게으른 자를 위한 변명
한 군데 가만히 앉아 시속 150킬로미터로 달린다고 해서
우리가 조금이라도 더 튼튼해지거나 행복해지거나
지혜로워지는 것은 아니다.
사람이 아무리 느리게 걸어다니며 본다 해도
세상에는 사람이 볼 수 있는 것보다 늘 더 많은 것이 있다.
빨리 간다고 해서 더 잘 보는 것도 아니다.
진정으로 귀중한 것은 생각하고 보는 것이지 속도가 아니다.
사람의 기쁨은 결코 어딘가로 가는 데 있는 것이 아니라
존재하는 데 있기 때문이다.
- 존 러스킨 / 미국 문학평론가 -
나에게는 취미가 몇 개 있다. 어쩌면 취미라기 보다 나만의 놀이이자, 휴식이기도 하다. 가장 큰 것은 도서관에 찾아가 책을 읽는 것이다. 틈만 나면 도서관을 내 집 드나들 듯 찾아가는 이유이기도 하다. 다행히 집 근처에 좋은 도서관이 있었고, 그 이유 때문인지, 이사 온지 17년이 되도록 그 동네에서 살고 있다. 도서관에서는 책만 읽는 것이 아니다. 글도 쓰고, 일도 하고, 멍 때리며 시간도 보낸다. 돈 한푼 안 들이고 이렇게 멋지게 취미활동 할 수 있는 곳은 도서관이 유일하다고 본다. 두 번째는 게임하는 것이다. 축구를 좋아해서 어릴 때는 종이로 만든 축구장에서 프라스틱 볼을 연필이나 볼펜으로 튕겨 놀았으나, 이제는 모바일로 피파게임을 즐긴다. 닌텐도 게임기를 통한 게임도 하고, 플레이스테이션2를 통해 귀무자, 007 등 다양한 게임도 아들과 같이 즐겼다. 이제는 짬짬히 롤게임을 모바일로 즐기는 것으로 여유 시간을 보낸다. 세 번째는 음악감상이다. 학교 다닐 때부터 유독 음악 듣는 것을 좋아해서 팝송, 클래식, 가요 등 장르를 가리지 않고 섭렵해 왔다. LP판도 학교다닐 때부터 모은 것이 수 천장은 되어 보인다. 그러다 보니 자연스럽게 엠프, 스피커 등 오디오 기기들에 대한 투자도 늘게 되었다. 학생 때는 아르바이트로 번 돈으로 태광 에로니카라는 올인원 전축을 사서 들었고, 직장 다니고 월급을 받게 될 때는 돈을 모아 스피커와 엠프를 하나씩 들여놓기 시작했다. 그러고 보니 오디오 기기에 투자한 지도 30년은 족히 된 듯하다. 하지만 나에겐 원칙이 있었다. 음악은 감상하는 것이 목적이기에 소스가 중요하지 오디오 기기는 적당한 수준에서 들을 정도면 된다는 생각으로 과하게 투자하는 것을 자제했다. 그래서 중급기에서 멈췄고, 욕심이 나는 하이엔드 제품이 있으면 비교적 저렴한 중고를 이용했다.
그런데, 최근에 획기적인 제품을 매우 합리적인 가격으로 구입한 것이 있다. 1년 전 실리콘밸리의 엔지니어들이 만들어 전 세계적으로 센세이션을 일으킨 올인원 엠프 ‘WiiM AMP’, 최근에 업그레이드 된 ‘WiiM AMP PRO’도 출시된 바 있다. 애플TV 박스만큼이나 작은 규모의 WiiM AMP는 인터넷 와이파이를 통해 Spotify, Tidal 등 16개의 음원 스트리밍 서비스뿐만 아니라, 고성능 블루투스, USB, TV 연결 등 왠만한 서비스는 다 된다. 그러면서 가격은 50만원, 가히 압도적 성능과 압도적 가성비를 보이는 이 제품을 만든 ‘Linkplay’는 “누구나 고음질의 음악을 쉽고 편하게 그리고 저렴하게 즐겨야 합니다”라는 캐치프레이즈를 실천하고 있다. 수 백만원에 달하는 엠프보다 오히려 음의 해상력과 풍부함이 더 좋았다. 이 제품을 처음 접한 나는 2007년 처음 아이폰을 경험했을 때의 전율을 느꼈다. 이런 것이 혁신이고 혁명이 아닐까?
