글을 읽는 독자들 중에도 아침식사를 나처럼 꼭 해야 하는 사람들이 있을 것이다.
그 아침 식사를 나는 방송을 켜고, 사람들과 이야기를 하면서 먹을 뿐이다.
물론 아무런 이유 없이 시작된 방송은 아니었고, 처음부터 지금처럼 편하게 밥을 목구멍으로 넘길 수 있었던 것도 아니었다.
대구탕 매장을 차린 지 얼마 지나지 않아 찾아온 코로나 때문에 매장에 손님을 제대로 받을 수도 없었고, 영업시간이 단축되어 제대로 된 영업을 할 수도 없었다.
'이제..... 어떡하지?'
막막했다.
매장은 차려놨는데, 손발이 모두 묶이고, 눈까지 가려져버린 듯한 갑갑함과 막막함이 몰려왔다.
'또 망하는 건가?....... 이렇게 허무하게?'
지난 2017년.
20대 때부터 운영해 왔던 식당 문을 닫았다.
2004년부터 13년을 운영했던 식당.
가만히 앉아서 스러져가는 매장을 지켜보고 있는 일이 얼마나 고통스러운 일인지 겪어보지 않은 사람들은 모른다.
한때 손님들이 넘칠 정도로 붐비던 곳이라, 마지막 몇 달간의 그 쓸쓸함은 더욱 고통스러웠다.
사람들이 찾아주던 곳을, 내가 부족해 지키지 못했다는 자괴감 때문에.
그러데.... 이번엔?
식당을 오픈한 지 석 달이 채 지나지 않아 코로나가 터져버렸다. 어찌 손을 쓸 도리? 아니, Fight 종이 울리자마자 펀치 한방에 다운을 당했는데 도대체 무슨 수를 쓰겠는가?!!
그렇게 그로기 상태로 1년을 넘게 버텼다.
비틀비틀 겨우겨우 하루를 연명(?)하듯 이어가는 나의 귀에 심판의 카운트 다운 소리가 들려오는 듯했다.
6...... 7..... 8...... 9.....
'이제 더는 버티기 힘들고...... 가게 문을 닫아야 하는구나......'
마음의 준비를 하고, 홀로 일기장에 이런저런 지나간 일들에 대한 추억들을 끄적였다. 무언가의 끝을 고민할 때 늘 하게 되는 일련의 의식처럼, 그것과 관련된 많은 추억들이 돋아나기에.
"가게도 조용한데, 나 교육이나 좀 들으러 다녀올까?"
아내가 물었다.
조용한 가게.
손님도 없는 매장을 둘이서 굳이 궁상맞게 지키고 앉아 있을 필요는 없었다.
이제 곧 장사를 접어야 할지도 모른다 생각했기에 자포자기한 마음으로 교육받으러 다녀오라고 했다.
그렇게 교육을 신청하고, 얼마 후 교육을 받고 온 아내가 물었다.
"라이브 방송 한번 해볼래?"
그때까지만 해도 라이브 방송이라는 걸 전문 쇼호스트들이 진행하는 것으로만 알고 있던 나는 깜짝 놀라며 정색을 했다.
"우리 선생님도 방송하고 있던데?"
강의를 하로 온 강사님이 현직 라이브 방송 판매자라고 했다.
궁금한 마음에 강사님의 라이브 방송을 봤는데, 지금까지 내가 생각했던 라이브 방송과는 사뭇 다른 느낌이었다.
여태껏 내가 봤던 라이브 방송은 잘 차려진 스튜디오에서 전문 쇼호스트들이 화려한 입담으로 진행하는 모습이었다면, 강사님은 가정에서 편안한 차림으로 친구와 대화를 하듯이 방송을 하는 모습이었다.
어?
신선한 충격이었다.
거기다 전문적인 장비들이 없어도, 카메라 거치대 하나만 있으면 할 수 있다고 하니,
내가 잘할 수 있을지는 몰라도, 도전해 볼 수는 있을 것 같았다.
그런데, 온라인으로 무엇을 팔아본단 말인가?
대구탕 매장을 운영하고 있었지만 대구탕을 밀키트로 만들어서 팔아보겠다는 건 당시에는 상상도 하지 못했다.
그래서 집사람이 찾은 것이 네이버 밴드에서 도매로 넘겨주는 잠옷이었다.
당시 2021년 5월이었는데, 날씨가 많이 더워 냉장고잠옷, 짱구잠옷, 도형잠옷 등으로 불리는 잠옷이 유행이었다.
아내는 동그라미, 네모, 세모가 그려진 노랑, 핑크, 파랑 세 가지 색상의 잠옷을 S, M, L 사이즈별로 몇 장씩 주문을 했다.
"우리가 이걸 판다고?"
"그냥 경험이야. 경험."
