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일상을 충만하게 산다는 것

평범한 삶을 찬양하며

by 이상옥
일상04.jpg [일상적인 점심시간의 여유로운 산책]


이제 나는 인생에서 무엇을 이루었는지, 앞으로는 무엇을 하고 싶은지 생각해보는 나이가 되었습니다. 내 인생을 직접 살아낸 게 아니라 언제나 먼발치에서 지켜보기만 한 것 같아요. 나의 한쪽 면만을 발달시켰고, 한 인간으로서 무척 초라하다는 느낌이 들었어요. 당신은 늘 나보다 더 풍요로운 사람이었습니다. 당신은 모든 면에서 만개한 사람이었지요. 거침없는 삶을 살았고요. 반면에 나는 우리의 삶이 진짜 시작되려면 아직 멀었다는 듯, 언제나 다음 일로 넘어가는 데 급급했어요. - 앙드레 고로 / D에게 보내는 편지 -





요즘처럼 평범한 일상, 소소한 행복, 상식적인 사고가 중요한 적이 없다. 우리는 그동안 성공과 정상을 추구하며 살아가는 사람들을 동경하고, 그런 사람이 되기 위해 노력해 왔다. 그리고 현실적으로 그런 소수의 사람들이 사회 전반의 혜택을 독차지하고, 기득권 세력이 되어, 테두리와 장막을 치고 그들만의 리그를 만들며 추악한 세상을 만들어 왔다. 그런 부패한 내면이 하나씩 세상에 공개되면서, 평범하고 상식적인 삶을 오롯이 지켜내고 있는 사람들로 하여금 경악을 금치 못하게 하고 있다. 그러면서 소중하게 지켜왔던 평범하고 일상적인 삶조차 무너져 내리고 있다.


그러나 아이러니하게도 평범하고 상식적인 일상을 파괴한 세력들은 여전히 자신의 영역을 공고히 하며 아무렇지도 않는 듯 일상을 누리고 있고, 그들로 하여금 무너진 일상을 회복하려고 고군분투하는 것은 평범한 일반 소시민들이다. 왜 세상은 사고 치는 사람들은 상처를 덜 받고, 사고를 수습하는 시민들만 발을 동동 구르며 사고로 무너진 일상을 복원하려고 노력하며, 눈물짓는 것일까?


세상의 주인이 그들의 몫이기 때문이다. 성공하고 출세를 하여 이름을 드높이는 사람들은 역사적으로 오래 기억되고 있지만, 실상 삶을 오로지 살아내는 것은 평범한 사람들이다. 권력을 누리고, 기름진 음식으로 풍요로운 삶을 영유하는 가진 자들의 삶이 때론 부럽고, 동경의 대상이 되겠지만, 그들 또한 가진 것을 지키고 누리기 위해 하루도 편하게 보내지 못했을 것이다. 세계 2차대전을 악몽으로 이끌었던 ‘히틀러’도 통치하는 몇 년은 최고의 인생을 살았을지 모르나 지하 벙커에서 자살로 생을 마감할 즈음에는 삶의 회한이 몰려왔을 것이다. 프랑스 혁명의 격동기를 지나 한때 유럽을 정복했던 ‘나폴레옹 보나파르트’ 또한 세상에 ‘불가능’은 없다는 정신으로 세상을 호령했을지라도 ‘세인트 헬레나’ 섬에 유배되어 생을 마감할 즈음에는 평범한 삶을 동경했을지 모른다.


보로디노01-1.jpg [독배를 든 나폴레옹의 보로디노 전투]


1812년 9월 7일, 나폴레옹 60만 군대는 러시아의 보로디노 전투에서 하루 동안 가장 거대하고, 많은 피를 흘렸다. 양쪽 합쳐 300,000의 군대가 뒤엉켜 싸운 끝에 최소한 70,000명의 사상자가 생겼다. 이 전투에서 나폴레옹은 전투 현장에서 멀리 떨어져 있었고, 나폴레옹의 의지와 상관없이 전투 현장에 투입된 병사들의 비겁하거나, 용감한 사소한 행동 하나하나에 의해 서로 죽고 죽임을 당한 전투가 되었다. 나폴레옹 군대는 결국 보로디노를 점령하였지만, 프랑스 군대의 피해는 큰 반면, 러시아의 피해는 미미했고, 나폴레옹 왕조가 몰락하게 된 계기가 되었다.


나폴레옹이 아무리 전략적이고, 지략이 넘치는 군인이자 정치가일지라도 자신이 지휘하는 병사들과 멀리 떨어져 있으면 무기력해진다. 이처럼 군인이나 정치가가 권력이라는 피라미드에서 더 높은 위치에 있을수록, 그들은 존재 자체가 역사인 평범한 사람들이 있는 최하단의 피라미드 토대에서 점점 더 멀어진다. 그 결과 그들이 가지고 있는 공적인 권한에도 불구하고 토대에서 너무나 멀리 떨어져 있는 이런 인물들의 말과 행위가 역사에 미치는 영향은 더욱 미미해진다.


