내가 살아온 인생 중에 행복한 시절이 요즘이다. 빚만 쌓는 남편이라 없어도 괜찮았고, 딸은 직장을 다니며 월급을 가져왔고, 큰아들과 막내아들은 학생이지만 딸이 준 월급으로 학비를 낼 수 있어 그나마 다행이었다. 생활비가 빠듯했지만 일 년만이라도 꿈에 그리던 도서관을 다닐 수 있어 다니는 동안은 행복하기로 했다. 엄마가 행복해야 자식이 행복하고 그러면 행복은 따라오게 돼 있다는 말은 책에도 흔하게 쓰여 있다. 말뿐이고, 글뿐이지만 나 스스로 행복한 인생으로 만들면 그만이었다.
그런데 어떤 여자가 나에게 시비를 걸기 시작했다. 그 여자는 복지관 청소부. 환경미화원이라는 말도 있다지만 그건 나중에 생긴 말이고, 청소부는 청소부지 뭘 미화시키겠다는 거야. 나이는 나보다 비슷하거나 많아 보였다. 요즘 도시 여자들은 나이를 모르겠다. 젊어 보이기도 하고 늙어 보이기도 하고 당최 헷갈린다. 화장실에서 자주 만나게 되어 먼저 인사를 했다. 그 여자는 나를 아래위로 훑더니 비웃는지 웃는지 모호한 표정으로 인사를 받았다. 부지런한 여자였다. 계단 놋쇠가 윤이 나고, 특히 화장실 벽이 반질반질했다. 깔끔한 청소부였다. 붙임성이 있어 아무하고 떠들었고, 특히 2층 도서관 팀장님하고 왕래가 자주 있었다. 팀장님이 워낙 좋은 사람이라서 먹을 게 있으면 이 여자를 불렀고, 나도 같이 불러 다과 시간을 마련해 주었다. 그러고부터 나의 외모를 지적하기 시작했다.
“왜 그렇게 말랐어요?”
“네…. 살이 안 찌네요. 호호호”
나는 마른 편이다. 남편의 사업 실패로 빚에 쫓겨 마음고생이 심했고, 돈을 벌기 시작하면서 살이 더 빠졌다.
“삐쩍 말랐어.”
“요즘 빠졌어요. 헤헤”
살이 찌고 싶지만 그게 잘 안된다. 뚱뚱하기 싫은데 그게 잘 안되듯이 마른 사람은 찌고 싶어도 안 된다. 생긴 게 이런데 외모를 자꾸 지적하면 기분 나쁘다. 뚱뚱한 사람한테 뚱뚱하다고 하면 삿대질이 날아오던지 욕을 먹을 텐데, 마른 사람한테는 말랐다는 지적을 서슴없이 하는 이유가 뭘까? 왜? 왜 그럴까?
“손가락이 엄청 가느네, 반찬이라도 해 먹어요?”
이 싹수없는 여자를 봤나. 빌어먹게 생긴 것이. 나는 속으로만 욕을 하고 겉으로 할 용기는 없었다. 무엇보다 여기서 일 년을 채워야 경력이 쌓이고, 앞으로 계속 도서관을 다니려면 참는 수밖에 도리가 없었다. 그날도 나를 보자마자 외모를 깔아뭉갰다.
“말라서, 환자 같아.”
이런 미친 여자를 봤나. 년이라 해도 되지만 내 입을 더럽히고 싶지 않았다. 무엇보다 자식들에게 부끄러운 엄마가 되고 싶지 않았다. 본인도 깡말랐으면서 누구보고 자꾸 말랐데. 꼭 화장실 청소하는 여자로밖에 안 보이는 것이. 나는 그 여자에게 가까이 가서 조용히 말했다.
“전 엄마를 닮아서 말랐어요. 누굴 닮아 못생겼나요? 엄마를 닮았나 봐요?”
외모 지적을 하면 너는 나한테 밀려. 밀리니까 처음부터 나의 단점을 걸고넘어졌잖아. 네가 먼저 시작했지? 이 어리석은 것아. 속사포를 쏘려다가 말았다. 나는 이에는 이 눈에는 눈임을 알려 줄 계획이니까.
“외모는 타고나는 거예요. 여사님도 어쩔 수 없는 거잖아요. 글쵸?”
