생활고에 찌들어 보이지 않으려 애썼다. 추레해 보이지 않으려고 신발까지 신경을 썼다. 화장하듯 속 안도 분칠을 하고 다녔다. 가식이 과하다고? 맞다. 난 속과 겉이 판이하다.
지 선생은 나이 들고 있는 전형적인 아줌마 상이었다. 옷도 머리 모양도 오십 대 중후반의 아줌마를 떠올리게 한다, 그러면서 야비스러움까지 보태고 있었다.
없었던 일로 치부해 버릴 정도로 나는, 속이 넓지 않다. 오히려 좁은 편이다. 잡아먹고 먹히고는 아프리카 밀림에만 있는 것이 아니다. 질질 짜는 연속극보다는 다큐멘터리를 주로 본다.
못된 구석이 많은 나를 언제나 인정한다. 근데 지 선생은 인정을 안 한다. 똑같은 일을 하면서 일하는 방식이 다를 뿐 틀린 게 아니고 다른 건데, 지 선생은 계속 나를 갈궜다. 무언의 실랑이를 일 년 넘게 했다.
“강 선생님네 아파트 임대 아파트죠?”
지 선생은 직원들이 있는 자리에서 대놓고 물었다. 대답 대신 굳어진 얼굴로 상대방을 쳐다봤다. 지 선생은 아무렇지도 않은 듯이 표정을 바꾸더니 화제를 돌렸다.
“사법고시가 얼마 남지 않았어요. 아들이 공부하고 있어 발소리조차 조심하고 있어요.”
“지 선생님은 곧 변호사 어머니가 되겠네요. 부러워요. 우리 아들도 올해만 재수하고 원하던 법대에 들어가면 좋겠는데….”
“공부를 그렇게 잘하면서 뭔 걱정을 해요. 아하하핫 ”
크게 웃고 지랄이다. 웃음소리도 듣기 거북해 그 자리를 피했다.
큰아들은 회계사 시험을 한번 봤는데, 시험을 보고 와서 땡삐 같아졌다. 뻔하다. 돌아치기만 했는데 될 리가 없다. 제때 졸업이나 하면 좋겠다.
그날부터 사서 선생들이 나를 깔봤다. 내 가슴은 가뭄 든 논처럼 쩍쩍 갈라져 균열이 생겼다.
‘변호사 어머니가 되기 전에 죽여버려야겠다.’
신발장에 넣어 둔 망치를 다시 꺼냈다. 그러기 전에 지 선생 집 주변을 지질학자처럼 탐색하러 다녔다. 버스에서 내려 지 선생 아파트까지는 동선이 짧았다. 곽 선생은 연식이 오래된 연립에 살았고, 인적 드문 공원길을 한참 지나야 해서 ‘곽 선생 죽이기’ 작전에 성공했지만, 지 선생 집 주변은 빈틈이 거의 없었다.
버스에서 내려 모퉁이를 돌아가는 20미터가 한계선이었다. 코너를 도는 지점에 아파트 이름이 새겨진 간판이 있었다. 내 몸을 숨길만 한 크기였다.
지 선생이 야간연장 하는 날을 기다렸다. 비가 오거나 눈이 오는 날을 잡아야겠는데, 이번 복수는 잘못하면 실패로 끝날 게 분명해 보였지만 망치를 가방에 넣고 다니며 기회를 노렸다.
전국적으로도, 이 지역에서도 살인사건이 나서 그런지 버스정류장에 남편이나 아들이 지 선생을 마중 나와 있었다. 남편 복과 자식 복이 있구나. 그 모습을 보며 간판 뒤에서 망치를 꺼내지 못하고 물끄러미 쳐다만 보길 몇 번. 이런 내가 한심스러웠다.
버스, 승용차, 승합차, 트럭이 그 나름대로 소리를 내며 지나간다. 한심스러운 나를 추스르고 달려오는 버스를 세우고, 입을 크게 벌린 버스 안으로 들어와 버릇처럼 앉는 네 번째 자리에 풀썩 앉으며 한숨을 쉬었다.
‘이번 복수는 실패로 끝났구나.’
지 선생 아들은 사법고시에 세 번이나 떨어졌다. 그러더니 공부한다는 핑계로 은둔형 외톨이가 되어 방에서 나오지 않는다고 한다. 지 선생은 빈방처럼 표정이 비어있고 노가리처럼 말라갔다.
큰아들도 회계사 시험을 포기했다. 은둔형은 아니지만 몇 개월 방황하더니 직장에 들어갔다. 툭하면 안 깨웠다고 신경질을 내고 출근을 한다. 다니기는 다니지만, 월급은 얼마를 받는지 모른다. 막내아들은 월급을 받으면 내게 갖다 줬다. 딸은 집에서 영어번역을 하기 시작했다. 손녀를 돌보며 하는 일이라 그런대로 만족하는 것 같다.
1~2년 후엔 다른 도서관으로 발령을 해 준다더니 4년 되던 해에 원하는 도서관을 지원하라고 했다. 정년퇴직을 일 년 남기고 원하는 도서관으로 발령을 받게 되었다.
지 선생도 육십을 바라보고 있어서 밀가루 반죽처럼 늘어진 얼굴로 조용히 일만 했다. 변호사 어머니가 되기 전에 죽이려고 했는데, 낌새를 봐선 변호사 어머니가 되긴 그른 것 같다. 아들 이야기는 전혀 하지 않고 나만 조용히 미워했다.
정 선생한테 들었는데. 지 선생 아들은 은둔형으로 굳어져 방에서 나오지는 않고 엄마하고 말도 안 한다고 한다. 엄마의 기대가 너무 커 그 부담감이 흙 가마니가 되어 가슴을 짓눌렀겠지. 잘난 척 오지게 하더니... 내 맘이 오지다.
큰아들에게 회계사 시험 그만두고 네 밥벌이나 하라고 했다. 월급을 갖다 주면 좋겠지만 내 아들을 나는 안다. 누굴 먹여 살릴 주제가 안 된다. 다행히 월급을 받아 승용차도 사고, 툭하면 해외로 여행을 간다. 보나 마나 여자랑 가겠지. 그래, 그렇게라도 즐기면 다행이다. 사람 사는 게 하루 세끼 밥 먹고, 싸고, 자고…. 특별날 게 없다.
지 선생 아들처럼 은둔형이 아닌 게 천만다행이다. 은둔형이면 그나마 다행이게 자기 엄마를 얼마나 괴롭히겠어. 소리 지르고, 돈이나 달라하고 음습한 눈으로 야동이나 보겠지.