일하는 노인(老人)
일하는 노인(老人)
노인복지기관에 일하던 시기. 지역사회 복지관과 같은 여러 복지기관에서 노인일자리 사업을 하고 있는데 그중에서도 내가 일하는 곳은 시니어클럽이라는 곳이었다.
이곳에서는 55세 이상부터 60세의 어르신들까지는 일자리를 알선해드리고, 60세 이상의 어르신들께는 일자리 알선과, 시니어클럽에서 직접 운영하는 시장형 일자리에 참여하실 수 있게, 65세 이상의 어르신들께는 일자리 알선과 시니어클럽에서 운영하는 시장형 일자리와 공익형 일자리에 참여하실 수 있도록 해드리고 있었다.
시장형은 말 그대로 시장경제의 원리에 의해 시장에서 경쟁을 해야 하는 사업으로 공동작업장, 참기름사업, 자원(고물상), 택배 등이 있고, 공익형은 공공을 위한 일로 학교 앞 등하교시 횡단보도에서 안전하게 건널 수 있게 하는 일, 공공기관에 청소를 하는 일 등이 있다.
내가 이 일을 하기 전에는 잘 알지 못하는 어르신들과 대화를 할 기회가 아주 드물게 있을 뿐이었지만, 일을 하고 나서부터는 출근을 하지 않는 날, 아니 어떤 경우에는 일 때문에 주말에도 통화를 하는 경우가 있으니 거의 매일 어르신들과 이야기를 나누게 되었다.
하루는 할아버님 두 분과 함께 차를 타고 가며 이런저런 이야기를 나누게 되었다. 어르신들께서 말씀하시길 집에서 빈둥거리며 놀면 뭐하나 이렇게 나와서 일을 하면 시간이 빨리 가서 하루가 참 잘 간다는 둥 일을 하니 밥맛도 나고 잠도 정말 잘 온다는 둥 그렇게 자신들의 노동에 대한 긍정적인 말씀들을 하시다가 자연스레 현실의 문제들로 이야기가 옮겨졌다. 한 어르신이 말씀하셨다.
"내가 젊었을 적에 나도 그랬거든? 젊은 사람이 돈이 필요하지 나이 든 노인이 무슨 돈이 필요하냐고. 그런데 내가 늙어 보니까 그게 아니더라고. 나이가 들수록 돈이 더 필요해. 몸은 점점 고장이 잦아지지, 들여다볼 곳에 인사는 해야 하지. 그렇다고 자식들에게 돈 달라고 하면 쥐꼬리만큼 주면서 싫은 티 팍팍 내지. 돈은 쥐고 있으라는 그 말이 맞아. 내가 퇴직금을 분납으로 받았으면 지금 월 이백은 너끈히 받고 넉넉히 생활할 텐데, 자식 놈이 사업한다고 돈을 보태 달라기에 일시금으로 받아서 지놈을 줬더니, 줄 때만 고맙다고 하지 어디 한 번 챙길 줄을 아나? 어떻게 보면 내가 줬던 돈 내가 다시 조금씩 돌려받는 건데... 자식들은 주고 나면 끝이야. 마치 처음부터 자기들 거였었던 거 마냥. 싫은 티 내는 놈한테 돈 달라고 하기도 그렇고 하니까 이렇게라도 벌어 써야지."
어르신의 말씀이 끝나자 곁에 어르신도 질세라 말을 거든다.
"아이고 형님. 요즘에 자식들한테 계속 손 벌리면 큰일 납니다. 어떻게든 움직일 수 있는 동안에는 우리가 무슨 수를 써서라도 벌어먹어야 합니다. 제 주위에 한 형님은 매월 15일만 되면 아들이 용돈을 50만 원씩 보내주는데 그때마다 마음이 불편해 죽겠답니다. 처음에 돈을 보내 줄 때는 이놈이 그래도 먹고 살만 하니까 부모 생각은 하는가 보다 하고 아들과 며느리한테 참 고맙게 생각했는데 나중에 알고 보니까 자기한테 보내는 그 돈 때문에 매월 15일만 되면 부부싸움을 크게 한다는 겁니다. 그 형님이 이제 어디 가서 돈을 벌 수도 없고 먹고살려고 하니까 주는 돈을 받긴 해야 하는데, 돈을 받으면서도 마음이 여간 불편한 게 아니랍니다."
