처음과 끝의 사이는 바로 지금
인생 처음으로 머리를 했다. 스타일 변화를 주고자 고급 헤어샵을 찾아 레이어드 C컬 펌을 도전했다. 나는 평생 염색도 파마도, 고데기조차도 해본 적 없는지라 미용사분들이 내 (날것의, 곱다고도 할 수 있는) 머리카락을 좋아하실 거라고 생각했다. 그런데 실장님과 평범한 직원으로 보이는 미용사 한 분께서 내 머리통을 앞에 두고는 이런 대화를 나누셨다. "파마 처음이시래." "헉." "잘해야겠어, 못해야겠어? 잘해 드려야겠지?" "넵." 미용사분이 약간 말을 더듬으셨다. 그러고는 긴장 속에서의 파마 작업이 시작되었는데, 약간 불안하기도 하고 미안하기도 했다. 결과적으로 펌은 아주 잘 나왔고 나도 만족하고 있다. 잘 어울린다는 소리를 많이 들었다.
비싼 만큼 서비스가 말도 안되게 좋았다. 열펌을 하는 동안 쿠키와 커피, 차 등을 내어주고, 샴푸실에서는 안정되는 웜안대를 씌운 채 두피 마사지를 해주는 등 귀빈 대접을 받는 듯했다. 이런 미용실은 처음이라 얼떨떨했다. 한 일이 주 뒤에 다시 들러 브릿지 염색을 하려고 한다. 두피가 많이 민감해서 두피에 닿는 염색은 하지 말라고 하셨다. 실장님 이름이 '화사'이셨는데, 선물로 '화사처럼'이라는 레터링이 새겨진 소주잔을 주셨다. 헤어샵에서 증정품으로 소주잔을 받다니 과연 종잡을 수 없다. 마음에 들었다.
이 다음으로는 처음으로 이화여대에 가보았다. 창립 137주년 기념으로 학생 작품 전시회(조형예술대학 메이데이전)가 열린 것인데, 캠퍼스 전체를 구경해 보고 싶었지만 그럴 시간도 없었거니와 추적추적 비가 오는 날이었다. 파마를 한 지 얼마 되지 않아 기분이 조금 찜찜했다. 게다가 사실은 지인의 작품을, 그리고 지인을 만나고 싶은 마음이 가장 컸다. 어쨌거나 얼핏 보기에도 캠퍼스와 건물들은 멋졌다. 전시의 많은 작품은 나를 감탄케 했다. 특히 섬유예술과의 전시가 가장 매력적이었다. 모든 작품들이 오직 디자인과 픽셀로만 이루어졌어도 무척 감탄했을진대, 그 이미지를 자신의 손과 섬유로 하여금 직접 실체화한다는 것에 경의를 표하지 않을 수 없다. 섬유 예술의 세계를 잠시나마 엿볼 기회를 제공해 준 지인에게 고맙다.
나는 많이 배우지 못한 사람이다. 미국에서는 영어를 잘하지 못하는 아이였고, 한국에 와서는 한국말을 잘하지 못하는 아이였으며, 까닭에 중학생이 되어서는 학업 부진 학생이자 사회성 혹은 어딘가에 결핍이 있는 우울증 환자로 거듭났다. 여성주의를 공부했지만 어디에서도 앞장설 만큼 똑똑하지 못해서 그냥 '방구석 트페미' 정도로 전락한 전적이 있다. 고등학교는 자퇴했고, 오랜 시간을 나의 우울증과 사회불안장애를 치료하는 데 쏟았다. 지금은 우울하지 않다. 고로 이건 자기 비하가 아니라 자기 객관적 문장인데, 나는 무지하고 무식하고 아는 것보다 모르는 게 훨씬 많다. 요새 그게 좋다고 느낀다. 몰랐던 걸 새로이 알아가는 데서 즐거움을 얻고 있기 때문이다.
오즈의 나라로 나가는 것, 새로운 세계를 발견하는 것, 알을 깨는 것, 우물을 탈출하는 것과 같다. 공부가 즐겁다는 천재 괴짜들도 이런 심정이었을 테지. 불행하게도 나는 학자는 되지 못한다. 하지만 예상치도 못한 상황에서 즐거움을 느끼면, 또 그런 부분에서 감사를 느끼며, 실존을 증명받고, 의미와 가치를 부여받는 기분이 들기도 한다.
아무튼 나에게는 처음인 것들이 많다. 머리카락에 화학을 부리는 것도 처음. 이만큼 불행하지 않다고 느낀 것도 처음. 가족을 포함해, 주변인들과 원만하게 지내는 것도 처음이다. 오페라도 처음이고, 취미를 이토록 열심히 즐기는 것도 처음이다. 글을 진지하게 써보는 것도 처음, 바깥을 자주 나돌아 다니는 것도 처음. 앞으로 도전해 보고 싶은 '처음'은 더 많다. 팔목이나 다리, 어딘가에 문신도 할 것이다. 찬 계절이 오면 귀를 뚫을 것이다. 입술이나 어딘가에 피어싱을 할 것이다. 처음이 아닌 것들도 꼭 처음인 것처럼 즐길 것이다, 그리고 이런 낙관조차 아마도 처음일 테다. 내과 의사로부터 '처음처럼' 금지령이 내려졌기 때문만은 아니다.
나는 독서와는 거리가 매우 먼 사람이었는데, 기록에 의하면 지난 달에 책을 열 권인가 열한 권인가를 읽었단다. 생각해 보면 시간이 그렇게 남아도는 것도 아니고, 자유 시간을 죄 독서에 쏟는 것도 아닌데(지하철에서나 취침 전 한두 시간 정도가 전부이다) 옛날에 비해 다독가가 된 걸 보면 집중력이 많이 향상된 것 같기도 하다. 정신과 약의 효능인 걸까? 하루에 좋아하는 배우 헤일리 스테인필드가 출연하는 영화를 네 편이나 본 날도 있었다. 그러고 보니 화면 너머로밖에 볼 수 없는 누군가를 이렇게나 짝사랑해 보는 것도 처음인 듯싶다.
이렇듯 파고들 수 있는 작품이나 좋아할 수 있는 사람은 헤아릴 수 없이 차고 넘친다. 얼마나 많은 처음들이, 얼마나 많은 실존의 증명들이 나를 기다리고 있을까. 저 끝에서.
예전에는 하루하루가 과연 어느 정도까지 긴 동시에 짧을 수 있는지 몰랐다. 살아 내기에는 길다 할 수 있을 나날의 시간들은 늘어나고 또 늘어난 끝에 마침내 서로 범람하기에 이르렀고, 그럼으로써 제 이름을 잃고 말았다. 이제 내게는 어제나 오늘이란 단어만이 유일하게 의미를 간직하고 있을 뿐이었다.
알베르 카뮈, 『이방인』, 김예령, 열린책들(2011)