거짓말 같은 행복

거짓말조차 무지개를 품고 있는데

by 산호세



내 생일이 만우절인 관계로, 해마다 "거짓말처럼 행복해라"라거나 "거짓말 같은 행복이 찾아오길 바란다" 같은 축복의 말들을 자주 들었다. 사실, 내 상태가 호전되기 전까지는 거짓말이라는 말이 그다지 긍정적으로 들리지 않았다. 만우절이라는 다소 특별하고 유쾌한 날이 생일이라는 점은 나를 주목시킬 수 있어 기분 좋기도 했지만(나는 그만큼이나 애정 결핍이긴 하다), 깊은 자기혐오에 빠져들 때면 내 존재 자체가 있어선 안 될 거짓이라는 비관을 지울 수 없었다.


엄마는 나를 출산한 날(4월 1일) 친구들에게 소식을 전했을 때에도, 장난하지 말라는 답을 돌려받았다고 했다. 나는 중학교, 고등학교에 들어설 때까지도 "너 진짜로 생일이야? 정말 오늘이 생일이었어?" 같은 질문을 반복적으로 듣곤 했다. 이것이 딱히 나쁜 기억으로 남진 않았으며 오히려 웃음을 자아내기까지 하지만, 생각해보면 아주 웃을 수만은 없는 일이다. 탄생을 의심받는 것, 탄생일을 증명하는 것, 끝내 인정받는 것 그리고 평생 그럴 것이다. 나를 아주 좋아하는, 나에게 관심이 다분한, 나와 오래 함께한, 내 곁이라는 궤도를 항상 맴도는 그런 소중한 사람들을 제외하고선. 난 그 성단 같은 사람들이 참 좋다.


어린 나이에 이유 모를 우울증과 사회불안장애를 얻어 10년을 가까이 앓았다. 사람 얼굴 마주하기가 무섭고 연락 주고받는 게 그렇게 힘들어서 스스로 대인관계를 전부 망쳐놨다. 덕분에 20대 초반인 지금, 꾸준히 연락하는 친구는 많지 않다. 얼마 전까지만 해도 나는 다른 힘든 사람들에 비하면 소소한, 누구나 가졌을 현대적이고 일반적인 불행만으로 왜 이렇게까지 아프고 괴로워야 하는지 알 수 없었다. 내가 남들보다 나약하고 한심할 뿐이라는 결론밖에는 도출되지 않았던 것이다. 정말이지 나 하나든 나를 제외한 몇십 억 인간들이든 양쪽 중 하나가 거짓부렁을 부리고 있는 게 아니라면.


이제 와서야 갑자기 기운이 나고, 용기 내어 아르바이트와 공부를 시작하고, 연락이 끊겼던 지인들 친구들을 만나 술을 마시고, 아빠에게 편지를 보내고, 내뱉지 못했던 말들과 눈물을 쏟아붓고, 작은 계획이나마 세워 나가고, 무언가를 쌓기 시작하게 된 계기는...... 아마 정말로 없다. 이유 없이 불쑥 불행이 다가왔던 그때와 같이, 거짓말처럼 행복이 찾아와 있었다. 정신을 차려보니 거짓말 같은 하루하루가 이어지고 있었던 것이다.


그리고 나는 이 거짓말을 납득하기 위해 의심하며 병원에 들렀다. 거짓말! 꾸준히 약을 먹은 것도 아닌데 느닷없이 이렇게 좋아질 리가 없잖아요? 제가 조울증이면 어떡하죠? 제가 또 과거로 돌아가 우울해지면 어떡하죠? 하며 근심을 털어놓고 현재 상태를 유지할 수 있는 약을 처방받았다. 하지만 의사 선생님께선 웃으며 나는 걱정이 너무 많다고 했다. 그럴 일 없게 해주겠다고 하셨다. 불가해한 발병과 쾌유를 두고도 그게 당연한 것처럼, 그런 일도 있을 수 있단 것처럼.


내가 우연히 April Fools' Day에 태어난 것처럼 세상은 거짓과 우연으로 가득하다. 거짓과 우연과 운명 같은 말들은 늘 다중적인 의미로 쓰이기 마련이다. 새하얀 거짓말, 선물 같은 우연, 운명의 상대 같은 것들. 뒤집어 비유하자면 새까만 거짓말, 그냥 우연일 뿐인 것, 불행한 운명. 그런데 한낱 글자로 규정된 것들에 영혼과 자아를 가진 우리의 인생이 붙잡히기엔 너무 아까워서, 웬만하면 지구만큼이나 넓은 범위를 가지고 자유롭게 거니는 삶이었으면 한다. 나는 거짓말 같은 행복을 택하겠다. 이것은 새하얀 거짓말이다. 언젠가 다시 거짓말 같은 불행이 들이닥친다면, 그것은 새까만 거짓말이겠노라고 스스로 판단할 수 있을 내가 되어 있길 바라야겠다.


오늘은 전국적으로 비가 오는 날이라기에 우산을 챙겨 나왔는데, 우연의 일치로 내가 문밖을 나설 때마다 비가 잠깐씩 멎었다. 덕분에 머리도 가방도 소매 끝조차도 젖지 않을 수 있었다. 이 글을 발행한 뒤에는 학원에 가서 두 시간 동안 수업을 들을 예정인데, 오늘 수업에서 운명처럼 나와 잘 맞는 파트너 친구를 만날 수도 있지 않을까? 아니면 그냥 오늘만의 사소한 비운인 셈 치는 거다.


내일은 거짓말처럼 감기가 멀끔히 나았으면 좋겠다.






흐르는 시간 속에서

죽음을 기다리고 있을 뿐

전에는 이토록

삶을 사랑하지 않았는데


자코모 푸치니, 『토스카: 별은 빛나건만(E lucevan le stelle)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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