44 위로가 되어줘서 고마워

#비정기산문집 #서점의기쁨과슬픔

by 서점원

3월

01


브런치에선 책 이야기보다 서점 이야기를 많이도 했다.

그래서 오늘은 오랜만에 서점원의 책 이야기.


*

몸이란 무엇인가.

타고난 것, 죽는 순간까지 평생 함께하는 것.

그 어떤 것보다 타인의 시선에서 벗어날 수 없는 것, 신경 쓰이는 것 그리고 변화하는 것.


어릴 적에는 나의 몸과 얼굴로 크게 스트레스받지 않았다. 학창 시절에도 더 큰 관심사는 급식 점심 메뉴 같은 것이었으니까. 오히려 사회에 나와서 시선을 더 느꼈던 것 같다. 나를 잘 모르는 사람들이 나의 몸에 관해 이야기했다. 그들은 큰 의미를 두지 않는 말들이라고 생각했을 수 있으나 반복적으로 듣다 보니 그 말이 내 몸 안에 쌓여갔다. 그걸 이십 대 후반부터 인식하기 시작했다. 한참이나 몸에 관한 이야기를 들었구나 하고.

평균이라는 단어에 자신을 집어넣고 비교하는 일들은 매우 큰 에너지를 소모해야 함에도 사람들은 기꺼이 그렇게 했고, 여전히 하고 있다. 그리고 자신뿐 아니라 다른 사람도 그 안에 합류시킨다.


그래서 ‘몸’에 관해 나누는 이야기들을 소설로 읽을 때 이렇게 많은 생각을 할 수 있구나 싶었다. 돌이켜 보면 스트레스였으나 그 당시엔 미처 깨닫지 못했던 몸에 관한 이야기.


그중 하나는 강화길 작가의 ⟪치유의 빛⟫이다.


몸은 참 신기하다. 시작은 나의 의지와 상관없이 얻어지는 것이지만, 나의 의지에 따라 가장 쉽게 변화하기도 하는 것. 덩어리라고도 불리는 것. 누군가의 시선을 받아내는 것. 평생을 함께하는 것. 그리고 증오하게 되는 것.


따끔따끔한 날개뼈 아래의 통증, 다른 이는 모르는 고통, 그리고 과거.

지수에게 몸은 그런 존재였다. 한 번의 성장기를 겪은 후 얻게 된 몸은 하나의 덩어리로 여겨진다. 남들과 달라서 오롯이 얻게 되는 시선은 자신의 몸을 사랑할 수 없게 만드는 하나의 이유다.

더군다나 주변에 길고 곧게 뻗은 다리를 가진, 공부도 잘해서 모든 이의 부러움을 사는 반 친구가 있다면 더더욱.

해리아. 지수가 만든 그 이름은 동경일까, 질투일까, 애정일까. 아니면 증오일까.


날개뼈 아래에서 피어난 오랜 통증을 견디다 못한 지수는 ‘재생을 향한 치유. 치유를 통한 재생’을 강령으로 내세운 채수회관을 찾게 되고 그곳에서 최초의 기억과 마지막 동굴을 찾는 여정을 시작한다.

자신의 의지로 다시 태어나는 방법은 고통의 근원을 찾고 그에 맞서는 방법을 찾는 것뿐이니까.


최초의 기억을 찾아가는 길, 그 끝에서 우리는 치유의 빛을 마주할 수 있을까?



강화길 작가의 장편소설인데 이전에 인상 깊게 읽었던 단편 <음복>과는 결이 달라 조금 놀랐다. 지극히 현실적이어서 마주하고 싶지 않았던 글이 <음복>이었다면 ⟪치유의 빛⟫은 어린 시절 누군가가 겪었을 트라우마를 떠올리게 했다.



두 번째는 리사 핍스 작가의 ⟪스타피시⟫.

이 글을 소설이라 할 수 있을까? 라는 의문이 들었던 소설. 작가의 경험이 담긴 일기를 각색한 것 아닐까 싶을 정도의 디테일한 묘사(괴롭힘) 때문이다. 커다랗고 아름다운 어린아이 그리고 그 아이를 따스하게 지켜주는 어른들이 있다는 믿음으로 끝까지 읽을 수 있었다.


