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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푸른 나무 Nov 04. 2024

14. 다시 호스피스 병원으로

- 차근차근 떠남을 준비하다  

다시 동백 성루카 호스피스병원으로 입원했다.  펜타닐 패치에서 모르핀 주사액으로 바꾼 지 이틀 만에 온몸을 괴롭히던 간지러움증이 싹 사라졌다. 아, 진작에 진통제를 바꿨어야 했어, 빨리 입원했었어야 했다고 웃으며 함께 마음을 놓았다. 모든 분들이 반겨주셔서 마치 친정에 온 듯 편했고, 병원 시스템에는 익숙해서 안정적이었고, 문화예술 프로그램도 있었고, 한 번씩 음식테라피 하는 분들이 와서 만들어주시는 환자용 음식들도 이쁘고 맛있었다. 일전에 1등상을 받았던 우리 사진이 여전히 걸려있어서 다시 보며 즐거워했다.       


단 하나, 문제가 생겼다. 통증이 잡히지 않았다. 모르핀 용량을 100이라고 하면 그 상태대로 유지되면 될 텐데, 유지가 안되었다. 용량을 올려야 했다. 이제 안정되었네 하면 다음 날엔 또 높여야 했다. 서서히 불안해지기 시작했다. 여전히 주사로 모르핀을 맞다가 계속 핏줄이 막혀서, 결국은 케모포트 삽입 시술을 하기로 했다. 마취제를 놓고 간호사 선생님이 잠깐 나간 사이 그가 조용히

“자기야” 하고 불렀다. 가까이 갔더니 “사랑해”라고 말했다.

이제 사랑해라고 많이 이야기하자고 했지만, “갑자기! 깜짝 놀랐잖아”라고 하는 내 대답은 듣지도 못한 채 마취로 빠져든 것 같았다. 갑자기 불안했다, 마치 유언처럼 느껴져서. 시술이 끝날 동안 병실 밖에서 떨었다. 아무 일 없을거라며, 그의 부탁대로 '걱정 하지 말고 기원' 했다. 다행히 시술이 별 문제 없이 끝났다. 나중에 마취에 깬 뒤 물어보니 자기가 그런 말을 했냐고 기억에 없다고 했다. 꿈을 꾼걸까.


시술을 마친 주치의 선생님은, 지난번 입원 때와는 다르다고, 삽입이 아주 어려웠다고 말해주셨다. 간호사 선생님들은 육종암이 원발이라도 현재는 폐암 전이이니 폐암은 어느 날 갑자기 확 나빠질 수 있다고, 유난히 폐암이 그렇다며 주의를 주셨다. 수녀님은 지금이 가장 좋을 때라며, 지금을 놓치고 살지 말라고 계속 말해주셨다. 그런데도 왜 계속 나아질 거라고, 나을 수 있다고 생각하고 있었을까. 이번엔 퇴원하면 명상사범님 댁 근처로 집을 얻어서 좀 더 본격적으로 호흡수련을 하자고, 집을 알아보고 있었다. 얼마나 어이가 없는 일이었는지. 환자와 보호자가 집단 최면에라도 걸리는 걸까. 현실을 정확히 인지하고 있었다면 나는  아무것도 안하고 그 옆에 그냥 조금이라도 더  붙어 있을 수 있었을까.      


그럼에도 불구하고 나아지고 있는 게 아니라고, 떠나가고 있는 거라고, 준비를 하라는 그런 경고등이 마음 한구석을 계속 차지하고 있었다. 그러던 어느 날이었을 거다. 원래 그는 잠에 들면 누가 업어가도 모른다고 할 정도로 깊은 잠에 빠졌으니까, 몰래 흐느꼈다. 정말 잠깐이었는데 소리가 크지도 않았는데 그가 벌떡 일어났다.

“어, 무슨 일이야, 왜 울어? 뭔 일 있어?” 하더니 곧 눈치를 챈 듯,

“그렇게 몰래 울지 마. 그러면 내가 자기를 너무 힘들게 하나 싶어 빨리 죽어버려야 겠다고 생각할거야. 울려면 꼭 내 앞에서, 나랑 같이 울어”라고 도닥였다.

      

그러다 급격히 점점 더 달라지기 시작했다. 자기가 선호하던 보호자 침대를 떠나 환자 침대로 옮기고, 이제 더 이상 걸을 수 없어서 휠체어를 사용하고, 화장실을 걸어갈 수 없어 소변통을 사용하고, 3층에 있는 그 어떤 환자들보다도 가장 높은 용량의 모르핀을 투여받고, 그간의 통증과는 다른 새로운 종류의 신경을 압박하는 통증이 생기고, 그리고 그 통증을 제어하는 다른 진통제로 하루 종일 잠에 빠지고. 그러면서도 밤에는 잠에서 자꾸 깨거나 악몽을 꿔서 수면제를 요청할 때…이제 정말로 헤어져야 하나 생각이 들기 시작했다. 그러면서도 완전히 현실로 받아들이지 못하고 있었다.

