조약돌 도서관 04

by 산너머

작은 도서관보다 반의반도 안 되는 조약돌 도서관을 일 년 다녔다. 우엉은 고추 모종이 나오는 봄부터 털장갑을 끼는 겨울에도 팔았다. 무거운 걸 들고 다니는 것을 극도로 싫어했지만, 우엉을 샀고 제철 과일을 샀다. 싸고 싱싱해서 샀다.

일 년 계약직이라 다시 다니려면 취업 신청서를 넣어야 했다. 팀장님은 재계약하길 바라셨다. 두 달 동안 고민을 했다. 계속 다니고 싶은 마음과 월급 사이에서의 갈등은 결국 월급이 이기고 말았다. 팀장님은 아쉽다며 서류 작업할 일이 생기면 시간제로 도와줄 수 있냐고 물으셨다. 팀장님 자리는 햇볕이 들어오는 창가를 등지고 있는 위치였다. 까만색 재킷 위로 비듬이 하얗게 내려앉아 있다. 내가 괜히 민망해져 팀장님 손을 보니 손톱이 길다. 눈 둘 곳을 몰라 바닥을 보니 바짓단이 뜯어져 있네... 이 정도 직급 있는 분이 청결은 엉망이었다. 그래, 사람은 완벽하지 않아.

“네, 언제든 연락하세요.”

사정상 그만두지만 유종의 미를 거두고 싶었다. 서가 사이사이 먼지를 닦고, 그림 예쁜 동화책을 다시 넘겨봤다. 책상 사이에 있던 하얀 조약돌까지 정이 들었나 보다. 삼십 년이 지난 지금도 떠오른 걸 보니. 그때 내 나이 사십 중반이었다. 두어 번 서류 작업을 하러 조약돌 도서관을 갔다.

“선생님 찾는 이용자들이 많았어요. 왜 그만두셨냐고 다시 오시면 안 되냐고 물으셨어요.”

팀장님은 기분 좋은 말만 내게 전해 주었다.

청소부 그 여자는 보이지 않고, 다른 여자가 청소도구를 들고 화장실을 닦고 있었다. 궁금했지만 물어보지 않았다. 알 게 뭐야. 어디서든 먹고살겠지. 내 앞길도 어디로 가야 옳은지 모르는데...


아침 9시부터 밤 9시까지 일하고, 주말 없이 한 달에 두 번 쉬는 쇼핑센터가 새로운 나의 밥벌이 직장이 되었다. 수입 냄비를 팔고, 수입 도자기 그릇을 팔았다. 들고 나르고 포장을 하느라 팔목에 동그랗게 멍이 들었다.

고객은 일 년 동안 지져 먹고 볶아 먹던 코팅 냄비가 벗겨졌다고 들고 왔다. 수입 비싼 것이 왜 벗겨지냐고 새 걸로 바꿔 달라고 했다. 안 된다고 했더니 일 년 동안 식구가 돼 잘 쓰던 냄비를 내동댕이치더니 매일 전화를 걸어 바꿔 달라며 욕을 해댔다. 그래도 안 된다 했더니 본사에 전화를 걸어 바꿔 달라고 했단다. 본사에서 바꿔줬다.

"네까짓 게 뭔데 안된대. 그러니까 평생 종업원이지."

'냄비바꿔'는 내게 악담했다.


꽃이 다정하게 그려진 부부 커피잔을 사 간 고객이 커피잔 손모가지가 깨졌다고 바꿔 달라고 왔다. 불량품이 아니고 고객님 실수로 깨진 거라 바꿔드릴 수가 없다고 했더니 남편이 눈을 부라리며 삿대질을 했다. 새것으로 바꿔가려고 부부는 용을 썼다. 쇼핑센터가 우직 우직 갈라지도록 소리를 질렀고, 결국은 소비자센터로 커피잔 의뢰가 들어갔다. 불량품인지, 실수로 깨진 건지.

