존재하기 위한 두려움
군 생활을 할 때의 일이다. 내가 있던 부대는 대전의 계룡대였다. 육해공군의 본부가 있는 곳인데, 나는 계룡대 내에서도 해군지원부라는 곳에 있었다.
계룡대에는 육해공군의 본부가 있는 본청 건물이 있었는데 주간에는 헌병이 근무를 서고, 야간에는 헌병과 의장대가 나눠서 근무를 섰다.
우리는 경계근무는 당연히 헌병이 해야 하는 것이지 않냐? 그럼 우리 행사할 때도 헌병이 대신 뛰어주느냐며 불만이 많았지만, 군대에서는 해라면 무조건 해야지 까불면 안 된다는 교훈을 잘 얻고(?) 더 이상 불만을 표출하지 않았다.
해군지원부에서 본청 건물까지 근무를 서기 위해 가려면 작은 동산 하나를 지나야 했다.
나무가 제법 무성한 곳인데 그곳에 나있는 큰길을 따라 걸어 올라가면 본청 건물이 있는 곳이 나왔다. 낮에는 아스팔트가 깔린 대로이기 때문에 길이 훤하게 보였지만, 밤에는 큰길이라고 해도 어두웠고, 새벽에는 가로등이 꺼져있을 때가 많아 음산했다.
근무를 서기 위해 본청까지 갈 때에는 해군에서 한 명, 해병에서 한 명. 이렇게 둘이서 짝을 지어 올라갔는데 언젠가 한번 해병에서 신입 딱지를 막 떼고 본청 근무를 처음 가는 이등병과 함께 새벽 근무를 서기 위해 함께 본청으로 걸어올라 간 적이 있었다.
해군과 해병의 내무실이 바로 붙어있었기에 서로의 위계질서를 위해 아래위로 석 달 차이까지는 서로 말을 놓았고, 그 이상은 존칭을 붙였다. 당시 나는 병장이었고 그 친구 이병이었기에 그 친구가 존대를 하고 있었다.
캄캄한 새벽 해군지원부를 벗어나 본청으로 향하는 길. 어두운 동산을 올라가는데 어디선가 아기 울음소리 같기도 하고 여자가 우는 소리 같기도 한 그런 이상한 소리가 들려왔다.
나는 그동안의 경험을 통해 그것이 고라니의 울음소리라는 것을 알고 있었지만, 그 소리를 처음 들어본 이제 갓 군 생활을 시작하는 이등병은 무척 놀라는 모습이었다.
그 소리를 처음 들어본 사람은 아마 누구나가 그럴 수밖에 없을 것이다. 한밤중에 산속에서 고라니의 울음소리를 처음 들어본 사람이라면 말이다.
아무것도 모르고 어둡고 캄캄한 새벽, 작은 동산에서 울려 퍼지는 그 소리는 정말 소름 끼치도록 무서운 소리였다. 이등병이 나에게 물었다.
“저기, 혹시 이게 무슨 소립니까?”
당시 같은 해군이었거나, 해병이었으면 이런 식으로 물어본다는 것은 어려운 일이었겠지만, 어차피 서로 간의 격식만 차릴 뿐 소속된 곳이 달랐기에 어느 정도 편하게 말을 주고받았다. 나는 그 소리에 대해 설명해 주기 위해 말했다.
“어, 이 소리는...”
그런데, 문득 재미난 생각이 떠올랐다. 그래서 그 이등병에게 말했다.
“무슨 소리?”
이등병은 조금 의외라는 듯이 물었다. 아마 그는 내가 정말 그 소리를 못 들었을 거라고 생각했던 것 같았다. 고라니는 애기 울음소리인지 처녀의 울음소리인지 모를 소리로 계속 울고 있었다.
“지금 이 소리 말입니다.”
나는 짐짓 귀를 기울이는 척했다. 그러면서 도저히 들리지 않는다는 듯이 고개를 갸웃거리며 그 이등병이 이상하다는 듯이 쳐다보며 말했다.
“무슨 소리? 나는 아무 소리도 안 들리는데?”
고라니의 울음소리는 점점 더 크고 맹렬하게 들려왔다. 그 이등병은 얼굴은 거의 울상이 되어 나에게 다시 한 번 다그쳐 물었다.
“정말! 정말 이 소리가 안 들리십니까?”
“하나도 안 들린다니까. 너 귀가 어떻게 된 거 아니야?”
나의 이 말이 떨어짐과 동시에 그 이등병은 홀로 본청 건물을 향해 미친 듯이 괴성을 지르며 뛰어갔다.
나는 그 뒷모습을 바라보며 박장대소했다. 나의 행동이 좀 짓궂긴 했지만, 재미난 추억이었다.
당시의 그 이등병에겐 미안하지만(이름이 기억나지 않는 것도 포함해서) 아마 그에게도 지금은 재밌었던 추억이 아닐까 생각한다.
사람은 왜 미지의 그 무엇인가에 공포를 느낄까?
살아가면서 누구나 한 번쯤은 겪어봤을 것이다. 아무런 걱정도 없는(물론 살아가며 아무런 걱정이 없는 날이란 거의 없겠지만) 아니, 그리 큰 걱정이 없는 어느 날 가만히 있다가 막연한 불안감을 느껴본 순간이 누구나 한 번쯤은 있을 것이다.
딱히 정해진 것 없이 느끼는 불안감. 그런 불안감이 왜 생길까 하고 궁금하게 생각하던 어느 날 문득 그런 생각이 들었다.
