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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이상옥 Dec 09. 2023

익숙한 것과의 결별, 고독을 자초하다

독립은 고독이다


송파도서관은 내 삶의 훈련소이며, 충전소이다. 내가 정신적으로 중무장이 필요하거나, 어려운 문제로 난관에 부딪치거나, 새로운 일을 꾸밀 때면 어김없이 송파도서관에서 해답을 찾곤했다. 또한 이 곳에서 나의 첫 번째와 두 번째 책이 만들어졌고, 그 책들은 도서관에 기증되기도 했다.  밤새 롤게임에 빠져 허우적되는 사이 벌써 주말 아침 시간은 9시를 넘고 있었다. 이불을 박차고 단숨에 튀어 나와서 도서관을 찾았다. 


특별한 이벤트가 없으면 자연스럽게 찾는 곳. 송파도서관,  가장 이상적인 동네 도서관이다. 사브작 사브작 걸어도 10분, 자리를 잡고 오늘 읽을 책을 고르는데 제일 먼저 손에 잡힌 책이 ‘탁월한 사유의 시선’이다. 노자 철학으로 유명한 최진석 교수님의 작품이다. 그는 서강대에서 학사, 석사를 하고 북경대학교에서 박사과정을 밟았다. 서강대 교수 시절 TV방송을 포함하여 다양한 채널을 통해 개인과 사회가 나갈 방향에 관한 깊은 괴뇌를 분명하고 명확한 철학적 사견으로 강의를 해왔다. 그리고 “밝은 빛을 세우는 터전”이란 뜻을 가지고 있는 ‘건명원’이란 철학/인문 학교를 만들고 초대 원장을 역임했다. 

 

그는 ‘독립’을 강조한다. 독립은 기본적으로 혼자 서는 일이다. 어떤 것에도 의존하지 않고 자신의 힘으로만 책임성 있고 도도하게 우뚝 서는 것이다. 그런데 그는 독립할 때 가장 필요한 덕목을 ‘고독’이라고 말한다. 우리는 흔히 고독하면 외로움을 상징하는 부정적인 견해로 본다. 네이버에서 찾아본 사전적 의미도 "세상에 홀로 떨어져 있는 듯이 매우 외롭고 쓸쓸함'로 되어 있다.  하지만 그는 진정한 고독은 ‘아주 고아하게 혼자 서는 것’이라고 말한다. 


독립이나 고독은 기존의 질서가 주는 강압적인 힘에서 벗어나
스스로 우뚝 서는 용기를 발휘해야만 가능하다

만물의 근원을 신이라고 모두 외치고 있을 때, 철학자 ‘탈레스’는 그 모든 사람들과 결별하여 만물의 근원은 ‘물’이라고 외치며 스스로 고독을 자초하였기에 우리는 믿음의 시대에서 생각의 시대로 넘어 갈 수 있었다.  


새로운 생각을 해내는 사람은 기존의 믿음 체계로부터 이탈한 독립적 주체이다. 고독한 존재인 것이다. 그래서 철학하는 사람과 예술하는 사람은 고독한 존재인가 보다.


[꿈꾸는 자는 고독하다]


철학을 하는 것은 ‘독립’을 배우는 것이고, ‘고독’을 자초하는 것이다. ‘독립’은 익숙한 것들이 갑자기 불편해지면서 거기로부터 벗어나려고 용기를 발휘하여 얻은 선물인 셈이다. 여기서 불편하다는 것은 이미 있는 기존의 생각들이 더 이상 나의 삶이나 새로운 문명을 만들어가기에는 부적절하다고 느끼기 시작했다는 뜻이기도 하다. 따라서 새로운 일을 시작하기 위해서는 익숙한 것들과 결별하고 고독을 자초하는 시도를 해야만 한다. 


기존의 경험했던 것들이 낯설어지거나 이미 익숙해진 것이 생소하게 느껴지는 사람이 있다면, 그는 이미 어느 정도 독립적인 사람이다. 낯섦이나 생소함 등과 같은 감정은 정해진 것들이나 익숙한 것들과 갑자기 분리되는 경험이 생길 때 엄습해오는 불편함이다. 이 분리를 경험하는 상황에서 인간은 일단 고독해진다. 익숙함을 공유했던 주변의 연결망과 갑자기 끊어지고, ‘우리’에서 혼자만 벗어나 ‘이탈’하는 느낌이 든다. 이런 상태에서는 예민해 질 수 밖에 없다. 


