존중욕구

결국 마음이라는 건 추(錘)가 되어버린다

by 산호세



딱히 연애에 대한 욕구가 있는 건 아니지만, 만약 연애를 해야 한다면 나와는 정반대인 사람을 만나는 게 재밌겠다고 생각해 왔다. 의견이 상충할 경우 밤새 귀 기울여 가며 토론(으로 보여질 법한 무의미하며 즐거운 대화)도 해보고, 아니면 조언을 주고받으며 조력자가 되어 주기도 하고, 서로의 실수를 바로잡아 주며 서로에게서 배울 점을 찾는 그런 사이가 되면 좋겠다고 말이다. 하지만 정반대의 사람끼리 관계 속에 불만을 남기지 않은 채 오래 함께하기 위해서는 존중과 배려가 필요하다. 세간에선 바로 그것을 사랑이라고 일컫는 모양이지만, 요즘 사람들은 제대로 사랑할 줄 모르거나, 아예 인간됨의 기본이 안 돼있는 경우도 많다.


각자 상충하는 의견을 내세우다 마음이 상해 버리기라도 하면 어쩔 텐가? 조심스러운 조언이나 충고가 나의 쉽지만은 않았던 선택을 업신여기는 기색으로 느껴진다면? 한 순간이라도 뒤틀리는 순간, 실수는 단점으로 보이고, 실수를 바로잡는 선행은 지적으로 변질되며, 사람간의 관계에도 우위라는 의식이 생기기 시작할 것이다. 양쪽의 애정과 배려와 존중과 모든 마음의 무게가 동일해야만 이루어질 수 있는 평화일진대, 그게 쉬운 일이었더라면 세상에는 부부싸움도 이혼도 혼인율 감소 문제도 존재하지 않았을 것이다. 추하게도, 결국 마음이라는 건 추(錘)가 되어버린다.


그래서 나는 그나마 힘들일 일이 적은 상대로, 정반대가 아니라 나와 가장 똑같은 사람을 만나고자 생각을 고쳤다. 꼭 연애가 아니더라도, 거의 모든 부분에서 순통하는 친구가 있었으면 좋겠다는 막연한 공상이다. 나의 모든 것을 인정해 주길 바라는 건 아니다. 물론 상대는 깊은 배려심과 존중심을 갖추고 있어야 하며(감히 내가 그런 사람이라고 인정하는 꼴이지만 나는 어느 정도 당당할 수 있다), 가치관이 비슷해야 한다. 취미 정도는 다를 수 있다. 다양한 취미를 가져보고 싶은 사람으로서, 내가 영화와 오페라를 보는 동안 대뜸 등산이나 심지어는 스카이다이빙 동반을 제안해도 수락할 자신 있다.


멋대로 기대하지 않기로 다짐한 지도 꽤 되었다. 충분히 기대할 만한 부분에서마저도 괜히 기대를 거두는 습관이 생겼다. 이는 내가 원래 조금 비관적이고 자기혐오에 특출난 성정이기에 그렇다. 하지만 기대란 살짝 과장된 기다림과 같은 의미이고, 기다림은 무릇 사람이라면 지극히 당연하게 갖는 마음이다. 예를 들면 내일의 해를 기다리며 잠드는 것, 카페에서 주문한 음료가 나오기를 기다리며 앉아 있는 것, 퇴근을 기다리며 근무하는 것, 그런 것들. 그러니까 인공적인 기대는 훌륭히 떨쳐 낼 수 있었지만, 자연적인(원초적인) 기대는 매번 새로이 갖가지 형태를 갖추어 나타났다.


자연스레 기대감을 심는 원인까지 제거하려면 나는 고립되어야 하므로 그럴 수 없다. 사회는 어렵고도 드넓은 세상이라 감당해야 할 것들이 무척 많다. 하지만 대부분의 사람들이 이것보다 훨씬 좁은 사회, 그러니까 초중고에서부터 다양한 고초를 겪어 왔잖은가. 몇 번이고 얘기했지만 이렇게나 부질없는 삶이라니 허무하다! 상처받고, 실망하고, 기다리고, 무언가를 견디고, 번쩍 행복했다가 다시 처음으로 돌아가 굴레 속에서 돈다. 어떤 긍정적인 사람들은 그 가끔의 '번쩍임'이 우리들 인생에 추진력을 불어넣어 주는 좋은 동력이라고 주장하지만, 나는 원래 휴대폰이나 패드 배터리가 70 퍼센트 이하로만 내려가도 초조해하고 늘 충전기와 보조 배터리를 챙겨 다니는 괴로운 성격이라 (심지어 보조 배터리의 배터리도 반 이상 닳는 꼴을 보지 못한다) 받아들일 수 없는 낙관이다.


어딜 가든, 누구에게든 존중받고 싶다. 귀족이라도 되는 것처럼 정중한 대우를 바란다기보다 내가 상대를 배려하는 만큼, 딱 그만큼만 상대도 내게 그래 줬으면 좋겠다는 뜻이다. 그럴 수 없다면 차라리 우위를 점하는 편이 낫겠다는 것도 솔직한 입장이지만, 아빠 회사를 물려받거나 미국이나 중국의 친하지도 않은 지인들이 나를 잘나가는 기업의 고위직으로 꽂아 주지 않는 이상 불가능한 일임이 분명하다. 게다가 회사를 물려받는다거나 인맥만으로 높은 사람이 된다는 것도 말이 낙하산이지, 능력 있는 사람이나 가능한 것이라고 나는 생각한다. 어차피 똑똑한 아빠는 멍청한 딸에게 회사를 물려주지 않을 것이다.


하지만 나는 위에 전술한 잡다한 내용을 전부 차치하고서, 그동안 좋은 마음밖에 가진 적이 없다. 마음이 불안정했을 적에 가졌던 추하고 어린 욕심에 대해서도 반성했으며 성장해 나아가기 위한 발판이었다고 여긴다. 요즘에는 내가 마땅한 취급을 받지 못한다고 느낄 때마다 정말이지 존중받고 싶다는 열망에 가까운 생각만이 움튼다. 그리고 또 쓸쓸함이나 외로움 같은 것에도 알게 모르게 젖는다.






당신이 그녀를 사랑했다면

춤추는 법을 가르쳐 줬어야 했단 거예요.

왜냐하면 우린 모두 죽을 수 있잖아요. 언제든지.

그런데 우린 정말 서로를 가르쳐 주지 않죠.

안 그래요?


기인들, The Misfits (1961)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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