지하철 도서관 03

by 산너머

세 명 중 나이가 제일 어린, 어리다고 해도 사십 대인 최 선생이 연락도 없이 출근하지 않았다. 최 선생은 대충 넘어가도 되는 일을 열 번도 넘게 확인하느라고 좌불안석을 못 해서 직원들이 피곤했다. 성격이 쌈닭처럼 파닥거렸어도 무단결근한 적은 없었는데, 사무실에서는 자료실로 연락이 오지 않았냐고 물어보고 우린 사무실로 연락이 없었냐며 서로 의아해했다.


오후 늦게 최 선생 어머니가 사무실로 연락했다. 수면제를 먹고 자살을 시도했는데 부모님이 발견해서 살아났다고 한다. 직원들은 특히 백 선생은 입 한가득 말을 감추며 일을 했다. 스스로 목숨을 끊으려 했던 최 선생 탓이지 본인 탓으로 돌려질까 봐 무척 조심하고 있었다.

종교색이 유난 맞게 짙었던 백 선생은 근무 중에도 묵주를 손가락으로 돌렸고, 백 선생 책상엔 기도하는 천사 사진이 올려져 있었다. 백 선생 앞에서는 남녀 간의 사랑 이야기도 꺼내면 안 된다. 살인 사건이 뉴스에 올라와 보조직원과 떠들어도 백 선생은 점잖은 표정으로 못 들은 척했다. 그런 사람이 최 선생을 자비롭게 감싸 안을 줄 몰랐다.


나야말로 입 다물고 책에 고개만 박았다. 저쪽이쪽 모르는 일이다. 안 궁금하다, 안 궁금해…. 백 선생은 눈을 감고 묵주만 한 알갱이 한 알갱이 돌리고 있다. 뭘 위해 기도를 하는지 그건 궁금하다.


꽃밭에는 여름꽃이 물러가고 가을꽃이 화단 벽에 다리 하나를 쩍 벌려 올려놓았다.

시립도서관은 대부분 직원용 휴게실이 없다. 말로만 시립이 붙어 대단하게 뭔가를 꾸며 놓은 것 같지만 실제론 그렇지 않아서 전화받을 일이 생기면 화장실로 달려갔다. 여기는 열 번만 걸으면 뒷문이라 철문을 삐거덕 열고 꽃밭에서 전화를 받았고, 꽃 귀에 가까이 대고 노래를 흥얼거리며 도서관 안에서 일어난 황당한 일들을 외면하기 딱 좋은 장소다.


주말에만 출근하는 선생은 자살을 시도했다는 최 선생 이야기를 듣고 주중에 도서관에 들러서 백 선생과 창고 겸 휴게실에 들어가 한참 얘기를 했다.


좌불안석을 못 하던 최 선생. 종교색 짙은 백 선생, 이간질쟁이 주말 선생. 셋은 내가 봐선 고만고만하게 이상했다. 세 사람을 따로따로 만나 모두의 편이 돼 맞다고 부추겼다. 싸우는 걸 보면서 즐겼다. 내가 지하철 도서관으로 발령 나기 전부터 셋은 할퀴어 상처투성이였다. 백 선생과 주말 선생이 한편이 되어 최 선생을 따돌렸다. 백 선생과 주말 선생도 따로국밥이었다. 서로의 단점을 내게 고자질했다.


내가 이래 봬도 낭만파라 그들이 싸우든지 이간질을 하든지 관심이 없다. 낭만 단어만 봐도 껌뻑 죽는 나는, 화단에 코스모스꽃이 찰랑거리고 느티나무 가로수가 가을 물을 발그스름하게 머금는 걸 보면서 누가 자살을 하든, 누가 묵주를 돌리든, 주말 선생이 파르르 떨며 최 선생을 탓하며 궁지에 몰아도 상관없다. 줄줄이 피는 가을꽃을 보며 삼 개월 남은 정년퇴직만 떠올렸다.

먹는 걸 중요하게 여기지는 않지만, 쉬는 시간을 쓰는 게 중요한 점심시간이 되면, 잼을 바른 식빵을 커피와 후딱 먹고 사과를 으적으적 씹으며 무사히 퇴직하는 날만 떠올리면 되지 신경 쓸 필요가 전혀 없다.


근데…. 젊은 사람이 왜 그리 마음이 약해. 자살이라니 끔찍하긴 하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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