나긋나긋 천천히 말하며 어느 때보다 윗니가 다 보이도록 크게 웃어주고 화장실을 나왔다. 그리고 며칠 있다가 미안하다고 사과를 했다. 외모 가지고 그러지 말라 하면서 다이제스티브 과자 한 봉지를 그 여자에게 쥐어줬다.
여자들은 살짝 마른 걸 부러워한다. 그래서 마른 여자를 보면 아니꼬워서 비꼬는 것이다. 마른 건 나이가 들고 생활이 안정되면 찌우기 쉽지만 못생긴 건 고치기 어렵다. 기계로 다듬을 수는 있겠지만, 파를 다듬는다고 파가 아닐 수 없듯이 저 정도로 못생기면 성형을 해도 어렵다. 피부는 거칠고 피부색이 전통적인 황인종이다. 볼살이 폭파여 빈티가 난다. 뼈도 못생겨서 팔뚝도 다리도 어깨 부분도 툭툭 불거졌고, 무엇보다 몸매 자체가 볼륨도 없거니와 균형도 맞지 않는다. 나는 말랐어도 피부가 하얗고 곱다. 살은 안 쪘지만, 볼살이 있어 겨울엔 마른 줄 모르다가 여름이 되면 말라 보인다. 마른 편인 건 인정. 난 인정을 얼른 하는 편이다.
친정엄마는 인정을 안 했다. 타고 난 태생이 그렇고, 6.25를 겪은 사람이라 나랑 세대가 맞을 수 없다는 건 안다. 세상을 원망하든지 내가 언제 그랬냐고 발뺌을 했다. 인정만 하면 내가 다 이해하고 화를 안 내겠다고 해도 듣기 싫어 인상을 구기든지, 모르는 척 딴 데를 봤다. 그래서 친정엄마를 자주 안 만났었다. 멀리 살아서 시간 내기도 어렵고, 다행이었다. 나이 많은 엄마가 오기도 힘들었다. 덜 만나는 것이 서로를 위해 옳았다.
청소부 여자에게 사과한 이유가 있다. 똥을 화장실 벽에 처바를 예정이다. 들키면 안 되기 때문에 친한 척 인사를 했지만 속은 니글니글하다. 그래, 실행에 옮겨야겠다.
시어머니가 치매로 돌아가시기 1년 전부터 자기 똥을 벽에 처발랐다. 큰며느리, 즉 큰 형님이 본인도 미쳐버리겠다고 난리를 쳐서 시어머니를 병원에 입원을 시켰다. 돈 많은 시어머니라 그나마 그렇게 병원에서 일 년을 기저귀를 차고 손발이 묶여 있다가 돌아가셨다.
남의 똥처럼 더러운 건 없다. 나는 똥을 모았다. 비닐에 싸고 또 싸서 밀폐 김치통에 넣어 베란다 창고에 보관했다. 똥을 모으기 전에 복지관 동태를 먼저 살폈다. 20분 일찍 출근하던 나는 30분 일찍 출근해서 복지관을 1층에서 3층까지 돌아다녀 봤다. 아무도 없었다. 청소하는 이 여자만 오전 7시에 출근하고, 8시엔 청소를 다 끝내고 3층 구석진 공간에서 쉰다는 걸 알고 있었다.
1층은 식당과 어르신들 취미 교실이 있다. 식당은 점심만 한 끼 준비하는 곳이라 식당 불은 꺼져 있었다. 치매가 심하지 않은 노인네들과 걸어 다닐 수 있는 어르신들을 위한 취미 교실엔 일찍 온 남자 노인네 두 분이 얘기하는 소리만 들렸다. 문 뒤에서 슬쩍 보니 항상 그 두 노인네였다. 두 주일 동안 세 번 동태를 살피고 나서 나흘 동안 똥을 모았다.
2025년도 지금은 CCTV가 골목마다, 승용차마다 있어서 범죄를 저지르면 금방 잡히지만 1990년대는 거의 없었고, 있다 해도 작동이 안 되거나 화질이 엉망이라 CCTV로 범인을 잡던 시절이 아니었다. 조심해서 나쁠 건 없다. 버스에서 내려 앞쪽 대로변으로 안 가고, 뒤쪽 건널목을 건너 골목으로 해서 복지관으로 들어갔다.