고독한 사람, 즉 독립적인 사람은 예민하다

예민함은 우리가 흔히 알고 있는 것처럼 ‘가볍고 급하게 반응하는 신경질적인 민감함’이 아니다. 인간을 통찰로 이끄는 매우 종합적인 직관의 터전이다. 자신의 시대적 사명과 역사적 책임을 느낄 수 있는 성숙한 직관이다. 지성적으로 깊고 넓지 않은 상태에서 발동하는 경솔한 반응이나, 강한 신념과 믿음에서 나오는 성급한 과감성과는 차원이 다르다. 그래서 익숙함에 갇혀 있으면 절대 예민하게 반응할 수 없다. 익숙함에 갇혀 있으면 궁금증이나 호기심도 발동되지 않아 세상에 대한 질문도 등장하지 않는다. 


독립과 예민함은 인류 역사에서 뚜렷이 나타난다. 인류 역사는 한번도 예외 없이 소수가 다수를 전복하고, 그 소수가 다수를 형성한 다음 다시 새로 등장하는 소수에 의해서 전복되는 과정으로 이어져왔다. 

익숙함에 빠져있는 사람은 둔한 사람이다. 반면에 새로운 흐름이나 조짐을 읽을 수 있는 사람은 예민하다. 이 예민함으로 다른 사람보다 먼저 대응할 수 있고, 먼저 대응하니 앞서 나갈 수 있게 되는 것이다.  


과거 우리나라는 세계 변화에 반응하는 예민함에서 일본에 뒤쳐졌다. 근대화 물결이 시작되자 그 흐름을 읽고 빨리 대처한 일본은 느리게 대처한 조선을 앞서갔고, 결국 일본이 조선을 침탈하는 결과를 초래했다. 


창의적이고 창조적인 일들은 예민한 사람들이 익숙한 것들로부터 독립하면서 만들어 낸다. 창조란 새로운 흐름을 인식한 상태에서 거기에 어떻게 반응할 것인가에 대하여 극한으로 몰입할 때 일어나는 일이다. 그런데 보통 사람들은 기존 체제에 갇혀서 그 구조를 계속 반복하거나 재생하는 역할만 하기 때문에 기존 체제 안에서 새로움이 나타나도 그것을 새로움으로 보지 못한다.


[독립은 고독을 고독은 예민함을 예민함은 창조를 낳는다]


독립을 이룬 주체는, 즉 고독한 주체는 비록 단절과 고립의 상태에 있지만, 단절과 고립의 힘을 통해서 비로소 종속성을 깨닫고 거기서 벗어날 수 있다. 종속성을 벗어나자마자 이 독립적 주체는 능동성을 회복하고 진실한 내면을 외부로 확산할 힘을 갖게 된다.  


그리고 주체적으로 자신을 확산하는 활동이 시작되면 비로소 창의적이고 생산적인 연결도 함께 시작된다. 언뜻보면 ‘연결’과 ‘연대’에 독립은 상당히 부정적으로 보일 수 있다. 하지만 이는 잘못된 시각이다. ‘독립’적인 주체만이 창의적이고 생산적인 ‘연결’과 ‘연대’를 할 수 있다. 독립적이지 않고 종속적인 주체는 이미 있는 관념에 빠져 그것을 지키는 데에만 힘을 쓰기 때문에, 자신이 속한 공동체를 특정한 모습 그대로 유지하려고만 하지 새로운 연결을 시도하려 하지 않는다. 


오히려 기존의 연결고리를 끊고 독립을 해야 새로운 관계를 연결하고, 창의적인 연대를 모색하게 된다. 

스티브 잡스는 다음과 같이 말했다.


창의성은 연결이다(Creativity is just connecting things)

인간이 가지고 있는 능력 중 가장 탁월한 능력은 이질적인 것들 사이에서 유사성을 발견할 줄 아는 것이다. 전혀 다른 것으로 간주되던 이질적인 것들에게서 유사성을 파악한 후, 그 유사성을 근거로 상호 개방시켜 접속해보는 일이 연결이다. 스티브 잡스는 전혀 연관성이 없을 것 같은 음악, 인터넷, 전화에서 유사성을 찾아 하나로 연결한 아이폰을 만들어 냈다.  


이처럼 독립은 익숙한 것들로부터 결별이고, 고독에서 오는 예민함으로 창조적 사고를 통해 탁월한 제품을 만들어 낼 수 있는 것이다.  독립에서 오는 고독이 엄습해오고 있을 때,  나에게 탁월한 생각을 하게 해주는 것은 역시 철학적 사고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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