낙서를 예술로 승화시키다
Jean Michel Basquiat 1960 ~ 1988
SIGNS : Connecting Past snd Future
2025.09.23 ~ 2026.01.31 / DDP
27세 젊은 나이에 요절한 천재 그래피티(낙서) 아티스트, '바스키아 전시회'가 동대문디자인프라자(DDP)에서 성황리에 진행되고 있었다. 티켓을 미리 확보해 놓고도, 시간을 핑게로 차일피일하다가 6개월마다 하는 정기검진 날 짭을 내어 찾았다. 이번 전시에는 특히 육체와 영혼을 표현한 대작 'Flesh and Spirit, 1982~23'도 함께했는데, 지난 2018년 소더비 경매에서 약 425억 원에 낙찰받으며 화제가 되었던 작품으로 전시 책임자에 의하면 이 한 점의 운반비만 1억 5000만 원이 들었다고 한다.
이번 전시는 중앙일보 창간 60주년을 기념해 마련됐으며, 주한미국대사관이 후원했다. 9개국에서 모은 회화, 드로잉 70여 점과 아시아 최초로 공개되는 작가 노트북 155장 등 총 230여 점을 11개 섹션으로 공개되었다. 그래서 그런지 볼거리가 풍성하였으며, 끝물임에도 불구하고 관람객들이 많았다.
1960년생 바스키아는 20세에 그룹전 '더 타임스 스퀘어 쇼'로 첫선을 보인 뒤 휘트니 비엔날레에 최연소 나이로 참가했다. 팝 아트의 거장 앤디 워홀과 협업하며 국제적 명성을 얻었지만, 워홀의 갑작스러운 사망 이후 충격으로 은둔하다가 이듬해에 27세에 약물과다로 요절했다.
그는 그래피티를 예술로 승화시킨 현대미술의 거장이란 칭송을 받으면서도, 낙서에 불과하다는 비웃음, 흑인이라는 편견, 앤디 워홀의 후광으로 컸다는 비판을 받으며 무시당했다. 그런 배경으로 나이 어린 흑인 아티스트인 바스키아는 백인이 우세하던 당시 뉴욕 미술계에서 많은 돈을 벌면 벌수록 오히려 큰 압박과 불안으로 다가왔다.
바스키아는 자신의 우상이었던 앤디 워홀과 가깝게 지내며, 서로의 삶에 대해 오랜 시간 이야기를 나누고 함께 작업하며 각자의 예술을 넘어 삶에도 지대한 영향을 미쳤다. 앤디 워홀과 함께하는 시간에 그는 이미 20대 초반에 세계 최고의 그래피티 아티스트로 성장하였고, 백남준 같은 신세대 아티스트와 협업을 즐겼다. 그래피티 아티스트로는 뱅크시, 블랙르라, 크래쉬 등이 유명한데, 대부분 길거리 벽화와 은둔으로 남아 있지만, 바스키아는 그 단계를 넘어섰다. 그의 그림은 비록 낙서 유형의 형태를 취하지만, 피카소의 추상화를 따라간다. 혹자는 낙서에 불과하다고 혹평하지만, 천재적인 재능과 번뜩이는 감각으로 짧은 생애에도 불구하고, 2500점에 달하는 작품을 남겼다.
그의 작품 중 1982년에 만든 '무제'는 일본의 조조타운의 창업자에게 무려 1200억 원이 넘는 가격으로 소더비 경매에서 팔렸다. 당시 그 경매가는 앤디 워홀의 기록을 넘어섰다. 그만큼 그의 작품을 예술성을 넘어 상업성과 스타성을 겸비하고 있었다.
이러한 성공과는 달리 1980년대부터 시작된 바스키아의 약물 사용은 단 2~3년만에 그를 파멸시켰다. 급기야는 시간이 갈수록 지나친 편집증과 무기력함을 보였고, 그에게 정신적인 지주였던 앤디 워홀의 죽음은 더 이상 세상에 살아야할 의미와 희망을 없애버렸다. 천재들은 일반 보통사람들이 평생을 써야할 뇌를 한꺼번에 써서 이른 나이에 탈진하는 것은 아닐까?!. 괜한 의구심이 든다.
하지만, 그의 작품은 나이와 인종과 장르를 초월하여 참신하고, 추상적인 이미지로 현재와 소통하고 있었다. 그의 작품을 보는 내내 그의 고뇌와 열정이 그대로 전해졌고, 짧은 삶속에 그의 모든 예술혼이 살아 숨쉬고 있음을 확인할 수 있었다. 그의 작품은 해골, 장기, 왕관, 흑인, 다양한 글, 이상한 기호들로 가득하였고, 화려한 색채와 무의미한 낙서들 사이로 보는 이로 하여금 묘한 감정과 상상의 나래를 펼치게 한다. 그에게 이런 영감을 주게 된 계기로 8살 때, 교통사고로 오랫동안 입원을 하고 있을 즈음, 어머니가 무료함을 달래기 위해 선물해 준 해부학 책에서 찾고 있는 사람도 많다. '그레이 아나토미'는 인기 드라마로 만들어지기도 했다.
바스키아에게 예술은 그의 삶의 전부였다. 그가 짧은 삶에서 토해낸 2500개에 달하는 작품 속에 그가 겪었던 희노애락이 담겼고, 그의 몸과 정신 속에 품었던 사상과 주장, 의미가 작품으로 승화되었다, 이번 전시에서 보여준 것이 극히 일부임에도 작품을 감상하는 내내, 그가 살아온 삶을 함께하려 노력했다. 작품에 담겨있는 이미자, 기호, 글들은 해석의 대상이 되지 않았다. 굳이 해석할 필요도 없고, 해석도 되지 않았다. 하지만 작품에서 뿜어져 나오는 전체적인 아우라는 그의 삶과 예술에 대한 집착을 이해하기에 충분했다. 삶의 모든 것을 담아 낸 작품이 주는 강렬한 포스가 압도한 하루였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