우리들의 삶도 이렇게 최고의 가성비로 최고의 성능을 낼 수 있다면, 충분히 휴식하고 여유로운 시간을 보내며 삶을 윤택하게 보낼 수 있을 텐데, 오히려 기술이 발전하고 컴퓨터와 AI가 우리의 일을 대신하는 시대에 살면서도 그런 충분한 여유와 휴식을 즐기지 못하고 있다. 오히려 기술이 발전하지 못했던 과거 아날로그 시대보다도 더 각박하고, 여유가 없어 보인다. 일은 더 많이 하게 되고, 어쩌다 찾아오는 여유 시간이 있다해도 충분히 즐기지 못한다. 우리는 왜 여유를 갖지 못하고, 죽도록 일만 하고 살아야 하는가?
일이 좋아서 하는 사람은 별로 없다. 설령 좋아서, 즐거워서 하는 일이라도 일을 하는 순간에는 일종의 노예상태이다. 그렇기에 여가의 첫 번째 목표는 우리를 우리 시간의 주인으로 만드는 것이다. 일할 때는 결코 시간의 주인이 되지 못하기 때문이다. 하지만 여가가 무엇인가? 오락을 뜻하는 걸까? 빈둥거림일까? 스포츠? 취미 활동? 그에 대해 골똘히 생각해 본 사람은 많지 않다.
문명이 발달하고, 정보 기술이 발전하면서 우리는 그만큼 일이 줄고 풍요로운 여가시간을 즐길 줄 알았다. 하지만, 이상하리만큼 과거보다 일은 더 많이 하게 되고, 여유는 좀처럼 늘어나지 않는다. 심지어 부자가 될수록 더 고되게 일하고, 하고 싶은 것을 할 시간이 적어진다.
무엇이 잘못된 걸까? 그리고 우리는 무엇을 원하는 걸까? 아니 나는 제대로 된 여가를 즐길 준비는 되어 있는가? 실제로 마음대로 쓸 수 있는 두 시간, 아니 일주일, 심지어 남은 삶 전체가 통채로 주어진다고 해도, 그 빈 시간에 무엇을 해야 좋을지 잘 모르는 것은 아닐까? 바쁘게 산다는 핑계로 나의 삶에서 여가를 잊고 살다보니, 어쩌다 주어진 시간 조차도 빈둥거리며 보내는 경우가 허다하다. 사실 바쁘다는 것은 자신이 노예상태에 있음을 시인하는 것과 다름이 없다.
경제가 발전할수록 여가 시간이 갈수록 줄어드는 이유는 두 가지 때문이다. 그 하나는 여가 시간이 두루 공유되지 않기 때문이다. ‘게으름에 대한 찬양’이란 에세이로 유명한 버트런드 러셀에 의하면 ”현대 자본주의 체제에서는 일부가 초과 노동을 하고 나머지는 실업 상태로 지내기 때문에 모두가 비참할 수밖에 없다“고 말한다. 모든 사람이 조금씩 나누어 일을 덜 한다면 모두가 행복하게 여가가 공유되겠지만 자본주의 체제에서는 불가능하다는 것이다. 맞는 말이다. 자본주의 체제 하에서는 소수의 누리는 자들이 일과 부를 독식한다. 그리고 공유하고 나눔을 하지 않는다. 그렇다고 모두 똑같이 동등하게 일하고 공평하게 나누자는 사회주의가 현명하다는 말은 아니다. 사회주의 체제 또한 많은 부작용과 불평등으로 실패한 체제이기 때문이다.
