brunch

You can make anything
by writing

C.S.Lewis

by 푸른 나무 Nov 11. 2024

15. 우리 약속대로, 꼭 다시 만나자

병원 1층에는 작은 성당이 있다. 산소통을 단 휠체어를 타고 1층을 한 바퀴 돌고 나면 손으로 성당을 가리켰다. 십자가 앞에 잠깐 세워주면 손을 모으고 기도를 하곤 했다. 며칠간 밤에 잠을 잘 이루지 못했다. 수면제를 맞고도 자주 깼다. 병실이 답답하다고 밖으로 나가자고 해서 종종 침대를 끌고 간호사실 앞의 넓은 휴식공간으로 끌고 나갔다. 돌이켜보면 이 넓은 공간도, 환자가 침대에 누운 채 침대를 끌고 나갈 수 있게끔 설계된 휴식공간이나 1층 정원도 모두 환자와 보호자에겐 소중했다. 마지막이 다가올수록 병실이 답답해지는지도 모르겠다.      


그날 아침은 뭐랄까 대지에 새 생명을 불어넣는 봄이 오면 기적이 올지도 모른다는 괴이한 기대 때문일까, 봄을 미리 맞이하자며 오리털 파카를 입히고 모자와 목도리 이불로 꽁꽁 싸맨 다음에 침대 채로 1층 정원에 나갔다 왔다. 어제 사둔 케이크도 먹고 싶다고 해서 간호사실 앞에서 먹었다. 작은 조각케이크이지만 하나를 다 먹었고, 맛있다며 내게도 한입 나눠줬다. 그 모습을 보고 간호사 선생님들이 부럽다며 내게 커피도 갖다 주셨고, 우리는 실없는 농담을 눴다. 방으로 돌아와서 마침 어제 도착한 물을 쓰지 않는 샴푸와 물비누를 사용해 보자며 환자복을 벗고 몸을 닦았다.


'아, 몸에 정말 힘을 못주는구나' 새삼 느껴졌다. 상체만 닦아도 시간이 너무 걸려서, 나도 나지만 이러다가 모든 기운을 다 쓰겠다 걱정되었다. 그래서 "이제부턴 몸을 닦을 때 요양보호사님들 도움을 좀 받아야 될 거 같아. 나도 힘들지만 자기가 너무 힘든 거 같아." 원체 깔끔하고 다른 이들에게 맨몸을 보여주는 걸 싫어하다 보니 지금까지 요양보호사분들을 부른 적이 없었지만, 이제 본인도 안될 것 같은지 다음부턴 그러자고 동의했다.


그런데 엉덩이 쪽이 붉어 보였다. 자세히 봤더니 껍질이 벗겨져 있었다. "간호사님, 이거 혹시 욕창 아니에요? 그렇게 오래 누워있었던 것도 아닌데 왜 이런 거죠?" "아직 욕창은 아니고요, 바로 전 단계네요. 잘 발견했고 이제부터 잘 관리하면 되세요. 엉덩이에 마찰을 줄여주는 패드를 좀 붙여야 할 거 같아요" 옆에 있던 보호사분은 병원엔 없으니 가루로 된 후시딘을 사 와서 뿌리는 게 좋을 것 같다고 조언했다.      


한바탕 번잡했다가 모두 나가신 후 그가 아주 낮은 목소리로 말했다.

"자기야, 나 너무 쪽팔려 “

"지금 그게 문제야? 욕창 생기면 진짜 힘들다던데. 좀 쪽팔리자. 응?

나 약 사러 다녀올게, 오면서 딸기케이크도 사 올게 “     


이때 나는 처음으로 독단적인 결정을 그에게 강요했다. 왜 그랬을까. 지금도 잘 이해가 되지 않는다. 그의 마음을 먼저 살폈어야 했는데 몸만 살폈다. 며칠 잠을 못 자서 정신이 나갔던 걸까. 그는 소변줄도 싫다고 끼지 않고 버티고 있었는데 그런 그에게 기저귀를 차라고 하다니.