어르신의 그 말씀에 말을 하시는 분과 들으시는 분 두 분 모두의 얼굴이 잠시 어두워지며 조용해졌다. 그렇게 잠시 침묵이 흐르고 한 어르신이 내뱉은 한 마디.
"우리가 이렇게 오래 살 줄 알았나..."
말끝을 살짝 흐리셨지만 그 말씀 한마디가 내 마음속에 깊고 아프게 각인이 되었다.
스스로 그런 말을 내뱉게 되는 노인들의 설움과 한숨.
만약 언젠가 세월이 흘러 내가 그 입장이 되어 내 스스로 나의 삶과 끈질긴 생명을 한탄하게 되는 그 날이 왔을 때 그 순간의 내 마음은 어떨까. 그 심정이 과연 어떤 심정일까.
언젠가 교육을 갔다가 한 영상물을 보게 되었다. 한국전쟁이 끝난 직후의 폐허.
대한민국이라는 나라가 결코 가난에서 벗어날 수 없을 거라 생각했던 세상에게, 그 폐허 속에서 세계로 뻗어나가 세계 십 위의 경제대국으로 우뚝 선 오늘날까지 그 누구보다 많은 희생을 겪으신 우리의 아버지 어머니 세대들.
독일에 광부와 간호사를 보내어 그 월급을 담보로 차관을 들여오고, 월남전에는 젊은이들의 목숨을 바쳐가며 경제발전의 초석을 마련했다.
그때 그 시절 어느 낡고 허름한 곳에서 더럽고, 위험한 일을 하며 추위에 떨고, 더위에 땀 흘려 일했던 바로 그 어르신 한 분 한 분이 한국경제의 거대한 톱니바퀴의 한 부분을 이루어 굴러가게 만들었던 것이다.
그런 분들을 우리는 존경해야 하지 않을까?
죽어가는 노인은 불타고 있는 도서관과 같다 -아프리카 속담-
노인복지기관에서 당시 내가 맡았던 사업단은 택배였다. 그래서 가끔 새로 만난 분들에게 전화를 드리면 받자마자 대뜸 이렇게 말씀하신다.
“어? 택배 해요?”
처음에 나는 무슨 말인가 했는데, 스팸전화를 걸러주는 서비스 앱에 내가 그렇게 등록이 되어 있다는 걸 알고서야 고개를 끄덕였다.
그런 말을 들을 때마다 나는 피식 웃으면서 당시를 회상하곤 한다.
택배. 어르신들이 하기에 정말 힘든 일이기도 하다.
게다가 차가 있는 것도 아니고, 어르신들은 아파트 어느 한 지점에 내려놓은 택배를 동별로 나눠서 배달을 하셨다.
평소엔 괜찮지만, 한여름이나 한겨울에는 무척 힘이 들었다.
그중에서도 가장 힘든 날을 꼽으라면 단연 비가 내리는 날이었다.
손수레로 물건을 배달하시다 보니 택배 물건들이 젖지 않도록 일일이 비닐을 덮어서 배달을 해야만 했고, 운송장은 그냥 봐도 눈이 침침해서 보기가 어려운데 비에 젖어 잉크가 번지면 어떻게 알아볼 도리가 없었다.
택배의 운송장 정리는 내가 직접 했다.
비가 내리는 날 받은 어르신들의 택배 송장.
내리는 빗속에서 손바닥만 한 송장 쪼가리를 잃어버리지 않으시기 위해 몇 번은 다시 주섬주섬 챙겨 보셨을 그 작은 종이 조각.
축축하게 젖어 책상 위에 올려져 있는 그 작은 종이들 속에서 소박하고 따스한 온기가 느껴졌다.
평소의 그 메마른 종이와는 전혀 다른 느낌. 촉촉하게 젖은 그 종이에 비를 맞으며 고생하셨을 그날 하루의 모든 이야기가 다 담겨있는 듯하다.
이 날은 어르신들이 더욱 힘들어하시는 날이기에 비를 좋아하는 나도 기분이 좋지만은 않았다.
평일보다 더 힘들기에 비가 오는 날은 짜증도 많이 내시고 화도 많이 내셨다.
