내 나이 올해 75살이다. 내가 왜 이제 와서 지난날의 나를 돌아보게 되었냐, 하면? 80살이 넘으면 지식도 평등, 외모도 평등, 남편 있는 년이나 나처럼 남편 없는 년이나 사는 게 비슷해진다. 아니 차라리 남편 없는 게 낫다.
동네 공원에는 늙은이들만, 그것도 산송장 같은 팔십쯤 되는 할머니들이 벤치를 차지하고 있어 동네 분위기는 노인요양원과 별다를 게 없다. 그들 얘기를 들어보면 아프다는 건 기본으로 세팅돼 있고, 죽어야 하는데 죽지도 않는다는 뻔한 거짓말은 양념이고, 자식 자랑, 손주 자랑을 발음 꼬이고 엉터리 단어를 내뱉으며 한 말을 또 하다가 처음부터 다시 시작해 또 하고 있다. 아유 지겨워. 얼굴은 찌그렁방탱이 오이지, 검버섯은 무당개구리 등짝에다가, 처먹기만 한 배는 임신 팔 개월을 해가지고. 나는 꼴 보기 싫은 건 못 참고 복수를 하는 여자였는데, 이제 나이를 너무 먹었다. 텔레비전에선 인생은 팔십부터니, 백세시대니 떠들어 대지만 주변을 봐도 팔십이 되면 죽거나 요양원에 있거나 아파서 병원에 다니는 것이 일상이 된다. 정신과 체력이 달려 복수도 못 하고 배알만 꼬여 그 자리를 피해 도서관 신착 코너에 가서 제목이 마음에 들면 작가 연보를 보고 편한 자리를 찾아 책을 본다.
이래 봬도 난 쓸데없는 할머니들이랑 다르다. 학창 시절부터 책을 좋아해 도서관을 들락거렸고, 그러다가 도서관에서 일하고 싶어 마흔다섯 살에 공부해서 도서관 사서가 되었다. 지겹고 힘들었다는 말은 피하겠다. 자기 일이 안 힘들다는 사람은 거의 못 봤다. 사서 일이 그럭저럭 잘 맞아서 정년퇴직까지 무탈했고, 퇴직후 바로 도서관에서 자원봉사를 작년까지 했으니까. 30년 했나? 도서관 일은 빠삭하다. 동료 사서뿐만 아니라 도서관 직원들을 관리하는 도서관 관장, 주사까지 알 만큼 안다. 지랄 같은 이용자, 맛이 간 이용자, 시끄러운 여자, 아침부터 밤까지 사는 놈, 간사한 인간, 못된 년, 시기 질투쟁이, 이중인격자 등 아주 많이 알고 있다. 알고 싶지 않은데 몇십 년 일했으니 저절로 알게 된 것일 뿐 나는 이들과 아무 관계가 없다.
그나저나 지난날 이야기를 왜 하게 됐냐고 서두에 떠들고 있었는데…. 나도 늙어서 한 말을 또 하고, 뭔 말을 했는지 금방 까먹는다, 나이 팔십이 되어가면 다 산 거나 마찬가지다. 남자도 필요 없고, 특히 냄새나는 남편과 한집에 산다는 생각만으로 더럽다. 남편은 오 년 전에 죽었다. 홀가분하다. 친구들은 아파서 만나기 힘들고, 지하철이 공짜라 작년만 해도 지하철을 타고 덕수궁을 가곤했는데, 같이 다니던 친구중 하나는 뇌졸중이 와서 불구가 돼 요양원에 있다. 한 친구는 허리 수술을 두 번 해 지팡이를 짚고 동네에서 산책만 한다. 친언니 둘은 죽고, 막냇동생은 아까운 나이에 죽었다. 첫째 여동생은 남편이 아파 병간호한다고 안 만난 지 몇 달이 지났고, 동생의 남편에게 내가 해 줄 게 없어 생사만 확인하고 있다.
자기네 동네에서 벗어나지 못하는 노친네들과 다를바없이 공원 벤치에 앉아 시간만 때우는 신세가 되었다. 그래서 내가 저지른 일들을 떠벌여도 될 것 같아 속에 묻어둔 걸 이야기하려고 한다. 무료하고 무기력해져서 사는 게 너무 재미가 없다. 뭔가 새로운 걸 하고 싶었다.
도서관 다니면서 꿈이 하나가 있었다. 내가 쓴 책. 도서관에 꽂혀 대출이 잘 되는 책. 누구나 자신의 인생은 책 몇 권을 써도 모자란다지만 책을 잘 쓴다는 것은 어렵고, 남들에게 읽힌다는 건 더 어렵고, 인기 있는 책이 된다는 건 운도 따라줘야 한다. 아무튼 죽기 전에, 아직 죽을 나이는 안 됐지만, 팔십이 되기 전에 책 한 권을 쓰고 싶었다. 내 인생이야말로 대하소설 정도는 되지 않겠나 싶다. 텔레비전 뉴스에 나와도 괜찮고 감옥에 가도 괜찮다. 우리나라는 사형 집행을 26년 째 안 하고 있거니와 분명하게 짚고 넘어가지만 내 성질대로 복수하며 살았어도 정당방위였으므로 사형을 당할 이유도 없거니와 사형당하고 싶지 않다.
어차피 나는, 13평 아파트에서 네모난 방에 누워 네모난 하늘을 보고, 밥하기 싫으면 라면과 빵과 커피를 마시며 살고 있다. 꿈과 희망이 없다. 아 참? 알고 싶은 게 있는데, 감옥에서 커피는 주나? 난 커피 없으면 사는 의미가 없는데, 책은 줄 것 같고….