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절망 속에서 우리는 유쾌할 수 있을까?

어려운 시기에 유쾌함을 찾다

by 이상옥


유쾌하지 않다면 살아갈 수 없다. 모든 것이 잘못되더라도 여전히 유쾌함은 남아 있다. 이를 삶의 기쁨 또는 존재의 기쁨이라 할 수 있다. 위로가 없다면 어쨌든 당신은 그저 그런 사람으로 남는다. 인간의 존재는 위로되지 않는다. 유쾌함은 존재하는 것이 아니라 찾는 것이다. - 장자크 상페 -




10살짜리 꼬마의 시선으로 세상을 바라보는 이야기로 유명한 ‘꼬마 니꼴라’의 삽화가 ‘장자크 상페’는 지난 2022년 8월 11일 아흔살의 나이로 세상을 떠났다.


장자크 상페의 어린 시절은 그다지 행복하지 않았다. 그는 어린시절을 “실제로 꽤 끔찍하고 조금은 비극적이었다.”라고 말했다. 그가 아버지라 불렀던 남자는 실제로는 계부로, 생선 통조림과 조림 소스를 방문 판매하는 사람이었다. 그는 술이 세지 않았지만 자주 마셨고, 반주 한 잔 만으로도 완전히 딴사람이 되어 상페의 어머니를 괴롭혔으며, 매일같이 미친 듯한 싸움이 벌어져 어린 상페는 끔찍한 고통을 겪었다고 한다. 어머니는 보잘것없는 통조림 장사보다 더 그럴듯하고 잘 버는 일을 찾지 못하면서 술을 마신다며 남편을 비난했고, 그는 접시를 집어 던지며 요란한 싸움을 시도하였으며, 이웃들은 수군거리는 경우가 많았다.


어린 상페는 오롯이 고통을 감내해야 했고, 그가 유명해진 다음에 이렇게 말했다.


“나는 어린 시절 유쾌한 일을 빼고 모든 걸 다 겪었다. 이런 이유로 나는 유쾌함을 좋아한다.”


그런 그의 유년시절 불행과 상반된 마음가짐이 ‘상페의 유쾌함’이란 철학을 만들어 냈다. 상페의 삽화 속 캐릭터는 수줍음이 심한 데다 겁도 많아 보이지만 깊고 묘한 겸손함을 풍긴다. 꼬마 니콜라를 비롯해 상페의 캐릭터에서 우리의 모습을 확인할 수 있기에 많은 사람들은 그를 사랑한다. 자기도취가 아닌 자신을 용서하는 마음으로 유쾌하게 표현되기 때문이다.


평론가와 독자들에게 상페가 사랑받으며 높이 평가받는 이유는 어떠한 경우에도 매우 긍정적이고 따뜻하게 표현하는 능력이 있기 때문이다. 그의 작품 속에는 좋지 않은 감정이 어딘가에 깊이 담겨 있다. 하지만 그 감정은 더 긍정적이고, 행복하고, 유쾌한 것으로 변형되어 나타난다.


“사람들은 그다지 선하지 않다. 하지만 선은 존재하며, 선과 함께하는 사람은 언제나 있다.”


그의 말이다. ‘꼬마 니꼴라’에 등장하는 아이들은 걱정 없이 행복하게 뛰놀고 서로 격려하고 선생님을 놀리고 소리 지르며 버스를 따라가고 부모에게 거짓말을 한다. 하지만 상페는 “아이들이 행복하지 않을 때는 언제나 행복할 필요가 있다.”라고 말한다. 아이들에게 유쾌하다는 것은 행복하다는 뜻이다. 어른들은 어떠한가? 어릴 때의 유쾌함은 사라지고, 삶의 무게에 짓눌려 우울하게 살고 있지 않은가?




요즘 세상이 참 많이 어렵다. 나라는 어지럽고, 경제는 최악이고, 삶은 팍팍하다. 뭐 하나 재미있고, 흥미롭고, 유쾌한 일이 없다. 현실은 칙칙하며 무겁고, 미래는 희미하고 불안하다. 그럼에도 불구하고 우리는 희망의 불씨를 놓지 않는다. 꿈을 버리지 않는다. 비극 속에서도 옅은 미소를 잃지 않으려 하고, 힘듦 속에서 사소한 위로와 기쁨을 찾으려 한다.


실제로 우리가 위로받을 수 없다는 것을 인정하면서도, 시도하고 실패하고 그대로 다시 시도하면서 살아간다. 상심하는 와중에 유쾌할 수도 있고, 상심하고 나서 유쾌할 수도 있다. 진지하기만 하거나 유쾌하기만 한 것 아니라 두 가지 감정을 함께 느낄 수 있다. 모든 삶이 그렇다. 나도 오늘 아침 두 가지 감정이 교차한다. 그래도 가능하면 유쾌함에 더 비중을 두고 싶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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