평범하지만 다수를 이루는 시민들의 권리를 무시하고 짓밟으려고 하면 그들의 토대를 발판삼아 권력과 특혜를 누리는 사람들의 영광도 오래가지 못한다. 이런 조짐이 작금의 여러 위기 상황 속에서 표면 위로 올라오고 있다. 그리고 그들의 추악하고 나약한 이면을 보게 된다. 민주주의 국가에서 모든 권력은 국민들로부터 나온다. 대다수의 평범한 국민들이 존재하기에 그들의 권력이 온전하고, 그렇기에 그들의 권력은 오로지 국민들을 위해 쓰여져야 한다. 그렇지 않고 일부 특정층을 위해서 혹은 자기 자신의 욕심을 채우기 위해 사용되면 안된다.


일상01.jpg [숯에서 익은 군고구마는 소소한 행복을 준다]


평생의 삶을 자신의 욕심을 위해 사는 사람은 많은 재산과 풍요로움을 누리고 살지는 몰라도 인격은 낮아지고, 품위는 떨어지며, 정신은 황폐해진다. 최근 윤대통령 탄핵으로 유명해진 ‘문형배’ 헌법재판소장 권한대행의 전 재산이 4억이 채 안된다는 기사를 보고 사뭇 놀란 적이 있다. 2019년 헌법재판관 후보자로 국회에 신고한 금액이고, 당시에도 우리나라 가구당 평균 재산이 3억원 남짓되는데 자신의 재산이 4억이 좀 안되어 오히려 죄송하다고 반성한다는 말을 했다. 그는 “제가 결혼할 때 다짐한 게 있다. 평균인의 삶에서 벗어나지 않아야 되겠다고 생각했다.”라며 “최근 통계를 봤는데 우리나라 가구당 평균 재산이 한 3억 원 남짓 되는 걸로 알고 있다. 제 재산은 한 4억 조금 못 된다” “평균 재산을 좀 넘어선 거 같아서 제가 좀 반성하고 있다.”고 밝혔다.


27년간의 법관 생활에서 모은 재산이 4억이면 평생 법관으로서 국민들의 법적 어려움을 해결하는데 충심을 다했다는 것이다. 청렴결백한 공무원의 생활이 이런 모습 아닐까? 그에게 주어진 권력과 권한은 국민으로부터 오는 것으로 오직 국민들에게 봉사하는 마음으로 생활한 진정한 공무원인 것이다. 그의 이런 성품은 진주의 사회 사업가이자 교육자로 유명한 ‘김장하’ 선생으로 이어진다. 사천 태생인 김장하 선생은 어릴 때부터 한약방에서 일한 경험을 토대로 전국 최연소로 ‘한약업사’ 시험에 합격, 진주에서 한약방을 열어 문전성시를 누릴 정도로 호황을 누리며 엄청난 재산을 축적하였다.


그러나 김장하 선생은 “똥은 쌓아두면 구린내가 나지만, 흩어버리면 거름이 되어 꽃도 피우고 열매도 맺는다. 돈도 이와 같아서 주변에 나누어야 사회에 꽃이 핀다”라고 말하며, 재산을 사회에 환원하며 지역사회 발전에 헌신하고, 장학금 등 여러 후원 사업을 통해 나누는 삶을 산다. 문형배 헌법재판관도 김장하 선생이 준 장학금으로 공부한 것이다. 이처럼 사회는 권력을 쥐고 자신과 소수의 주변 탐욕을 위해 사는 사람들에 의해 지탱되고 발전하는 것이 아니라, 권력과 재산의 규모에 상관없이 사회를 위해 나누고 봉사하는 평범한 사람들에 의해 유지되고 발전되어 간다. 김장하 선생은 다음과 같은 말로 평범함을 강조한다. “우리 사회는 평범한 사람들이 지탱하고 있는 거다.”




그렇다. 평범한 사람들이 지켜낸 평범한 일상이 소중하고 숭고한 이유가 여기에 있다. 사람들은 명예와 상관없이 권력과 상관없이 많은 재산과 상관없이 사회적 성취보다는 개인적인 것, 즉 자신의 힘으로 자신을 위해 탁월함에 도달하려고 노력하는 과정에서 자기만족적 기쁨에 더 큰 의미를 둔다. 힘도 없고, 먹고 살기에 빠듯한 평범한 시민들이 추운 날씨에도 아랑곳하지 않고 거리로 나서는 이유는 우리가 주인이고, 우리가 사회를 지탱하고 있는 버틸목이 된다는 사실을 인식하고 있기 때문이다. 높은 위치에서 자신들만의 리그를 만들어 호의호식하며 자신들이 세상을 지배하고 있다고 생각할지 모르지만, 그들에게는 평범한 일상에서 오는 소소한 행복의 의미를 찾을 수 없으며, 자신의 힘으로 지켜낸 가치에서 오는 자기만족적 기쁨이 있을 수 없다. 그들에게는 평생을 이어온 불온한 탐욕과 그릇된 가치관만 존재할 뿐이다. 결국 이 땅의 주인공은 평범한 소시민들이다.


평범한 삶은 ‘불완전하기 때문에’ 우리에게 용기를 준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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