꾸미라는 이름의 강아지 한 마리
사랑하는 존재를 잃는다는 게 얼마나 괴로운 일일지 상상되지 않는다. 나는 내 반려견을 떠나보낼 마음의 준비가 이미 되었다고 생각했지만, 그게 아니었던 것도 같다. 꾸미를 보낸 뒤의 계획은 이러했다. 장례를 치른 뒤 본격적으로 이사(이민이라고 해야 될지, 아니면 귀국이든, 뭐가 됐든) 채비를 하고, 비행하여 고향으로 떠나는 것이다. 왜냐면 꾸미를 두고 가면 너무 보고 싶을 테니까. 그리고 내가 타국에 있을 때 꾸미가 죽으면 상실감이 두 배로, 그것도 16시간이나 뒤늦게 와닿을 테니까. 그래서 꾸미를 먼저 보낼 생각이었다.
개의 수명은 길지 않고 꾸미도 이제는 8살에 들어섬으로 노령견의 기준에 미치게 되었다. 요즘 개들은 우리 사람처럼 병원 다니면서 건강 검진도 받고 예방 주사도 맞고 한다지만 어쨌든 사람보다는 훨씬 약하고 훌쩍 빨리 죽어버릴 것이다. 8살이면 걱정할 정도로 늙은 편은 아니라고 알지만, 그것보다도 어린 나이에 병사하는 개들을 많이 보았다. 증상이 겉으로 드러나지 않는 질병들은 무섭다. 시골인 이곳에 24시간 진료하는 동물병원이 있는지, 아니 신뢰하고 맡길 만한 병원이 있는지도 모르겠다.
낮에 꾸미가 갑자기 토악질을 하더니 네 다리를 위로 뻗고 쓰러져 움직이지도, 어떤 소리도 내지 못하고 침만 질질 흘렸다. 그래서 엄마가 몸통을 주물러 주고 내가 부드럽게 쓰다듬으며 진정시켰고, 응급실에 데려가야 하나 고민하는 동안 꾸미는 괜찮아졌다. 다시 기운을 차려 언제 그랬냐는 듯 우리를 핥았고 잘 뛰어놀았다. 어디가 아프기라도 한 거냐고, 한 번만이라도 대화해볼 수 있으면 좋을 텐데 가슴이 아팠다. 나는 조금 울었다. 병원에 데려가 검진해 보자고 할랬지만 개들은 원래 다쳐도 아파도 자가 치유한다며 동물병원 같은 기관은 전부 돈 낭비라던 엄마 말이 생각나서 그냥 입을 다물었다. 그때 당시엔 꾸미가 어딘가에 앞발을 박아 절뚝거리는 상황이었는데, 엄마와 굉장히 입씨름했던 기억이 있다.
이번에는 그저 잠깐 아팠던 걸지도 모른다. 사람도 죽을 것처럼 아프거나 그런 증상을 보이는 경험을 어쩌다 한 번쯤 하지만 알고 보면 아무것도 아닐 때가 있잖은가. 나도 자다가 이유 없이 숨이 막혀 힘겹게 깨어난 적이 있다, 그런 식으로. 하지만 나중에 정말 꾸미가 병들게 되면, 아니면 갑작스럽게 죽게 되면 이런 글을 적어내릴 힘도 없을 것이다. 꾸미와의 첫만남이나 추억을 떠올리며 회포 보따리를 풀어놓는 건 모든 것들이 발생하기 전에야 가능한 일이다.
꾸미는 7개월일 당시 유기견 보호소에서 데려왔다. 여러 유기견들 중에서, 선택이라는 과정을 거치지 않고 그냥 연결되었다. 꾸미를 데리러 가는 당일 내 동생 될 강아지의 사진을 받아볼 수 있었다. 꾸미는 차에서부터 바들바들 떨었다. 우리 집에 와서도 조용히, 가만히만 있었다. 미리 사 놓은 커다란 방석에 앉혀 놨는데 나도 그 앞에 앉아서 조잘조잘 떠들어 댔다. "네 이름은 꾸미야. 그리고 나는 오늘부터 너를 돌봐 줄 해나라고 해. 잘 부탁해. 나는 네 언니고, 엄마는 곧 퇴근해서 집에 올 거야. 엄마 이름은 선하야. 여긴 거실이고, 저긴 화장실이고. 저쪽에 우리가 자는 방이 있어." 꾸미는 여전히 떨면서 동그란 눈을 껌뻑대기만 했지만, 이후 내가 샤워하러 화장실에 들어갔다 나왔을 때 화장실 문 앞을 지키고 있던 건 꾸미의 작은 등이었다.
