이사하기 싫은 사람의 선택
10년 넘게 살던 집에서 이사를 가야 할 상황이 생겼다. 주인이 집을 판 것이다. 40년이 넘은 오래된 아파트에서 10년 넘게 살았던 것은 주변 아파트 시세에 비해 비교적 저렴하고, 이사라는 번거로움을 원하지 않았기 때문이다. 그리고 나를 비롯해 가족들의 삶이 주변환경에 잘 적응되어 있었다. 큰 아이는 중학교와 고등학교를 마치고, 대학을 나와 군대를 다녀오고 이제 어엿한 사회인이 되어 있고, 작은 아이도 초등, 중등, 고등을 나와 대학을 거쳐 직장인이 되는 세월을 같이 한 집이다. 하지만 이제 어쩔 수 없이 이사를 해야 한다.
주어진 시간은 3개월, 우선 같은 아파트 단지 내에서 전세를 알아보기로 했다. 같은 평수의 같은 아파트여도 내부 상태나 층수에 따라 가격차이가 제법 있는 편이라, 선택지는 있으나, 나온 물건이 마땅치 않았다. 그나마 나온 물건 중에 같은 동 1층도 있었고, 8층도 있었다. 그리고 평수 작은 다른 동 물건이 나왔다.
한정된 시간에 선택을 해야 하는 상황이라. 고민을 오래 할 수 없다. 1층은 저렴한 반면, 사생활 방해, 바깥 소음, 벌레, 역류, 습한 것 등 많은 불편이 있었고, 층간 소음, 엘리베이터 이용 등 적은 이점이 있었다. 8층은 최근에 리모델링을 해서 비교적 쾌적하다는 이점이 있었으나 가격이 만만치 않다. 적은 평수는 아직 아이들이 출가 전이고, 평수를 줄이기엔 짐이 많다는 이유로 고려 대상에서 제외되었다.
오랜 고민과 식구들의 반대에도 불구하고, 불편하지만 비교적 저렴한 1층을 선택하고 식구들의 양해를 얻었다. 월급쟁이에서 막 독립하여 회사를 설립한 직후이고, 아직 매출이 없는 점, 현재 전세금액 중 일부가 은행 융자로 잡혀있는 점 등을 고려해 가급적 빚을 줄이고자 하는 마음이 있었다.
그런데 변수가 생겼다. 1층을 들어가는 조건으로 가장 불편한 주방을 수리해 달라고 주인에게 요청했는데, 이를 눈치챈 세입자가 나가기로 한 계획을 돌연 취소하고, 그냥 눌러 있기로 한 것이다. 참으로 어이없는 경우가 발생한 것이다. 그런데 더 황당한 것은 세입자가 ‘언제 나간다고 했냐’는 것이다. 차라리 솔직하게 말하고 약간의 사과를 하면 될 일이다. "처음에는 나가려고 했으나, 싱크대도 고쳐준다고 하고, 요즘 전세가 오르는 추세라 다른 집을 얻어 나가는 것도 만만치 않아서 그냥 있기로 했다. 미안하다." 이 정도로 이야기하면 누가 뭐라 하나. 젊은 친구들이 경우가 없다.
이사하는 걸 별로 좋아하지 않고, 귀찮아 해서 별 고민없이 선택하려하니, 이런 일이 벌어지나 생각하던 차에 더 좋은 기회가 생겼다. 하나의 선택지가 사라지니, 다른 선택지가 셋이나 생겼다. 아니 같은 아파트만 고집하던 마음을 바꾸니, 기회가 많아졌다. 조금 떨어져 있는 같은 지역 다른 아파트다. 조금 떨어져 있는 다른 동 같은 평수 아파트는 내가 지금있는 아파트만큼 오래되었지만, 너무 깨끗하고 튼튼했다. 복덕방에서 두 집을 보여 줬는데 한 집은 강아지가 있는 집이라 그런지 집이 어지럽고, 혼란스러웠다 또 다른 집은 젊은 부부가 아이 하나 키우고 있는 집인데 너무 깨끗하고 정감가게 꾸미고 살고 있다.
가격은 서로 간에 차이는 있지만, 맨 마지막에 본 집으로 선택했다. 조금 걷는 수고로움이 현재 세들어 사는 집과 같은 가격으로 훨씬 좋은 환경으로 이사할 수 있는 기회가 생긴 것이다. 그 집은 9층으로 1층이 가지고 있는 불편함이 모두 사라지고, 좀 더 깨끗하고, 큰 도로에서 떨어져 있어 조용하고, 안정적인 분위기마저 들게 한다. 어이없이 선택이 하나 없어지니, 또 다른 기회가 더 좋은 기회로 다가왔다.
역시 무슨 일이든 실패했다고 낙담할 필요가 없다는 것이 또 한번 증명된 셈이다. 실패는 있어도 크게 실망하거나 포기할 필요가 없다. 기회는 언제든, 많이 있으니까.