smilism

피할 수 없다면 피워라

by 산호세



어릴 적부터 나를 끈질기게 괴롭혀 왔던 외모 강박 그리고 시선의 두려움에 대해 줄곧 얘기하고 싶었다. 글로써, 말로써 체화하여 쏟아내고 싶었다. 그래야 속이 훨 후련할 것 같아서. 자기는 싫고 기분은 먹먹한 밤에 타자를 두드리면 마음의 무게가 덜린다.


미국에서는 나 자신에 대해서도 타인에 대해서도 외모에 관한 의식이 영 없었다. 나이가 어리기도 했거니와 누구도 칭찬이나 모욕을 하지 않았다. 엄마의 재정과 영주권 문제로 미국을 떠나게 되면서, 어린 내 마음에는 혼란이 도래했다. 오랜만에 한국 땅을 딛었을 때 나는 아빠가 사준 커다란 애착 인형을 껴안고 있었다. 버스를 엄마와 처음으로 타 보았다. 내 또래 아이가 보호자 없이 혼자 버스에 올라타는 것을 보고 감탄한 기억이 있다(사실, 그저 감탄해야 하는지 민망해해야 하는지 알 수 없었다).


엄마는 당장 집을 구할 돈이 없어 몇 달간 서울에 있는 큰 이모네 집에 얹혀살게 되었다. 그 시간 동안 눈칫밥을 얻어먹었다. 그리고 한국의 여름 방학 기간이 끝나는 시점에서 경기에 있는 막내 이모 집으로 거처를 옮기며, 사촌이 다니는 초등학교로 전학을 갔다. 2학기 첫날 전학생의 신분으로 낯선 초등학교에 들어서는 순간 심장이 쿵쾅거리고 식은땀이 맺히며 처음으로 그런 생각을 했다. '지금 내 겉옷이 너무 촌스럽지는 않나?' 그렇게 눈치놀음의 10년이 시작되었다. 비통하게도.


우량아로 태어나 먹성이 대단한 편은 아님에도 살집이 있었다. 초등학생 시절에는 평균 혹은 그 이상의 체중을 웃돌았으나 어깨가 넓고 웬만한 남자애들보다 덩치가 큰 덕에 '돼지'나 '헤라클레스' 같은 별명을 가졌다. 영어를 까먹지 않기 위해 입소한 영어 마을 캠프에서는 '괴물'이라 불리며 왕따를 당한 적도 있다. 엄마도 아빠도 아니고 하필이면 고모를 닮아서 부정 교합이 심했는데, 치과 의사조차 교정이 무용하니 양악 수술을 권할 정도였다. 콧볼이 넓어 엄마는 항상 양 콧볼을 꼬집고 있으라고, 그러면 코가 작아질 거라고 했다. 그래서 그런 습관을 들였더니 항상 코가 빨갰다. 학교에선 '술 취한 아저씨'나 '원숭이'냐고 놀림을 받아 창피했다.


할아버지를 닮아서 원체 체모의 숱이 많았다. 머리고 눈썹이고, 팔이며 다리며, 배에도 손에도, 심지어 턱에서도. 눈썹이 너무 짙어서 매번 갈매기 눈썹이라고 놀림을 받았다. 여름에도 반바지를 입지 못했다. 반팔을 입는 것조차 꺼렸다. 중학생이 되어서는 체육복 바지를 입거나 검은색 스타킹을 신었고, 여름에도 후드티를 걸치고 다녔다. 호박에 줄 긋는다고 수박 되냐고, 그런 마음으로 화장은 시도해 본 적도 없는데, 그렇다 해서 매 아침이 편하지는 않았다. 당시 심정을 고스란히 표현하자면 화장火葬되고 싶었다 해도 과언이 아니었다.


가족들에게는 못난 부분만 물려받았다고 여겼다. 코가 큰 부분이나, 턱이 나온 부분. 털이 많은 부분이나 뼈가 굵은 부분. 타인에게 보여지는 모습이 전부라고 판단했을 때, 더는 보여지고 싶지 않다고 생각했다. 밝은 성격으로 방송부의 높은 경쟁률을 뚫고 수석 합격했으나 마르고 예쁘고 잘생긴 선배들 사이에서 겉돌았다. 언니들은 나를 챙겨주었지만 나는 그 언니들의 '한심하고 못생긴 나를 바라보는 뱃속'을 꿰뚫으려 애썼다. 전교생이 모인 시청각실 무대 옆에서 노트북을 만질 때마다 수십 수백 개의 시선이 내 굵은 다리나 튀어나온 턱 혹은 큰 코로 쏠리는 것 같아 괴로웠다.


학기초에는 사물함을 정리하는데 교실 문 앞에서 낄낄거리는 다른 반 남자애들을 보았다. 나를 가리키며 어떤 남자 개그맨의 이름을 외치고 있었다. 진짜 닮았지? 거봐, 닮았다니까! 동물원 우리에 갇힌 원숭이가 된 기분, 얼마나 화나고 서럽던지. 창피해서 어디에 말도 못하고 혼자 속썩이다 그렇게 흉이 졌다. 회피 성향이 증폭되며 방송부를 탈퇴하고, 중학교 졸업을 앞둔 채 우울증에 붙잡혀 팔목에 붉은 자국을 남기다가, 하루에 타이레놀을 스무 정씩 삼키고 잠에 들면, 다음 날 깨어나서는 내가 누구도 무시 못할 미인이 되어 있기를 간절히 바라고 빌었다. 어쩌면 존재할지도 모르는 모든 신들께, 우스우리만큼 멍청해도 되니까, 지금보다 훨씬 궁핍해도 좋으니까, 부디 창피한 낯짝에서 벗어날 수 있게 해 주시기를.