커다랗고 아름다운 나


아이의 주변엔 도움이 되는 어른도 있지만, 그렇지 못한 어른도 있다. 근데 다시 생각해 보자. 어른이란 단어엔 아이들을 도와야 하는 의무가 포함되어 있지 않은가. 그렇다면 도움이 되지 못하는 사람은 결코 어른이 될 수 없다.


텍사스에 사는 열세 살의 엘리는 하루를 살아가는 일이 버겁다. 아니, 버텨낸다고 표현하는 게 맞다. 학교에서 엘리를 괴롭히는 아이들의 행동은 엘리의 어깨와 다리를 더 웅크리게 만들고, 자신을 ‘뚱뚱한 것’이라 치부하는 엄마에겐 영영 사랑받을 수 없을 것만 같다.

자신의 몸무게가 다른 이들에게 어떤 불편함을 주는지 엘리는 이해할 수 없어 자신을 갉아먹으며 그 이유를 찾을 뿐이다.


“내 인생에는 나를 사랑하는 사람들이 있어. 그러니까 나는 괜찮을 거야.”

엘리의 주변엔 나쁜 말을 쏟아내는 엄마가, 누군가를 괴롭히는 데 온 힘을 쏟는 코트니와 머리사가 있지만, 다행히도 성숙한 어른과 다정한 친구들이 있다.


엘리의 몸을 빤히 쳐다보지 않는 의사를 함께 찾아다니는 아빠가, 엘리와 눈을 맞추는 우드 선생님이, 멀리서도 응원해 주는 비브가, 온전한 나를 볼 수 있도록 거울을 선물해 주는 카탈리나가 그리고 존재 자체로 의지가 되는 기기가 있다.

사실이 아니며 부정적인 생각들을 사실이며 긍정적인 생각으로 바꾸어 나가던 엘리는 비로소 깨닫는다.


“나는 세상에 모습을 보이고, 눈에 띄고, 목소리 내고, 사람답게 대우받을 자격이 있다.”


이 책은 십 대 여학생들에게 권하고 싶은 필독서 중 하나다. 학부모가 서점을 찾으면 이 책을 추천한다. 십 대 여학생이 겪는 몸에 관한 이야기. 타인의 시선에서 벗어나기 힘든 그들에게 몸을 어떻게 받아들여야 하는지 처절하게 보여주는 현실성 높은 소설.



*

주말에 한 번씩 서점을 방문하는 동네 주민이자 배우분이 계시는데, 초창기부터 이곳을 아껴주셨다. 책을 진짜 좋아하는데 동네에 서점이 생겨서 좋다며 반겨주셨던 것을 기억한다. 그 후로도 꾸준히 방문하는데 오늘 고른 책 중 한 권이 바로 ⟪스타피시⟫였다. 나는 반가운 마음에 ‘이 책 진짜 좋아요’라고 밖에 표현하지 못하며 ‘선물하세요?’라고 물었는데 내가 인스타그램에 종종 올리는 ‘오늘의 입고’ 글을 보고 마음에 들어 구입한다고 말했다. 으히히. 서점원과 마음이 통한 배우님.

서점원의 후기를 읽고 책을 산다는 것, 감사한 것, 기쁜 것.


생각해 보니 배우란 직업이야말로 극한의 비교 대상이 아닌가. 카메라 앞에서, 대중 앞에서 치열하게 나를 보여줘야 하고 평가받아야 하는 업. 그래서 이 이야기에 공감하신 건 아닐까. 조금 슬퍼지는 그런 기분이 더해졌다. 그래서 꼭 십 대 여학생에게만 권할 책은 아니라는 것을 깨달았다. 나 조차도 이십 대 후반이 되어서야 그동안 스트레스를 받았구나 라고 느꼈으니. 타인의 시선으로 고통받는 모든 분들에게 이 책이 위로가 되어 준다면 좋겠다.


그럼에도 우리는 우리의 몸을 사랑한다.

⟪스타피시⟫의 주인공인 열세 살 엘리가 결국엔 커다랗고 아름다운 나 자신을 깨닫는 것처럼.



2026년 3월 1일 일요일

이 책 안 읽은 사람 없도록 더 열심히 팔아야 하는 서점원



서점원의 문장과 책

남들이 뭐라 하건, 너를 너답게 하는 것들을 사랑하도록 해.


『스타피시』 리사 핍스 지음, 강나은 롬김, 아르테

토요일 연재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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