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세모 속으로 원형 밖으로 / 정해란

- 갑진년, 세모의 끝에 서서 / 울사년, 원형의 길 밝혀

by 정해란

세모(歲暮) 속으로, 원형 밖으로 / 시인 정해란

- 갑진년, 세모(歲暮)의 끝에 서서



수백 푸릇한 길들 이정표 놓쳐

여름엔 날씨가, 겨울엔 정치도 방향 잃어

나침반도, 길도 휘청거리는 갑진년


진위를 못 가려 주춤거리는 역사

서로 쓴 탈을 벗기려 수평 흔드는

같은 땅, 다른 생각, 나뉜 국민

생채기마다 바람이 하얗게 불어온다


서서히 저물어 가는 한 해

세모의 햇살이 고루 퍼지는 바다

그 넉넉한 품을 내주는 건

서로를 병들게 할 증오도 아픔도

눈송이의 맑은 무게로 훌훌 털고서

새해에도 태양처럼 빛나는 민족의 정기

널리 품으라 함인가


- 을사년, 원형의 길 밝혀


지우고 싶은 치욕의 역사, 을사늑약*

60갑자 두 바퀴 돌아온 을사년의 태양

다시 어둡게 돌아설 순 없으리


입 다문 채 솟아오르는 저 장엄한 순간

원형 밖까지 퍼져나가는 저 빛의 가르침


혼자 걷는 외로운 길보다

함께 가는 지혜와 온기로

더 둥글게 푸른 힘* 모으라 하는


빛이여, 품은 소망마다 귀를 기울이소서

낮고 힘든 삶마다 더 키 낮춰, 더 밝은 깊이로

멀리멀리 비춰, 희망의 길 열어주소서



*을사늑약(1905년) : 러일전쟁에서 승리한 일본 제국이 군대를 동원하여 궁궐을 포위하고 정부 대신을 협박하며 대한제국과 체결한 불평등 조약으로 한국은 외교권을 강제로 빼앗김.

* 푸른 힘 : 2025년은 을사년, 푸른 뱀의 해



♥ 제가 직접 낭송한 정해란의 문학노트 시낭송 유튜브에서 직접 듣고 응원의 힘 주시면 더욱 감사하겠습니다^^ (아래 꾸욱 ↓)

https://youtu.be/yS4eAilA3jQ?si=o2AgO0ndMOlm6rGP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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