미술관 도서관 06

by 산너머

유영철과 정남규는 어떤 살인 사건을 가지고 서로 자기가 죽였다고 주장을 했다. 2000년대 경기 남부 일대와 서울 근교에서 연쇄살인이 일어났고 이 둘은 살인 경쟁을 벌였다. 십몇 명을 죽인 연쇄살인범들은 꼬리가 길어 잡혔다.


그 뒤 모방범이 유행가처럼 번졌다.

나는 모방범이 아니다. 이 둘이 잡히기 전에 망치를 준비했고 망치를 휘둘렀다. 첫 살인은 망치로 죽인 게 아니고 팔십 넘은 노인네를 밀어서 죽였다. 다시 말해 나는 모방범이 아니고 창조적인 살인범이다. 내 맘대로 했으니 창조적인 살인이라 명명하련다. 내 맘대로.

망치를 준비한 건 그 시절엔 둔기로 인한 살인 사건이 많았기 때문인 건 맞다. 우리나라는 총기는 불법이기 때문에 둔기로 할 수밖에 없다. 어느 나라나 미친년, 놈은 있기 마련이니까.


나의 살인은 나를 무시하는 인간들을 복수해야 분이 풀려서 시작한 일이었다. 젊은 남자가 아니고 여자다 보니 둔기가 필요했다. 큰 둔기는 무거워 집에 있는 망치가 부엌칼처럼 딱 맞았다. 부엌칼로는 왜 안 했느냐고요? 몰라도 너무 모르네. 칼은 한 번에 죽이기 힘들다. 이건 누가 알려준 게 아니고 순전히 내 생각이지만, 칼은 잘못하면 내가 다친다. 아닌가? 신문에서 봤나? 책에서 봤나? 칼로 하다가는 상처를 입게 되고, 급소를 찌르지 않으면 한 번에 죽이기 힘들고, 찌르는 게 불편? 흠. 암튼, 힘겨울 것 같고 망치가 훨씬 쉬울 것 같았다. 핑계 없는 무덤은 없다고요? 좋다. 동기를 말하고 싶었을 뿐이다. 이해할 수 없겠지, 절대. 욕을 해도 상관없다. 맘 내키는 대로 하셔라.


나쁜 인간 1. 곽 선생을 죽이기로 했다. 내가 창조한 망치로.

일단 첫 번째는 곽 선생에게 접근하기. 접근 방법은 친하게 지내기.

아무것도 아닌 일로 따져도 웃으며 미안하다고 했다. 밥 한번 먹자고 했다. 치맥 한잔하자고도 했다. 디지털 자료실 일을 잘 가르쳐줘서 고마운 마음에 사 주고 싶다고 했다. 웃기시네, 잘 가르쳐주긴. 한 번 이상 물어보면 개지랄을 떨었다. 그러나 '곽 선생 죽이기' 작전명이 떨어졌기 때문에 완전무장을 하고 작전에 돌입했다.


곽 선생은 노처녀였고 혼자 살았다. 친구도 없고, 형제자매하고도 왕래가 없는 것 같았다. 맨날 ‘혼자 떠나는 여행’ 책만 들여다봤다. 도서관 직원들하고 돌아가며 싸웠다. 다들 곽 선생 때문에 언성이 높아졌고 곽 선생과 일하기 싫어했다. 근데 희한하게 이용자하고는 안 싸웠다. 곽 선생은 자기 편리한 대로 감정조절이 되는 사람이었는데, 유별나게 나를 만만히 본 게 틀림없다.


두 번째 작전은 곽 선생 집 주변 탐방해 보기.

곽 선생 집에 가려면 버스에서 내려 300미터를 걸어가야 했다. 그 길 왼쪽엔 초등학교 오른쪽엔 공원이다. 야간연장을 하고 버스에서 내리면 가로등이 있긴 한데, 양쪽으로 느티나무와 플라타너스 가로수가 두 줄로 나란히 있고 잡목이 울창해서 강간이 일어나도 모를 정도였다. 공원 끝엔 공중화장실이 있는데, 살인 사건이 일어날 것같이 음습했다.


세 번째 작전은 나를 믿게 만들기.

사생활을 지어서 곽 선생님에게만 말하는 거예요. 비밀이에요. 자식은 있지만, 남편은 죽은 거나 마찬가지라고 했다. 무척 외로운 사람이라고 강조하면서 때를 기다렸다. 그때가 곽 선생이 야간연장을 할 때를 말하는 거다.

점심시간, 맥도널드에 가서 햄버거를 사 주며 상전처럼 챙겼다. 가져오고, 잘라주고, 음료수도 앞에 놔주고, 쓰레기도 치웠다. 한 달 후에 곽 선생은 종합자료실에서 야간연장을 한다. 한 달 후엔 곽 선생 제삿날이 될 것이다.


작전이 실행되던 날, 공원에는 나뭇잎이 울창해서 계획이 순조로웠다.

밤 9시 30분부터 제일 어두운 잡목 뒤에서 곽 선생이 지나가길 기다렸다. 9시 42분에 버스가 한 대 도착하고 짧은 단발머리, 안짱다리 곽 선생이 내렸다.

망치를 꺼내 뒤에 감추고 나무 사이에 몸을 감췄다. 몸이 감춰진 나무로 곽이 걸어온다.

이때다. 팔의 길이대로 높이 들어 있는 힘껏 머리를 내리쳤다. 빡! 소리가 나자마자 곽은 소리를 질렀다. 그렇게 크게 지르진 못하네. 곽은 뒤를 돌아보면서 그대로 넘어졌다. 다시 망치를 치켜들어서 한 번 더 내리쳤다. 빠악! 피가 사방으로 튀었다. 곽은 눈깔을 까집더니 두 팔을 올리면서 바들바들 떨었다.

“씨발! 그만 족쳐!” 그동안 하고 싶었던 말을 있는 대로 목에 힘을 주며 이빨을 깨물었다. 한 번 더 머리를 정확하게 내리쳤다. “죽! 어!” 한 번 더 힘껏 박았다. 목에서 쇠 맛이 났다. 못을 박듯 네 번을 박았다. 머리가 함몰되는 느낌이 손끝에서 머리까지 뭉컥! 전해졌다.


뛰어서 공원 끝 화장실로 들어왔다. 거울에 비친 얼굴과 팔에 피가 튀어 영화에서 보던 장면이 그대로 보여 영화를 보고 있다는 착각이 들었다. 검정 계통의 헌 옷을 입고 있어서 몸에는 뻘건 색이 보이지는 않는다. 일부러 이런 색 옷을 입었다. 화장실에서 장갑을 벗고 얼굴과 팔을 닦고 연립주택단지 골목을 삥 돌아 버스 정류장으로 왔다. 마을버스가 와서 무조건 탔다. 인적이 드문 곳에서 버스를 갈아타고 무사히 집에 도착했다.


라운드 면티와 바지를 벗어 화장실에서 태웠다. 한꺼번에 태우면 연기도 많이 나고 냄새가 날 것 같아서 가위로 잘라서 조금씩 나눠 태우고, 변기에 넣어 물을 내리고 또 태워서 똥 내리듯 시원하게 내리길 반복했다. 나는 이럴 때 머리가 잘 돌아간다. 면 소재라 잘 탔고 금방 탔다. 신문지랑 적절하게 섞어 태웠다.

환풍기를 틀어 샤워하면서 화장실 청소를 40분 동안 했다.

집엔 아무도 없었다. 큰아들은 나갔다 하면 늦게 들어오던지 안 들어온다. 작은아들은 공무원 공부를 하느라 자정이나 돼야 들어온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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