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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허건우 Jan 16. 2021

칡넝쿨

칡넝쿨

감나무밭에 가지치기를 하러 갔다가 감나무밭 한쪽 곁에 서있는 대추나무에 칡이 대추나무를 감고 올라간 모습을 보았다.



아무런 생각 없이 칡을 잘라 대추나무에서 뜯어 내었다. 그러다 문득 칡이 여기저기 흔하게 구할 수 있는 것이 아닌 귀한 식물이라면(?)이라는 생각을 해보았다.


칡은 타고 올라갈 수 있게 자신을 내어준 나무를 죄어 죽인다고 했는데, 그냥 그렇게 생존하게 되어 있는 식물일 뿐인데, 단지 존재 자체가 다른 존재에게 폐가 되는 것일까?


누군가 감옥에서의 여름은 존재만으로도 서로를 숨 막히게 한다고 했다. 무더운 여름, 옆사람이 나에게 어떤 위해를 가하는 것도 아니지만, 사람의 몸에서 뿜어 나오는 열기만으로 서로를 힘들게 하는 것이다.


사는 게 막막하고, 밤새 잠을 뒤척이다가 마침내 아침이 밝아올 때, 또 하루가 시작된다는 사실이 몸서리쳐지도록 무섭고 두려웠던 경험이 있는 사람이라면, 나라는 존재에 대해서 생각해보게 되고, 내가 어쩌면 주위에 피해만 끼치는 불필요한 존재가 아닐까 하는 자괴감에 빠지기도 해 봤을 것이다.


하지만, 감옥에도 여름만 있는 것은 아니다. 가을이 지나고 겨울이 찾아왔을 때 서로의 체온은 더 이상 숨 막히는 불편함이 아니라 겨울을 나기 위해 꼭 필요한 온기가 될 것이다.


코로나 특수를 누리를 곳도 더러 있겠지만, 대부분의 사람들은 힘든 시기를 보내고 있다. 제발 태양이 뜨지 않기를, 하루가 시작되지 않기를 바라도 여지없이 새벽은 밝아오고 또 하루가 시작되는 것처럼 어떻게든 시간은 흘러가고 지금의 모든 일들은 훗날엔 과거가 되고, 지나간 일이 될 것이다.


우리는 우리 주위의 사람에게 반드시 필요한 온기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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