비극과 희극
비극과 희극
가끔씩 홀로 앉아 생각에 잠기면 끝없이 바닥으로 추락하는 나를 느낄 때가 있다. 그것은 나의 외부에서 일어나는 일이 아니다. 나에게 어떤 힘들고 괴로운 일이 생겨서 내가 추락하는 그런 것이 아니다. 그것은 나 스스로 어설픈 상념에 잠겨서 내 안에서 나를, 내가 나 자신을 끝없이 추락시키는 한심한 일이라는 것을 누군가의 글을 읽고서야 깨닫게 되었다.
끝없이 인생이 허무하게 느껴지는 것은 어설픈 사색이다. 진정 인생에 대해 안다면, 그것은 큰 기쁨이라는 것을 깨달을 수 있다. 모든 것이 무(無)라면 우리는 누구나 다 똑같은 존재라는 것을 알 수 있다. 누가 잘나고, 누가 못난 것이 없다는 말이다.
우리가 느끼는 대부분의 소외감, 열등감, 가난 등이 상대적인 감정이라고 생각했을 때, 우리는 더 이상 그런 감정을 가질 필요가 없다. 살아있는 동안, 존재하는 동안 조금이라도 더 즐거울 수 있다면 우리는 그렇게 즐거워야만 한다.
신에게 우리는 돼지우리 속의 돼지들과 같을지도 모른다. 우리라고 하는 것이 거슬린다면 나라고 한정해도 좋다. 신이 보는 나는 돼지우리 속의 돼지와 같다.
힘 있고 강한 다른 돼지가 맛있는 사료를 차지하고, 힘없고 약한 돼지가 맛있는 사료를 먹지 못한다고 해서 우리는 그것을 좌절과 고통이라 부르지 않는다. 단지 맛있는 사료를 먹지 못했다고 생각할 뿐이다. 어쨌든 그 돼지는 맛없는 사료일 뿐이지만 사료를 먹을 것이고, 그것으로 충분하다고 생각할 것이다. 맛있는 사료를 먹든, 맛없는 사료를 먹든 돼지가 배불리 먹고 자라는 것은 똑같을 테니 말이다.
누군가는 이렇게 말할지도 모른다. 어떻게 돼지가 맛있는 사료를 먹고, 먹지 못하는 것과 인간의 삶에 있어서 중요한 부분을 차지하는 그런 것들을 비교할 수 있느냐고. 하지만 생각해 볼 일이다. 우리가 하찮게 생각하는 돼지의 맛있는 사료는 거세되고, 좁은 돼지우리에 갇힌 돼지에게 있어서 평생토록 살아가면서 단 하나의 유일한 낙이고, 돼지들에게는 가장 중요한 것이다.
나는 어떤가? 나에게는 수없이 많은 선택의 여지가 있다. 그중에서 내가 중요하게 생각하는 것은 무엇인가? 만약 내가 그것을 할 수 없다고 해서, 수많은 것들 중에서 꼭 내가 하고 싶은 것을 못하게 되었다고 해서 그것을 나는 좌절이라고 할 수 있을까?
여러 가지 일들 중에서 그냥 그것을 못하게 된 것뿐이다. 그것을 너무 심각하게 생각할 필요는 없다. 우리는 사소한 것에 목숨을 건다는 책의 제목처럼 지금 무언가를 하지 못하면 마치 당장 큰일이라도 벌어질 것처럼 생각하는 사람들이 있다. 하지만 한 발짝만 뒤로 물러나서 생각하면 그것은 아무것도 아니고, 때로는 너무나 하찮은 일일 수도 있다.
무언가를 이루게 되면, 우리가 이룰 수 있는 여러 가지의 것들 중에서 하나를 이루게 된 것이고, 무언가를 이루지 못하게 되면 우리가 이루지 못하고 지나칠 수많은 것들 중에 하나를 이루지 못한 것일 뿐이다. 물론 그렇다고 개개인이 지니고 있는 꿈을 쉽게 포기하라는 것은 아니다. 단지 우리가 꿈이라 부르는 것에 지나치게 집착할 필요는 없고, 조금만 뒤로 물러나서 생각해보면 지금 내가 아주 중요하다고 생각하는 그것이 어쩌면 그리 중요하지 않은 것일지도 모른다는 것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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군대에 있을 때다. 자대 배치를 받은 첫 주.
