조약돌 도서관 01

by 산너머

노란색 마을버스를 타고 첫 도서관으로 출근을 했다. 버스 정거장 이름은 우엉 시장역이었다. 5일마다 열리는 전통시장이었는데, 내 생애 첫 도서관 직원 되는 날이 하필 장날이었다. 누리끼리한 장판을 깐 매대에 흙을 뒤집어쓴 우엉이 네다섯 개씩 올려져 있었다. 2,000원. 종이상자를 북 찢어 쓴 가격표를 보며 이 고장에 십삼 년을 살았어도 오일장은 처음 와보네, 하면서 대각선에 보이는 복지관으로 발길의 방향을 바꿨다. 도서관은 복지관 2층 사무실 창가 쪽 한 귀퉁이에 놓여 있었다. 8 자 농짝만 한 서가가 네 칸이 있고, 미취학 아동이 보는 동화책이 서가 칸 칸마다 제멋대로 누워 있었다.


어쩌다 보니 결혼 이십년만에 세 아이의 보호자 겸 가장이 되었다. 이런 상태는 내 선택은 아니었다. 수심 가득한 얼굴을 친척 어르신이 보더니, 팔자려니 해야 마음 편하지 않겠냐는 한마디에 정신이 퍼뜩 들면서 천장만 바라보던 몸을 일으켜 세상 밖으로 걸어 나오게 되었다. 세상 밖은 햇볕만 비추는 게 아니라는 걸 알았지만 갑자기 들이닥친 태풍은 앞이 보이지 않았고, 가던 길을 분간하지도 못하게 일 미터씩 눈이 쌓여있었다. 닥치는 대로 허드렛일을 했다.


‘더 나이 들기 전에 사무실에서 깨끗하고 안정된 일을 하려면 공부를 해야겠다.’ 방송통신대를 알아봤다. 사서 과가 확대경을 댄 듯 보였다. 고등학교 졸업장만 있으면 됐다. 등록했다. 이해가 뭐지? 차근차근은 무슨. 그럴 시간이 어딨어. 달달 외워서 급행으로 자격증을 땄다. 교수님이 나 같은 학생만 있으면 교수하기 편하겠다며 취업을 추천해 줬다. 도서관에 다니던 분이 며칠 일하다가 월급이 너무 적다며 그만두었다나. 급하다고 바로 일할 수 있는 사람을 보내 달라고 했다나. 월급이 형편없었지만, 도서관이라고 해서 아이구 좋습니다, 제가 가겠습니다. 했다.


복지관 내 여성가족부 팀장님은 나와 비슷한 연배로 보이는 여자분이었다. 면접도 없이 추천만으로 처음 본 나를 사람 좋은 눈빛으로 바라보셨다. 사무실 귀퉁이에 자리하고 있는, 도서관이라고 하기엔 애매하고 협소했다. 작은 어린이 도서관이 맞겠다.

책은 서가에 아무렇게나 엎어져 있었고, 서가 맨 밑엔 돌이 올려져 있었다. 수석은 아니지만 예쁘장하게 생긴 냇가 돌이었다. 팀장님이 돌을 좋아한다고 했다. 주말이면 남편과 냇가에 가서 돌을 살펴보는 게 취미라고 한다. 자연을 집에 데리고 오면 안 될 것 같아 딱 한 개씩만 가져온단다. 그래서 여기에 몇 개 갖다 놓았다고 출근 첫날 이야기해 주셨다.

책을 볼 수 있는 낮은 책상이 몇 개 있었다. 책상 사이에 나무 상자를 놓고 하얀 조약돌이 사각 통에 소복하게 쌓여있었다. 그래, 오늘부터 여긴 조약돌 도서관이다. 나는 냇물이 흐르는 길로 동요를 부르며 걸어가는 일곱 살 동심이 되었다. 먼저 책을 배열 순서대로 정리했고, 책 윗부분이 손가락 거스러미처럼 너덜거리는 것은 테이프로 붙였다.


무조건 미소를 지었다. 복지관 직원들에게도, 책을 빌리러 오거나 책을 보러 오는 보호자나 아이들에게 진심으로 미소를 머금었다. 도서관 일이 좋았다. 좋은데 미소를 안 지을 이유가 없었다. 서가에 있는 동화책을 거의 다 봤다. 시간이 많았다. 월급을 조금 주는 만큼 한가한 곳이었기 때문이고, 도서관은 책을 보는 것도 일이기 때문이다.


주말마다 아내를 냇가에 데리고 가는 남편. 팀장님 남편도 좋은 사람일 것 같다고 단정을 지은 것도 처음 있는 일이다. 나는 매사가 부정적이었고, 특히 결혼한 남자는 더 나쁜 족속이라고 결말을 내던 때였다.

나는 주부에서 만족도가 높은 제대로 된 사회초년생으로 돌아갔다. 윗물이 맑으면 아랫물도 맑다고 했잖은가. 조약돌 도서관을 차돌처럼 윤기 나게 매일 20분 전에 출근해 청소를 했다.

이용자들이 오면 책 추천도 해 줬다. 그중에서 자주 추천해 준 동화가 ‘용기’라는 책이었다. 강아지가 사는 일도 용기가 필요하다는 내용이었다. 매일 주인을 기다리고 매일 똑같은 사료를 먹는 것도 용기라고 했다.


동화책 내용도 간단하게 정리해서 복지관 사이트에 자주 올렸다. 한 권씩 꼼꼼하게 읽다 보니 동화책 작가가 존경스러웠다. 동화책 작가는 대부분 글과 그림 두 가지를 다 짓고 그렸다. 짧은 글 속에 동심과 재미를 주어야 하고, 간결한 그림 안에 전체 그림이 한눈에 들어오고, 글 내용이랑 어우러져야 한다.

“동구 밖 과수원 길 아카시아꽃이 활짝 폈네. 하~얀 꽃 이파리 눈송이처럼 나~알리네~”

나는 이 도서관에서 계속 일하고 싶다. 사는 일은 내 뜻대로 내 맘대로 되지 않는다. 뭐…. 다 아는 사실 아닌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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