석 달 만에 서류를 받았다. ‘충격이 가해져 파손된 것으로 판단됨.’ 부부는 분이 안 풀려서 내게 정식으로 사과를 받고 싶다며 나를 자르라고도 했다. 해고가 아니고 분명 자르라고 했다. 사과는 했지만, 그들이 원하는 대로 자르진 못했다. 스스로 그만두더라도 그들에게 잘리면 안 되지 않겠나. 나는 쇼핑센터 측에 거짓 반성문을 쓰고 일단락되었다. 쇼핑센터 측은 고객이 소리를 지르면 뭐든 해결을 해줬다. 나 같은 직원은 소비자에겐 물론 쇼핑센터 측에서도 노예일 뿐 인격체가 아니었다. 이기적인 인간들이 모이는 이곳을 4년 동안 오로지 먹고살기 위해 다녔다.


큰아들은 대학교에 다니다가 말도 없이 그만두더니 입대하기 하루 전에 내일 부대에 들어간다고 했다. 큰아들은 내 자식이지만 한심하다. 머리는 좋은데 공부를 안 하고, 무척 게으르다. 무슨 일을 저지르는 게 분명한데 말을 안 한다. 대학생 때 입주 과외 선생을 했는데, 성실하지 않아 삼 개월 만에 그 집에서 나오기를 여러 번 했다. 제대하고 직장이나 제대로 다닐지 걱정이 많다.

큰딸은 호주에 갔다와 직장생활을 잠깐 하다가 결혼을 했는데, 결혼생활이 불안하다. 첫딸을 낳았는데 맨날 이혼한다고 한다. 사위는 잡다한 놀잇거리를 좋아하는 무책임한 인간이다. 딸은 집에만 있는 성격인데, 사위는 밖에서 노느라 바쁘다. 그렇다고 내가 뭐라 해도 고쳐지질 않는다. 겉으론 착해서 다시는 안 그러겠다고 머리를 조아리지만, 일주일이 멀다고 밖으로만 돈다. 술과 방랑벽이 심한 인간이다. 자식을 낳았고, 시집에서 집을 사준다고 하고, 생활비도 대주고 있으니 이혼이 섣부르긴 하다.

남편 복이 없으면 자식 복도 없다더니 내가 그쪽이다. 딸은 시집을 갔고, 큰아들은 군대 가 있고, 막내아들은 고등학교를 졸업했다. 그나마 교육비는 안 들어가고 생활비가 줄었다. 나는 다시 도서관에서 일하고 싶다는 희망을 안고 과감하게 용기를 내 쇼핑센터를 그만두었다.


'냄비바꿔' 전화번호를 적어 놨었다. '부부커피잔' 마누라도 수첩에 찐하게 적혀있다. 쇼핑센터를 그만두고 며칠 후 '냄비바꿔'에게 전화를 했다. 목에 힘을 꽉 줬다. 저음으로 또박또박 말했다.

“냄비? 밤길 조심해라.”

'부부커피잔' 마누라에게도 전화를 걸었다. 가는 목소리로 교양 있게 말했다.

“커피잔? 네 남편이랑 어제 재미있게 보냈어. 우린 참 잘 맞아.”

매일 두 고객에게 번갈아 공중전화 부스에서 전화를 걸었다.

“냄비? 오늘 밤 조심해! 망치로 대갈머리를 뽀사줄 테니.”

“커피잔? 네 남편이 너랑 살기 싫대. 우린 너무 좋아 헤어질 수 없어.”

나의 두 고객은 전화를 안 받을 때가 많았고, 금방 끊었지만, 공중전화만 보이면 끝도 없이 삼 개월 동안 전화를 걸었더니 속에 맺혀있던 것이 조금 풀어져서 전화를 걸지 않았다. 주소만 알면 망치로 머리를 쪼개 놓고 싶었는데, 주소를 알 수가 없어 아쉽다.

'다행인 줄 알아라! 냄비? 커피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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