brunch

시원하거나 섭섭하거나

또 하나의 프로젝트를 마치며

by 이상옥
대전07.jpg [종료보고 하는 날 / 대전종합청사 / 2025.07.16]


작은 창에 기댄 노을이

남기고 간 짗은 노을이

벌써 내 곁에 다가와

더 없이 외로워져

보이는 건 어둠이 깔린

작은 하늘 뿐 이지만

내게 열려 있는 것 같아

다시 날 꿈꾸게 해

손 내밀면 닿을 듯한

추억이 그림자 되어

지친 내 마음 위로해주고

다시 나를 살아가게 해

계절 따라 피어나는

꽃으로 세월을 느끼고

다시 고독이 찾아와도

그 또한 내 삶인데

-----

- 이 또한 내 삶인데 / 조용필 노래 -




대전에서의 6개월 대장정의 마지막 날을 맞이한다. 눈보라 휘날리던 겨울에 내려와 한여름의 폭염을 뚫고 소낙비가 내리는 가운데 종료보고를 끝으로 또 하나의 프로젝트가 마무리 되었다. 보통은 이런 경우 일과 고객으로부터 해방감, 특히 타지의 불편함으로부터 벗어났다는 이유로 시원하기 마련인데, 한편으로 섭섭함도 동시에 밀려온다.


그만큼 최선을 다하고, 열정을 담았던 프로젝트다. 그동안 숱한 프로젝트를 시작하고 마무리 해 왔지만, 아쉬움과 섭섭한 감정이 교차하는 프로젝트는 흔하지 않다. IT분야에서 프로젝트는 일종의 작은 사업이며 비즈니즈다. 책임을 지는 PM은 사장의 입장에서 전략을 수립하고, 예산과 일정을 관리하고, 팀원들의 역량과 지식을 총동원하여 고객이 원하는 결과물을 만들어 내야 한다. 한편으로 고객과의 원만한 관계를 유지하며 과업의 범위와 양을 적절히 조정하고 팀원들의 불평불만을 시기적절하게 관리하며 일정 내에 소기의 목적을 달성해야 한다.


야근을 밥먹듯 했고, 주말도 마다하지 않고 일했다. 산출물은 컨설턴트의 자존심이고 분신이 되었다. 고객의 요구 이상으로 결과물을 내려고 팀원들의 원망도 들었고, 무리한 고객의 요구로부터 팀원들을 보호하기 위해서 고객 앞에서 얼굴을 붉히기도 했다. 그 사이 팀원 중 이탈자가 생기기도 하였고, 한동안 고객과 불편한 관계를 맞이하기도 했다. 이 모든 것들은 예산확보라는 소기의 목적을 달성함으로써 사소한 에피소드가 되었고, 이벤트가 되었다.


대전06.jpg


대전은 대한민국 종합청사가 있고, 각종 연구단지가 즐비하며, 전국에서 대학교가 가장 많은 도시이고, KTX나 SRT로 1시간이면 족히 오는 거리에 있다. 그래서 정기권을 끊어 매일 출퇴근하는 사람들이 많아, 원하는 시간대를 골라 대전에 도달하기엔 매우 어렵다. 초기에 장기 투숙으로 대전에 머무를 때는 여유롭게 걸으며 낯선 도시의 향기에 취할 수 있었고, 시가 무료로 제공하는 공용자전거인 ‘타슈’를 이용할 때는 편리함과 유용함으로 자유를 만끽하였다. 하지만, 5월부터는 수시로 방을 옮겨다니는 생활을 하며 자주 서울을 오갈 때는 할 수 없이 새벽 시간대를 이용할 수 밖에 없었다.


대전은 젊음의 도시다. 대한민국의 중심에 있고, 학교와 연구단지 그리고 대학병원을 비롯한 민간 병원들이 보기 드물게 성황을 이루는 지방도시다. 특히, 젊은이의 도시답게 성형, 미용 관련 병원은 전국적이다. 타 지역에서 원정을 올 정도로 활발하다. 저녁에는 갤러리아 백화점을 중심으로 둔산동과 성심당을 중심으로 중앙로가 젊은이로 북적인다. 덩달아 젊은 기분으로 보냈다. 아침저녁 출퇴근 길, 양복에 백팩을 메고, 구두발로 자전거의 페달을 밟았다. 저녁 늦게 숙소에 도달해서는 간단한 안주에 캔맥주를 마시며 달달한 음악을 들으며 하루의 고단함을 달래곤 했다.




지난 주말엔 내가 응원하는 롤게임의 영웅인 ‘페이커’가 있는 T1이 현존 최강의 팀 ‘젠지’와 MSI 결승에서 패하며 우울한 하루를 보냈다. 그는 10년 이상 왕좌에 앉아 끊임없이 자신의 존재감을 증명해 왔다. 그와 함께 시작했던 롤 게이머는 대부분 은퇴하였고, 수많은 최고수들이 반짝이다 사그러 들었다. 내가 페이커를 존중하고 좋아하는 이유는 나이와 상관없이, 이제 은퇴해야 할 때가 된 거 같다는 비판에도 불구하고, 여전히 최고의 무대에서 지속적으로 자신을 증명하고 있다는 것이다. 그는 이번 캐나다에서 펼쳐진 2주간의 MSI 국제전에서 최강의 중국팀들을 이기며 여전히 건재함을 과시하였고, 충분히 ‘젠지’팀을 이기고 우승할 수 있다는 역량과 능력을 보여 주었다.


내가 일을 하는 이유는 나를 증명하는 수단이 되기 때문이다. 5개월의 타지 생활에도, 매번 새벽 5시에 일어나 고단한 몸을 기차에 실어도, 맨 날 야근에 주말 작업이 밥먹듯 하여도, 지치지 않고 열정적으로 일할 수 있었던 것은 일을 통해 나를 ‘증명’ 할 수 있어서다. 프로젝트를 마무리하는 오늘, 시원함보다 섭섭함이 더 큰 이유이기도 하다. 내 인생에서 또 하나의 작품을 만들며, 자그마한 이정표를 세움에 위안을 삼는다.




keyword
작가의 이전글[일] 나만의 새로운 무대 찾기