음식을 팔던 우리가, 옷을 판다고 생각하니 뭔가 어색하고 이상했다.
"그런데, 라이브 방송은 뭐로 켜는지는 알고?"
"진짜 이게 팔릴까? 옷만 잔뜩 사놓고, 아무도 안사면 어떡하지?"
처음이라 모든 것이 어려웠고, 또 모든 것이 불확실했다.
일단 장소는 집에서 하기로 했다.
식당은 음식을 파는 곳이니까 옷을 판매하는 방송과는 맞지 않았다.
"쇼호스트는? 누가 하지?"
아무도 안 하기로 했다.
그냥 음성만 출연하기로.
당시에는 둘 다 얼굴을 화면에 들이밀 용기를 내지 못했다.
어설픈 준비와, 어설픈 방송 준비를 하고, 어설프게 방송을 시작했다.
"이거 누르면 진짜 방송이 시작되는 건가?"
시작을 누르고도 화면 뒤에서 둘이 속닥거리는데, 누군가 방송에 들어와 질문을 하고, 실제로 주문까지 하는 것이었다!!!!
"왐마!!! 이게 되네!!!"
많은 판매가 일어난 것도 아니고, 방송을 끄자마자 그와 동시에 판매가 멈춰버렸지만, 얼굴도 드러내지 않은 라이브 방송으로 처음 판매를 해봤다!!
'나 같은 초보자도, 얼굴을 드러내기 부끄러워하는 사람도, 라이브로 판매를 할 수가 있구나....'
코로나로 매장 영업을 제대로 할 수 없었던 시기. 뭔가 돌파구를 찾은듯한 기분이 들었다.
"나 라이브 해볼게!"
아내에게 말했을 때, 당시 아내는 고개를 끄덕이며 해보라고 했지만, 훗날 말하기를, 과연 얼마나 버티고 할 수 있을까..... 하는 생각이 들었더랬다.
시작은 잠옷이었지만, 주업이 식품이었기에, 내가 하고 있는 대구탕을 팔아보기로 마음을 먹었고, 그렇게 2021년 7월 31일 첫 방송을 시작했다.
뭐가 그리도 부끄러웠는지 카메라 뒤에 숨어, 잘 들리지도 않을 만큼 조용조용 말하며 방송을 했다.
- 저기요. 방송하시는 분 어디 가셨어요?
방송을 보시는 분들이 화면 앞으로 나오라며 다그쳤다.
나는 쭈뼛거리며 모자까지 푹 눌러쓰고 화면 앞으로 나섰는데, 화면으로 보는 나의 얼굴이 너무 낯설게 느껴져 엄청 불편했다. 심지어 목소리도 내가 생각하는 나의 목소리가 아니었다. 모든 것들이 다 어색하게 흘러간 첫 방송. 내가 무슨 말을 어떻게 했는지도 모르게 시간이 훌쩍 흘러버렸다.
그렇게 어렵게 시작된 방송이었지만 시간이 지나며 조금씩 익숙해졌고, 매일 아침 인사를 하다 보니 어느새 방송을 찾는 분들과 친구가 되어 있었다.
판매가 있는 날도 있었고, 없는 날도 있었다.
매일 아침마다 인사를 나누는 콘셉트로 아침마당 같은 방송을 하니,
"사장님은 왜 제품이야기를 안 하세요?"
"판매에는 별로 관심이 없나요?"
하는 이야기를 많이 들었다.
이제와 솔직히 말하면.... 그냥 부끄러웠다. 내 제품을 팔려고, 사람들에게 마구 판매 이야기만 쏟아내는 일이.
그렇다고 팔고 싶지 않았느냐? 아니다. 판매를 위해 방송을 시작했는데, 팔고 싶어 하지 않는 사람이 어디 있겠는가?!!
팔고 싶었다.
그것도 아주 많이.
남들보다 많이 팔고, 어깨도 으쓱하고 싶었다.
그러나 현실은 그렇지 않았다.
비가 많이 쏟아지는 어느 날,
전날에 차를 매장에 두고 퇴근했던 터라, 이른 아침 비를 맞으며 택시를 잡아타고 가게로 와서 방송을 했는데, 방송 후 판매가...
0!
그날.
'정말 방송을 그만둬야 하나?' 하는 생각까지 들었었다.
처음엔 없던 판매자 등급까지 생겨서 루비, 골드, 실버, 펄, 브론즈, 스톤으로 판매자들의 판매량에 따라 나뉘었다.
나는 판매량이 많이 없었기 때문에 펄과 브론즈를 오고 갔는데, 비슷한 등급에 나와 비슷한 기간 동안 방송을 하신 분들 중에서는 기분 나빠하며 그만두신 분들이 꽤 있었다.