물론 처음부터 이런 것을 알 수도 없었던 나는 어르신들의 기분을 나쁘게 한 적이 있었다.
매주 수요일에는 아파트 단지 내에 조그만 천막이 쳐지고 거기서 도넛과 꽈배기 등의 과자류를 팔았다.
따끈따끈한 데다가 설탕까지 듬뿍 묻혀서 달달한 맛이 제법 좋아서 어르신들이 좋아하시는 음식이었다.
그래서 나는 매주 수요일이 되면 도넛을 사서 어르신들과 함께 나눠먹었는데 작은 정성이지만 어르신들도 꽤 좋아하시는 것 같았다.
그런데 그러던 어느 날. 그날도 다른 날과 같은 수요일이었다. 한 가지 다른 점이 있다면 비가 내린다는 것이었는데, 어김없이 도넛을 사서 어르신들께 건네는데 한 어르신이 버럭 소리를 지르셨다.
"안 먹어!"
그러시면서 내가 건넨 도넛은 거들떠보지도 안으신 채 택배 물건을 정리하시느라 손을 밀쳐 내셨다.
머쓱해하는 나를 보시곤 다른 어르신이 하나 달라고 하시며 나에게 다가와 순간의 어색함을 풀어 주셨다.
그런데 도넛을 안 드시는 어르신이 그 분만이 아니셨다. 다른 어르신 한 분도 언성을 높이시며 말씀하셨다.
“안 먹는다니까 사 오고... 에이~”
나는 조금 당황스러웠다. 평소에도 드시던 거라 별말 없이 사 왔고, 그때마다 드시지 않겠다고 말씀하신 분은 없었는데...
이상하게도 전체적으로 분위기가 별로 좋지가 않았다.
나는 왜들 이러실까 의아해했는데 생각해보니 비가 오는 날에는 비를 맞으며 일을 하셔야 하니까 일이 힘들고 어려워지는데다가, 날씨가 흐리고 비가 추적추적 내려 글씨도 잘 보이지 않고, 물건을 젖지 않게 하기 위해 비닐을 씌워 나르시다 보니 시간마저 훨씬 오래 걸려서 신경이 날카로워져 계셨던 것이었다.
그것을 모르고 웃으며 도넛을 나눠먹자고 사갔던 내가 제법 밉게 보였을 수도 있겠다는 생각이 들었다.
한 아버님께서 나중에 괜히 미안하신지 조용히 덧붙이시는 한마디
“사 오는 건 고맙지만...”
눈치 없이 했던 행동에 아직도 죄송한 마음이 든다.
어르신들이 택배 배송을 하셨어도, 아파트 주민들의 민원은 모두 나에게로 연결이 되었었다.
비가 내리는 날에는 여지없이 민원이 발생했고, 평소에도 간간이 민원이 생겼다.
어르신들의 잘못이 분명히 있는 민원도 있었지만, 억지를 부리는 민원도 있었다.
어느 날 밤 9시가 넘어서 전화가 왔다.
“여보세요?”
“택배죠?”
택배죠?라는 말이 처음에는 정말 이상하게 느껴졌다.
사회복지기관에 일을 하러 갔는데, 저쪽에서 어떤 팀장님이 네~ 참기름입니다, 저~ 쪽에서는 어떤 선생님이 네~ 고물상입니다 이렇게 이야기하기에 정말 신기했는데, 당시엔 어느새 내가 그것을 당연하게 받아들이고 있었다.
“네. 택뱁니다.”
“오늘 택배가 오지 않았는데요?”
그런데 말을 하는 남자의 목소리가 조금은 혀가 꼬부라진 소리다.
‘술을 마셨나?’
“제가 금방 확인을 해보고 연락드리겠습니다.”
나는 전화를 끊고는 그 동을 담당하시는 어르신께 전화를 드렸다.
어르신께서는 일일배송 일지를 확인하시고 나서 말씀하셨다.
“어? 배달했는데? 전화했는데 안 받아서 경비실에 맡겨두고 왔어. 거기 한번 찾아보라고 해.”
어르신과 전화를 끊고 나서 나는 한숨을 쉬었다.
벌써 똑같은 레퍼토리만 수십 번째였었다.
고객에게 전화를 하면 또 전화를 못 받았다, 그런 적 없다고 할 것이었다.