그래서, 저 말이 그가 내게 한 마지막 말이 되었다. 아마도 그는 이때 떠나야겠다고 줄을 놓았던 것 같다. 내가 조금만이라도 차분하게 그의 표정을 읽었더라면 얼마나 좋았을까. 하지만 어쩔 수 없었다는 걸, 이제는 안다. 그때는 욕창이 그를 얼마나 괴롭게 만들까 그 생각밖엔 못했으니까.     

 

눕자마자 힘들었는지 바로 자는 거 같기에 당장 가루약을 사러 뛰어나갔다. 다녀와도 자고 있었다. 오후 5시에 주치의 선생님이 회진 돌면서 내일 오전에 보자고 말씀하셨고, 그때까지만 해도 자고 있을 뿐 특별히 다른 현상이 없었다. 그가 깨기를 기다리며 컴퓨터로 작업을 하고 있었다. ‘빨리 마무리하고 이제 새 출발 하겠다는 그의 옆에 꼭 붙어 있어야지’ 하면서. 세상에 이런 바보 같은 짓을 당신들은 하지 마시길. 나는 이 어리석음의 대가를 끝없는 후회로 치르고 있다. 그가 깊이 잠들어 있어 몰랐기를 바랄 뿐이다. 혹시라도, 내가 손이라도 잡고 있어 주기를 바랐었다면 그건 너무 괴로우니까. 아니면 설사 그랬더라도, 내 마음만은 그의 손을 계속 잡고 있었다는 것을 알고 있었으리라 자위하고 싶다.     


밤 9시경이었을까. 그가 갑자기 누구 이름을 부르는 것 같았다. 알아듣기 힘들지만 그의 친구 이름인 거 같아서 “아, OO 씨? 내일 병원에 한번 오라고 연락할까?” 그랬더니 끄덕끄덕했다. 그리곤 밖으로 나가자고 손짓을 해서 침대 채로 휴게공간으로 나갔다. 한참을 누워있더니 또 다른 사람 이름을 웅얼대며 불렀다. “아, XX 씨? 내일 오라고 해?” 그랬더니 고개를 흔든다. “지금 오라고 하라고?” 그랬더니 끄덕끄덕. “너무 늦었는데 내일 연락하자, 잘 거야 이 시간엔,” 겨우 달래서 잠을 재웠다 싶었다. 간호사 선생님들이 눈 좀 붙이라고, 자신들이 이상 있으면 깨울 테니 자라고 해서 간이소파를 끌고 와서 누웠다. 끼무룩 잠들었나 했는데 숨 쉬는 소리가 이상하게 들렸다. 좀 봐달라고 했더니 병실로 돌아가서 썩션을 한번 해보자고 했다. 그러더니 나오는 게 없다면서 “보호자님, 데쓰 호흡 같은데요, 만나야 할 분들 있으면 부르는 게 좋겠어요”라고 하셨다.      


데쓰 호흡? 죽음을 앞둔 호흡? 멍해졌다.

“선생님, 저희 아침에 딸기 생크림케이크 먹었어요...”


새벽 2시, 그 판단을 의심하면서도 가족들을 불렀다.

그들이 도착하기까지 2시간여 동안 나는 그에게 뭔가를 계속 말하고 있었던 것 같은데, 아직도 뭐라고 했는지 기억이 나지 않는다. 가족들이 모두 도착하고, 함께 그의 침대 옆에 둘러앉아 그의 손발과 얼굴을 만지면서 그에게 마지막 말을 들려주며 이별을 준비했다.

나는 깜빡 졸기도 했다. 그가 알아챘는지도 모르겠다.

그래서인가, 숨소리가 조금씩 부드럽게 잦아들더니 아주 편안하게 멈췄다.     


2023년 2월 16일 아침 7시 30분.

그의 세계, 그리고 그와 내가 함께 있었던 세계가 종결되었다.      


너무너무 고생했어.

너답게 끝까지 멋졌어.

우리 약속대로, 꼭 다시 만나자.  

브런치는 최신 브라우저에 최적화 되어있습니다. IE chrome safari