두 번째 이유는 탐욕이다. 세계를 지배해온 두 정치 체제는 산업혁명과 결탁해서 더 많은 것을 바라는 지나친 욕심을 만들어왔다. 더 많은 재산, 더 큰 집, 더 많은 자동차, 더 새로운 기술, 더 많은 사물들... 우리는 만족을 모를 만큼 사물에 중독되어 있고, 이런 중독 때문에 지쳐 쓰러질 때까지 일을 하게 된다. 물론 사물은 즐거움을 준다. 나의 영국산 하베스 스피커와 튼튼한 미국산 투미가방과, 최근에 산 WiiM AMP를 좋아한다. 그러나 나를 비롯한 우리는 지나치게 열광한다. 영국의 사상가 제롬은 일찍이 ”우리는 세계를 장난감을 제공하는 공방으로 만들어버렸다.“라고 말했다. 즉 우리는 사치품을 사기 위해 우리의 편안함을 팔아버렸다.
우리는 ‘바쁘다’란 말을 입에 달며 때론 자랑스럽게 말한다. 참으로 미련하기 짝이 없다. 바쁘다는 말은 사실 자신이 노예상태에 있음을 광고하는 것이다.
”바쁜 사람이 사는 것만큼 덜 바쁜 삶은 없다.“ - 세네카 -
역사를 통틀어 특혜를 받는 계급은 자신의 특권을 유지해 주는 것들 중에 빈둥거림을 못마땅해하였다. 그들에게 빈둥거림은 나태함을 뜻한다. 지배계급에 속한 특권층은 그 자신은 여가를 즐기면서도 백성들에게 근면을 권장할 생각으로 신을 앞세워 게으름을 중죄로 다스렸다. 그들은 빈둥거리는 풍토가 왕국을 가난하게 만들까 봐 몹시 두려워했고, 다양한 스포츠나 오락을 즐기며 빈둥거리는 귀족보다 노동 계급의 농땡이를 더 나쁘게 생각했다.
빈둥거림은 과연 덕목인가? 악덕인가? 나는 여가에 대해 그리고 여가의 함정과 부덕함에 대해 더욱 깊이 생각하게 되면서 내 주변을 좀 더 주의 깊게 둘러보기 시작했다. 매일 아침 시작되는 치열한 일터에 걸어가면서, 야근과 주말작업을 마다하지 않는 근면함을 자랑스러워 하면서, 한편으로 이런 나의 삶이 나를 충분히 행복하게 하고 있는가? 좀 더 고민하게 되었다. 지금 이 시점에서 너 나 할 것 없이 일중독을 부채질하는 물질주의에 대항해 당장 우리가 할 수 있는 일은 거의 없다. 그러나 온전한 우리 자신의 시간을 확장한다는 새로운 사고방식은 가능할 것이다. 그 시간을 채우는 좋은 방법을 찾는 것도 가능할 것이다.
내가 생각하는 여가는 결코 물질적인 이익을 바라지 않고, 순전히 그 즐거움을 위해서 자유로이 선택한 것, 빈둥거리고, 깃들이고, 단장하고, 취미 활동을 하는 등 광범위한 빈둥거림을 포함한다. 또한 여가를 누릴 때에는 가치보다는 방법이 훨씬 중요하다. 현명하게 선택한 여가는 짧은 삶에도 깊이를 준다. 느긋하게 있을 때 우리는 가장 치열하고 유쾌하게 인간다울 수 있다. 문제는 시간이 아니라 어떻게 알차게 보낼 것인가이다. 어떻게 치열하게 나태해질 수 있느냐이다.
'가장 큰 기쁨'은 ”아무것도 하지 않고 앉아 있는 것, 또는 쓸데없는 짓을 하는 것"
- 안톤 체홉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