토요일 점심시간 자장면이 점심으로 나왔다. 나는 젓가락을 챙겨서 식판에 자장면을 받았다. 각자의 취향에 맞게 먹을 수 있도록 한쪽에는 면을 수북이 담아 주었고, 한쪽에는 자장을 따로 담아 주었다. 나는 자장 양념을 면에 부어서 젓가락으로 잘 섞어서 맛있게 먹었다.
위의 글에서 뭔가 큰일이 날만한 일을 찾을 수 있겠는가? 너무나 평범하게, 아무렇지도 않게 그냥 젓가락으로 자장면을 먹는 일이다. 하지만 당시 나에게는 그것이 아주 큰 문제가 되어 돌아왔다. 첫째, 젓가락을 사용할 수 있는 사람은 일반 병사들 중에서 가장 계급이 높은 병장들로 한정이 되어 있었다. 병장이 아닌 일, 이등병과 상병들은 젓가락을 사용할 수 없었다. 그리고 자장 양념을 면에다가 부어서 섞어 먹을 수 있는 사람은 상병부터였다. 그러니 계급이 가장 낮은 이병과 일병은 숟가락으로 잘 떠지지도 않는 하얀 면을 먼저 입에 넣고 나서 다시 양념을 떠서 입에 넣고 우물거리며 입속에서 섞어서 삼켜야만 했다. 처음에는 너무나 황당했지만 얼마 지나지 않아 그들의 생활에 곧 익숙해졌고, 나 스스로도 젓가락을 사용하는 일, 자장 양념을 면에 비벼서 먹는 일을 아주 대단한 일로 여기게 되었다.
이 글을 읽고 있는 당신은 너무나 황당한 소리에 헛웃음을 칠 것이다. 당연히 너무나 어이가 없는 일이다. 도대체 자장면 하나 먹는 게 뭐 그리 대단한 일이라고 말이다.
좋다. 그럼 상황을 바꾸어 보자. 이번에는 직장이다.
직장에서는 상사에게 기안문 올린다. 기안문을 올릴 때는 줄 간격, 사용하는 용어 등의 서류양식을 반드시 지켜야만 한다. 정성껏 기안문을 써서 몇 번이나 확인을 하고 상사에게 서류를 넘겼다. 그런데 채 일분이 지나지 않아 서류가 다시 나에게로 돌아온다. 이유는 기안문의 마지막에 끝이라는 글자를 앞에서 두 칸을 띄우고 써야 하는데, 한 칸만 띄우고 썼기 때문이다.
이런 경우를 겪어본 사람은 공감을 할 것이다. 하지만 기안문의 양식이 자유로운 회사나 기안문을 별도로 작성해서 올릴 필요가 없는 회사에 다니는 사람들은 코웃음을 칠 것이다. 마지막에 한 칸을 띄우거나 두 칸을 띄우는 것이 도대체 왜 중요한 것인가? 타인이 바라봤을 때는 너무나 어이없을 뿐만 아니라 한심하기 짝이 없는 일인 것이다.
지금 당신이 생각하는 가장 중요한 일이라는 그것. 과연 그것은 당신이 생각하는 것만큼 그토록 중요한 걸까?
대부분의 사람들이 지금 아주 중요하고 또 아주 심각하다고 생각하는 것들은 도대체 얼마나 중요한 것이고 얼마나 심각한 것일까?
일 년 전 나를 그토록 괴롭히던 그 일을 우리는 지금 기억할 수는 있을까? 아니 6개월 전은 어떨까? 아니면 3개월 또는 한 달 전?
당장 나에게 무척 심각한 일이 얼마 지나지 않아 내가 기억도 하지 못할 정도로 사소한 일에 불과할지도 모른다.
모든 일은 단지 그것 자체로만 존재한다. 그것을 심각하게 받아들이고, 받아들이지 않고는 우리가 마음먹기에 달린 것이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