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지고지순한 조선판 사랑과 영혼

아날로그식 사랑이 그리울 때

by 이상옥
망자01.jpg


원이 아버지에게

당신 언제나 나에게 '둘이 머리 세도록 살다가 함께 죽자'하셨지요.

그런데 어찌 나를 두고 당신 먼저 가십니까?

나와 어린아이는 누구 말을 듣고 어떻게 살라고 다 버리고 당신 먼저 가십니까?

당신 나에게 마음을 어떻게 가져왔고, 또 나는 당신에게 어떻게 마음을 가져왔었나요?

함께 누우면 언제나 나는 당신에게 말하곤 했지요.

"여보, 다른 사람들도 우리처럼 서로 어여삐 여기고 사랑할까요?

남들도 정말 우리 같을까요?"

어찌 그런 일들 생각하지도 않고 나를 버리고 먼저 가시는 가요?

당신을 향한 마음을 이승에서 잊을 수가 없고,

서러운 뜻 한이 없습니다.

내 마음 어디에 두고 자식 데리고 당신을 그리워하며 살 수 있을까 생각합니다.

당신은 한갓 그곳에 가 계실 뿐이지만

아무리 한들 내 마음같이 서럽겠습니까?

한도 없고 끝도 없어 다 못쓰고 대강만 적습니다.

이 편지 자세히 보시고 내 꿈에 와서 당신 모습 자세히 보여주시고

또 말해 주세요

나는 꿈에는 당신을 볼 수 있다고 믿고 있습니다.

몰래 와서 보여주세요.




1999년 안동에서 400년 전으로 추정되는 일반 사대부의 무덤 발굴이 진행되었다. 발굴 중 무덤 속에서 망자의 가슴을 덮고 있던 한지에 빼곡히 적힌 편지가 있었는데, 죽은 남편을 그리워하며 아내가 쓴 편지로, 남편을 향한 사랑이 얼마나 애틋했는지 알 수 있다. 발굴된 유물을 통해 확인 된 남편은 31살의 나이에 지병으로 죽었다. 망자에게 쓴 아내의 편지는 한지에 빼곡히 써내려 갔으며, 죽은 후 매장전까지 몇일 상간에 쓴 것으로 지아비에 대한 사랑이 절절히 투영되었는 바, 한 지 한 장에 정성스레 써 내려가는 중 부족한 여백을 채웠으며, 심지어는 처음 시작했던 곳 옆 여백에 거꾸로 써 내려간 흔적이 있다. 이것은 그저 형식적인 내용이 아닌, 그야말로 진심과 사랑이 담긴 '사모곡'이라 할 수 있다. 지고지순한 지아비에 대한 사랑인 것이다.


망자02.jpg [한지에 쓰여진 망자에 대한 아내의 손편지]


문명이 발달하고 발전한다는 것은 과거보다 더 편리해지고 윤택해진다는 전제가 깔린다. 실제로 과거에 비해 잘 먹고, 잘 사는 문제는 지속적으로 나아진 것은 사실이다. 하지만, 인간의 삶을 풍부하게 하고, 행복이란 잣대로 세상을 평가할 때는 다른 이야기가 된다. 스마트폰과 인터넷의 발달로 과거에 비해 약속장소를 정하고 만나는 것에 있어, 정확하고 시간 낭비 요소가 없어졌으며, 편지 왕래에 따른 불편함과 시간이 절감되지만, 그리운 사람을 만나기 위해 약속장소에서 기약없는 기다림에 따른 설레임, 염려, 간절함에서 오는 감정의 뜨거움은 느끼지 못한다. 종이에 쓰는 편지에 담기는 마음의 온기를 전하는 행복과 편지를 기다리는 간절함은 예전만 못하다.


우리가 과거의 아날로그 감성들이 때론 사무치게 그리워지는 이유는 지금이 불편하거나 유연하지 않아서가 아니고, 너무 빠르고 정확함에서 오는 피곤함이 더 크거나, 각박함에서 오는 메말라지는 정서 때문이다. 유채꽃이 만발한 꽃밭을 거닐며 시인이 되는 감성을 키우던 소녀가 자신만을 끔찍이 사랑하는 사람과 한평생 동고동락한 삶이 뭇사람들의 마음을 울렸던 '폭싹 속았수다'라는 넷플릭스 드라마에 열광하는 이유는 인간 속에 감춰진 원초적 감성을 깨웠기 때문이다. 인간은 편리하고 윤택함이 행복의 척도가 될 수 없다. 좀 불편해도, 좀 느려도, 좀 손해를 봐도 인간미를 느낄 수 있는 곳에서 행복을 찾는다.


발굴 과정에서 또 놀라운 것이 하나 더 보였는데, 망자의 머리맡에서 나온 '미투리'이다. 미투리는 조선시대 서민층 상류계급에서 신었던 대표적인 신으로, 선비들이 맑은 날 나들이에 신었다고 한다. 보통 삼, 왕골, 면사, 견사로 만드는데, 무덤에서 발견된 미투리는 사람의 머리카락을 엮어서 만들었다. 아내가 병석에 있는 망자를 위해 만들었던 것으로 추정되는 미투리는 자신의 머리카락을 한올 한올 정성스레 꼬아서 엮었다. 이 미투리를 싼 한지에 쓰여진 내용을 유추해 볼 때 망자는 병석에 누워있어 직접 신어 보지는 못하고 죽은 것으로 보인다. 아내의 지아비에 대한 사랑이 얼마나 컸던 것인지 헤아릴 수 있는 충분한 유품이다.


망자03.jpg [지아비를 위해 아내가 자신의 머리카락으로 만든 미투리]




어느덧 AI시대를 맞이하여, 인간이 할 수 있는 영역이 점점 줄어들면서 직접 몸과 행동을 통해 하던 것조차 최소한으로 줄어들 것이다. 앞으로는 지금 누리는 불편함에서 오는 행복을 그리워 하는 싯점이 또 올지도 모른다. 또한 AI의 발전은 오히려 대규모 실업, 통제 실패에 따른 파국으로 멸망은 아니더라도 매우 심각한 사회경제적 불평등이 더 심화될지도 모른다. 인간의 욕망으로 쌓아 올리는 문명 발전의 끝이 어디인지를 모르나, 인간의 행복을 원하는 방향은 아닐 것이라는 소름이 돋기 시작했다. IT 트렌드를 쫓아 30년 넘게 최첨단 기술을 익혀 온 나로써는 점점 진화하고 발전하는 모습이 두려워지기 시작했다. 지금 당장도 고객을 위해 AI로 중무장한 신기술을 제안해야 한다. 그럴 때일수록 내 기억으로 남아있는 아날로그 감성이 더 그리워지는 이유는 나뿐만은 아닐 것으로 생각한다.


나는 이 작은 다큐를 보면서, 평범하고 작고 사소한 것의 아름다움을 보게 된다. 400년 전 어느 작은 시골의 서생이 단란한 가족 속에서 사랑을 주고 받으며 달콤하게 살았던 짧은 인생은 평범하지만 찬란하고, 작고 사소한 사랑이지만 아름다움을 마음껏 품어내기에 부족함이 없음을 편지와 미투리를 통해 전달 받을 수 있었다. 삶은 돌연한 사건과 우연한 만남의 연속으로, 우리는 훗날 돌아볼 때에야 비로소 그 모든 일들이 특별했음을 깨닫는다. 문명이 아무리 발달되어 윤택한 생활이 가능한 지금, 소박하고 때묻지 않은 진솔한 사랑이 더 소중함으로 다가온 이유이기도 하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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