그러면 나는 또 미안하다고, 죄송하다고 굽신거리며, 경비실에서 찾아가시라고 말을 하고는 했었다.
나는 고객에게 전화를 걸었다.
아니나 다를까..
“전화 안 왔는데요?”
가끔 어르신들께서 11자리의 전화번호를 모두 정확히 못 누르시는 경우도 있었고, 전화를 정말 걸었는데 고객이 모르는 경우도 있었다.
어쨌든 나는 어찌 된 영문인지는 모르지만 일단 사과를 했다.
“정말 죄송합니다. 그런데 지금 물건이 경비실에 있으니 찾아가시면 안 될까요?”
“안 되겠는데요? 경비실에서 집으로 가져다주세요.”
"그럼 내일......"
"지금 당장이요."
그곳은 내가 사는 곳과는 먼 곳이었다.
배달하는 어르신이 그곳 아파트에 계셔서 말씀드리려 했지만 조금은 늦은 시간이었고 또 상대는 술이 취한 것 같았다.
나는 더 말해봐야 소용이 없을 것 같아서 알겠다고 하고는 그 길로 그곳 아파트로 갔다.
그리고는 경비실에서 물건을 찾아서 집으로 올라갔다.
벨을 누르니 한 중년 남성이 술 냄새를 확 풍기며 문을 열었다.
“택배 왔습니다.”
내가 억지웃음을 지으며 말하자 그 남자는 물건을 빼앗듯 받아 들고 단 한마디의 말도 없이 문을 쾅 닫고 들어가 버렸다. 난 다시 먼 길을 돌아갔다.
다음날 어르신께 전화번호가 잘못 눌러졌을 수도 있으니 확인 잘 하시라고 말씀을 드렸다.
그런데, 전화번호는 정말 정확하게 눌러져 있었다.
그것도 핸드폰 번호로.
정말 당황스러웠지만, 다시 전화를 해서 따지기도 웃긴 노릇이었다.
나 역시 택배를 가끔 받는 한 고객의 입장에서 택배 물건을 아무렇게나 놓고 가는 것에 기분이 상할 때가 있다.
하지만, 그 경우나 도가 지나친 경우가 너무도 많다.
당시의 내가 당황스러웠던 건 어쩌면 택배를 맡은 지 얼마 되지 않아서 그런 것인지도 몰랐다.
그 뒤로 겪은 수없이 많은 사건사고들은 일일이 다 풀어놓기도 어려울 지경이니까 말이다.
어떤 일이 생겼을 때, 본인이 옳고 상대방이 잘못했다고 생각하는 경우가 많다.
자신의 입장에서 생각하기 때문에 그렇다.
한발 물러서서 혹시 내가 잘못하지는 않았을까를 먼저 생각한다면 다툼이 조금은 줄어들지 않을까?
택배는 일의 특성상 배송오류가 많이 났다. 조용할 때는?......... 없다.
어떤 이유에서든 전화는 매일 걸려 왔다. 주말에도. 정말 연락이 없는 날이다 싶은 날에도 하다못해 문자라도 날아왔다.
꼭 어르신들이 하지 않더라도 그렇게 될 것이다. 정도의 차이는 조금 날 수도 있겠지만.
하루는 한 어르신께서 물건이 잘못 배송한 것에 대해서 화를 내셨다.
본인 스스로가 잘못 배송을 하신 것인데도 누구에게 화를 내시는 것인지 모르게 화를 내셨다.
그런데 신기한 것은 그것은 모든 어르신들의 공통점이기도 했다.
모든 어르신들이 그렇게 물건이 잘못 배송된 경우를 겪는데 그럴 때 백이면 백 언짢은 표정으로 화를 내신다는 것이었다.
나는 처음에 누구에게 화가 나셔서 그러시는 것일까 하고 생각해보다가 곧 그것이 다른 누구에게가 아니라 본인 스스로에게 화가 나시는 것은 아닐까 하는 생각이들었다.
스스로가 실수를 했다는 것이 못마땅하신 것이다.
하루는 또 그런 어르신이 계셔서 내가 기분을 풀어드리려 말씀을 드렸다.
"어르신 괜찮습니다. 어르신 연세에 이렇게까지 하시는 것만 해도 정말 대단하신 겁니다."