걱정이나 불안. 이것이 어떻게 보면 인생을 살아가는 또 다른 원동력이 아닐까? 만약 사람에게 걱정이 없고, 불안함이 없다면 그럼 마냥 행복하기만 할까?
사람들은 뭔가에 대한 걱정으로 다른 것들을 잊으며 살아간다. 그 걱정이 다른 상념들을 잊게 해주는 것이다. 그리고 그 걱정거리를 해결함으로써 마음이 편안해지는 것을 느낀다.
하나의 걱정거리가 사라지면 또 다른 걱정거리를 찾아낸다. 그렇게 평생을 걱정할 것을 찾아 헤매고, 그 걱정이 해결이 되었든, 되지 않았든 어떻게든 내 마음속에서 사라지면 또 다른 걱정할 것을 찾아서는 그것을 또 걱정한다.
그렇게 물을 애타게 찾는 사막의 방랑자처럼 계속해서 걱정거리들을 찾아 돌아다니다가 마침내 죽음의 순간에서야 그것으로부터 벗어난다.
사람에게는 걱정할 무언가가 필요하다. 그것이 큰 걱정이든 작은 걱정이든.
그 걱정을 함으로써 삶을 살아가게 된다. 만약 아무런 걱정이 없게 된다면 그 삶이 너무나 무료하게 느껴질 것이고 심심한 삶이 될 것이다.(그렇게 된다면 우리 모두 우울증에 걸릴지도 모른다는 생각은 너무 지나친 것일까?)
그래서 딱히 죽어야 할 이유는 없겠지만 더 살아가야 하는 이유를 찾지 못할지도 모른다.
걱정이 좋은 것은 아니지만 필요는 하다. 그것이 무엇이든.
하지만 그 걱정에 스스로 잠식당하진 않아야 한다. 걱정이란 것은 가볍게 걸치는 액세서리와 같은 것이지 등에 울러 메 나를 짓누르는 무거운 배낭이 되면 안 된다.
삼십 대 후반의 남자.
이것이 지금 연령과 성별로 구분한 나의 현재 위치이다.
12시를 넘겨 술을 마시기가 점점 힘겨워지고, 꿈과 이상을 쫓아가던 시선의 초점이 점차 흐릿해지고, 나를 의지하는 가족들에게 더 넓은 어깨를 내어주고 싶어 하는 그런 시기이다.
그런 만큼 더 많은 두려움이 엄습하는 시기이기도 하다. 건강에 대한 걱정은 당연한 것이고 꿈꿨던 삶에 대해, 가족에 대해 많은 걱정을 한다.
며칠 전 술자리. 한 친구가 요즘 발이 많이 아파서 인터넷에 찾아보니까 족저근막염이 의심된다고 한다. 그러자 또 한 친구가 자신은 손목이 많이 아파서 인터넷을 찾아보니 손목터널 증후군이 의심된다고 한다.(벌써? 우리 나이에? 그리고 다른 사람도 아닌 네가?)
나는 친구들이 인터넷으로 섣부른 자가진단을 하는 것을 보고서는 곧 우리가 오늘은 어떤 술과 어떤 안주를 어디서 먹어야 하는지, 친구들과 만나서는 어떤 이야기를 나누고, 몇 시쯤 귀가를 해야 가장 좋을지를 인터넷에 물어보고 나오지는 않을까 하는 걱정을 했다.(제발 그런 날이 온다면 친구들이 나를 찾지 않기를...)
어쨌든 친구들은 점점 현재의 삶이, 하루하루 반복되는 삶이 끝나지 않을 것 같다고 했다. 그래서 먼 훗날 지금 이렇게 살았던 것을 후회하지는 않을까 걱정이 된다고 했다.
변화를 위해서는 현재 삶의 고리를 끊어야 하지만 그것은 결코 쉽지만은 않다. 지금 현재의 모든 생활이 다 지금 삶의 고리에 맞춰져 있기 때문이다.
매일 똑같은 삶을 산다고 해서 우리의 꿈에서 멀어지는 것만은 아니다. 그 속에서도 얼마든지 우리가 꿈꾸던 무언가를 준비할 수는 있다. 우리가 우리의 꿈을 포기하지만 않는다면 말이다. 휘어지고 굽어져도 꺾이지만 않는다면 언젠가는 비상할 수 있을 것이다.
화무십일홍(花無十日紅)이라는 말이 있다. 열흘 붉은 꽃은 없다는 말처럼, 피었으면 반드시 지게 마련이고, 진 꽃은 또 내년을 기약하며 기나긴 기다림 속으로 들어간다. 하지만 그것은 끝이 아니라 다시 피울 꽃에 대한 시작의 기다림이다.
나 역시 꽃이란 다 그런 것이라 생각했다. 지금 꽃을 피우고, 얼마 가지 않아서 지고, 또 사계절이 지나 다시 피는 그런 단조로운 반복만을 생각했다.
그런데 이런 나의 생각을 바꿔준 나무가 있으니 그건 바로 금전수라고 불리는 돈나무였다.
키운 지 오 년이 넘도록 꽃이 피지 않아서 지루한 기다림 끝에 지쳐서 이제는 꽃이 필 거라는 기대조차 하지 않고 있었는데, 어느 날 꽃을 한 번 피우더니 넉 달이 지나도록 지지가 않았다.
피우지 못한 나무가 꽃을 한번 피우니 이렇게 화려한 꽃을 오랫동안 펼쳐놓았다.(붉은 꽃이 아니라서 그런 가?)
오랫동안 침묵한 사람이 꿈을 더욱 화려하게 꽃 피울지도 모르는 일 아닐까? 금전수의 꽃처럼 말이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