중학교는 산길을 구불구불 걸어 정문이 보여도 언덕을 한참 올라가야 했다.
책을 빌려보기 시작한 것이 중학교 때였다. 학교 도서관 안은 전당포같이 사방이 막혀있고, 투명 칸막이에 두 손이 들어갈 만한 구멍이 뚫려있다. 그곳에 책 제목을 종이쪽지에 써서 들이밀면 선생님이 한 권씩 책을 찾아주던 창고형 도서관. 정해진 짧은 시간에만 도서관 문이 열렸다. 교실 건물보다 서른 계단 밑에 있던 창고 도서관을 까만 교복 통치마를 입고 자주 들락거렸더니 책을 찾아주던 선생님이 나를 알아보게 되었다.
“눈이 반짝반짝 총명하게 생겼네.”
책은 좋아하는데 공부는 잘하지 못했다. 그 말에 힘입어 공부를 열심히 했냐 하면 아니다. 1960~70년대 그 시절 학교 방침은 14살 소녀의 자존심 따윈 나 몰라라 했다. 학교 건물 벽에 공부 못하는 학생 이름을 4절지 도화지에 적어 붙였는데, 나는 거기에 걸리지만 않았다. 내 짝은 시험만 보면 이름이 선명하게 있었다. 짝꿍은 고개를 떨궜고, 책상에 엎드려 울었다. 나는 뻘쭘했지만, 창고형 도서관에서 빌린 책을 꺼내 읽었다. 반납할 날짜가 다 된 것도 아니었다. 짝꿍은 공부는 못했지만, 의리가 있었다. 소갈머리가 바가지인 내 옆에 눈이 커다란 이 친구가 여중 시절 3년을 함께했다.
뜻도 모를 데미안을 빌렸고(읽다가 말았다), 어린 왕자를 빌렸고(끝까지 읽었다), 골짜기의 백합은 계속 대출 중이어서 빌리지 못했다. 여름이 오면 도서관으로 내려가는 비탈진 뜰엔 백합꽃이 만발해 코가 벌름벌름했다. 나는 책을 계속 읽었고, 짝은 문제지를 풀었다. 가을학기 중간고사 벽보엔 짝 이름은 없었다.
중학교 때 책 읽기에 눈을 떠 빛이 났듯이 첫 도서관 일은 나를 반짝반짝 빛나게 했다. 새 회원이 들어오면 종이 대출증을 만들었고, 과도한 친절이 생겨 빤히 보이는 서가까지 따라가 책을 읽고 가라고 의자를 톡톡 쳤다. 노을이 퍼지는 우엉 시장역에서 집으로 돌아갈 버스를 기다리면, 이런 기분이 보람차다 하는 거구나 했다. 도서관에서 계속 일하고 싶었다. 근데, 네 식구 한 달 생활비가 모자랐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