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무슨 일이든 현재의 수준을 뛰어넘어라

또 다른 실패에서 얻는 교훈

by 이상옥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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내가 무엇을 먹고, 언제 잠을 자고, 깨어 있을 때 무엇을 할지, 전부 피칭을 염두에 두고 결정합니다. 예를 들어 일광화상을 입으면 며칠 동안 공을 던지지 못할 수도 있습니다. 때문에 플로리다에 가서도 선탠을 피하고, 절대 셔츠를 벗지 않습니다. 피칭을 위해 오른손을 아껴야 하므로 개를 쓰다듬을 때나 난로에 장작을 넣을 때는 왼손을 사용합니다. 체중을 줄여야 하므로 겨울에는 초콜릿 쿠키 대신 코티지치즈를 먹습니다.

- 톰 시버 / 메이저 리그 투수 -




톰 시버는 1992년 98.8%라는 역대 최고의 득표율로 메이저 리그 명예의 전당에 이름을 올렸다. 그는 1987년 42세로 나이로 은퇴하기까지 311승, 탈삼진 3,640회, 완봉승 61회, 평균자책점 2.86의 기록을 수립했다. 시버는 20년에 이르는 프로 야구 선수 시절에 ‘날마다, 해마다 내가 던질 수 있는 최상의’ 피칭을 목표로 했다.


사람들은 하루에도 많은 일을 한다. 계획한 일도 많고, 목표를 정하고 추진하는 일도 많다. 하지만 우리가 이룰 수 있는 일은 한계가 있으며, 성취하는 정도도 천차만별이다. 이런 환경에서 성공적인 삶을 살기 위해서는 열정과 끈기가 필요하다는 것은 누구나 안다. 그런데 끈기는 알겠는데, 열정은 정의하기 어렵다. 소위 열정은 폭죽과 같다는 비유는 적절한 것인가? 폭죽은 순식간에 찬란한 불꽃이 사라지고 요상한 소리와 함께 연기처럼 화려했던 기억만 남긴다. 폭죽과 같이 폭발적인 열정도 필요하지만, 사라지지 않는 지속적인 열정이 더 필요하다.


시버04.jpg [톰 시버는 지난 2020년 8월 75세의 나이로 코로나 합병증으로 사망하였다]


최근에 아쉬운 실패를 한 적이 있다. 요즘처럼 경쟁이 치열한 경우에는 선택과 집중 그리고 전략적 협력이 무엇보다 중요하다. 때로는 업종이 전혀 다른 기업과 때로는 경쟁관계에 있는 기업과 협력은 또 하나의 생존전략이 된다. 업력과 매출력이 뛰어난 기업을 앞세우고, 비즈니스 도메인 경험이 풍부한 기업과 협력하여, 우리가 강점을 가지고 있는 컨설팅 역량을 덧붙여 최강의 컨소시엄을 구성하였다. 준비한 제언서도 완벽하고, 발표만 잘 하면 된다는 마지막 퍼즐을 남겨 놓은 상태였다. 그런데, 제안 제출 마지막날 50%의 지분을 가지고 있는 주사업자가 돌연 내부 사정을 이유로 협력을 못하겠다고 통보를 한다. 이런 경우는 상도에도 없는 최악의 상황으로 비즈니스 세계에서는 있을 수 없는 일이다.


약자의 설움, 치욕스런 배신감, 황당함을 논하기엔 너무 배부르고, 포기하기엔 아쉽다. 제안 마감 당일 급하게 주사업자를 바꾸게 되니, 새로운 업체에 대한 이해도 부족하고, 제안서에 담아야 할 자료도 엉망이 되었다. 그래도 그동안 준비해온 자료가 있어 힘들었지만, 급한대로 업체를 바꿔 제안을 무사히 하게 되었다. 문제는 발표를 준비하다 보니, 발표내용과 업체 간의 역할 및 특징이 맞지 않는다. 제안서를 힘들게 쓴 직원들의 입장을 고려할 때, 발표를 책임지는 나의 입장에서는 난감하게 되었다.


발표 하루 전에 알게된 현실을 극복할 수 있는 방법은 말로 심사위원들에게 호소하는 수밖에 없다. 이미 제출된 제안서에는 담아야 할 내용은 없는 상태에서 말로하는 것이 얼마나 효과가 있을지는 모르는 상태에서 나름대로 최선을 다해 본다. 그러나 내가 말한 내용을 어느 정도 진실로 받아 줄지는 미지수이고, 문서로 된 증거는 어디에도 없다. 결국 5개 제안업체 중 아쉽게 2등으로 떨어졌다. 말로 호소한 것에 대해 어느 정도 받아들이긴 했으나, 서류로 증빙되지 않은 내용을 인정하기엔 한계가 있었을 것이다.


그런데, 제안된 시간에 발표를 마치고 난 후에 복기하는 과정에서 내 스스로 ”내가 과연 최선을 다했는가?“란 의문을 가지게 되었다. 내가 진정 반드시 수주를 해야겠다는 열정을 충분히 보여주었는지? 제안서에 담지 못했다는 핑계를 삼아 안일하게 대처한 것은 없었는지?


결론은 있었다. 30년 넘게 이 바닥에서 경험을 축적한 베터랑으로서 할 수 있는 최선의 모습을 보여주지 못했다. 마감 당일 교체된 주사업자에 대한 지식이 부족해 제안서에 충분히 담지 못한 사실을 알았다면, 발표 당일 말로만 어필하지 않고, 좀 더 적극적인 호소를 했어야 했다. 주사업자로 교체된 업체는 그 어떤 업체보다 유사사업에 대한 경험이 풍부하고, 최고의 업체였다. 온라인 평가이고, 심사위원들을 직접 현장에서 볼 수 없다는 불리한 여건만 생각하느라, 제출하지 않은 증거서류를 직접 화면에 비추고, 필요하면 바로 증빙서류를 보내주겠다는 적극적인 호소를 순간적으로 생각해 내지 못했고, 행동으로 옮기지 못했다.




만약 내가 발표 이후 생각해 낸 행동을 적극적으로 시도했었다면 결과는 달라졌을 것이다. 심사위원도 사람이고, 나의 열정과 진정성이 조금 더 반영이 되었다면, 분명 결과는 더 좋은 쪽으로 바뀌었을 것으로 확신한다. 아직 나는 배워야 할 것이 남아 있다. 아직 나에겐 더 뛰어 넘어야 할 산이 더 남아있다. 내가 발표를 준비하는 이틀 동안, 톰 시버가 보여준 열정적인 모습으로 임하였다면, 좀 더 절박한 마음으로 해결방안을 찾았더라면, 결과는 더 좋았을 것이다. 지금 이 순간, 나에게 삶의 철학이 있다면 무엇인가? 라고 묻는다면, 단연코, ”하루 하루 최선을 다하고, 무슨 일이든 현재의 수준을 뛰어넘는다“가 될 것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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