미술관 도서관 09

by 산너머

살인을 저지른 소설 ‘빅핏처’의 벤처럼 살고 싶다. 완전범죄를 저지르고, 신분을 조작해 다른 도시로 떠나 새로운 삶을 성공시키는 소설 주인공으로 나는 나를 포장했고, 나를 발전시키기로 한다. 대단한 발전을 하려고 공부를 하거나, 노후대책에 필요한 취미를 하거나 하진 못했다. 쓸데없는 생각만 조금씩 고쳐먹었다. 이 소설의 주인공은 변호사에서 사진작가로 완전하게 삶을 갈아타게 된다.


만 60을 바라보는 나이가 일 년 남았다. 그니까 정년퇴직이 딱 일 년 남았다.


가려움증이 생겼다. 공교롭게도 이 도서관으로 발령을 받으면서 갱년기가 출발했고 몇 년째 걷고 있다. 신경을 몹시 쓰는 날은 밤새 가려워 잠을 설쳤다. 두피가 피가 나도록 가렵더니 흰머리가 덮쳤다. 흰머리가 나 여기 있소, 표시를 내도 가려움증이 심해 염색을 할 수 없었다. 보는 사람마다 흰머리 탓을 했다. 흰머리가 뭔 잘못을 했다고 야단을 치고 혀를 찼다. 특히 엄마가 나를 반가워하기 전에 흰머리를 반가워했다.

“머리가 그게 뭐냐? 동네 창피해. 윗집 딸은 머리가 까맣고, 짧게 머리를 했는데, 길게 그게 뭐냐? 쯧쯧. 에휴! 남부끄러워!”

엄마는 긴 단발 탓을 하면서 남과 비교를 한다.

생각 고쳐 먹기 1단계는 '남과 비교하지 않기'로 한 내게 염장을 질렀다.

엄마에게 갱년기가 오면서 두피가 너무 가려워 염색을 하지 못한다는 설명을 스물다섯 번은 했다. 짧은 커트 파마머리는 누구나 하는 머리고, 나는 얼굴이 작고 목이 길어서 긴 단발이 훨씬 낫고, 부처 머리통 같은 아줌마 머리는 질색이라고 삼사십 번이나 말했다.


2단계는 반찬 '간단하게 만들어 먹기'로 했더니 밥때가 와도 편하고, 재료의 맛이 살아있었다. 하루 한 끼는 빵이나 달걀, 과일로 간단하게 먹었더니 입맛에 맞았다. 하루 세끼 밥하기도 귀찮았다. 재료도 많이 살 필요가 없고 그때그때 먹고 싶을 걸 소포장으로 샀다.

“순희네 가면 먹을 게 없어. 냉장고가 텅 비었어.”

엄마는 올케와 오빠에게 흉을 봤다. 그래서 올케는 내가 살림을 못 하는 줄 안다. 순희는 멋만 부리고 살림을 안 하는 걸로 화전민 마을에 소문이 나 버렸다. 자기 자식을 흉 덩어리로 만드는 엄마가 짜증이 난다.


3단계는 하루하루 '편하게 살기'로 돌입했다. 큰아들이 안 들어오든, 월급을 안 갔다가 주든 신경을 접었다. 막내아들이 갖다 주는 월급은 꼬박꼬박 저축을 들어놨다. 내 월급을 가지고 형편에 맞게 살기로 했더니 비싼 가방과 옷도 필요하지 않았다.

"해외여행이 늘어나 공항에는 많은 여행객이…."

이런 형편에 맞지 않는 자랑 뉴스는 돌려버렸다.

가진 돈에 맞게 살기. 누구에게나 주어진 하늘 보기, 땅에 아무렇게나 핀 꽃 보기, 공짜로 빌려주는 도서관 책 보기, 상대방이 화를 나게 하면 일기에 욕 쓰기, 그리고는…. 응징하기, 죽이기.


대한민국에는 실종자가 많다는 뉴스를 봤다. 그중에는 가출도 있겠지만 살인도 많을 것이라고 했다. 의외로 미제사건이 많아서 ‘그것이 알고 싶다’ 텔레비전 프로그램이 인기가 상당하다. 매주 빼놓지 않고 이 방송을 보고 있다. 범인이 누군지 모르고 잡히지 않아서 완전 내 스타일이다.

'빅핏처'도 범인이 잡히지 않는다. 대리만족 살인 소설이다.


원하던 도서관으로 발령이 났다. 신나게 소지품을 챙겨 그 도서관으로 해외여행을 떠나듯 떠났다.

이전 12화미술관 도서관 08