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서점의기쁨과슬픔 #비정기산문집
11월
02
때는 시월의 어느 날. 서점 근처 대학교(서점원 선정 최애 대학) 총학생회 학생들이 서점을 찾았다. 사실 총학생회 학생들은 서점이 오픈하고 얼마 지나지 않아 지역 상권 제휴와 영상 촬영 등을 제안하기 위해 종종 찾아와 준 고마운 존재다. 이번엔 새로운 얼굴이 방문했으니 새로운 일일 테다.
이번 방문은 총학생회와 중앙도서관이 주관하는 <2025 도서전>에 독립 서점 부스 참여를 제안하기 위함이었다. 캠퍼스에서 진행하는 행사인 만큼 학생들을 직접 마주해 서점을 알리고, 책도 판매하는 아주아주 멋진 제안이었으나 당시의 나는 걱정이 앞섰다.
한 번도 외부 행사에 참여해 본 적 없어서 오는 막연한 두려움(지금 다시 보니 온실 속 화초 같은 마인드였다. 지금은 조금 성장해 다육이 마인드 정도 되었다) 그리고 당일 서점 문을 닫아야 하는 불안감 때문이었다.
1인 사업장의 고충은 이런 것이다. 내가 아프거나 자리를 비우면 문을 열지 못한다는 것. 아무도 뭐라 하지 않아도 스스로 손님과 정한 약속을 지키지 못하는 불편한 마음이 스멀스멀 피어오르는 건 모든 소상공인이 같은 마음이지 않을까.
이런 나약한 이유를 핑계로 뒤늦게 답장을 보냈다. 그래도 서점 밖으로 나서기로.
아무튼 다가오는 십일월, 캠퍼스 출격 예정!
책의 계절, 따스한 가을볕을 받으며 학생들 만나기!
참여하기로 했으니 준비를 서둘렀다. 도서전의 큰 주제는 따로 있으나 독립 서점 부스의 큐레이션은 재량이어서 어떤 책을 소개할지 고민했다. 이십 대 초반 학생들에게 소개하고 싶은 책. 종종 학생들이 책 추천을 부탁하긴 하지만, 색깔만큼 다채로운 것이 책 취향 아닐까. 모두를 충족시킬 순 없지만, 큰 카테고리를 분류해 고심 끝에 책을 선정했다.
소설이 낯선 학생들이 재밌게 술술 읽을 수 있는 스테디셀러 장편소설 하나, 자신의 감정을 알아가고 싶은 학생들이 가볍게 읽을만한 단편 모음집 하나, 불편한 주제를 경쾌하게 풀어낸 소설 하나 그리고 우리 서점에서 가장 많이 판매한 동네서점 한정판 시집 하나.
사실 더 많은 카테고리를 만들고 서점 내 유일한 문구류인 연필도 챙겨 가려 했는데 다 취소했다. 갑자기 마음 속 불안핑이 등장해 이 많은 책을 들고 갔다가 그대로 들고 돌아오는 불상사에 대한 염려를 마주한 것이다. 겸손하게 들고 가서 가뿐하게 나오자.
책은 블라인드 북으로 제작했다. 북 커버를 씌우고, 내가 읽고 느낀 감정을 책 소개 형식으로 프린트해 앞쪽에 붙였다. 문장을 읽고 공감이 되면 책을 고를 수 있도록. 그리고 당일만 진행하는 특별한 행사인 만큼 소소한 이벤트를 마련했다. 아날로그 방식이긴 한데 책을 구입한 학생들이 제비뽑기해서 랜덤 굳즈를 받는 것.
엄청 대단한 선물은 아니지만, 무엇을 뽑을지 모른다는 점에서 약간의 도파민이 나온다. 이건 어릴 때 문방구에서 뽑던 뽑기의 도파민과 비슷하다. 그 당시 1등 경품은 잉어 달고나 같은 불량 식품이고 좋아하지도 않았던 것들인데 예상치 못한 기쁨이 모든 것을 상쇄시켰던 걸로 기억한다.
그렇게 도서전 전날(심지어 휴무일)까지 서점에 들러 마지막 준비를 끝내고 짐을 챙겼다.
D-1, 곧 만나러 갑니다.
2025년 11월 11일 화요일
할지 말지 잘 모르겠다면 일단 시도해 보는 것이 맞다고 생각하는 서점원
서점원의 문장과 책
: 활동적이고 위험한 삶은 죽음의 공포를 경감시킨다. 그런 삶은 고통에 참을 수 있는 의연함을 갖게 해 줄 뿐 아니라 앞으로 발을 내디딜 때마다 우리의 명줄이 불안정하다는 사실도 가르쳐 준다.
『혐오의 즐거움에 관하여』 윌리엄 해즐릿 에세이집, 공진호 옮김, 아티초크