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비정기산문집 #서점의기쁨과슬픔
2월
03
고마움을 전하고 싶을 때가 있다. 말로 전해도 좋고, 편지를 써도 좋다. 그래도 작은 선물 하나라도 같이 주고 싶은 게 사람의 마음인가 보다.
서점을 찾는 사람들 속에도 책 선물을 하는 이들이 많다. 북 커버를 요청하기도 하고, 책갈피 뒷면에 편지를 쓰기 위해 펜을 빌리기도 한다. 생일, 졸업, 입학, 기념일, 응원 등 그 이유는 다채롭지만 선물을 전하는 마음만큼은 같은 곳을 바라본다.
얼마 전에도 피아노를 전공하는 학생(음대생, 미대생이 서점을 많이 온다. 예체능 계열 학생들이 책을 많이 읽는다!)이 서점에 왔는데 중학생 친구와 교환 독서를 하기 위해 <1984>를 구입했다.
와, 벌써 재밌다. 어떤 사연으로 중학생 친구와 교환 독서를 하는지도, <1984>를 선택한 이유도 너무 궁금한 거다(책 선물 스토리 듣는 것 좋아함). 호기심을 참지 못하고 캐물었는데 흔쾌히 대답해 줘서 궁금증이 풀렸다. 서점원은 선물을 주는 사람의 마음을 조금은 엿볼 수 있다는 게 큰 장점이다. 서점 이름을 한자어로 풀면 ‘흩어진 문장을 모으는 곳’이 되는데 책을 사는 사람들의 흩어진 마음을 수집하는 곳이 되기도 해서 흡족해진다.
나 역시 흩어진 마음을 모아 전해보려 한다.
우리 서점 최다 방문자를 통계 낸다면 단연 일등을 차지할 단골 학생 C 학생이 있다. 근처 대학에서 바이올린을 전공하는데 현재는 휴학 중이다. 어깨에 무거운 바이올린 케이스를 들어 메고 부지런히 아르바이트를 다니는 그녀는 칭찬할 구석이 많다. 일단 책을 많이 사고, 좋아하는 만큼 많이 읽고, 아르바이트도 열심히 한다. 특유의 발랄함으로 서점에 밝은 기운(서점원은 에너지가 부족해 C 학생이 오면 균형이 맞는 느낌)을 불어 넣는다. 서점원의 생일도 챙겨주었으며 서점원은 알 턱이 없는 요즘 이십 대의 썸과 연애사를 들려주기도 하고, 덕질의 기쁨과 슬픔을 공유하며 함께 꺄르르 웃는다.
브로콜리너마저를 모르는 그녀(이것이 세대 차이인가)와 한로로(작년에 앨범을 발매하며 <자몽살구클럽>이란 책을 발행했다)로 접점을 찾아내고, NCT를 잘 모르는 서점원(NCT 안다, 다만 몇 명인지 모를 뿐)은 멤버 중 한 명인 도영의 솔로 앨범을 추천받는다.
그녀의 최근 행보는 쟈니(멤버 중 한 명)의 생일 팬미팅이었다. 원래 최애는 다른 멤버였지만, 뉴스 사회면에 등장하는 이슈가 발생해 그렇게 되었다고 한다. 이건 아이돌 역사를 돌아봤을 때 매번 되풀이되는 안타까움(아이돌 분들, 착하게 삽시다. 소녀들이 슬퍼해요)이라 더 캐묻지 않는다.
그래도 쟈니 씨의 생일잔치에 다녀와 힘을 얻었다며 웃어 보이는 그녀가 부러웠다. 힘을 얻을 수 있는 누군가가 있다니. 생일 팬미팅 티켓 가격 약 육만 원. 이것이 육만 원의 행복이다.
이렇게 글로 쓰다 보니 생각보다 많은 것을 공유하고 있다는 생각이 든다. 서점을 통해 우리는 서로의 소소한 이야기를 나누고 있다. 그런 그녀에게 고마움을 담아 엄마표 호두 곶감과 북 커버를 선물했다. 설을 앞두고 명절 선물 느낌으로.
소란스럽지 않게 서로를 챙기고, 마음을 주고받는 일이 일상의 한 조각으로 남을 수 있어서 다행이다. 무료하게 보낸 하루도 있고 지치는 하루도 있지만, 이런 하루도 있다면 그 기억으로 또 다른 고마움을 나눌 수 있지 않을까.
서점이라는 공간을 통해 만나는 관계의 기쁨. 앞으로도 잘 부탁합니다.
2026년 2월 13일 금요일
고마움이 쌓여가는 서점에서
서점원의 문장과 책
덕질은 대부분 짝사랑에 가깝다. 픽션을 아무리 사랑해도 그 세계로 들어갈 수 없고, 좋아하는 연예인을 일대일로 만날 일은 일평생 요원하다. 하지만 내가 찾아 헤매는 줄도 몰랐던 이야기, 내 마음을 그대로 표현한 듯한 노래를 처음 들은 순간, 나 아닌 다른 누군가를 마음 깊이 사랑한 시절들은 두고두고 일상의 절벽에서 내게 손 내밀어 준다.
『나의 오타쿠 삶』 정해나 에세이, 도서출판 낮은산