꾸미는 너무 소심해서, 첫 몇 달간은 엄마와 내가 보는 데선 사료를 먹지 않았다. 집안의 모든 전등불을 끄고 침대에 누웠을 때서야 밥그릇이 있는 곳에서 오도독오도독 사료 씹어먹는 소리가 들렸다. 그러면 엄마랑 나는 "밥 먹는다." 하고 속삭이며 키득거렸었다. 늦은 식사를 마친 꾸미는 제 집에서 자기도 했지만, 우리와 친해지고 나서는 우리 방 앞까지 찾아왔다. 첫날부터 나를 따른 데에 비해 엄마에게 마음을 열기까지는 두 달이 걸렸다. 그리고 엄마를 끝으로, 지금까지도 우리 둘이 꾸미에겐 유일한 친구이고 가족이다.
지난 8년간 꾸미를 미워한 적은 단 한 번도 없다. 미안해한 적은 많다. 특히 작은 원룸에서 원하지도 않던 자취를 할 때, 나는 우울증으로 인해 밖으로 한 발짝도 내디딜 수 없었다. 안 그래도 좁은 방에 꾸미를 가두고 싶지 않았고, 제대로 놀아주거나 바깥 공기라도 쐬어 주지 못하는 내가 싫어 엄마더러 꾸미를 데려가 달라고 부탁했지만, 엄마는 그게 자기를 위한 나의 따뜻한 배려라고만 생각했지 꾸미를 위한 것이라고는 생각하지 않았다. 먼지 쌓인 방에서 꾸미는 나를 원망했을까? 아마 그러지 않았을 것이다. 내가 침대에서 일어나면 꼬리를 흔들고, 짧은 외출이라도 하면 낑낑대고, 울며 껴안으면 얼굴을 핥아 주곤 했으니까. 하지만 개들이 조금만 더 똑똑했더라면 분명 나를 미워했으리란 점에 반박할 여지가 없다.
좋은 언니가 되어주지 못한 게 가장 후회된다. 소중했기에 늘 조심스러웠던 나와는 반대로 사람 음식이나 과도한 양의 간식을 무턱대고 먹이던 엄마와 자주 다퉜지만, 요즘 꾸미는 내 마음도 몰라주는 듯 엄마를 더 따른다. 처음에는 서운했지만, 이제는 이해할 수 있다. 어떤 방식으로든 최선을 다해 사랑을 쏟아 줄 수 있는 상태에서 꾸미를 만났더라면 몇 배는 행복하게 만들어줄 수 있었을 텐데 싶은 마음이다. 내가 더 나은 사람이어서, 불편하고 어색한 아저씨가 엄마와 함께 차지한 거실에 늘어져 있는 꾸미를 보러 나갈 용기를 자주 낼 수 있다면 좋을 텐데 말이다.
세월은 어김없이 흐르고, 시간은 인파 속에서 겁먹은 꾸미를 기다려 주던 나와 엄마처럼 다정하지 못하다. 우리, 앞으로 볼 날이 얼마나 될지 모르겠다. 그런 건 아무도 알 수 없다. 꿈이 많은 아이가 되길 바라며 꾸미라는 이름을 지어 주었다. 처음에는 강아지에게 그런 의미의 작명은 우스꽝스럽다고도 생각했다. 이제 와 생각하니 꾸미의 꿈이 전부 나에게로 와 나는 소망 많은 사람이 된 성싶다.
이야기 Op.1
하루의 끝 · 종현
남들보다 늦게 문을 닫는 나의 하루에
장난스럽게 귓불을 간지럽히며
하루 종일 다른 세상에 있었어도 우린
항상 하루 끝은 함께하니까
좋아했던 가수 샤이니 종현의, 좋아했던 노래 '하루의 끝'이다. 뮤직비디오는 연인의 사랑을 그리고 있지만 사실 이 노래의 주인공은 종현의 반려견이었다. 종현은 매일 지친 몸으로 귀가해 강아지와 교감하며 고단함을 덜어내던 기억으로, 그 하루의 끝을 맞는 시점으로 곡을 만들었다고 한다. 꾸미의 언니 그리고 종현의 팬으로서 비하인드를 알게 되었을 땐 공감하는 입장에서, 또 노래가 너무 좋아서 저장해 두고 매일같이 들었던 추억이 있는데, 문득 생각이 난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