나만 힘들까?

나만 힘들까?

나만 힘들까?


요즘 경기가 어려워져서인지 주위에 참 힘들어하는 사람들이 많은 것 같다. 형님들, 후배들, 친구들. 그들이 하는 말은 거의가 비슷하다.


“다른 사람들은 그럭저럭 잘 살아가고 있는 것 같은데, 나는 왜 이렇게 힘든 인생을 살고 있는 걸까?”


과연 그럴까? 정말 남들은 잘 살아가고 있는 걸까? 나만 힘이 든 걸까? 언젠가 읽었던 이야기가 생각이 난다.


한 나그네가 산을 가고 있었다. 한참을 걸어가고 있는데 갑자기 곰을 만났다.


나그네는 너무 놀라 나무 위로 도망을 쳤는데, 곰은 나무를 타고 쫓아 올라왔다. 점점 곰이 가까이 다가오자 나그네는 나무에서 뛰어내리기로 결심을 하고 펄쩍 뛰어내렸다.


그런데 하필이면 뛰어내린 곳이 그 밑을 지나가던 호랑이의 등이었던 것이다. 호랑이는 갑자기 뭔가가 자기 등을 덮쳐서 깜짝 놀랐다.


산중에 이렇게 자신에게 덤벼들 것이 아무것도 없었는데, 갑자기 자신을 덮친 것을 보니 필시 호랑이 자신보다 힘이 센 놈일 거라 짐작했다.


그래서 호랑이는 등에 올라탄 것이 뭔지도 모르고 그것을 떨쳐내기 위해서 냅다 달리기 시작했다. 한편 등에 올라탄 나그네는 자신이 호랑이 등에 올라탄 사실을 알고는 심장이 멎는 것만 같았다.


호랑이가 날뛰기 시작하자 나그네는 등에서 떨어지는 바로 그 순간이 저승으로 가는 순간이라는 생각으로 떨어지지 않기 위해서 죽을힘을 다해 꼭 매달렸다.


멀리서 한 농부가 밭을 갈고 있었다. 밭을 갈다가 허리가 아파 잠시 숙였던 허리를 펴는데 저 멀리서 어떤 사람이 호랑이의 등에 올라타서 신나게 달리고 있었다. 농부는 곡괭이를 집어던지며 하늘을 쳐다보며 한탄했다.


“누구는 죽을힘을 다해 밭을 갈아도 평생 입에 풀칠하기도 힘이 드는데, 어느 놈은 호랑이를 타고 유유자적하는구나. 하늘은 어찌 이다지도 불공평하다는 말인가.”


농부는 하늘에 대한 원망으로 집에 드러누워 버렸고, 그 해 농사는 쫄딱 망쳐버렸다.


삶이라는 것이 그런 것 같다. 나 혼자서 많은 짐을 짊어지고 사는 것만 같고 남들은 아무런 걱정 없이 잘 사는 것 같아도, 그 사람 역시 지금 자신의 위치에서 죽을힘을 다해 치열하고 살고 있는 것이다.


하늘은 누구에게 더한 행복도, 덜한 행복도 주지 않는다. 모두가 자신의 자리에서 그만큼의 행복과 그만큼의 슬픔을 함께 안고 있다.


모든 것이 다 마음의 문제가 아닐까? 인생의 곡선 그래프에서 행복의 정점에서도 만족하지 못하는 사람이 있는 반면, 가장 낮은 곳에서도 웃는 사람이 있다.





한때 많은 이들이 SNS 상태 메시지에 사용하던 문구가 떠오른다.


‘이 또한 지나가리라.’


대부분의 이들은 자신이 외롭거나 힘들 때 이 문구를 사용하는 것 같다. 하지만 이것은 꼭 그 순간에만 사용하는 말은 아니다. 솔로몬의 반지로 유명해진 이 문구


'This too will pass away.'


다윗왕이 자신이 승리했을 때 자만하지 않고, 패배했을 때 좌절하지 않을 수 있는 문구를 만들라고 반지 장인에게 요구해 솔로몬의 도움으로 만들어진 이 문구는 성공과 실패에 크게 연연해할 필요 없이 언제나 평정심을 유지하라는 교훈을 준다.


지금의 성공도, 지금의 좌절도 곧 모두 다 지나갈 일들인 것이다. 성공했다고 해서 자만할 필요가 없듯, 실패를 했다고 해서 너무 움츠려 들 필요가 없는 것이다.




누군가 힘들 때, 평범한 위로는 식상하다. 그리고 상대도 더 이상 그런 평범한 이야기들로는 위로가 되지 않는다.


언젠가 개그맨 백재현이 사업에 실패를 하고 아내와 이혼을 하고 매일 술로 지내던 날 선배 개그맨 전유성에게 전화를 걸었다. 전유성에게 전화를 하소연을 하던 백재현이 전유성에게 말했다.


“저 정말 못났죠?”


그러자 전유성이 말했다.


“솔직히 말해줄까? 너 지금 X라 웃겨 인마!”


그 말에 백재현은 정신이 번쩍 들었더랬다. 자신의 상황이 자신에게만 힘이 든 것이지 다른 사람들이 볼 때는 사업에 실패하고, 이혼하고 매일 술로 지내는 자신의 모습이 한갓 웃기고 한심한 모습으로 밖에 보이지 않는다는 것을 깨달은 것이다.


자신에게는 너무나 심각한 일들이 제삼자의 눈에는 아무것도 아닌 일들이라는 것을 깨달은 것이다. 만약 전유성이 들어주고 달래 주기만 했다면 그가 그 사실을 깨닫는 데 얼마나 더 많은 시간이 걸렸을지 모른다.


나 역시 누군가 나에게 힘들다고 말한다면 그 친구에게 형식적인 위로보다 이렇게 말해주고 싶다.


“힘들어? 너 정도만큼은 다 힘들어!”


이러면 나 혼자만 불행한 것은 아니구나 하고 약간의 안도감을 느끼지는 않을까?


하나의 창을 두고도 창틀에 있는 먼지만 보는 사람과 창밖의 아름다운 풍경을 볼 줄 아는 사람이 있는 것처럼 주위의 모두가 긍정적이고 밝은 마음으로 살기를 기도해본다. 그리고 나 역시도 그런 사람이 되기를...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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