바둑과 인생 그리고 알파고

바둑과 인생 그리고 알파고


어릴 적 아버지로부터 바둑을 배웠다. 무슨 말씀을 하고 계시는지도 모르는데 검은 돌과 흰 돌을 이리저리 놓아가며 아버지는 열심히 설명을 하셨다.


처음엔 너무나 지겨웠다. 재미도 없었고, 재미없는 바둑을 왜 배워야 하는지도 몰랐다. 하지만 아버지는 내가 바둑을 별로 좋아하지 않는 것을 알면서도 계속 나를 가르쳤고, 억지로 배우기 시작한 바둑도 차츰 시간이 지나자 조금씩 흥미를 가지게 되었다.


바둑을 처음 배웠을 때는 단순히 놀이라고만 생각했다. 바둑에 인생의 철학이 있다는 말은 단지 말을 만들기 좋아하는 사람들이 지어낸 이야기에 불과하다고 생각했다. 단지 서양의 체스나 동양의 장기처럼 게임에 불과할 뿐인데 거기에 무슨 인새의 철학이 있다는 말인가? 누군가는 또 말한다. 바둑의 가로, 세로 19줄을 곱하면 361이라는 숫자가 나오고 그것은 1년의 시간을 뜻한다고. 참 억지도 그런 억지가 없다고 생각했다.


초등학교 때 배운 바둑은 초등학교를 졸업하고 나서부터는 거의 둘 일이 없었다. 아버지와 둘 일도 거의 없었고, 친구들 중에서 바둑을 둘 줄 아는 친구도 없었기 때문이었다.


그렇게 바둑을 두지 않고 세월이 흐른 어느 날 우연히 할아버지 댁에서 한쪽에 먼지가 수북이 쌓인 바둑판을 보게 되었다. 그 바둑판을 보니 어릴 때 아버지로부터 배웠던 바둑과 바둑에 관한 격언들 그리고 바둑을 왜 인생의 축소판이라고 했던 것인지 조금은 이해가 가기도 했다.


여러 가지 바둑에 관련된 이야기들 중에서도 나에게 가장 와 닿은 이야기를 몇 가지 적어본다면 다음과 같다.

바둑의 유래는 여러 가지가 있는데, 그중에 하나는 중국의 어떤 왕이 자기 아들을 위해 만들었다는 설이다.


왕의 아들은 어떤 놀이를 하든 쉽게 싫증을 냈는데, 왕은 그런 아들을 위해 아들이 싫증을 내지 않을 재밌는 놀이를 만든 사람에게는 천금을 주겠다고 발표했고, 수많은 사람들이 여러 가지 놀이를 가지고 궁전을 찾았다. 많은 사람들이 저마다 자신이 가져온 놀이가 재밌다며 열심히 알렸지만 왕의 아들은 처음에 약간의 호기심을 보일뿐 또 금세 싫증을 느끼고 말았다. 그런데 그때 한 노인이 바둑을 왕의 아들에게 알려주었다. 왕의 아들은 노인으로부터 바둑을 배우고서는 점점 바둑에 빠져들었다. 왕의 아들은 금방 싫증을 냈던 다른 놀이들과는 다르게 바둑에는 전혀 싫증을 느끼지 않고 오히려 날이 지날수록 더욱 빠져들어 바둑에만 몰두했다. 왕은 그 사실을 전해 듣고는 너무 기뻐서 바둑을 알려준 노인에게 천금을 내리려고 했지만, 막상 천금을 주려니 아까운 생각이 들었다. 노인은 그런 왕의 마음을 눈치채고는 다음과 같이 말했다.


“저에게 지금 천금은 필요 없습니다. 다만 먹고 지낼 약간의 쌀만 필요할 뿐입니다. 그러니 왕께서는 저에게 쌀을 주시는 게 어떻겠습니까?”


천금을 주기 아까웠던 왕은 기어이 노인의 의견을 받아들였다.


“진심이오? 그럼 그렇게 하도록 하지. 그래 쌀이 얼마나 필요하오?”


“그리 많이 필요한 것은 아닙니다. 이번에 제가 가져온 바둑판에는 가로, 세로 19줄이 겹치는 곳마다 점이 있습니다. 모두 합하면 361 점이지요. 이것은 일 년에 해당하는 날입니다. 우선 오늘은 쌀 한 톨이 필요할 뿐입니다. 그리고 내일은 두 톨이 필요할 것 같습니다. 왕께서는 매일 쌀을 이렇게 두 배로 저에게 361일 동안 주실 수 있겠습니까?”


노인의 말에 왕은 크게 웃고 말았다. 천금을 마다하고 쌀 한 톨을 달라니 정말 너무나 어리석게 느껴졌다. 왕은 그가 정신이 이상한 노인이라고 생각하고는 흔쾌히 허락하고 노인을 돌려보냈다.


왕은 신하에게 노인이 말 한 대로 해주라고 이르고는 그 일을 금방 잊어버렸다. 며칠 동안은 아무런 탈 없이 잘 흘러갔다. 하지만 채 한 달도 되지 않아 신하가 왕에게 달려와 궁전의 창고가 텅텅 비어버리게 생겼다며 난리를 쳤다. 신하의 말에 왕이 곰곰이 계산을 해보니 노인이 말했던 얼마 안 되는 양이라는 것이 실제로는 엄청난 양이었던 것이다. 왕은 노인에게 속았다는 사실이 너무나 분해서 그 노인을 불러 모함을 씌워서 죽여 버리고 말았다.


