60번째 생일을 맞이하여
자연스러운 식사와 충분한 수면, 꾸준한 운동을 통해 정신력과 체력, 마음챙김을 건강한 상태로 유지하고 정상적으로 작동하는 머릿속의 보상체계와 몰입력을 갖춘 상태라면, 나이는 숫자에 불과하다.
- 정희원 서울아산병원 노인내과 전문의 -
어제로 찐 60이 되었다. 아무리 나이가 숫자에 불과하다고 말하지만, 인생에서 60이란 나이는 무게가 다르다. 우리나라를 비롯한 중국, 일본 등 동아시아에서는 시간의 개념을 십간(十干)과 십이지(十二支)를 조합한 60개의 주기, 즉 육십갑자(六十甲子)로 표현한다. 60세는 이 주기가 한 바퀴 돌아 다시 처음으로 돌아오는 시점을 말하며, 이는 마치 삶이 한 사이클을 완성하고 새롭게 시작된다는 상징성을 띤다. 그래서 환갑은 재탄생이나 새 출발의 의미를 가지며, 과거에는 이때를 축하하며 장수를 기원하는 큰 잔치를 열었다. 그런데 나에게 닥친 환갑은 평상시 맞이하는 생일과 별반 다를게 없었다. 가족끼리 케잌을 사이에 놓고 오순도순 덕담을 담은 일상적인 축하메시지가 전부였다.
서운함보다는 안도의 순간이다. 그만큼 나에게나 식구들에게 60번째 맞이하는 생일은 그닥 특별할 게 없다는 뜻이며, 큰 의미를 부여할 필요가 없다는 것으로 해석되었다. 오히려 그 평범함이 마음을 채웠다. 또 한편으로 나는 지난 삶을 돌아보며 그 이후 새롭게 맞이하는 삶에 대해 진지하게 생각해보는 시간이 되었다.
문득 지난 세월이 떠올랐다. 젊은 날의 서툰 꿈, 가족을 위해 달려온 시간, 그리고 예상치 못한 성공과 실패. 그 모든 게 쌓여 지금의 나를 만들었다. 나를 비롯한 많은 사람들은 사회적인 기준으로 삶을 계획한다. 몇 살에 집을 사고 언제까지는 어느 정도의 돈을 모으며, 무슨 차를 사고 몇 살에는 은퇴를 하겠다는 식이다. 실제로 그렇게 살아온 삶이 대부분일 것이다.
하지만 이 담담한 생일은 내게 질문을 던졌다. 앞으로의 나는 어떤 하루를 살아가고 싶을까? 화려한 목표는 없어도, 아침 햇살에 차 한잔과 함께 책 한 페이지를 넘기고, 동네 골목을 천천히 걷는 그런 소소한 순간들을 더 쌓고 싶다. 젊었을 때처럼 도전적이고 거창한 프로젝트를 호기롭게 시작하는 것보다, 작지만 나의 능력이 최대한 발휘되고 스스로의 자존감이 유지되는 일을 하고 싶다. 농구 코트를 누비고, 맨 땅의 운동장을 차두리처럼 달리지 않아도 주어진 일을 일정 내에 끝낼 수 있고, 남의 도움 없이 일상적인 생활이 가능한 근력이 남아 있으면 좋겠다. 새로운 지식을 쌓는데 게으르지 않고 급변하는 IT 트렌드에 맞춰 꼭 필요한 기능을 배우는데 주저하지 않고 익혀, 젊은 친구들과 지속적인 소통이 가능했으면 좋겠다. 나이들어 사라지는 인간관계를 아쉬워 하지 말고 새로운 관계를 만드는데 적극적으로 참여하여 외롭지 않았으면 좋겠고, 반면에 혼자서도 얼마든지 즐길 수 있는 취미를 만들어 몰입의 기쁨을 지속했으면 좋겠다. 마지막으로 최대한 가진 것을 비우고, 나눔으로서 기쁨이 배가 된다는 사실을 깨달았으면 좋겠다.
사실, 인생은 어쩌면 60부터가 진짜 삶일지도 모른다. 그동안은 나 자신보다는 가족이나 부모 혹은 남을 위해 살아온 삶이 많았다. 내가 원하는 일보다는 사장이나 고객이 원하는 일을 주로 하였고, 내가 번 돈의 대부분은 가족이나 부모를 위해 쓰여졌으며, 사회생활과 비즈니스를 위해 원하지 않은 술과 담배로 건강과 시간을 낭비하였으며, 업무와 인간관계에서 오는 스트레스로 우울, 불안, 수면장애, 만성질환으로 시달렸다.
이제는 충분한 휴식과 주변의 보지 못한 풍경을 볼 수 있는 여유와 아무 생각없이 멍 때리고, 묵상하며, 타오르는 장작불을 바라보며 마음을 비우고, 보고 싶은 책을 마음껏 읽으며 사색을 즐길 수 있는 시간이 되었다. 탐욕, 분노, 어리석음을 유발하는 스트레스에 노출되지 않아도 되며, 인간의 고통과 불행의 근원인 소비자본주의에서 자유롭게 살 수 있는 기회도 생겼다. 이 모든 것은 마음먹기에 달렸다. 60년을 돌아보니, 결국 삶은 완벽함이 아니라 내 마음이 머무는 곳에서 빛난다는 걸 알게 됐다. 이제 그 빛을 따라 조금 더 가볍게 걸어보려 한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