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불편함을 감수해야 배운다

홀로서기 연습

by 이상옥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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품성은 편안하고 고요한 상황에서 발달하지 못한다. 오로지 시련과 고통을 겪음으로써 영혼은 강인해지고 시각이 명료해지고 야망이 타오르고 성공을 성취하게 된다. -헬렌 켈러 -




일 때문에 대전에 자주 머물게 되다보니, 서울 집이 생경하고 그리울 때가 있다. 매번 에어비앤비 같은 어플을 통해 낯선 곳을 찾고, 하루 이틀 머물다 보면 스스로 빨래도 하고, 간단한 음식을 만들어 먹는 경우도 종종 있게 된다. 낯선 곳에서 불편한 잠자리를 극복하는 것도 어느 정도 익숙해졌다. 그런 와중에 자연스레 집사람을 포함 가족들 간에도 어쩌다 보는 시간이 늘어나고, 이런 낯섬이 편안함으로 다가오기 시작했다. 무엇보다 내 스스로 해보지 않은 일들을 어쩔 수 없이 하게 되며 자연스레 배우게 된다.


어느 책에선가 5개 언어 이상을 자유자재로 하는 다국어 능력자에 대해 소개하는 글을 읽은 적이 있다. 우리는 통상적으로 다국어를 능수능란하게 하는 사람들은 태생적으로 언어능력이 탁월한 사람들로 여긴다. 하지만 대부분의 다국어 능력자들은 평범한 사람들이 가지고 있지 않은 용기를 냈을 뿐이다. 가장 큰 용기는 배우는 과정에서 느끼는 불편함을 받아들이고, 그 불편함 속에서 발생되는 수많은 실패들을 두려워하지 않을 용기이다. 그들은 준비가 완벽하게 되어있지 않아도 곧바로 경기장에 뛰어 들었으며, 현지인들과 직접적인 대화를 통해 반복되는 실패 속에서 잠재력을 최고로 끌어 올렸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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우리는 흔히 어린 아이일수록 학습능력이 뛰어나다고 생각한다. 사실 어린아이들이 스펀지처럼 새로운 지식이나 기술에 대해 성인들보다 빨리 습득하는 것은 사실이다. 실제로 스키장에 처음 스키를 배우러 갔을 때 5살짜리 아이들보다 더 느리게 터득하는 나 자신을 보며 좌절해 본적도 있다. 아이들은 머리 자체가 말랑말랑하다. 어른들처럼 앞에서 쌓인 지식들의 방해을 받을 필요도 없고, 무엇보다 실패에 따른 창피함이나 두려움에서 오는 불편함에서 자유롭다. 어른들은 실수를 하거나 하게 될 경우를 상상하며 시도 자체를 두려워한다. 그래서 어린아이들은 빨리 배울 수 있는 것이다.


나이가 들면 그동안 배운 지식을 토대로 그만그만 살아가는데 지장은 없다. 하던 대로 하고, 새로운 도전을 하지 않으면 그렇게 크게 불편할 꺼리도 없다. 하지만, 배운 지식을 꽃감 빼먹듯 곱씹으며 살기에는 인간 수명이 늘어도 많이 늘어났다. 사회에서 인정하는 경제적 활동 나이도 갈수록 줄어들고 있는 마당에 평균 수명주기도 늘었으니, 새롭게 배우지 않고는 못배기는 세상이 도래했다. 더군다나 부부간의 역할과 책임 범위도 재정립도고 있고, 사회적 시선이나 제도 또한 변하고 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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인간의 삶 자체가 평생 공부하고 배우는 과정이지만, 사회적 환경 변화에 따라 배우지 않아도 될 것들도 배워두는 것이 좋은 세상이 되었다. 그 중의 하나가 집안 일이다. 소위 말하는 의, 식, 주에 해당되는 대부분의 일을 배워둬야 한다. 남편과 부인이 따로 없고, 남녀노소가 따로 없다. 입고 살아야 하는 입장에서 내 몸을 감싸고 있는 모든 것들에 대해 스스로 얻고, 유지관리하는 일들을 배워야 한다. 나를 비롯해 평생 직장생활을 하며 가족들을 부양한 남자들은 속옷부터 내 손으로 직접 사서 입어본 것이 많지 않을 수 있다. 빨래는 말할 것도 없다. 하지만 언제 어떤 상황이 발생될지 모르니, 이런 간단한 일들은 스스로 해보고 불편하지 않게 자연스럽게 체득해야 한다. 먹는 행위도 마찬가지다. 밥은 말할 것도 없고, 간단한 음식은 스스로 만들어 먹을 줄 알아야 한다.


이미 학업을 마치고 직장에 다니는 다 큰 아이들에게도 자신의 옷은 스스로 빨아서 관리하라고 했다. 평생 가족들을 위해 집안 일로 이골이 났을 아내들도 자신만의 삶과 시간이 필요한 때가 되었다. 둘 중 한 사람이 불편해 꼭 보호자가 동행할 필요가 없으면 여행도 따로갈 필요가 있다. 여행뿐만 아니라 여가 시간도 각자 알아서 만들고 따로 보내면 된다. 성향이 맞지 않은데 가족이라는 이름으로 똑 같은 영화를 보고, 똑 같은 드라마를 볼 필요가 없다. 여행은 물론 일상적인 외출도 따로 하고, 각자 공간을 분리해 그곳에 머무는 동안에는 서로 방해하거나 간섭하지 않으며 밤에도 각자의 침실에서 따로 자는 것도 필요하다. 부부가 적당히 거리를 두고 지내면 사이가 더 원만해 질 수도 있다. 물리적 거리가 멀어지면 적당한 심리적 거리를 유지할 수 있고 스트레스 받는 일이 줄어든다. 자연스레 상대방을 향한 마음의 여유도 생길 것이다. 더 나아가 떨어져 보내는 시간이 길어지면 마음이 애틋해져 서로를 더 잘 챙기게 될 수도 있다




펜실베니아 와튼스쿨 종신교수이자 세계적인 심리학자로 유명한 '애덤 그랜트'는 그의 책에서 품성 기량 학습의 중요성에 대해 강조한다. 품성은 성격과 다르다. 성격은 성질이나 경향 등 원초적 본능을 말하고, 품성은 본능보다 가치를 우선으로하는 역량을 말한다. 인간의 인지적 기량이 인간과 동물을 구분한다면, 품성 기량은 인간을 기계 이상의 존재로 승격시킨다. 태어날 때부터 타고나거나 살아오면서 내면에 쌓인 '성격'을 나이들어 바꾸기는 쉽지 않다. 하지만, 그동안 살아오면서 쌓아온 의지력, 자제력, 주도력 등 '품성'을 바꾸는 학습 능력은 노력 여하에 따라 높일 수 있다. 성공과 행복이 삶에서 중요한 목표가 되듯이, 인생을 재구성하는 시점에서 '품성'을 바꾸는 노력은 해 볼만 하다. 장거리를 여행하려면 적절한 종류의 불편함, 적절한 정보를 흡수하려는 역량, 그리고 적절한 불완전함을 받아들이는 의지가 필요하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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