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나는 영원한 일벌인가?

기회와 성장을 위해 떠나는

by 이상옥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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새로운 여왕벌이 탄생할 때, 기존의 여왕별을 비롯하여 벌집에 거주하던 절반의 벌들이 무리를 지어 떠난다. 수만 마리의 벌들이 순식간에 누구의 통제도 받지 않은 채 함께 날아간다. 그들은 더 작고 어린 벌들과 새로운 여왕에게 먹이로 가득한 집을 내어 주고 떠난다




무리 지어 날아가는 벌들이 빚어내는 소리는 황홀하다. 무리는 정확하게 어디로 날아가야 할지 알지 못한다. 기회와 성장을 찾아 떠난다, 그리고 수백 미터 떨어진 곳에서 나뭇가지를 발견하고는 밀집된 공 모양으로 뭉쳐 서로의 온기를 유지한다. 그리고 정찰대를 파견해서 80제곱 킬로미터에 달하는 지역을 탐색하며 벌집을 지을 새로운 장소를 찾는다.


무리는 며칠 안에 새로운 거처를 정해서 새로운 벌집을 지어야한다. 아니면 모두 죽음을 맞이할 것이다.

실로 용감한 도전이 아닐 수 없다. 벌들은 협력과 질서, 관계를 통해 아무런 지도 없이 거처를 옮기는 도전을 감행한다. 이러한 성장의 노래가 없다면 벌집은 언젠가 숨이 막혀 시들어 버릴 것이다. 그리고 바로 지금, 많은 이가 비슷한 경험을 하며 살아가고 있다.


최근 일주일을 어떻게 보냈는지 모른다. 일주일 내내 아침 7시부터 저녁 10시까지 도서관에서 제안작업 3건을 마무리지었다. 도서관에서 문닫아야 한다고 쫒겨난 것은 처음이다. 어떨 때는 작업에 집중하느라, 5시간마다 연장해야하는 것을 잊어버리고 있다가, 내가 앉아있는 자리를 예약하고 들어왔다가, 너무 열심히 작업하는 모습을 보고, 슬그머니 다른 자리를 알아보는 사람도 있었다. 어쨋든 식음을 전패하고 작업한 덕에 무사히 3건의 제안작업은 마무리되어 제출이 완료되었고, 난 곧바로 탈진하였다. 기회와 성장을 위해 떠나는 나의 긴 여정은 꿀벌과 같은 삶이 아닌가 생각하게 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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일하는 벌, 줄여서 일벌은 남자일까? 여자일까? 쉬운 질문같지만 어느 누구도 쉽게 대답하지 못한다. 나도 처음에는 주로 수벌이 일하고, 가끔 암벌이 도와주지 않을까 싶었다. 하지만 조금 더 알아보니, 우리가 알고 있는 상식과는 전혀 달랐다.


결론부터 말하자면 일벌은 모두 암벌이다. 꿀벌 세계에서 일을 하는 벌은 모두 암벌이며 수벌은 교미 외에는 태어나서 별다른 일을 하지 않는다. (솔직히 수벌이 너무 부럽다)


꿀벌 세계에는 3종류의 벌이 있다. 일벌, 수벌, 여왕벌.


암벌인 일벌은 평생 다양한 역할을 한다. 처음에는 청소부 역할을 한다. 태어나자마자 자신이 태어난 벌방을 청소하며 가볍게 일벌로서의 역할을 시작한다. 청소부가 끝나면 간호사가 된다. 어린 일벌은 로열젤리를 생산해 애벌레에게 먹이는 역할을 한다. 조금 더 크면 이제부터는 배 마디에서 밀랍을 생산해서 자신들의 꿀벌 왕국을 짓는 건축가가 된다. 그 이후에는 군인이 되어 집 안팎을 지키고 태어난 지 20여일이 지나면 바깥에 나가 꿀과 꽃가루를 수확하는 일꾼이 된다.


이렇게 죽으라고 일만 하다 보면 그들의 날개는 닳고 헤져서 더는 날 수 없는 지경이 된다. 꿀벌은 1초에 30번의 날갯짓을 한다고 한다. 그렇게 닳아버린 날개로 인해 꿀벌은 더는 날지 못하고 죽음을 맞이하게 된다. 평생 일만하다 죽은 일벌이 암벌이라니 놀라운 꿀벌의 세계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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일벌이 말 그대로 죽어라 일만하도록 태어났다면 수벌은 그와는 반대다. 큰 덩치에 비해 할 수 있는 일이 거의 없다. 집 청소, 정찰, 경비, 꿀 수확 모든 걸 일벌에게 맡기고 수벌들은 그들만의 공간(일명 Drone zone)에서 여왕벌이 나올 때까지 상시대기한다. 마치 클럽에서 밤마다 아름다운 여인이 나타나길 기다리는 남자들처럼.

그들의 아름다운 여인 여왕벌이 나타나면 죽을힘을 다해 쏜살같이 달려간다. 아니 날아간다. 수벌이 일벌, 여왕벌과 달리 날개가 크고 날개 근육이 발달하고 눈이 커진 이유는 단 한 가지! 여왕벌을 더 빨리 발견하고 더 빨리 여왕벌을 만나기 위해. 인간세계의 백수, 한량처럼 보이는 그들이지만 사실 그들은 꿀벌 세계에서 종족의 다양성을 확보해주는 귀하신 몸이다. 하는 일 없다고 무시하면 안 되는 이유이다. 그야말로 수벌은 꿀빠는 종족인 것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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그럼에도 불구하고, 많은 사람들은 여왕벌처럼 살고 싶어한다. 화려한 몸짓으로 수많은 일벌들이 날아다 준 꿀을 먹으며, 수벌들의 구애를 한 몸에 받고 있으니, 여왕벌은 그야말로 왕족인 것이다. 하지만 여왕벌이 마냥 좋은 것은 아니다. 여왕벌은 하루에 2~3천개의 알을 낳아야 하며 알을 못 낳거나 몸에 이상이 생기면 일벌에 의해 쫓겨난다. 여왕벌이 모든 지휘통솔을 하는 것 같지만 실제로는 일벌들의 입김이 센 편이다. 더 놀라운 것은 여왕벌은 암벌에서만 나온다는 것이다. 절대로 호의호식하고, 한량처럼 살아가는 수벌은 여왕벌이 될 수 없다는 것이다. 그래서 왕벌이란 말을 안 쓰는구나?!


오늘도 성장과 기회를 위해 죽도록 일하는 일벌인 대다수의 사람들에게 희망이 있는 이유는, 여왕벌처럼 화려하게 빛나는 때가 올 거라는 기대가 있기 때문아닐까? 어제는 죽을 거 같더니, 어느새 새로운 날, 눈을 떠보니, 지금 이 순간, 다시 도서관에 앉아 이렇게 글을 쓰면서, 다시 성장과 기회를 찾아 일할 준비를 하고 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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