그러자 그 어르신은 불쾌한 표정으로 말씀하셨다.
"늙은이니까 실수를 많이 할 거라고 생각하면 안 돼. 젊은 사람이 온다고 해서 실수 안 할 것 같아? 여기 있는 사람들 다 몇 년씩 한 사람들이야. 웬만한 젊은 사람들보다는 훨씬 낫다고. 그런데 우리가 실수하면 만날 어르신들이니까 어쩌고, 나이가 있으니까 저쩌고, 그런 식으로 말하면 안 돼. 실수는 같은 실수지 나이 많아서 하는 실수 따로 있고 젊어하는 실수 따로 있어?"
그 말을 듣고선 나 역시 편견을 가지고 있었던 것은 아닐까 한 번 생각해봤다.
곰곰이 생각해보던 나는 두 가지 생각이 들었다.
어르신들에 대한 막연한 편견을 가진 나에 대한 것. 그리고 또 한 가지는 어르신들의 나이가 들어가며 자연스럽게 일어나는 일에 대한 수긍과 인정.
나이가 들었기 때문에 어떠하다고 단정을 지을 수는 없지만 나이가 들어가며 우리 모두가 겪어야 하는 노화의 과정은 있다.
사람마다 그 정도의 차이가 있겠지만 말이다.
그것은 누구나가 겪어야 하고 나 역시도 앞으로 겪어야 할 일이다.
우리 젊은 세대는 어르신들이니까 어떻다는 편견은 반드시 버려야 한다.
그들은 우리가 전혀 생각조차 못했던 일들도 이루어 낼 수 있는 능력을 가졌다.
그리고 노인들의 세대는 조금씩 찾아오는 신체의 변화를 지나치게 거부하지 말고 순리에 따라 변화를 인정하고 수긍해야 한다.
신체기능의 저하가 능력의 저하는 아니다.
베토벤은 청력을 잃고서도 위대한 작곡을 하지 않았던가.
하루는 창원에 전담인력 교육을 갔다.
전담인력이란 정직원이 아닌 계약직 직원을 일컫는 말인데, 정규직원들의 업무를 보조하고 사업을 진행하는 것을 도와주는 업무를 한다.
매년 기관에서는 전담인력을 선발한다.
이렇게 선발된 인력은 11개월을 일을 하고는 한 달을 쉬어야 한다. 계약직이기에 12개월 근무를 하게 되면 정규직원으로 전환을 해야만 하기 때문이다.
예산이 한정되어 있기에 어쩔 수가 없는 경우다.
이렇게 11개월이 지난 후에는 한 달이라는 공백 기간도 있고, 직업에 대한 안정이 보장이 되어있지도 않을뿐더러 아주 박봉이라 대부분 계약기간이 끝나면 그만두는 경우가 많다.
그래서 전담인력을 새로 뽑는 경우가 많다 보니 매년 전담인력 교육을 실시를 하게 되는 것이다.
교육은 오전 10시부터 오후 5시까지 이어지는 교육이었다.
4교시로 나누어 오전에 2교시, 오후에 2교시 수업을 했는데 강사는 매 수업시간마다 달랐다.
하지만, 모든 강사의 공통점이 수업을 딱딱한 방식으로 하지 않고 여러 가지 사례를 들어가며 재밌게 이야기를 해주었다는 것.
워낙 요즘 재밌게 강의를 하시는 분들이 많다 보니 점점 많은 강사들이 그런 강의기법을 배워 유머 있고 재치 있게 강의를 잘 하는 것 같다.
총 네 분의 강사 분들이 모두 재밌는 얘기를 많이들 해주셨는데, 그곳에서 들었던 이야기 중에 인상 깊었던 이야기가 하나 있다.
한 육십 대 어르신이 기관의 소개로 맥도널드에 배달사원으로 일을 하시게 되었다.(나는 처음 이 말을 들었을 때 그곳의 점장 또한 대단한 사람이라고 생각했다.)
그곳에 간 어르신은 깜짝 놀랐다. 물론 그럴 것이라고 생각은 하고 갔지만 그곳은 젊어도 너무 젊은 친구들이 일을 하는 곳이었던 것이다.
