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서점의기쁨과슬픔 #비정기산문집
11월
04
서점을 찾은 한 학생이 친구들과 교환독서를 한다며 책 추천을 부탁한다. 평소 책을 잘 읽지 않는데 이번 기회에 읽어보겠다며. 아주 기특한 학생이다.
전날 도서전 부스 참여로 대학 캠퍼스를 다녀온 터라 어제 학생들 분위기가 다들 여유로워 보였다고 하자 법학과 2학년인 그 학생은 2주 전에 시험이 끝나 온화한 상태라며 공감한다. 내가 예민한 건 시험 탓이라며. 그게 맞다. 탄수화물이 부족하면 여유가 사라지고, 시험기간이 오면 뾰족해지는 것이 옳게 된 인간의 바이오리듬이니까.
학생의 요구사항에 맞게 도파민과 의미가 모두 담긴 책을 고민하며 몇 가지 책을 추천한다. 그중 학생의 선택을 받은 건 <소시지와 광기>. 일단 교환독서를 하는 다른 친구들이 가져오지 않을 만한 책이기도 하고, 줄거리를 듣자마자 이거다 싶었다며 픽의 이유를 설명해 준다.
나는 나중에 교환독서 후기를 알려달라고 말하는 걸 잊지 않는다. <소시지와 광기>는 공감 요소도 재미난 요소도 많아서 밑줄과 답글이 아주 많이 달릴 것만 같았기 때문이다. 스물한 살의 생각이 참 궁금해진다.
교환독서용 책을 고른 후 친한 언니에게 선물할 책도 추천을 부탁받는다. 몸이 아파 쉬고 있는데 위로를 줄 수 있는 그런 책을 원한다고. 고민 끝에 소설보다는 산문집이 좋을 것 같아 고명재 시인의 <너무 보고플 땐 눈이 온다>를 추천한다. 무채색을 닮은 담담한 문장들이지만, 나 역시 이 글을 읽고 눈물이 왈칵 나온 적이 있는 너무 따스한 글이라 그분께도 위로가 될 것 같았다. 학생은 선물로 좋을 것 같다며 바로 그 책을 픽한다(이럴 때면 정말 뿌듯하다). 멋진 선물이 되길.
얼마 지나지 않아 이번엔 여중생 네 명이 서점을 찾았다. 수능 전날이라 오전 수업만 하고 하교를 하는 모양이다. 넷이서 소곤소곤 이야기를 나누다가 나에게 다가와 교환독서를 하고 싶은데 추천을 해줄 수 있는지 물어본다. 그렇지 않아도 한 시간 전쯤 대학생 언니가 교환독서를 위해 책을 사 갔다고 하자 환한 미소를 지으며 요즘 많이들 한다고 답한다. 그래서 본인들도 생애 처음 도전해 본다고. 정말 귀여운 학생들!
이 이야기를 들으니 초등학교 시절 친구와 주고받던 펜팔이 떠오른다. 젊은이들은 모르겠지만 간단하게 설명하자면 교환독서 같은 교환일기다. 노트 하나에 하루씩 일기를 적어 다음날 친구에게 전하고 그 이후엔 답장 같은 일기를 돌려받고 이런 귀여운 일들을 참 많이도 했었다. 지금 생각하면 그 당시는 그렇게 큰 걱정도 사건도 없어서 별 이야기가 없었을 텐데 무슨 이야기를 조잘조잘 적어서 교환했는지 모르겠다.
물론 가족 이야기도 있고, 친구 이야기도 있었겠지. 그 당시엔 두려울 게 없었던 것 같다. 내 마음속 이야기를 흔쾌히 꺼내 놓을 수 있었고 그것을 숨기거나 주저할 일이라고 생각하지 않았다. 침 신기하게도 지금도 비슷한 결의 고민을 겪고 있을 텐데 어째서인지 지금은 선뜻 꺼내 놓기가 조심스럽다. 누군가에게 나의 마음속 이야기를 글로 써서 보낸다는 건 그런 일이 되어버렸다.
그럼에도 글은 요망해서 놓을 수가 없다. 말은 입 밖에 내뱉기 전까지 머릿속으로 정리를 해도 입 밖으로 나오는 순간 정리가 안 돼서 내가 무슨 말을 하고 있나 싶을 때가 있는데, 글은 머릿속에서 정리를 해서 쓰고 나서도 다시 정리할 수 있는 시간을 줘서 목숨이 하나 더 있는 것처럼 여유가 있다. 그렇지만 그래서 어렵다!
글을 꺼내 놓기까지 수정할 시간이 많은데 최종으로 꺼내 놓은 글이 이 정도라면 나의 성의가 적나라하게 드러나니까 자꾸 욕심을 내는 거다. 그래서 마감이 있어야 한다. 마감 없는 글은 평생을 수정해도 끝낼 수가 없다(지금 이 글 역시 마감이 없었다면 평생 내 폴더 속에 있었을 테다).
아무튼 교환독서의 붐은 서점원에게 굉장히 긍정적인 일이 아닐 수 없다. 각자가 책을 한 권씩 사서 밑줄을 긋고 코멘트를 남기고 다른 사람과 책을 교환해 그들이 남긴 글을 읽는 여정. 나의 밑줄과 생각을 남기는 일의 반복. 교환독서 재미난 거, 모두가 알았으면 좋겠네!
2025년 11월 12일 교환독서의 유행이 끝나지 않기를 바라는 서점원
서점원의 문장과 책
: 저는 대열에서 벗어나지 않고 합류한다는 것이 언제나 중요했습니다. 나팔바지 유행이 사라지자 저는 디스코바지를 입기 시작했습니다. 입는 사람의 체형을 너그럽게 감싸주는 이 바지와 저는 급속도로 친해졌죠. 하지만 다음번 청바지를 사러 간 매장의 여직원부터 이미 왼쪽 눈썹을 불쾌하게 치켜올리며 이 결정을 무효화시켰죠. 곧 디스코바지는 살 수 없게 되었고, 저는 다른 모든 사람처럼 스키니바지 속에 힘겹게 몸을 구겨 넣으며 아침마다 세 개의 금속단추와 씨름했습니다.
『소시지와 광기』 야콥 하인 장편소설, 문학동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