미국에서 행복했던 나는 자신이나 타인의 외모를 의식하지 않았다는 중요한 사실을 간과했다. 중학교를 졸업하고, 캘리포니아로 여행을 간 적이 있다. 샌프란시스코, 피셔맨스 워프를 관광한 뒤 벤치에 앉아 행인들을 구경했는데, 그저 지나치는 다양한 사람들을 보는 것만으로 마음이 편안했다. 하늘을 보거나 화단의 꽃을 보거나, 아니면 화려한 패나 멋진 조형물이나...... 그저 행선지를 향하며 환히 웃는 모습을. 그 수많은 사람들이 어떻게 생겼는지는 기억나지 않는다. 그런 것까지는 기억하지 않아도 된다. 당시 동행했던 아빠가 무슨 생각이 드냐고 물었는데, 나는 그냥 좋다고 대답했던 듯싶다.


그때부터 웃는 얼굴을 사랑하게 된 것 같다. 아름다운 자연을 싣고 온 판타지아, 풀밭 위의 오찬 속 에티엔 박사의 오색찬란하게 열리는 시선을 몸소 체험한 순간이었다.


여전히 교정은 하지 않았다. 당장 엄마 카드 빚 갚기도 벅찬데 양악 수술은 정신 나간 짓이다. 가끔 턱이 조금씩 아프긴 해도, 음식물이 잘 안 씹히고 면이 안 끊기긴 해도, 살아가는 데에 지장은 없다. 눈썹은 주기적으로 다듬어 주고 있으며, 종종 미간에 상처를 내긴 하지만 이 역시 문제될 건 없다. 여전히 콧볼이 축소되지 않았지만 더 이상 코를 꼬집지는 않는다, 필요성을 느끼지 못하기 때문에. 우울증이 극에 달했을 적엔 하루하루를 배달 음식으로 연명하며 잔뜩 살을 찌웠는데, 가끔 거울을 보면 동그란 내 얼굴이 귀여워 보이기까지 한다. 주변에서 자꾸 '너구리'니 '곰돌이 푸'니 해주니까, 착각하게 되는 건 어쩔 수 없는 노릇이다. 좋은 사람들에게 예쁨받는 일이 죄는 아니므로.


비참했던 과거를 떠올리면 눈물이 난다. 그때의 설움을 내 마음은 여전히 고스란히 간직하고 있다. 억울하고 분하고 슬퍼서 왈칵 울게 된다. 그게 지금의 나를 우울하게 만들지는 않는다. 그때 많이 힘들었구나, 그런 고충을 겪고 있었구나, 멀지 않은 미래에서나마 과거를 향해 손을 뻗게 만든다. 자기 연민은 불긴한 감정으로 여겨지지만 때로 요긴하다. 나를 안타깝게 여길 줄도 알아야 한다. 언제든지 과거로 손을 뻗을 수 있게끔 말이다.


그때의 나를 만날 수 있다면 "괜찮아, 너 안 못생겼어" 같은 위로는 안 하려고 한다. 대신 맛있는 걸 잔뜩 먹이고 소중한 친구들의 팔에 팔짱을 끼워준 채 노래방에 보낼 것이다. 목이 쉴 때까지 노래하고, 마지막 노래를 소찬휘의 티어스로 장식한 뒤, 웃고 떠들다 헤어져 지쳐 잠들라고. 아니면 문득 찾아온 회의감에 울다 잠들어도 좋을 것이다. 그 눈물은 내 통통한 손이 훔쳐 가면 좋겠다. 어쩐지, 울다 잠든 그 다음날에는 늘 속이 개운하더라니. (우리가 현재에 집중해야 하는 이유는 과거와 미래가 각별한 밀회를 이어 가고 있기 때문이리라.)



타인에게 보여지는 모습이 전부가 아니라고 판단했을 때, 나를 보여주고 싶다고 생각했다. 많은 사람들을 만나며 함께 웃고 싶어졌다. 웃을 때 손으로 입을 가리는 버릇부터 고쳐 볼까 싶다, 식사 자리에서는 언제나 예외이겠지만. 언제부턴가 내 체형이나 튀어나온 턱을 의식하지 않는 나를 발견할 수 있었다. 팔목에 남은 희미한 선들은 자세히 들여다보지 않으면 모를 정도로 아물었다. 사회 통념적인 여성성에 부합하지 않는다 해서 온몸의 털을 밀어버릴 생각은 없다. 매번 번거로우니까. 눈치 보지 않으며 살고 싶다.


한국으로 이주해 낯선 집에 들어서던 순간부터 내 뱃속에선 무언가 얹혔다. 눈칫밥을 얻어먹는 건 이제 그만할 테다. 지난번에 엄마 앞에서 어린아이처럼 엉엉 소리 내어 운 적이 있는데, 아마 그때 엄지 끝을 따끔하게 찔린 것 같다. 오랜 시간 타인의 시선에 갇혀 살았으니 바야흐로 자유롭게 당당하게 환히 나아갈 때가 되었다, 피셔맨스 워프에서 보았던 오색찬란한 광경처럼. 어떤 소리를 들어도 웃어 넘길 줄 아는 사람이 되었으니, 앞으로 많이 웃어야지. 그리고 많이 웃게 되었으니, 이 모습을 사랑하게 될 것이다.


지금껏 곁에 남아 나를 웃게 해준 사람들도 많이 많이 웃었으면 좋겠다. 내가 사랑하는 얼굴들. 사랑하니 웃는 거고, 웃으니 사랑하는 거지.






아무도 나를 소유하지 못하리

나는 그러한 긍지로 다시 태어났소


자코모 푸치니, 『투란도트: 이 궁전에서(In questa reggia)


<투란도트>의 세계 초연 장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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