바둑이 정말 이렇게 탄생이 되었는지 어떤지는 모르겠지만 이 짧은 이야기도 우리에게 많은 것을 느끼게 해준다.


다음으로 바둑에는 축이라는 것이 있다. 축은 아무리 도망을 치려고 발버둥을 쳐도 결코 거기서 벗어날 수가 없다. 미련을 버리지 못하고 끝까지 가면 결국 죽어버리고 마는 것이다. 바둑은 되돌릴 수 없게 된다. 내가 도망을 치려고 해도 계속해서 반복되는 상황은 어쩌면 우리의 인생과 정말 비슷하지 않은가? 어떤 위기에 당면했을 때, 그것을 극복하고 더 좋은 방향으로 나아갈 수 있다면 정말 좋겠지만, 때로는 깔끔히 포기하는 것도 하나의 방법이다. 미련이 남아 그것을 놓지 못하고 끝가지 잡고 있다가는 더 큰 낭패를 보게 될지도 모른다.


그리고 마지막으로 바둑의 가장 큰 묘미이자 다른 놀이와 확연히 차이가 나는 것은 싸우지 않고도 이길 수 있다는 것이다. 대마를 잡아 이기면 통쾌하고 기분이 좋을지도 모르겠지만 때로는 대마를 잡고서도 지는 바둑이 있다. 상대방이 계속 조금씩 양보를 해주면 마치 내가 이긴 것 같은 착각이 들지만 계가를 해보면 내가 져있다. 정말 신기한 일이고, 때로는 갑갑한 일이다. 왜? 내가 계속 조금씩 이득을 봤는데 졌지? 하는 생각이 들기도 한다. 바둑은 부분의 싸움이 아니라 전체의 싸움이다. 내가 상대방의 진영 이곳, 저곳에 싸움을 걸고, 작은 이익에 연연할 때 상대방은 전체를 보고, 큰 그림을 그리며 나에게 양보를 하면서도 다른 곳에서 많은 이익을 얻는다.


사람들 중에는 지금 당장 어떤 이득을 봐야지만 직성이 풀리는 사람들이 있다. 그들은 조금도 손해를 보는 것을 원하지 않는다. 누군가로부터 조금이라도 부당한 일을 당했을 때 참는 것은 자신의 권리를 행사하지 않는 바보라고 생각한다. 큰소리를 지르고, 따지는 것을 자신의 정당한 권리를 행사하는 일이라고 착각한다.

예전에 집에 걸려있는 액자에 쓰여진 짧은 글 중에서 가장 마음에 와 닿았고, 아직도 생각나는 구절이 있다.


‘속이는 웃음보다, 속아주는 지혜를 가져라’


사람들이 바보라고 놀렸던 바보가 오백 원짜리가 아니라 백 원짜리를 계속 주웠던 것처럼 남들이 나를 속이려 들 때, 그것이 큰 문제가 되지 않는다면 기어이 속아주고, 져주는 것이 결국은 내가 이기는 것이 된다.

알파고와 이세돌의 대결은 사람들에게 많은 이야깃거리를 남겼고 많은 생각거리를 남겼다.


처음 자신만만했던 이세돌처럼 나 역시 컴퓨터가 아직 바둑에서는 사람을 이기지 못할 것이라는 확신을 가지고 있었다. 컴퓨터가 체스와 장기에서 사람을 넘어선 지 오래된 현실에서 그런 나의 생각은 단지 나의 바람에 지날 뿐이었다. 컴퓨터가 사람에게 이기지 못할 것이라는 나의 확신은 어떤 근거에 의해서 생긴 것이 아니라 그러길 바라는 나의 마음에서 비롯된 것이라는 것을 깨달았다. 바둑은 보통의 놀이와는 다르다는 생각. 바둑에는 철학이 있고, 인생이 녹아있다는 생각. 바둑에는 뭇사람들의 추억이 있고, 신의 한 수를 찾아 헤매던 바둑 인의 숨결이 스며있다는 생각. 나 역시 바둑에 대한 사랑이 있어 이세돌의 패배가 준 충격이 크게 다가왔지만 바둑도 하나의 놀이라는 것, 그리고 컴퓨터의 계산 능력을 인간이 따라가기는 힘들다는 것을 깨닫게 되었다.


그렇다고 바둑에 담겨있는 정신이 사라진 것은 아니라고 생각한다. 계산은 컴퓨터가 인간보다 더 잘할 수 있을지 몰라도 반상에 철학을 담는 것은 오로지 인간만이 할 수 있는 일이니까 말이다.


조금 걱정이 되는 건 언젠가 기계도 생각을 가지게 되지 않을까 하는 것이다. 누군가가 기계는 감정이 없기에 인간을 지배하고자 하는 욕망도 없다. 그래서 안전하다고 했다. 과연 정말 그럴까? 인공지능이 발달해서 나중에는 인공지능이 인공지능 시스템을 개발하게 될 거라고 했다. 지금도 어설프긴 하지만 인공지능이 글을 쓰고, 음악을 만든다. 물론 사람의 도움이 필요하고, 기존의 데이터를 바탕으로 하기 때문에 그것을 창작이라 부르기는 어렵지만 스스로 학습하는 시스템을 가진 인공지능의 발달은 인간의 상상을 초월할 만큼 빠르게 변화하고 있다. 언젠가는 인공지능에 감정이라는 것이 생기고, 자신을 지배하는 인간을 도리어 지배하고자 하는 욕망이 생기지는 않을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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