       

어느날엔가, 신경통증 진통제로 계속 잠에 빠지자 “이게 사는 거냐, 그냥 죽는 게 낫지” 하며  바로 죽는 방법이 없는지 간호사실에 가서 알아봐 달라고 했다. 그 말을 듣고 울며 뛰어나갔던 것 같다. 간호사실에 가서 환자가 죽고 싶어 한다고 방법이 없냐고 물어본다고 전달했다. 간호사 선생님이랑 같이 병실로 돌아갔더니, 완전히 풀이 죽은 상태였다. '아직 그럴 때가 아니시다, 의사표현도 잘하시고, 정말 침대에서 아무것도 못하는 분들이 얼마나 많은지 아시냐, 다른 분들에 비하면 정말 좋은 거다...' 그 모든 설득에 계속 고개를 주억거리며 얌전히 ‘네’ 하고 대답했다. 분위기가 너무 바뀌어서 내심 놀랐다. 그리고 그는 내게 "미안하다"라고 했다. 아마, 남 앞에서 울지 않는 내가 울며 뛰어나가서 놀랐던 거겠지. 말해놓고도 마음아팠겠지.

      

그러고 나서 신경통증 진통제를 거부하고 싶다고 말했다. 하루 종일 자느니, 차라리 좀 아프고 정신이 멀쩡한게 낫겠다고. 나는 정말, ‘좀’ 아픈지 알고 동의해 줬다. 그게 갈갈이 부서진 유리에 맨살을 가는 것 같은 통증이라는 것을, 그가 떠난 지 한참 뒤 간호팀장님께 들었다. “사람처럼 살다가 떠나고 싶다. 진통제로 누워서 잠만 자다가 떠나고 싶지 않다”라고 말했다고. 그 답다. 그것도 모르고 그 통증을 좀 줄여보려고 찜질기가 식을 때마다 복도 끝까지 가서 데워오는 것을 힘들어했다니. 알았다면 감히 힘들다는 생각조차도 못했을 텐데.

      

슬슬 밥을 먹을 수 없게 되고, 그냥 물 마시기가 위험해져서 누워서도 마실 수 있는 빨대가 있는 물통을 사고, 그 빨대로 빨기도 힘들어하고... 눈에 띄게 약해졌다. 그러던 어느 날, 주치의 선생님의 회진이 끝나고 잠시 나갔다 왔더니 그가 이야기할 게 있다고 했다.


“자기야, 나 이제 더 이상 호흡이 안돼. 새 출발하고 싶어. 도와줘”       


그래, 우리는 약속했지. 아니, 내가 잘난 척하며 편지에 썼지. 난 괜찮다고, 떠나야 하는 순간이라고 판단한다면 결코 나 때문에 통증을 참으면 안 된다고. 하지만 사실은, 나를 위해 오래 참고 견디고 있었던 거였지.

“10년 만이라도, 1년만이라도, 아니 조금만 더 같이 살면 안 돼? 너 이렇게 가버리면 내가 다른 남자 만날 거야!” 잡을 수 없다는걸 너무 잘 알면서도, 애원도 협박도 소용없다는 걸 알면서도…그래도 한번 해봤다.


“자기는 이제 내 덕분에 사랑이 뭔지 알아서, 사랑 없이 살기 어려울 거야.

다른 남자 만나도 괜찮아. 죽어서만 내 옆으로 오면 돼. 오래오래 건강하게 마음대로 살다가 와.

시간은 중요하지 않아. 기다리고 있을 테니 아무 걱정하지 마. 그때 만나서 다시 천년만년 같이 살면 되지”


서로 껴안고 울었다. 그가 울면서 “미안해”라고 말하고, “자기가 뭐가 미안해, 뭘 잘못했다고. 괜찮아, 난 괜찮아”라고 답했다. 억울하지 않냐고 물어봤다. “억울하지, 이제야자기랑 잘 살아보려고 했는데. 그래도 어쩔 수 없는 일이잖아”라고 도튼 노인처럼 말했다.

    

주치의 선생님이 나가신 후 간호팀장님께 물었었다는 걸 나중에야 들었다. “이게 바로, 준비해야 한다는 그때인가요?"라고. 자신의 몸상태에 대해 정확히 인지하고 있었던 것 같다. 내게 어떻게 말할까를 얼마나 많이 시뮬레이션을 해봤을까. “호흡이 안돼”와 “새 출발”은 참, 오래오래 고른 단어인 것 같다. 그간 이별의 순간이 왔을 때 어떻게 말해야 할지 그 많은 책들을 읽으며 준비하고 있었던 걸까. 나는 바보같이 협박이나 하고 제대로 표현도 못하고, 미안하다는 말에 대해 고마울 뿐이라는 말도 못 한 것 같은데.

그가 말하는 '다시 만나서 천년만년 같이 살자'는 말에 홀라당 넘어가서 마치 금방이라도 다시 만날 수 있을 것처럼, 정말로 다시 만날 수 있을 것처럼, 그를 보내줘야 한다고 잘 보내줄수 있다고 생각했다.

      

모든 가족을 불러 마지막 인사를 했다. 유산도 입장을 밝혔다. 친구 동료들은 저번 입원 때 봤으니 됐다고 했다. 수목장을 하자고 했었으나 막상 국립수목원을 알아봤더니 가족장은 다 찼고, 제2 수목원을 보령에 짓고 있다고 했으나 너무 멀다고 별로라고 했다. 결국 다른 곳으로 정하고, 동생네와 함께 의견을 모아 영정사진도 골랐다. 병원에서는 마지막에 입고 갈 옷을 골라두라고 했다. 아무거나 상관없다고 했다가, “자기가 좋아하는 옷을 입고 나가는 모습을 보면 가족들이 마음이 좀 낫다고들 하신대”라고 했더니 옷과 모자를 골라주었다. 하지만 딱히 그렇지는 않았던 것 같다.


이렇게 차근차근, 헤어짐을 잘 준비하고 있다고 생각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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