남들보다 오랫동안 방송을 했는데, 등급이 낮아 부끄럽기도 하고, 기분이 나쁘기도 하다고.
나도 별반 다를 바 없었다.
속속 유입되는 신입 방송인들보다는 오랫동안 방송을 한 사람.
그런데, 최근 들어온 신입보다도 등급이 낮은 사람.
고. 인. 물.
'그래.... 그냥 고인 물일 뿐이었구나.... 이제 그만하자.'
혼자서 상처를 잔뜩 받아 그만둘 결심을 했다.
그런데, 그렇게 마음을 먹고 나니, 내 속에 있는 '나'가 끊임없이 질문을 던져댔다.
- 정말? 이게 끝이라고?
- 그냥 판매가 잘 안되고, 등급이 안 나오면 끝내야 하는 건가?
- 차가 없을 때, 한겨울 그 새벽에 버스를 타고 장애인복지관 앞에서 내려, 칼바람을 맞으며 산을 올라 가게로 와서 방송을 했던 것도 단지 몇 푼의 돈 때문이었던 건가?
- 그동안 아침방송에서 반갑게 인사하고, 웃고 떠들고 인사를 나눴던 것도 단지 그것 때문이었나?
- 제품을 구매해 주고, 나와 아침마다 인사를 하기 위해 매일 방송을 찾아준 사람들은?
가만히 생각해 보니, 판매가 많이 일어나지 않는다고, 등급이 낮다고, 그냥 그만둘 그런 간단한 일이 아니었다.
아침에 하는 방송은 단지 물건을 사고팔거나, 시답잖은 농담이나 주고받는 일들이 아니라, 그들과 하루하루 추억을 만들고, 서로의 인생살이를 나누고, 누군가의 기쁨을 함께하고, 누군가의 슬픔을 서로 나누는 그런 것이었다.
내가 마음대로 멈출 수 있는 그런 가벼운 것이 아니었다.
'하자! 그냥! 다른 생각은 하지도 말고!'
했다.
그냥 했다.
남들에게 어떻게 보일지, 판매는 될지 안 될지, 다음 달 등급은 어떻게 될 것인지, 그런 것 신경 쓰지 않고.
그렇게 마음먹고 방송을 하니, 한결 편했다.
그동안 방송을 1년 넘게 해서 나름 편하게 방송을 하고 있다고 생각했었는데, 마음을 내려놓고 나니, 또 다른 편안함이 생겼다.
여유.
남에게 보여지는 여유가 아니라, 내가 스스로에게 주는 여유.
마음에 여유가 생기니, 방송이 편해졌고 다른 어떤 잡념 없이 오직 먹고, 소통하는데 집중할 수 있었다.
그렇게 몇 년 먹는 방송을 하면서
- 사장님은 본사 언제 가요?
- 사장님은 실버 언제 달아보나요?
- 고인물.
등등. 뼈 있는 농담을 여러 차례 들었지만, 크게 마음이 쓰이지 않았다.
이미 마음에 여유가 자리 잡았기에.
그렇게 방송이 2년을 넘고, 3년을 향해 달려갈 때쯤,
"강의 한번 해보실래요??"
여성인력개발센터에서 연락이 왔다.
아는 분이 추천해 주셨다고.
"제가요??"
그때까지만 해도 나는 단지 매장에서 대구탕을 팔고, 온라인으로 대구탕을 팔고, 라이브방송으로 대구탕을 파는 장사하는 사람이라고 생각을 했지, 누군가를 가르칠 수 있는 사람이라는 생각은 못해봤기에 깜짝 놀랐다.
"제가...... 해도 될까요?"
강의 기회를 줘서 감사하긴 했지만, 걱정스럽기도 했다.
'내가 과연 누군가를 가르칠 능력이나 될까?'
우여곡절 끝에 그렇게 강의를 시작하게 되었고, 강의를 하면서 나 역시도 많은 공부를 하게 되었다.
덕분에 지금은 매주 화요일 저녁마다 강의를 나가고, 가끔 다른 지역에 특강을 나가기도 한다.
물론, 아침 방송도 계속하고 있다.
꾸준히 하다 보니, 그립 본사에도 몇 번 가게 되었고, 라이브 서바이벌에서 우승도 차지하게 되었다.
이제 조금은 알 것 같다.
늘 좋은 것도 없고,
늘 안 좋은 것도 없다.
좋은 일도, 좋지 않은 일도, 그것을 바라보는 사람 관점의 차이라는 것.
그리고 우리네 인생살이는 늘 파도처럼 오르내리길 반복한다는 것.
지금 있는 그 자리에서, 내가 할 수 있는 무언가를 꾸준히 한다면, 그 꾸준함이 나를 이끌어주고, 지칠 때 힘이 되어 줄 것이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