내가 생각해도 나는 괴상하다. 살인하고 나면 더 침착해진다. 평상시보다 루주를 진하게 바르고 출근했다.
도서관 2층 로비엔 유리창이 넓다. 넓은 창으로 먼 산이 보인다. 산에는 오전 햇볕이 깃들고 저녁 무렵엔 산 그늘이 진다. 이 짧은 풍경이 이곳 전체 풍경으로 남아 정년퇴직을 한 뒤에도 그 시간이 되면 아름다운 생각으로 한동안 나를 사로잡았다. 홀가분한 마음으로 저녁 풍경을 보러 갈까 하다가 말았다. 추억은 아름답지만, 기억은 끔찍했으니까.
오전에 한번 오후에 한번 종이컵에 차를 타서 약속이나 한 듯 산을 만났다. 시간은 딱 오 분. 오 분 동안의 짝사랑을 아무도 모를 것이다.
야간연장을 할 땐 짙은 코발트색 밤하늘 아래 산등성이가 진한 보라색으로 보일 때가 있다. 도시 불빛에 반사되어 이런 오묘한 빛을 내는 것 같다. 몽환적인 기분을 나만 알고 지냈다.
가끔은, 어떨 땐 자주. 그날의 비명이 들린다. 가끔은, 어떨 땐 매일. 피 튀긴 내 얼굴이 보이지만 여전히 도서관에서 일하고 있다.
잎이 촘촘했던 그 공원의 잡목이랑 비슷한 나무를 보면 죽어가던 곽 선생 얼굴이 떠올랐다. 당연히 유쾌한 장면은 아니다. 잊고 싶은 기억이지만 일 년에 한 번씩 네 달 동안 디지털 자료실에서 일하고 있다.
살인 사건이 일어나고 경찰들이 한동안 곽 선생 주변을 조사했다. 도서관을 둘러보고 주변 남자들을 한두 명씩 경찰로 불렀다. 조사라고 해 봤자 곽 선생이랑 어떻게 일했고, 이용자들과 관계, 그리고 남자 직원들이나 사이가 안 좋았던 여직원 알리바이를 물어봤다. 곽 선생이랑 아무 탈 없이 지낸 나는 조사하지 않았다. 이 사건이 원한에 의한 건지, 우발적인 살인인지, 살인 중독자가 저지른 건지 알아봤지만 아무것도 나오지 않았고, 결론도 나지 않고, 미제사건으로 처리가 되어 일 년이 지나갔고 또 한 해가 돌아왔다.
도서관 시간은 환해졌다, 어두워졌다 하면서 주변 상황도 두 가지 양상을 띠게 마련이다. 일 처리도 능숙해지고, 이용자 대처하는 능력도 능구렁이가 되었다.
큰아들은 여전히 대학생임이네 하면서 돈이나 쓰고 다니고, 막내아들은 공무원 시험에 합격했다. 속상함과 기쁨, 감사함과 불행도 지그재그로, 갈지자로 일상에 선을 긋는 중이다.
직원과의 관계는 좋지도 나쁘지도 않고 건조하다.
책에 중독된 이용자들은 여전히 그 얼굴로 와서 그 몸짓으로 앉아 있다가 그 태도로 간다. 책에 완전하게 중독된 사람들은 큰 쇼핑백을 들고 와 도서관마다 다니며 대출을 한다. 책 대출 권수가 5권에서 30권으로 늘어나고, 반납 연기도 그 자리에서 해 줘 기본 3주일 동안 책을 볼 수 있다. 지하철역에는 반납함이 놓여 있어 지하철을 오가면서 반납함에 책을 넣어도 된다. 도서관은 어쨌든지 시민들을 위한 공공기관이기 때문에 불편한 점을 의견란에 올리면 회의를 해 시정이 된다. 그러면서 일자리가 늘어났고 이용자들도 편리하게 도서관을 오간다.
도서관은 불특정 다수, 남녀노소, 부자든 가난하든, 아프든 건강하든 공평하게 이용할 수 있다.
문을 열면 공기가 맘대로 들어오듯 내 맘대로 드나들면 된다. 이용자가 있어야 도서관이 돌아가고 이용자가 많아지면 필요한 지역에 도서관을 멋들어지게 지어 개관한다.
“자랑할 게 별로 없어요. 넓은 아파트에 사는 것도 아니고, 돈 잘 벌어다 주는 남편이 있는 것도 아니고….”
이렇게 한탄하고 있으면 정 선생은 긍정적으로 수정해 준다.
“왜 없어요. 큰아들 명문대 다니고, 막내아들 공무원 됐고. 강 선생님 나이에 이런 좋은 직장 다니잖아요.”
그러네, 자긍심은 얼굴로 드러나 똥폼을 잡고 도서관에 앉아 있을 때가 많아졌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