미 비포 유

영화와 인생

지난 월요일 아침에 아들의 등교 준비를 도와주다 우연히 인간극장을 보게 되었다.


아무래도 아침시간엔 분주하다 보니 인간극장을 지나치듯 잠깐 보는 경우는 있어도 앉아서 집중해서 본 경우는 거의 없었다.


그런데, 이상하게도 무언가에 이끌리듯 월요일 아침의 인간극장은 나의 시선을 고정하게 만들었고, 자리를 뜰 수 없게 만들었다.


사지마비 장애인 이원준 씨.


그는 손과 발을 전혀 움직이지 못하는 사지마비 장애인이다. 그도 처음부터 장애인이었던 것은 아니다. 오히려 보통의 사람들보다는 훨씬 건강한 체력을 가진 군인이었다.


군부대까지 왕복 60km의 거리를 자전거를 타고 쌩쌩 달릴 정도로 건강했던 그는 우연히 참가한 자전거 경주 대회에서 넘어지며 사고를 당했는데, 경추 3번과 4번을 다치는 바람에 평생 손과 다리를 사용할 수 없는 장애인이 되었다.


건강하던 그는 하루아침에 팔과 다리를 쓸 수 없게 된 사실을 받아들이기 힘들었고, 현실을 부정했다. 시간이 지나자 체념하기 시작했고, 결국 동반자살 사이트까지 기웃거리게 되었다.


만약, 자신에게 보내온 한 통의 이메일에 답장을 했다면 그는 아마 지난 월요일 내가 보았던 인간극장에 출연하는 일은 없었을 것이다.


이원준 씨는 말했다. 너무나 죽고자 했지만, 막상 죽으려니 너무나 살고 싶었다고. 자신의 가족들을 위해서.


인간극장 속의 이원준 씨를 보면서 영화 '미 비포 유'가 생각났다.


자신을 사랑하는 가족이 있고, 부유한 집안이고, 사랑하는 사람까지 생겼지만, 자신이 원했던 그 시간이 다가오자 가족들에게 그리고 사랑하는 사람에게 제발 자신을 스위스로 데려가서 존엄사 할 수 있게 해 달라던 주인공.


물론, 영화는 현실이 아니다. 영화 속 주인공과 현실의 이원준 씨는 여러 가지 상황에서 다르지만 분명 아직도 이 세상에는 존엄사를 바라는 사람이 존재하고, 끝까지 희망을 잃지 않고 살아가는 사람이 존재한다.


그 상황이 되어보지 못한 사람은 그 심정을 온전히 이해할 수는 없다.


이원준 씨도 의사로부터 가장 듣기 싫었던 말. 평생 휠체어에 앉아 팔과 다리를 전혀 사용할 수 없고, 신변처리를 스스로 할 수 없다는 그 말을 들었을 때는 너무나 절망적이었다고 했다. 그도 가족들을 위해 자신이 할 수 있는 유일한 일은 이 세상에서 사라져 주는 것이라고 생각했던 때가 있었다고 했다.


지금 나의 상황에서는 영화 속 주인공의 마음도, 이원준 씨의 심정도 모두 공감하거나 이해할 수는 없다.


하지만, 진정으로 가족을 위하는 일은 가족들 곁에서 사라지는 것보다는 조금이라도 더 많은 시간을 나누고, 함께 추억을 만드는 것 아닐까?


이원준 씨가 입에 펜을 물고서 사람들과 소통하고, 영상을 편집하고, 글을 쓰는 모습을 보면서, 이러저러한 이유로 나 스스로를 합리화하며 게을리 보냈던 시간들에 너무나 나 자신이 부끄러워졌다.


단순히 악착같이 살아가는 모습이 아니라, 여유를 잃지 않고 가끔 던지는(이원준 씨의 말을 빌리자면 하이 개그) 유머들은 그를 더욱 멋있어 보이게 만든다. 그리고 그런 이원준 씨의 긍정 마인드를 담뿍 받은 그의 아이들. 너무나 해맑아 보여 대견하기도 하고, 가슴이 먹먹하기도 했다.


그의 어머님도 늘 웃으시는 모습이어서, 그의 밝은 모습이 어디서 온 것인지 짐작케 했다.


좌절하지 않고 희망을 품고서 남들보다 두 배, 세 배로 많은 노력을 들여 열심히 살아가는 이원준 씨는 누구보다 멋지고 훌륭한 버럭 중사가 분명하다.


걸을 수 있고, 만질 수 있고, 스스로 먹을 수 있고, 스스로 신변 처리를 할 수 있는 사람이라면 지금 자신이 건강하다는 사실만으로도 감사한 마음을 가져보는 건 어떨까?





불평과 불만은 너무나 지나친 사치다. 주어진 모든 것들에 감사하자. 그것이 시련과 고난일지라도.





오늘 인간극장 5부작이 끝나는 날 반가운 전화 한 통을 받았다. 혹시나 하며 남겼던 메일에 이원준 씨가 직접 답장을 했고, 역시 혹시나 하며 남겼던 전화번호로 직접 전화를 걸어주셨다. 통화를 하면서 그가 입에 펜을 물고 있는 모습이 떠올랐다. 나와 통화를 하면서도 그렇게 펜을 물고 있었다. 짧은 전화 한 통을 하면서도 많은 부분에 신경을 써야 하는 그의 모습에 가슴이 뭉클했다. 가족들과 함께 오래오래 행복하시길 진심으로 기원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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