대부분이 이십 대의 젊은 친구들이었고, 자신과 비슷한 나이 또래는 고사하고 동생뻘 되는 직원조차도 없었다.
모두 다 자식 같은 나이 또래의 직원들이었다.
어르신은 젊다 못해 어리기까지 한 친구들이 자신을 부담스러워하고 싫어할까 봐 잘 어울리지 못하였다.
왠지 자신에게서 늙은이 냄새가 나는 것 같기도 할 것 같고, 말을 걸면 늙은이가 귀찮게 말을 건다고 생각할 것만 같았다.
그래서 그 어르신은 일을 하는 매장에서도 다른 이들과 떨어져 홀로 지내는 시간이 대부분이었다.
어르신이 일하시는 맥도널드에서는 그곳에서 일을 하게 될 경우 하루에 햄버거 세트메뉴 한 가지를 식사로 먹을 수 있게 되어 있는데, 어르신은 그것을 혼자 먹는 것은 궁상맞아 보일 것 같고, 그렇다고 그것을 젊은이들과 함께 먹는 것도 쑥스러워 끼니를 거르시며 드시지 않고 챙겨놓으셨다가 그것을 집에 들고 가셔서 다 식어버린 햄버거 세트를 홀로 드셨다.
그렇게 계속된 외톨이 점원으로 일하던 어느 날 같은 매장의 한 어린 여대생 점원이 어르신께 비닐봉지 하나를 건네는 것이었다.
어르신께서는 그것이 무엇인지 몰라 어리둥절하며 비닐봉지를 들고는 엉거주춤 서서 점원을 바라보자 그 점원은 어르신께 집에서 드시라고 샀으니 맛있게 드시라고 했다.
어르신은 뜬금없는 그 선물에 어색한 인사를 건네며 건네받은 비닐봉지를 한 곳에 놓아두셨다. 그 날 일을 마치고 어르신이 집에 돌아와 그 비닐봉지를 열어보니 카스텔라 빵 한 개와 우유 하나 그리고 편지 한 통이 들어있는 것이었다.
어르신이 그 편지를 읽으니 그 속에는 이런 내용이 들어있었다.
그 점원은 집안 사정이 어려워 한 학기 휴학을 하고 아르바이트를 해서 돈을 벌고, 그렇게 번 돈으로 한 학기를 다니고, 또 한 학기를 휴학하고 아르바이트를 하고, 다시 그 돈으로 한 학기를 다니기를 반복을 하며 대학생활을 하던 학생이었다.
그런데 그 학생이 사는 곳과 일을 하는 곳은 거리가 많이 떨어진 곳이었는데, 학생은 일부러 사는 곳에서 멀리 떨어진 곳으로 일을 하러 다니는 것이었다.
그 이유는 집 근처에서 일을 하다가 아는 사람을 만날까 봐 부끄러워 서였다고.
하지만, 그 학생은 할아버지의 모습을 보고, 일을 하는 자신의 모습을 부끄러워하는 것이 얼마나 더 부끄러워해야 하는 일인 것인가를 깨달았다고 했다.
할아버지를 보고 힘을 얻었고, 더 이상 자신의 일을 부끄러워하지 않게 되었다고.
어린 여대생 점원이 어르신으로부터 큰 깨달음을 얻은 것처럼, 어르신 역시 그 편지를 받고 많은 것을 깨닫게 되었다.
다음날, 어르신은 그곳에 출근한 이후 처음으로 이십 대의 젊은이들과 모여 앉아 따뜻한 햄버거 세트를 함께 드셨다고 한다.
그리고 지금은 젊은 친구들과 너무나 자연스럽게 어울리고, 자신의 일에 자부심과 만족을 느끼신다고.
그 어르신께서 어느 지역의 한 강의시간에 이 이야기를 해주시려고 잠시 짬을 내어 오셨는데, 그때에도 맥도널드 배달원 복장에 맥도널드 오토바이를 타고 오셨다는 것이다.
일하시는 중에 잠시 시간 내서 오신 것이라면서 말이다.
나는 그 말을 듣고 많은 것을 느꼈다. 이 세상의 그 어느 일도 부끄러워해야 할 일은 없는 것이며, 어떤 일을 하던지 그 일을 열심히 하는 사람은 누구라도 존경받을 가치가 있는 사람인 것이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