드디어 실천하는 날, 8시 20분에 1층 여자 화장실로 들어가 칸마다 벽에 똥을 칠했다. 화장실은 세 칸이다, 화장실 거울에도 넓게 펴 발랐다. 아무도 들어올 사람도 없거니와 5분 안에 발랐다. 미끄덩거려 포스터물감처럼 발라졌다. 똥을 싸 간 비닐봉지와 비닐장갑, 목장갑은 새 비닐봉지에 넣어 꽁꽁 묶어 복지관을 빠져나와 뒷골목 쓰레기통에 버렸다. 땀을 흘리지 않는 편인데도 겨드랑이로 땀이 흘렀다. 인적이 드문 골목에 서서 온몸을 털어내고 향수를 뿌렸다.
다시 복지관으로 출근하듯 들어갔다. 출근하듯이 아니고 출근했다. 2층 화장실로 들어가 손을 한 번 더 박박 닦았다. 손에 물을 묻혀 머리를 문지르고 옷도 털어냈다. 그러면 베여 있던 구린내가 희석될 것 같았다. 도서관 안으로 들어와 여느 때처럼 청소하고 책 정리를 했다. 8시 53분쯤 웅성거리는 소리가 들렸다. 팀장님이 들어오는데 표정이 일그러져있다. 직원이 무슨 일이에요? 1층 화장실에. 어휴~ 관장님이 한숨을 쉬면서 더럽다고 덧붙였다. 나는 무슨 일이냐는 표정으로 팀장님과 직원을 쳐다본다.
직원과 나는 1층으로 내려갔다. 화장실은 열려있다. 냄새가 라일락 꽃향기처럼 뭉실뭉실 풍겼다. 내 몸에 구린내가 남아 있다 해도 1층은 이미 냄새로 가득 차 아무도 모를 게 분명하다. 일부러 좀 더 서 있어야겠다. 못생긴 청소부 여자가 화장실 안에 있다. 똥 씹은 얼굴로 화장실을 쳐다본다. 그 뒤는 보나 마나 벽에 붙은 똥을 닦아냈겠지. 그날 1층 노인네들이 2층 화장실로 온종일 왔다 갔다 하는 소리가 들렸고, 주말이 지나 월요일부터 그 주 내내 복지관 건물은 어수선했다.
범인은 1층 취미 교실에 오는 어르신 중에 있지 않을까 추측만 난무했다. 그렇다고 누가 이실직고할 거냐면서 일주일이 지나니 암암리에 조용해졌다. 치매가 심해진 어떤 노인네이지 않을까 하는 것 같았다. 인간은 망각의 동물이라 하지 않았나? 학창 시절 교과서에서 본 것 같다. 노인네들도 망각으로 이승을 접어 저승으로 간다.
한 달 있다가 또 똑같이 똥을 그림 그리듯 1층 화장실에 발랐다. 이번엔 이틀 치 똥이다, 노인네들을 모아 놓고 누가 그러셨는지 용서할 테니 다시는 그러지 말라고 했단다. 당연하지. 그 뒤부터 내가 안 했으니 두 번 다시는 그런 일이 없을 수밖에. 당연하지.
못생긴 청소부는 그 일이 두 번 있고부터 한 달 뒤 출근을 안 했다. 들리는 얘기론 쉬었다가 나오기로 했단다. 신경이 곤두서 밥맛이 없단다. 그렇지 않아도 삐쩍 말라가고 있는 게 보였다. 누런 얼굴은 간경화 환자랑 별반 다를 게 없고, 폭파인 볼은 더 파이고, 뼈는 더 불거졌다.
“어휴~ 얼마나 힘들었어요, 그래…. 도대체 어느 미친 것이 그 짓을…. 힘내세요~여사님.”
말끝을 질질 끌어가며 위로했다.
“밥맛이 너무 없어요.”
“그러게요. 뼈만 남으셨어요. 그래도…. 뭐라도 잘 드셔야지요.”
나는 혼자 통쾌했다. 기분이 나아져 밥맛이 좋아졌다. 저녁마다 삼겹살을 구워 먹어 3킬로나 쪘다. 물론 그 당시에는 기분이 풀렸지만 사실 그 여자한테 잘한 건 아니다. 행복해야 한다고 스스로 애를 썼지만, 돌파구가 필요했었다. 어디든 풀어야 했는데, 그 여자가 내 성질머리를 건드렸다. 내가 너무 심했다. 인정한다. 나는 인정을 잘하는 사람이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